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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법] ‘리니지’ 계정복구 소송 판례를 통해 본 ‘서비스로서의 게임’

땡땡땡 2015-06-05 12:35:29

안녕하세요. 게임산업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지난 연재에서는 일본 판례인 <도키메키 메모리얼> 사례를 통해 '상품으로서의 게임'을 바라보는 시장의 문화와 사회적인 시각에서 어떤 법적 논리와 결론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서비스로서의 게임'의 관점에서, 게임 내용에 영향을 주는 프로그램 사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게임에 관해 우리나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법적 분쟁의 유형이 있습니다. 이런 분쟁은 외국에서는 자주 발생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어느 정도 판례군이 형성될 정도로 많았고, 최근에도 소송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 판례군=기본적인 분쟁의 유형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사실관계는 조금씩 다른 분쟁 사안들과 그 사안에 대해 법원이 판단을 내려 존재하는 판례들의 집합을 말합니다.​) 

 

바로 이용자와 게임회사 사이의 분쟁인데, '게임계정복구소송', '게임아이템복구소송'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오랜 기간 온라인게임이 대세였던 우리나라 게임 시장의 특성상, 이런 유형의 분쟁이 (다른나라에 비해)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 분쟁은 기본적으로 민사소송의 형태를 갖습니다. 

 

지난 2013년 <리니지> 한 유저는 강화 실패한 집행검을 복구해 달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온라인게임 이용자는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임회사의 회원으로 ‘가입’을 하고 게임을 합니다. 이 때 이용자는 약관 동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약관이 게임회사와 이용자 사이의 계약을 형성하게 됩니다. 온라인게임이 ‘서비스’라는 점에서 약관을 통한 계약관계의 성립은 거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계약이 처음 의도한 대로 이행되지 않기 때문에 - 즉, (제재를 받거나 아이템을 몰수당해)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 소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볼 분쟁은 ‘오토프로그램'(이하 "오토")을 사용한 이용자에게 게임회사가 제재를 가한 것에 대해 이용자가 '게임계정 이용중지조치를 해제하고,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청구했던 사안입니다. 2010년 대법원 판례로 국내의 대표적인 판례검색 서비스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건번호는 ‘2010. 10. 28. 선고 2010다9153 계정이용중지조치해제등’입니다.

 

 오토 마우스 프로그램 ‘린메이트’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고는 2명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이용자였던 개인이었습니다. 편의상 이들을 A와 B라고 하겠습니다. A와 B는 각각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를 이용하기 위해 회원으로 가입하고 정액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A는 A-1, A-2, A-3, A-4, A-5라는 다섯 개의 게임 계정(아이디)를 가지고 있었고, B역시 B-1, B-2 B-3, B-4, B-5라는 다섯 개의 게임 계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A의 A-2, A-4, A-5 계정이 오토를 썼다는 이유로 영구이용중지조치에 해당하는 제재를 당했고, 이후 같은 이용자의 계정 중 3개 이상의 계정이 영구이용중지를 당하였다는 이유로 A-1과 A-3 계정도 영구이용중지조치에 해당하는 제재를 당하게 됩니다. B는 조금 달라서 B-1은 현거래를 이유로, B-2, B-3, B-4는 오토를 썼다는 이유로 영구이용중지조치를 당하고, 얼마 후 B-5도 3개 이상의 계정이 영구이용중지를 당하였다는 이유로 같은 제재를 받습니다.

 

오토를 쓰지 말라는 내용은 이 사건 게임의 약관에 있었고, 오토를 쓰면 영구이용중지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한 이용자의 통합계정 내에서 3개 이상의 계정이 영구이용중지를 당하면 전체 통합계정이 영구이용중지를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은 이 사건 게임의 운영정책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약관은 운영정책에서 제재 수위를 정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었고, 링크를 통해 이용자들이 이를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이에 대해 원고들은 다음 두 가지 주장을 하면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나는 '약관은 동의했을지 몰라도 운영정책에는 동의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운영정책은 이용자가 가입할 때 동의하는 것이 아니고, 회사가 이용자들에게 홈페이지 등을 통하여 공지하는 것이거든요. 

 

<리니지> 운영 정책 중 불법 프로그램 사용에 대한 제재기준

 

또 다른 주장은 '오토를 쓰지 않은 계정(여기서는 A-1, A-3와 B-5)이 같은 이용자의 다른 계정 3개 이상이 영구이용중지를 당했다는 이유로 영구이용중지를 당하는 것은 불공정하여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의해 무효이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약관이라는 것은 이용자가 서비스업체로부터 일방적으로 제시받고 가입하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두어 그 약관 내용에 불공정한 점이 있으면 그 부분은 효력이 없는 것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점을 주장한 것입니다.

 

원고들은 위 주장을 바탕으로 본 건 게임이용계약의 근거가 되는 약관 중 3개 이상 계정의 영구이용중지시 통합계정 전체를 제재하는 약관은 무효이고, 운영정책 또한 무효이니 피고 엔씨소프트의 계정이용중지조치는 계약상 근거가 없는 채무불이행이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게임을 계속 이용하게 해 주어야 하고(계정이용중지조치 해제), 원고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50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원고들은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습니다. 이후 B만이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지만 반전은 없었습니다.

 

 

 

제1심법원은 간단한 논리로 원고들의 주장을 전부 배척했습니다. 피고의 원고에 대한 제재조치는 약관과 운영정책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운영정책은 약관에서 그 일부를 구성한다고 하고 있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되어 있었던 데다가 그 내용에 특별히 불합리한 점이 없다면 약관의 일부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전제했습니다.

 

전제가 그렇다면 오토를 사용하여 3개 이상 계정이 영구이용중지가 된 경우 같은 이용자의 다른 계정까지 제재하는 것이 불공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만 살펴보면 되는데, 오토프로그램은 폐해가 크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제재를 하도록 한 약관과 운영정책은 타당하다고 했습니다(오토프로그램의 폐해를 나열한 부분의 논리는 대법원 판결을 설명하면서 다시 살펴 보겠습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의 약관과 운영정책은 유효하고, 유효한 약관과 운영정책에 따라 제재를 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1심법원의 논리였습니다(원고들은 오토를 쓴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제2심에서도 일부 판결에서의 자구 변경과 원고들이 엔씨소프트의 회원으로 가입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사실관계만이 추가되었을 뿐 논리 자체가 변경되지는 않았습니다. 

 

  

B가 상고했던 상고심 판결문을 보면 대법원은 운영정책이 약관의 일부로 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이용한 경우에 같은 이용자의 3개 이상의 보유 계정에 대해 영구이용중지 조치를 당한 경우 그 이용자의 모든 계정을 이용중지시키고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한 것이 불공정한 약관이 아닌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상당히 깁니다만, 아래에서 밑줄 친 부분만 주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원심이 위와 같이 판단함에 있어서 참작한 사정들은, 자동사냥 프로그램은 이용자가 마우스나 키보드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명령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몬스터의 선택, 공격할 방법의 선택, 체력지수에 따른 물약섭취 등을 함으로써 하루 24시간 지속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게 되는 프로그램으로서 이용자의 순간적인 판단 및 조작에 의하여 좌우되는 이 사건 게임 본래의 시스템을 와해시키고, 다른 정상적인 이용자의 흥미를 떨어뜨리며, 게임서버에 과부하를 가져오는 등 이 사건 게임의 정상적인 운영 및 이용자 보호에 반하는 것이어서 그 불법성의 정도가 중하고 피고의 이 사건 게임 운영에 있어 치명적 방해요소가 되는 점,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은 결국 이 사건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시간 내에 많은 아이템을 수집하여 현금거래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많은 점, 자동사냥 프로그램은 컴퓨터에 다운로드 받아 놓으면 계속적·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이용자의 어느 계정이 이용중지를 당하더라도 다른 계정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계정으로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계속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계정별 제재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이용자의 모든 계정 이용제한 및 신규계정 생성금지와 같은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점, 이 사건 게임 약관에는 제재조치를 받은 이용자에 대하여 피고의 사이버 고객센터의 절차에 따라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이다.

 

이에 더하여, 이 사건 게임 약관 제2조 제1항의 해석상 이 사건 게임 약관과 운영정책에 따른 제재조치는 이용자가 동의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는 점, 그에 따라 약관에 동의한 이용자로서는 어떠한 행위에 대하여 어떠한 제재가 가해지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거나 알 수 있는 점, 피고가 이용자의 모든 계정에 관하여 이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치는 이용자가 보유한 3개 이상의 계정이 제재조치를 받은 경우에 이루어지므로 비교적 엄격한 요건 하에서 행해지는 것인 점, 이미 1, 2차 제재를 통하여 충분히 경고가 이루어졌음에도 계속적으로 위반행위를 반복하거나 동시에 3개 이상 다수의 위반행위를 감행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이용자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거나 합리적인 기대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아울러 고려하여 보면,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

 

위 판결문의 내용에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대법원이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며 게임 서비스 제공자가 오토프로그램의 사용을 강력히 제재할 필요성의 근거로 ‘게임 시스템의 와해’, ‘다른 이용자의 흥미를 떨어뜨림’, ‘게임서버의 과부하’, ‘운영의 방해요소’ 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온라인게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비스입니다. 서버를 두고, 게임 클라이언트를 내려받아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한 이용자들이 게임을 계속 이용하는 것과 패키지게임은 그 사업의 구조부터 다릅니다. 패키지게임은 대부분의 경우 한 번 구매하면 게임회사가 망했든 아니든 게임을 계속 소장하고 즐길 수 있지만, 온라인게임은 이용자들이 게임 이용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미리 치른 정액제 게임이라고 하여도 게임 제공자의 서비스가 중단되면 이용자는 게임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서비스로서의 게임은 그 서비스의 지속성과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스토리의 변경이나 게임 내용의 변경보다는 게임 시스템, 타 이용자의 흥미, 서버의 과부하, 운영의 방해 등을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오토프로그램을 사용한 이용자를 제재하는 약관을 두게 되는 것도 그러한 취지가 반영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이용자가 프로그램을 통하여 게임 서비스 제공자가 예상하지 못한 조작을 게임에 가하고자 하였을 때,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로 대응하여야 했던 일본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경우와 상당히 대조적인 접근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온라인게임은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 사이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게임이 유지되고 스토리가 발전해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고정된 스토리의 변형을 방지하는 것보다는 서비스 자체의 유지에 더 방점이 놓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패키지게임과 온라인게임은 유저들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법 논리의 기초나 논리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만, 구입하여 즐기는 게임과, 지속적으로 접속하여 즐기는 게임에 있어서는 분쟁의 양상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판례의 사실관계와 원문을 인용하느라 이번 칼럼은 상당히 길어졌네요. 다음 주에는 다시 또 쉬어가는 글로 뵙겠습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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