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임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추석 연휴는 모두들 잘 보내셨는지요? 연휴 이후에 찾아온 짧은 한 주를 허둥지둥 보내고 나니 이제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살짝 두려워집니다. 지난주에는 1999년 <퀴즈퀴즈>로 시작하며 퀴즈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등장해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의 역사에 한 획을 남긴 <큐플레이> 서비스가 종료된다고 하는 소식이 있는데,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서비스 초반 <퀴즈퀴즈>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1999년 늦가을 무렵에는 대학 전산실과 PC방 어디에서나 <퀴즈퀴즈>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퀴즈퀴즈> 개발자 이승찬씨와 그래픽 디자이너 김진만씨가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담을 나누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것을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통해 지켜본 기억이 있는데요, 당시 <퀴즈퀴즈>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주는 사건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승찬씨는 이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 <메이플스토리>를 개발했고, 김진만씨는 이승찬씨와 함께 <메이플스토리>를 개발했던 것은 물론, 지금은 <메이플스토리2>를 디렉팅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퀴즈퀴즈>는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그 이후의 캐주얼 장르들로 이어지는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자, ‘플랫폼’이라는 개념의 맹아를 품고 있었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제 눈 앞에는 <퀴즈퀴즈>와 <포트리스2>를 만날 수 있던 1999년, 세기말의 PC방 풍경이 떠오르네요. <퀴즈퀴즈>는 2000년 단행된 다소 성급했던 정액제 유료화 시도로 그 기세가 한 풀 꺾이긴 했었습니다만, 이후 다시 그 실패를 딛고 부분유료화라는 새로운 과금 모델을 도입했고, <큐플레이>로 명맥을 이어나가며 지금까지도 서비스를 계속하며 장수게임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넥슨에서는 <큐플레이>를 게임박물관에 전시함은 물론, 이후 모바일로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소문도 있으니 이게 끝이 아니기를 기대해봅니다. 각설하죠. 괜한 추억에 또 서두만 길어졌습니다. 가을이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추억이 떠올랐나 봅니다. ^^;
운영정책은 약관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지난 연재에서는 게임산업의 당사자들 중 게임서비스 제공자(퍼블리셔나 개발사)와 이용자 사이의 계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이용자가 게임 서비스 제공자의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개별 게임에 로그인하려 할 때, 게임 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에게 약관을 제시하면 이용자는 이에 동의하게 되고, 이 때 약관의 내용에 따른 계약이 체결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다소 총론적인 입장에서, 약관 외에도 게임 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들에게 공지하는 ‘운영정책’이 계약의 내용으로 포함될 수 있는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내용은 제9회 연재에서 ‘<리니지> 계정복구 소송 판례를 통해 본 ‘서비스로서의 게임’을 설명하며 한 차례 지나가는 쟁점으로 다루었던 사안이기도 합니다.
TIG 독자 여러분들께서 게임을 즐기기 위해 약관을 상세히 살펴보고 동의하는 경우는 아마 드물 것으로 생각됩니다만(변호사인 저도 당장 해보고 싶은 게임이 있으면 약관을 보지 않고 바로 ‘동의’에 클릭을 하는 누를 자주 범합니다 ^^), 오늘은 공부하는 셈 치고 이용하시는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 서비스의 약관을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지금 즐기고 있는 게임이 없으면 넥슨이나 엔씨소프트, 넷마블 약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대충 훑어보시기 바랍니다. 꼼꼼히 보실 필요는 없고 눈에 글자가 보이는 정도의 속도로 마우스 스크롤을 한 번 정도 내려보는 것으로 족합니다.
자, 무엇이 보이십니까? 회원가입시에 주로 볼 수 있는 이 약관들의 공통점들은 그 게임 서비스 제공자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서비스를 받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바로 ‘그 게임’을 이용하다가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기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저는 엔씨소프트(플레이엔씨)에 <MXM>을 즐기기 위해 가입할 수 있습니다만, 제가 한 10여 년 전에 뵈었을 때 이미 <리니지>에 상당히 심취해 계셨던 동네 아저씨는 <리니지>만을 위해 엔씨소프트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즐기실 수 있죠. 마찬가지로 넷마블 회원 중에서도 <모두의 마블>과 <다함께차차차> <레이븐>을 모두 다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 중 한 두 가지 게임만을 골라서 게임을 하는 이용자도 있을 것입니다.
‘운영정책’은 이렇게 해서 등장하게 됩니다. 게임 서비스 제공자는 이용자가 즐기려 하는 게임에 대한 모든 내용을 약관에 기술할 수 없고, 이용자 또한 자신이 하지도 않는 게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여 게임 서비스 제공자와 계약을 체결할 이유가 없겠죠. 게다가 서비스되는 게임은 종종 ‘업데이트’를 통해 그 내용이 변경이 되는데, 그 때마다 약관 전체를 변경해야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게임 서비스 제공자들은 개별 게임에 국한된 내용이나, 오토를 사용한 경우처럼 불법적인 사용자들에 대한 제재사항과 같이 자주 변경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내용들은 각 게임별로 ‘운영정책’을 두어 이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거나 해당 게임 로그인시에 공지하는 방법으로 게임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체결한 계약의 내용에 편입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 케이스의 예외는 오로지 하나의 게임을 서비스하는 개발사가 자체적으로 개발과 퍼블리싱을 모두 하는 경우 단일 약관으로 서비스하는 게임의 내용까지를 포함하여 이용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입니다. 다만, 지금은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가 드물고, 이런 경우라면 애초에 ‘운영정책’과 관련한 문제는 발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위 주요 게임서비스 제공자들의 약관을 살펴보면, 엔씨소프트의 약관은 서비스와 관련한 내용이 ‘운영정책’에 위임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넥슨과 넷마블의 약관은 약관에서 정하지 않은 내용은 회사가 정하는 ‘운영정책’에 따를 수 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고, 약관의 개별 내용 중에서도 “~와 관련된 사항은 ‘운영정책’에 따르기로 한다”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자 그런데 지난 연재의 내용을 떠올려 보시면 의문점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계약은 ‘청약’과 ‘승낙’이 있어야 성립한다고 했고, 게임 서비스 제공자가 약관을 제시하는 것이 계약의 ‘청약’이며, 이용자가 여기에 동의하는 것이 ‘승낙’에 해당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운영정책’은 이용자가 회원으로 가입할 당시 동의를 하지 않고 게임 서비스 제공자는 약관에서 ‘운영정책’에 따를 수 있다고만 한 후 따로 공지하는 것이거든요. 이런 운영정책이 계약의 내용에 포함될 수 있을까요?
우리 대법원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제9회 연재에서도 살펴본 바 있는 2010. 10. 28. 선고 2010다9153 계정이용중지조치해제등 사건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원문을 함께 살펴 보시죠.
“원심은 이와 같은 사실인정에 터잡아 피고가 이 사건 게임 약관 및 통합서비스 약관에서 운영정책을 약관 내용의 일부로 규정하고 따로 위 운영정책을 공지하고 있으므로 운영정책은 적법하게 약관의 일부가 되었으며, 원고들은 피고가 개별 이용자의 게임 이용시 화면에 이용자 동의서를 띄워 놓는 방법으로 운영정책의 내용을 개별적으로 고지한 이후 이 사건 게임을 이용한 이상 위 동의서의 내용에 동의한 사실을 추단할 수 있다는 이유로 원고들은 운영정책이 편입된 이 사건 게임 약관에 동의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위와 같은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
원심판결에는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약관의 고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거나, 관련 증거를 취사선택하고 사실을 인정함에 있어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배되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 |
위 내용에서 ‘원고들’은 소를 제기한 이용자들을 말하고 ‘피고’는 게임 서비스 제공자인 엔씨소프트를, ‘원심’이란 상고의 대상이 된 사건, 즉 본 사건이 대법원에 오기 전의 제2심 사건이었던 고등법원 항소심 사건을 말합니다. 결국 대법원은 고등법원에 운영정책이 약관의 내용으로 편입된다고 본 것이 정당하다고 한 것이죠.
이런 사건에서 운영정책의 약관 편입 여부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어느 게임에서든 운영정책이 주로 불법적인 이용자의 제재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각 게임은 그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게임에 따른 불법적인 이용 형태도 서로 다를 것이므로, 그에 대한 제재 수준도 게임에 따라 서로 다르게 기술될 수 밖에 없고, 이런 내용이 바로 원래 운영정책에 담으려 했던 ‘개별 게임에 대한 사항’의 주된 내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 사건의 제1심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09. 1. 15. 선고 2008가합77806 판결)은 운영정책이 그 내용에 특별히 불합리한 점이 없다면 약관의 일부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운영정책에 관하여 동의한 바 없으므로 운영정책을 이 사건 제재조치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2007. 8. 1.경 개정된 피고의 약관 제14조 제10항은 운영정책을 제재조치의 근거로 편입하고 있고, 원고들은 운영정책에 관하여 따로 동의하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 약관에 동의함으로써(앞서 본 약관 제2조에 의하여 원고들이 변경된 약관 적용일로부터 15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약관 변경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된다, 원고들은 위 변경된 약관 적용 이후에도 서비스 이용을 계속한 점으로 미루어 위 약관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된다)
운영정책이 서비스 이용제한 등 이 사건 제재조치의 근거가 될 수 있음에 동의한 것이라고 볼 것이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약관에서 운영정책을 약관내용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고, 운영정책을 따로이 공지하고 있으며, 그 운영정책의 내용에 특별히 불합리한 점이 없다면 운영정책은 적법하게 약관의 일부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
정리하면, 게임 서비스 제공자가 각 게임별로 제재조치의 기준과 내용을 담아 공지하는 ‘운영정책’은 약관에 근거를 두고 있고, 그 내용에 특별히 불합리한 점이 없다면 적법하게 약관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내용은 조금 복잡하였는데, 잘 이해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용자가 게임 아이템이나 캐릭터에 대해 갖는 권리가 약관에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를 살피고 그 권리의 성질에 대해 논하면서 게임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사이의 관계를 세부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지난 번 연재에서 우리나라 게임 서비스 제공자들의 약관은 법에 어긋나는 내용이 거의 없다는 다소 단정적인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이 표현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생각되어 부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 서비스는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사업모델이 등장하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나타나 약관이 개정된다면 구체적인 심사를 받기 전까지는 적법성이 담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의 규제 대상이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게임 서비스 제공자들은 지난 20년 남짓한 기간의 서비스를 통해 무엇이 적법하고 아닌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약관 수정에 있어서도 검토를 통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후발 업체들의 경우에도 큰 회사의 사례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고요.
이번 연재를 마치면서 잠시 기억나는 얘기를 하나 드려 보겠습니다. 1999년 가을 무렵 <퀴즈퀴즈>를 하기 위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저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약관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스크롤바가 그렇게 길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무척 특이한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원문의 문구까지 정확히 기억은 못하겠습니다만 “이 게임을 이용하면서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배꼽이 빠지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는 문투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퀴즈퀴즈>가 정식 서비스를 하기 전이었던 때였고, 넥슨의 게임도 통합계정으로 운영되던 때가 아니었으며 업계에서도 게임 서비스의 약관에 대한 개념이 잘 잡혀 있던 시절은 아니었는데요, 아마도 베타 서비스 당시 개발진이 남긴 이스터에그와 같은 것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약관을 보고 피식 웃었던 생각이 나네요. <큐플레이>의 서비스 종료 소식과 맞물려 약관에 대한 설명을 드리다 보니 재미 있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초가을까지도 뜨거운 기세를 보였던 더위도 이제는 한 풀 꺾이고, 아침 저녁의 공기 속에 서늘함이 묻어납니다. TIG 독자 여러분 모두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연재는 한결같이 계속됩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