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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게임과 법] 판사는 어떻게 게임의 내용을 알고 판결을 내릴까

땡땡땡 2015-06-15 12:19:32

안녕하세요. 게임산업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지난주와 이번 주는 제 개인적으로 무척 바쁜 두 주였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연재에서 말한 계정복구소송에 대한 여러분의 댓글을 뒤늦게서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연재에서 다룬 사안이 우리나라 판례이고, 해당 이슈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워낙 많으시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지난 두 편의 연재를 통해 오토와 같이 게임사가 허용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사용한 사례가 패키지게임과 온라인게임의 경우, 각각 어떻게 분쟁화되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지, 그리고 해당 분쟁에서 어떤 법 이론이 적용되었는지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다시 제 글 두 편을 읽어보다 보니 논의 방향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 싶어 말씀 드리면, 일본이나 미국의 법원이 게임을 곧 상품으로만 본다거나 우리나라의 법원이 게임을 서비스로만 본다거나 하는 일도양단식의 견해를 제가 취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법적 분쟁이든, 이 분쟁을 다루는 법원, 검찰, 변호사 및 학계와 같은 법률가들이 어떤 법률과 법 논리를 적용하느냐를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일본의 경우 <도키메키 메모리얼> 판례가 게임 그 자체의 스토리로서의 내용 보호에 중심을 두고 접근한 것을 볼 수 있어서 이를 '상품으로서의 게임'을 바라보는 견해의 한 예시로 소개해 드렸던 것입니다.

 

 

반면에 <리니지>에서 오토프로그램을 사용한 이용자에 대한 계정복구소송 사례는 서비스의 품질과 연속성 보호라는 관점에서 제재 규정을 두게 된 취지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비스로서의 게임'을 바라보는 견해의 예시로 소개해 드렸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게임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오토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유저나 판매업자에게 먼저 법적 조치를 취하려 한다면 동일성유지권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다만 게임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와 체결한 약관과 운영정책에 제재라는 더 간단한 수단이 존재하고, 게임서비스 제공자가 이 수단을 이용해서 계약에 근거를 두고 제재를 했기 때문에, 특정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중단의 적법성을 다투게 되는 방향으로 분쟁이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제가 말씀 드린 '상품으로서의 게임', '서비스로서의 게임'과 같은 구분은 학계의 정착된 견해는 아니고, 제가 그간 게임업계의 분쟁사례를 살펴보며 가지게 된 시각과 그로부터 비롯된 법이 현실을 반영하며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도 여러 판례와 이론을 통해 논의해 보아야 할 일응의 기준과 가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은 상품보다 서비스라는 인식이 만들어졌다.

 

오늘은 잠시 그간의 복잡한 논의를 벗어나 게임 외적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TIG 독자 여러분께서는 지금까지 연재에서 논의한 판례들을 살펴보면서,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게임의 상세한 기획 사항이나 오토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서까지 알고 판결문에 기재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역시 미연시의 천국 일본에선 판사도 미연시 매니아였을까요? 온라인게임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는 판사도 MMORPG 헤비 유저였을까요?

 

게임과 관련한 소송을 할 때, 변호사가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에 하나가 법원에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보통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에는 소송의 내용에 따라 3명의 판사 또는 1명의 판사가 재판을 하는데, 앞의 경우를 합의부라고 하고 뒤의 경우를 단독(단독판사)이라고 부릅니다. 합의부 사건은 3명이긴 하지만 보통은 재판장과 해당 사건을 직접 담당하고 판결문을 쓰는 주심 판사 2명이 해당 사건을 주로 살펴봅니다.

 

그런데 합의부 사건이든, 단독 사건이든 게임과 관련된 개념들을 담당 판사가 잘 모를 때에는 사건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게임 내에서 문제되는 캐릭터가 마법사이고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던 아이템 중 특정한 지팡이의 강화가 실패한 사건의 개요를 법원에 설명한다고 해 봅시다.

 

 

 

“원고는 이 사건 게임 내의 직업이 마법사인데 문제되는 지팡이의 냉기속성 +3을 해 주는 강화를 하기 위해 얼음속성이 포함된 보석을 재료로 사용해 강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하였습니다. “ 판사가 이 내용이 이용자와 게임사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고 있을까요?

 

하긴 이런 내용이 판타지소설이 아닌 법원에 제출되는 소장이나 준비서면에 기재돼 있다는 것 만으로도 신기한 일입니다만, 실제로 정말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요즘이야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사건 검사 인터뷰 사례’와 같이 게임의 내용이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법률가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법원에서 재판부에 게임과 관련된 사건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키메키 메모리얼> 판결은 미연시게임의 특성에 대해 속속들이 설명하고, <리니지> 계정복구소송 판례는 오토프로그램이나 MMORPG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민사소송에서는 ‘변론주의’라는 소송의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이는 소송에서의 사실과 증거의 주장은 당사자가 직접 하여야 하고, 법원 또한 당사자가 제출한 사실과 증거에 기초해서 재판을 해야 한다는 민사소송의 대원칙 중 하나입니다. 이 말은 언뜻 들어 보면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법원에서의 재판에 있어 당사자들인 원고와 피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극을 보다 보면 마을 사또(원님)에게 백성이 찾아와 억울한 사건을 고하며 널리 헤아려 달라고 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비슷하게는 ‘니 죄를 니가 알렸다’ 라고 호통을 치며 신문을 하는 경우도 사극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는 ‘죄’와 관련된 형사사건의 문제이니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과거에 재판을 마을의 수령이 하던 시절에는 백성이 사건을 고하기만 하면 문제를 조사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재판관(원님)이 직접 하곤 했습니다. 간혹 사건을 고하지 않아도 문제가 있으면 직접 찾아내어 재판을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성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도 많은 부분 마찬가지이죠.

 

이것은 재판관은 판단에 있어 오류가 없는 자라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굳이 사건의 당사자가 주장하려는 바와 증거를 정리하여 제출하지 않아도 사건의 개요와 전체 사정을 파악하고 추론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근대를 넘어 현대 사회로 오면서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하나같이 복잡다단하고, 법을 공부하여 재판관이 된 법조인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배경 지식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분야에서도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고, 여기에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거나 금전관계가 얽혀 민사소송으로 번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송과 관련된 사실의 파악과 증거의 제출은 그 사건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사자들이 하도록 하고 법관은 그 주장된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법을 적용해서 판단을 내리는 역할에 주력하는 것이 더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의 민사소송에서는 사건과 관련한 주장과 입증을 당사자들이 하도록 하는 변론주의를 원칙적으로 채택하고, 그것만으로는 올바른 결론이 내려지기가 힘들다고 볼 때 법원이 보충적으로 직권적인 증거조사를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생각하면 소송에 가기 전까지의 상황이 아무리 유리하고 법적으로 질 수가 없는 사건이라고 하여도, 소송에서 유리한 쪽이 아무런 주장과 입증을 하지 않으면 패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아니, ‘패소할 수 있다’가 아니라 판사가 납득할 정도까지 주장과 입증을 하지 않으면 패소할 수 있다기보다는 반드시 패소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민사소송에서 ‘저는 억울합니다. 널리 헤아려 주십시오’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고 소송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이것은 필요한 주장과 입증을 모두 마친 후에, 법정에서 이 사건에서 만약 패소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호소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말입니다.

 

저는 법원에 갈 때면 가끔씩 법원 앞에서 소송에서 패소하고 정의는 죽었다고 1인 시위를 하거나 담당 재판관이 부정한 행위를 한 것이라고 확신하며 농성하는 분들을 보곤 하는데, 그런 사건들의 경우 정말로 억울한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사건을 들여다보면 소송에서의 주장과 입증이 충분하지 못하여 패소한 경우도 많습니다.

 

개인이나 사건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하는 경우 이런 민사소송의 대원칙을 모르다 보니 자신은 정말 억울하고 답답한데 왜 지게 되었는지를 몰라 더 답답해지는 결과를 받아들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소송에서는 가능하다면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여 개인을 대신해서 주장과 입증을 하게 하는 것이고, 대리인으로 선임된 변호사는 사건 당사자의 사정들과 억울한 사실들을 모두 포함해서 찬찬히 들어본 후 이것을 법률적으로 정리하고 논리를 만들고 적용해 주장과 입증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면, 게임과 관련한 소송들에서 법원의 판결문에 게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등장하고 게임에 대해 담당 판사가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조력할 수 있는 자는 당사자를 대리한 변호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일본 판결문이나, <리니지> 계정복구소송의 판결문을 읽어 보면 법률가의 눈에서는 담당 변호사들이 얼마나 머리를 짜내고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주장을 펼쳤는지가 어느 정도는 드러나 보입니다.

 

 

본 '게임과 법' 칼럼에서 짤방으로 종종 등장하던 <리니지>에서의 진명황의 집행검 아이템과 관련된 소송의 경우에도, 원고였던 당사자가 무척 참신한 주장을 한 것으로 기사에 알려져 있습니다만, 해당 주장의 내용은 분명 민법의 법률행위에 대한 조항에 근거한 것이어서 그 사건의 기사를 보면 변호사가 소송을 대리했었거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소송을 수행했을 것이 예상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게임에 대한 직접적인 사안은 아니지만, 법원에서 게임과 관련된 재판이 열리는 경우 게임에 대한 복잡한 내용을 어떻게 재판부에 전달할 수 있을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이런 점이 법원 판결의 결론에 대한 여러분들이 혹 가질지 모를 오해를 푸는 데 도움이 조금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모두 메르스 조심하시고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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