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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 20] 민트로켓의 하루 (上)

한국에서 가장 많은 스팀 패키지 게임을 판매한 회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김재석(우티) 2025-04-24 11:14:04

한국에서 가장 많은 스팀 스탠드얼론 게임을 판매한 회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답을 찾기 위해 민트로켓을 찾았다. 민트로켓은 지난해 넥슨에서 독립한 자회사다. 이들이 만든 <데이브 더 다이버>의 누적 판매량은 500만 장을 넘겼다. 황재호 민트로켓 대표는 이 게임으로 일약 '스타 개발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요구했다. 하루 종일 민트로켓을 취재하게 해달라고.


황 대표는 고민 끝에 수락했다. 디스이즈게임이 창간한 2005년 무렵이라면, 기자가 게임사를 찾아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꽤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상황에서 기자가 게임사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산업은 커졌고, 기자는 의심받으며, 개발자는 조심스럽다.


이 일을 하면서 자주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인디 규모 이상의 회사에서 이 일이 실현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해는 간다. 미공개 프로젝트가 유출되면 어떡하나? 홍보실을 통하지 않고 기자와 개발자가 직접 라포르(rapport)를 쌓아버리면 어떡하나? ​기자가 회사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면 어떡하나?


취재를 허락한 황재호 대표도 '근거 없는 소문'의 피해자였다. 한때 판교에서는 민트로켓이 "넥슨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인해 독립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넥슨 경영진은 예나 지금이나 민트로켓에 전폭적인 지원을 가하고 있다. 소문과 달리 싸워서 나간 것이 아니며, 독립은 경영진이 제안하고 황 대표가 수락한 것이었다.


기왕 허가를 받은 김에 진득하게 민트로켓을 만나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스팀 스탠드얼론 게임을 판매한 회사의 직원들은 F-1 레이서처럼 속도에 미쳐있었다. 기자가 만난 거의 모든 민트로켓 개발자들은 넥슨이라는 거함에서 해적선으로 옮겨 탄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09:32 판교 도착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도착했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총 1,803개 회사가 입주해 있다. 임직원 수는 대략 79,000명. 이 중 IT 기업이 65%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통계마다 상이하지만 약 200여 개의 게임사들이 판교에 자리 잡고 있다. 넥슨, 엔씨소프트, NHN, 스마일게이트, 웹젠, 네오위즈가 일종의 집적단지를 이루고 있다. 강남에서 시작된 게임 벤처 붐은 판교에서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넥슨코리아 사옥 건너편 이노밸리에서도 게임업계인을 만날 수 있다. 이미 넥슨의 몇몇 직원들은 GB타워에서 길을 건너왔다. 넥슨의 규모가 날로 커지면서 타워 밖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생겨난 것이다. 2024년 10월 넥슨코리아에서 독립한 민트로켓의 새 사옥도 이노밸리 A동에 있다. NK(넥슨코리아) 소속으로 길을 건너온 달리, 이들은 민트로켓 이름으로 GB타워를 떠났다. 민트로켓은 넥슨코리아의 100% 자회사로 독립했다. 60여 명의 임직원들은 넥슨이라는 굴지의 거함을 떠나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광역버스에서 내리자 화창한 봄 날씨​가 완연했다. 벚꽃은 지고 연보라 라일락이 가득 피어 늦봄을 알리고 있었다. 명찰을 목에 건 판교인들은 캐주얼한 차림으로 이노밸리 한 켠에서 하얀빛이 들어오는 전자담배를 물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을 깨우기 위해서 이들에게는 니코틴과 카페인 따위가 필요하다. 담배 냄새로 라일락 향기는 코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지만, 햇볕은 기분 좋게 내리쬐고 있었다.


민트로켓 사옥 입구. 로켓 조형물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다.



09:54 사무실 투어


민트로켓의 사옥은 판교 이노밸리 A동 3층과 4층에 있다. 인테리어를 갓 끝내어 공기 중에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내뿜는​ '새 건물 냄새'가 가득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만난 황재호 개발자는 대표가 되었지만, 변한 점이라고는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메탈 밴드 머천다이즈가 연상되는 강렬한 디자인의 티셔츠를 상의로, 찢어진 청바지를 하의로 입고 있었다. '박시'하게 입은 검은색 민트로켓 후드 소매 아래에는 타투로 새긴 영국 아카데미(BAFTA) 게임상 트로피가 숨어있다.​ 지난해 BAFTA '게임 디자인상' 수상을 기념해 새긴 것이다.


<데이브>로 수상한 주요 트로피들과 특별한 아이템들이 전시되어 있다. 5년 안에 이곳을 모두 채우는 것이 목표라고.


그는 2010년대 중반부터 네오플 산하 '스튜디오 42'에서 <이블팩토리>와 <애프터 디 엔드>를 만들면서 넥슨그룹의 별동대로 활약했다. PM을 거쳐 해외 사업팀에서 일하던 그는 직무를 변경, 레트로풍 아케이드 게임 <이블팩토리>로 주목받았다. 박재은 팀장이 개발한 3D 퍼즐 어드벤처 <애프터 디 엔드> 또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그에게 따라다니는 칭호는 "인디 같다"였다. 


그는 2019년부터 한사코 자신이 "넥슨 월급 받는" 개발자라며 '인디' 칭호를 면구스러워했지만, '인디 같다'는 수식은 지금껏 줄곧 따라다녔다. 황재호의 야심작 <데이브 더 다이버>(이하 데이브)는 유수의 게임시상식 '인디' 분야에 노미네이트됐다. 인디의 개념이 불분명한 시대가 되었지만, 황재호의 팀을 경제적으로 인디로 보긴 어렵다. 다만 이들이 추구하는 모종의 정신은 인디의 그것과 적잖이 맞닿아 있다는 인상이다.


어딘지 모르게 키치해 보이는 로켓 조형물 뒤로 <데이브>로 받은 트로피들이 줄지어 있었다. BAFTA를 받은 한국 게임은 <데이브>가 유일하다. 스팀을 운영 중인 밸브에서 받은 부담 없이 즐기는(SIT BACK AND RELAX) 게임상도 한국에서 민트로켓만이 가지고 있다. 선반에는 일본에서 출간된 만화 단행본, 팬으로부터 받은 선물과 각종 <데이브> 굿즈, 지난 대담 때 받은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의 싸인 등이 전시 중이었다. 사무실을 안내하던 황 대표는 "5년 안에 이 공간을 다 채우는 것이 목표"라고 이야기했다.


선반 맞은편에는 수조가 ​있었다. 해양 어드벤처 <데이브>로 뜬 만큼 민트로켓은 사무실에 바다와 <데이브>의 톤을 많이 집어넣었다. 그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 수조였다. 3층 수조에는 디스커스와 엔젤피쉬 같은 열대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임소원 PM팀장은 출근하자마자 물고기들에게 밥을 챙겨줬다. "너무 귀엽다"라는 말을 반복하던 그녀는 "그래도 너무 밥을 많이 주지 말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외부 업체에서 주에 1회 방문해 수질 등을 관리한다고.


민트로켓의 수조. 직원들은 이곳에서 '물멍'을 즐긴다고.
임소원 PM팀장이 출근하자마자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

민트로켓의 새 사옥은 3층과 4층으로 구분된다. 3층은 타운홀 미팅을 위한 라운지, 회의실, 간식과 컵라면 등이 구비된 탕비실, 휴게 공간이 모여있다. 황재호 대표는 큰마음을 먹고 3층 라운지에 핀볼 머신을 구매했다. 아무도 플레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점심시간만 되면 핀볼 레버를 당기는 직원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핀볼 머신의 요란한 효과음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목이 끌리게 되어있다.


민경오 경영관리팀장은 황 대표의 핀볼 머신 드림을 실현시킨 민트로켓의 살림꾼이다. 새 사옥에서 그는 주차 문제를 해결하고, 줄자로 테이블 사이즈를 재고, 안마의자와 리클라이너를 주문했다. 그는 종일 3층과 4층을 오가며 무엇이 필요한지 살폈다. 민 팀장은 커피머신에서 "스타벅스 커피랑 맛이 거의 똑같은" 커피를 내려주며 득의양양 웃었다. 그는 이 커피가 있어서 직원들이 옆집(진짜 스타벅스)에 돈을 쓰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민트로켓은 전 직원에게 법인카드를 나눠주는 파격을 선택했다.


민트로켓의 살림꾼 민경오 팀장이 자랑하는 커피머신


4층은 본격적인 업무 공간이다. 60여 명 직원들은 팀별로 흩어져서 일한다. 분위기는 다른 게임사들과 비슷해 보였다. 굳은 표정으로 듀얼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어서 외견상으로는 도저히 말을 붙이기 어려운 사람들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무용 메신저로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보통의 판교 게임노동자들이다. 황재호 대표는 거의 대부분의 팀별 메신저 방에 들어가 '만기친람'하고 있다. 그것이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한 방책이라는 것이 대표 설명이다. '빠른 업무'는 이날 황 대표가 하루 종일 강조한 키워드다.


민트로켓에서는 업무 집중에 필요한 직원들만 나뭇잎 캐노피를 사용한다. 특별 요청으로 파티션 높이도 낮췄다. 전화 부스는 빨간색으로 칠을 했고, PD(황재호 대표)의 디렉터룸은 바다가 느껴지는 파란 톤과 <데이브>의 키 컬러인 노란색을 조합했다. 넥슨 시설과 그 환경을 책임지는 넥슨스페이스에서 민트로켓의 고집스러운 인테리어 요구에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결과물을 보고 넥슨스페이스도 최종적으로 흡족했다고 한다. 디렉터룸에는 황 대표가 수집한 '굿즈'들과 철갑상어 철용이와 갑용이가 살고 있다. 메기목 징기스칸도 동거 중이다.


황재호 대표의 디렉터룸


'EAT DRINK LOVE'는 반쵸스시의 것을 그대로 따왔다.


게임 속 'EAT DRINK LOVE' (가운데)


새로 장만한 영상 스튜디오. 유저 소통 영상 등이 여기서 촬영될 예정.


넥슨코리아 강대현 공동대표로부터 받은 축하화환. "심해보다 깊은 가능성에 다이빙!"이라고 쓰여있다.

<드렛지> 아티스트가 선물한 그린 데이브 그림

디렉터룸 벽면에는 <데이브> 관련 굿즈와 그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 라운지의 모습



11:00 타운홀 미팅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에는 민트로켓의 타운홀 미팅이 열린다. 휴가를 떠나지 않은 임직원은 모두 모여 황 대표가 주관하는 미팅을 한다. 마이크를 잡은 황 대표는 능수능란한 진행 실력으로 "기자가 현장에 와있음"을 알리고, 본인이 최근 유니티 '유나이트 2025'에 참석한 소감과 함께 업계 동향을 공유했다​. 새로 뽑은 직원과 인턴 기간이 끝난 직원이 일어나 인사를 했고,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날 타운홀 미팅에서 주로 의논된 것은 그다지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난 4월 추가된 <데이브>의 첫 유료 DLC '이치반의 휴일'은 스팀에서 복합적 평가를 받고 있다. 기간 한정 DLC라는 판매 방식은 유저들로 하여금 'FOMO'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마주했다. 퀄리티와 IP 활용 자체에 대한 호평은 있었지만, 가격 대비 짧은 플레이타임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 않았다. 민트로켓은 '이치반의 휴일'을 어떻게 하면 유저들에게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논했다.


회의에서는 2025년 연말 출시를 앞둔 새로운 정글 DLC의 진척도 또한 공유됐다. 개발진은 정글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추가될 새로운 '데이브' 일행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새로운 지형, 신규 캐릭터, 컷씬과 VFX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더 게임 어워드에서 발표된 '인 더 정글' DLC는 주인공 일행이 블루홀을 떠나서 정글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만큼 만들어야 할 것이 더 많다.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해외 소재의 개발자들과 협업하는 방법 또한 공유됐다. 서보성 프로그래밍 팀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해외 출장을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적힌 PPT 화면을 바라보았다.


사업전략실, 미디어팀, 커뮤니티팀, 기술팀, 경영관리팀 등등 팀별로 ​주간의 미션과 계획 등을 공유했다. 민트로켓이 개발 중인 미공개 프로젝트에 대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미공개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 지면을 통해서 전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NDA가 허락하는 선에서 딱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민트로켓은 흥미로운 신작을 만들고 있다.


민트로켓의 타운홀 미팅


<용과 같이> DLC에 쏟아진 부정 평가에 대해 언급하다가 "한 대 맞아 보니 겸손해진다"며 웃어 보이는 황재호 대표



11:34 팀 리더 회의


타운홀 회의는 약 30분 만에 끝났다. 직원들은 일을 하러 4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서 열리는 타운홀 회의를 하려고 직원들이 계단을 내려올 때는 일사불란했지만, 회의가 끝난 뒤에는 그러지 않았다. 약 60명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내려오는 소리는 기병대가 어디로 진주하는 듯 발자국 소리가 크고 빨랐지만, 회의가 끝난 뒤에는 층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리가 크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러 내려가는 사람이 있었고, 내려온 김에 음료를 꺼내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9명의 팀 리더들은 수조 옆 대회의실에 모였다. 타운홀 미팅 직후 팀 리더 회의까지 한 번에 끝내는 것이 민트로켓 방식이다. 타운홀 미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보다 내밀한 업무 이야기가 나왔다. 민트로켓 또한 다른 게임사들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이 번역 툴이 좋은지, 저 프로그램은 어떤지 이야기가 오갔다.


리더들에게 주어진 현안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였지만, 이들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거슬릴 법한 참관자의 존재 또한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회의 시작 전 우찬희 기획팀장이 "회사에서 사준 노트북"이라며 맥북에어 스카이블루 에디션을 들어 보일 때가 유일하게 리더들이 기자를 의식한 순간이다. 3층 건물이었기 때문에 자동차 경적 소리나 오토바이 주행음,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온 판교 직장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리더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역시 가장 많은 의견을 낸 것은 거함 넥슨을 벗어난 해적선 민트로켓의 선장 황재호였다. 그의 말에는 빙빙 돌아가는 '우회'나 푹신한 '쿠션어'가 없었다. 스트레이트 펀치를 꽂듯이 곧장 '이건 이렇게 정리하죠' 하는 것이 그의 말투였다. 회의에 허튼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는 듯 다른 리더의 말을 경청하듯 듣다가도 정리하는 스트레이트 펀치를 꽂았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UFC의 팬으로, 사무실 3층 체력 단련실에는 샌드백이 있다. 


날카롭게 핵심만을 도려내는 말투를 쓰는 황재호였지만, 그는 동시에 '샌드백에 내 얼굴을 붙여도 좋다'는 농담을 할 줄도 알았다.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 때문에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정기엽 아트 디렉터(AD)가 샌드백의 단골 사용자라고 그랬다. 실제로 복싱을 할 줄 아는 정 AD는 때때로 다른 직원들에게 샌드백 쓰는 법을 가르친 적 있다. 이밖에 정 AD는 디자인은 물론 조주(造酒), 악기, 노래에 능통하지만, 이것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그의 동료들이 해준 말이다.


회사 업무비로 구매한 맥북 에어를 들어 보이는 우찬희 기획팀장


팀 리더 회의에서 황재호 대표는 돌아가지 않고 직설했다.


정기엽 AD(오른쪽)의 복싱 교실



12:30 점심시간


약간의 정비를 마치고 황재호 대표, PM팀, 경영관리팀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팀별로 하는 경우가 있고, 따로 먹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볕은 어느덧 초여름처럼 가만 서있어도 땀이 쏟아질 듯했다. 흡연자들은 아침과 달리 그늘 아래 꼭 붙어서 연기를 내뿜었다. 오후에도 일을 하려면 니코틴을 추가로 보급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이노밸리 C동 지하의 식당가에서는 이미 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민트로켓 직원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GB가 맛있냐, 이노밸리가 맛있냐는 물에 돌아온 대답은 '이노밸리 쪽이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었다. 길을 건너오면서 메뉴의 선택지가 더 많아졌다는 뜻이었다. 이노밸리의 구내식당에는 3가지 라인이 있다.


누들 라인, 코리안 라인, 그리고 웨스턴 라인이 있는데 누들 라인에 면이 있거나, 웨스턴 라인에 서양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종류를 섞는 것은 다른 구내식당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해 보였다. 외부인은 식권을 따로 구매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판교 물가 치고는 꽤 저렴한 가격으로 보였다. 디스이즈게임이 위치한 테헤란로에는 이만한 가격의 밥집이 절멸했다.


민트로켓 임직원들이 쓰고 있는 이노밸리 구내식당



13:30 오후 업무 시작… 핀볼하던 03년생 개발자와 만나다


이노밸리 A동은 사실상 넥슨이 점령한 상태다. 1층의 공용 라운지는 넥슨 임직원을 위한 것이고, 그 옆의 카페 또한 넥슨 임직원을 대상으로 운영 중이었다. <메이플스토리> 핑크빈 콜라보 아이스크림(같은 제품은 현재 제주도의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판매 중이다)을 받아서 3층으로 올라가니 두 명의 개발자들이 핀볼에 한창이었다. 개발자 중 한 명이 2003년생이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대화를 나누었다.


2003년생의 한승우 픽셀 아티스트는 벌써 3년 6개월의 경력을 갖추고 있다. 2003년생, 픽셀 아티스트, 3년 6개월이라니 믿기지 않는 스펙이다. 그는 서울디지텍고에서 게임 그래픽을 전공하고 곧바로 게임 개발 전선에 뛰어들었다. <테라리아>, <스타바운드>, 그리고 <스타듀밸리>의 아트에 매혹된 한승우는 모바일게임사에서 산업기능요원을 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가 복무를 시작한지 8개월이 되던 때 세상에 <데이브>가 출시됐고 '복무가 끝나면 <데이브> 개발팀에 가고 싶다'는 강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스팀 픽셀게임을 만드는 곳이 적었기 때문에 그의 꿈은 민트로켓을 향했던 것이다. 병역특례 기간이 끝나자마자, 픽셀 아티스트가 필요한 민트로켓에 이력서를 넣었고 그대로 회사에 합류했다. 그는 민트로켓 3주 차밖에 되지 않았지만 "같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도트 노가다'를 하고 있다.


단순 장식 이상의 쓸모가 있었던 핀볼머신


아직은 언론 인터뷰가 쑥스러운 듯한 03년생 한승우 아티스트. "유니티를 처음 써봐서 공부하면서 제작 중이에요. 요즘은 정글 DLC에 들어갈 NPC를 작업하고 있어요. 게임 만드는 게 좋아서 <데이브>와 함께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신기해요."


정기엽 AD는 19명의 그래픽팀 팀원을 이끌고 있었다. 한승우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에 대해서 "엄청 잘하고 있다. 계속 퀄리티를 유지하기 바란다"라고 짧게 평가했다. 정 AD가 한승우를 바로 옆자리에 앉힌 데에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서류의 레이어가 없어진 것이 독립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불필요한 것이 줄고 절차는 빨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데이브>의 정글 DLC에는 더 많은 3D 표현이 들어갈 뿐 아니라 블루홀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이 사용된다. 그 넓은 공간을 채워야 하는 것은 오롯이 그래픽팀 몫이다. 주인공 일행은 <데이브>와 비슷하게 표현되지만, 조금씩의 재해석 들어갈 예정이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인 더 정글'은 제법 긴 분량의 DLC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기엽 AD "(독립 후에)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일에 자율성이 생기다 보니까 보다 좋아졌어요. 불필요한 것들을 빼고, 필요한 것을 넣게 되면서 발전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민트로켓의 독립 운영이) 더 좋은 거 같아요"



14:15 신혼이지만 집에 가지 않는 기획자


우찬희 기획팀장은 보통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집에 돌아간다. 그의 자리에는 그와 아내와 찍은 오붓한 사진이 보란 듯 놓여있는데 말이다. 그에게 "결혼도 하셨는데 자정까지 일하면 어떡하느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일이 있으면 해야죠"였다. 이날도 그는 늦은 시간에 돌아갔다. 기획팀에는 5명이 일하고 있다. 담당 중인 프로젝트가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기획자끼리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때가 많다.


<용과 같이> DLC를 해치웠지만, 정글 DLC의 사이즈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기획팀의 일은 줄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을 주기 위해서 전에 없던 여러 시스템이 들어갈 예정이다. 유저들의 기대치가 높은 정글 DLC에서 익숙함과 새로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신혼의 우찬희 팀장이 매일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다.


기획 직군 자체가 다른 직군들과 의사소통 많은 편이다. 새로운 공간에서도 이들은 여러 팀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의논한다. 테이블 옆에는 간이 의자가 있어 대면소통의 장점을 살리고 있다. 낮아진 파티션 덕에 작업자와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업무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업무 공간은 한 층에 모여있어 옹기종기 일한다. 기획팀 책장에는 정글의 식생과 세계의 요리에 대한 도서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에게 "정글에서 나는 민물고기를 어떻게 초밥으로 만드느냐" 물었다. 그는 "게임에서 확인해 보라"고 응수했다. 


우찬희 기획팀장이 게임 기획에 참고한 인도네시아 요리 책을 보여주고 있다.



14:42 끝나지 않는 유니티와의 싸움


서보성 팀장이 이끄는 프로그램팀에는 총 8명이 일하는 중이다. 잔뼈 굵은 프로그래머인 그는 유니티 달인이다. 한국 게임사 프로그래머로는 드물게 닌텐도 스위치에 자기 게임을 넣어본 경력이 있다. 2023년 인터뷰에서 그는 가용 메모리가 제한된 닌텐도 스위치에 <데이브>를 집어넣은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닌텐도 측의 빽빽한 가이드라인을 뚫고 <데이브>는 스위치에 들어갔다.


서 팀장의 최근 화두는 실력 있는 해외 개발자와의 협업이다. 민트로켓이 독립했지만,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많아지면서 8명의 프로그래머보다 더 많은 프로그래머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이들은 지금 해외의 프로그래머와 함께 <데이브>에 들어갈 여러 기능을 구성하는 한편, 라이브 이슈에 대한 대응도 함께 해내는 구성을 생각 중이다. 외주의 형태보다 더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서 팀장은 해외 출장을 가야 한다.


<데이브>는 유니티 2020 버전을 사용해 개발했지만, 지난해 유니티 6이 출시되면서 사용 중인 파이프라인에 일대 변경이 일어나게 됐다. 다른 부서로부터 '주문'은 밀려오는데, 플러그인 또한 엔진 버전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하다 보니 프로그래밍팀 또한 바람 잘 날 없이 바쁘다. 그런 서 팀장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드후드(니케) 아크릴 스텐드는 도도한 포즈로 그의 PC 위에 서 있었다.


유니티 새 버전과 씨름하고 있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의 서보성 팀장. 그는 해외 개발자와의 협업을 위해 출장을 앞두고 있다.



15:18 "저는 밥만 잘 나오면 열심히 일해요"


사업전략팀의 김세호는 민트로켓의 꽃밭으로 통한다. 잘 생겨서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작년 6월 입사해 넥슨 슈터본부에서 일하다가 민트로켓에 합류한 그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미국 회사, 일본 회사, 중국 회사와 업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힘든 기색이 없다. 힘들지는 않으냐 떠봤더니 "밥만 잘 나오면 열심히 일한다.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어서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황재호 대표는 '민트로켓에서 꼭 만나봐야 할 사람'으로 김세호를 뽑았다. 왜 그런 것 같냐고 그에게 직접 물어봤더니 "다들 본인 업무에 집중하고, 조용하고, 드라이한 분위기인데 여기서 제가 그나마 안 조용하고 안 드라이해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넥슨에 입사했을 때 '넥센'에 입사한 줄 알았다고 한다. 


넥센 넥슨 이야기를 2025년에 다시 들을 줄이야! 민트로켓이라는 신생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가족의 반응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는 민트로켓이 좋았다. 넥슨에서는 결제 라인이 상당히 많았는데, 민트로켓에서는 황 대표와 직결되어 있다. 리스크를 온전히 이들이 지는 구조가 되었다 보니 보다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저는 밥만 잘 나오면 열심히 일해요"라고 말한 뒤 '쌍따봉'을 추켜세우는 김세호 사업담당



15:30 짧은 휴식


점심시간에도 줄곧 떠들었는데, 연이어 5명이나 인터뷰를 하다 보니 휴식이 간절해졌다. 당분이 필요해서 3층으로 돌아와서 몰래 남의 회사 간식을 먹었다. 민트로켓은 간식을 잘 갖춰놓았다.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는지 3층 라운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틈을 타서 안마의자가 있는 휴식 공간을 찾았다. 안마의자라고는 찜질방에서 돈 내고 써야 하는 처지인데 횡재했다. 


황재호 대표는 분명 "하루 종일 자유롭게 취재하시라"고 했다. 그러니 편하게 누워서 마사지볼이 경추를 오르내리며 전해지는 자극을 느끼는 것도 취재 아닐까? 이런 게 취재라면 죽는 날까지 기자로 살고 싶었다. (계속)


민트로켓의 안마의자. 사실은 다음 인터뷰까지 시간이 떠서 잠깐 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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