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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생성형 AI의 시대, 누구와 놀 것인가?

스플릿 픽션, 모노폴리, 그리고 MMORPG

김재석(우티) 2025-03-10 17:48:27
누구와 놀 것인가? 이는 게이머에게 늘 중요한 과제였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했던가? 게이머에게는 같이 놀 존재가 필요하다.

디지털 게임의 시대, 플레이어의 박수 소리를 위해서 NPC는 필수적인 존재가 됐다. 우리가 봇(Bot)이나 NPC라고 부르는 객체들은 개발사 나름의 설계가 녹아든 인공지능의 산물이다. 인공지능이라니 대단해 보이지만, AGI의 시대 이전에도 게임에서 인공지능은 널리 쓰였다.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도 <블랙 앤 화이트>의 AI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마침내 AGI(범용 인공지능)과 생성형 AI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누구와 놀 것인가'라는 질문은 보다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 스플릿 픽션: 게임은 복수형 명사

최근 출시되어 널리 호평받고 있는 <스플릿 픽션>은 다른 플레이어와의 협동이 필수적인 코옵(Co-Op) 액션 어드벤처다. 게임에 주어진 모든 문제 해결은 다른 플레이어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혼자서 게임을 '캐리'할 수도 없고, 다른 플레이어의 자리에 봇을 앉힐 수도 없다.

이러한 제약은 <잇 테익스 투> 등 전작부터 개발사 헤이즐라이트가 고집스럽게 유지해 오던 특징이다. 이 고집으로 많은 게이머들이 같이 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 게임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스플릿 픽션>에 '요구사양(친구)이 너무 높다'는 뼈아픈 농담까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스팀과 같은 ESD에서 거래되는 게임 중에 온라인 연결이 필수인 게임은 많아도, '2P'가 필수조건인 게임은 극히 드물다. 

헤이즈라이트의 게임을 하고 있노라면 개발사의 지극한 철학이 느껴진다. 전작 <잇 테익스 투>는 "사랑은 노력이다"(Love Is Work)를 주제로 이혼 위기의 부부가 화해하고 가족애를 되찾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플릭 픽션>은 보다 사회적인 알레고리를 가진 게임으로, 두 작가가 이들 신경망에 기록됐던 이야기를 데이터화해 자기들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빅테크에 맞서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2P 필수'의 지극한 철학이 무엇인고 하니, '게임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이어야 한다'라는 신념이다. <스플릭 픽션>에서 처음에 서로의 장르(SF와 판타지)를 이해하지 못하던 두 작가는 서로의 장르에 재미를 느끼고, 마침내 뉴런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트라우마를 찾아 위로를 건넨다. 저항과 치유는 혼자서 해낼 수 없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게임은 복수형이어야 하고, 빈자리를 AI NPC에게 넘길 수도 없는 것이다.

<스플릿 픽션>은 작가의 창작물을 재료 삼아 생성형 AI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 '은행원' 플레이어가 없는 <모노폴리>

최근 해즈브로는 은행원 없는 <모노폴리>를 발표했다. <모노폴리 앱 뱅킹>에서는 은행원 플레이어 없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모든 계산과 결제가 이루어진다.

<모노폴리>류 게임에 은행원 플레이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계산에 오차는 하나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게임 속도도 보다 빨라질 테다. 그러나 속임수나 봐주기, '추가 대출' 같은 즉석 규칙은 나오기 어려워질 것이다. 은행원이 없는 경우라면, 플레이어가 스스로 계산을 해야 하는데 이때 일부러 계산을 틀리는 속임수의 재미도 사라진다.

기자는 한국인인 만큼 어릴 적 <모노폴리>보다는 유사한 <부루마블>을 많이 즐겼는데, 은행원이 없어진다면 <부루마불> 상자 뒷면에 써있던 '학습 효과'도 전과 달라질 것 같다. 미국의 과학 잡지 파퓰러메카닉스는 "친구, 가족과 함께 몇 시간씩 하던 어린 시절 게임이 아니다"라며 노골적인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구매 또는 부채의 결과를 더하고 빼고 따져볼 기회"가 사라진다고 전했다.

모든 계산을 보드게임 바깥에서 진행하는 보드게임이라니, 미래에는 TRPG의 마스터 또한 인공지능이 대체할까? TRPG의 마스터는 플레이어와 엄연히 분리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때때로 실력 있는 마스터들의 '신들린' 진행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도 별개의 플레이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모노폴리 앱 뱅킹>처럼 기계가 대신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LLM 기술의 발전으로 생겨난 '페르소나 챗봇'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개인화된 플레이 경험까지 주고 있다. '뤼튼'에서는 플레이어가 주어진 상황에 자유롭게 대응할 수 있는 채팅 기능이 서비스되고 있다.

이향원 화백의 <부루마불> 광고만화. 앞으로 잘 보일 은행장이 없는 <부루마불>도 보편화될까?

# 나 혼자만 MMO

몇년 전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있다. 몇몇 웹 기반 RPG의 영업 수법인데, 다른 유저가 없어서 사실상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다중 사용자 온라인)가 아닌데 MMO처럼 운영되도록 착각을 일으키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깊이 취재하지 않아 단언은 어려운데,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이렇다. 게임에 활동하는 실제 유저는 없거나 극히 적다. 유저 ID처럼 돌아다니는 캐릭터들은 사실 NPC들이다. MMORPG의 인터페이스와 다른 플레이어의 강화 팝업까지 모두 나타나지만, 이 게임은 사실상 혼자 하는 게임이다. 개발사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가 결제하는 유저가 나타나면 개입해서 게임을 MMO처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최근 캄보디아에 근거지를 둔 범죄 조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데 어딘가 유사한 점이 있다. '주식 리딩방' 중에 수백 명이 활동하는 것처럼 피해자를 속이는 곳들이 있다. 100명 넘는 인원이 주식에 대해서 24시간 대화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원들이 20~30개의 휴대전화를 돌려가며 채팅을 해서 사람이 많은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게임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누가 이런 게임을 누가 하느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방의 한적한 PC방이나 저사양 PC만 비치된 가정에서 종종 '이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 인기리에 서비스 중인 MMORPG 중 적지 않은 게임이 특정 구간까지 솔로게임을 하듯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20년 전과는 달리 이제 '온라인'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우리는 어디서나 연결되어서 '온라인'은 상당히 피곤한 개념이 됐다. 

국내외 개발사들은 예전부터 AI NPC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는 생성형 AI 기술이 접목된 자율형 NPC가 탑재된 MMORPG를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율형 NPC'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NPC가 유저 ID처럼 움직인다면 '나 혼자만 MMO'가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을까?


국내 MMORPG 시장 규모 (단위 : 십억 원) 출처 : 센서타워 주) 센서타워 MMORPG 매출 Top 20 게임의 국내 매출액을 합산하여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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