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후 버튼 하나만 누르면 파티가 맺어지고, 대화라고는 ‘레디, 고고, 수고’ 달랑 세 마디만 나누며 던전을 깨고, 아이템을 나누고, 다시 버튼을 누르면 다음 파티원을 만나 같은 일을 반복해요. 마치 인스턴트 음식처럼요.”
<프로젝트 AX>를 개발 중인 엔진(Ngine)스튜디오 서재우 대표의 이야기다. 온라인게임이 발전하면서 게임의 편의성도 발전했지만, 그 결과 게임 속 세상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각박해졌다. 과거 넥슨에 재직하던 시절 <마비노기>에서 유저와 개발자가 함께 호흡하는 긴밀한 운영, 그리고 낭만을 강조한 커뮤니티의 힘을 보고 느낀 서재우 대표와 박훈 COO(최고운영책임자)로서는 더욱 아쉬운 요즘 환경이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짜고짜 느린 게임을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둘은 절충안을 찾았다. <리그 오브 레전드> 등으로 익숙해진 쿼터뷰 시점을 통해 빠르고 신나는 액션을 보여주고, 대신 전투 외에서는 슬로푸드 같은 ‘느긋한 판타지의 낭만’을 살려 보자. 이왕이면 여기에 약간의 이른바 ‘덕심’도 부어서.
명작이나 대작은 아니더라도 유저들과 호흡하며 오랫동안 함께하는 장수 드라마 같은 게임을 만들겠다는 엔진스튜디오의 서재우 대표와 박훈 COO를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김진수 기자
왼쪽부터 엔진스튜디오의 박훈 COO와 서재우 대표
<프로젝트 AX> 최초공개 기사 보는 순서
① (영상) 귀여운 짐승들의 쿼터뷰 MORPG! 프로젝트 AX
② (프리뷰) 전략과 액션,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 프로젝트 AX
③ (인터뷰 1) 프로젝트 AX “슬로푸드처럼 느긋한 낭만을 살리고 싶다”
TIG> 일단 게임 이야기부터 해보자. 요즘 보기 드문 쿼터뷰 액션 MORPG다.
내부에서도 쿼터뷰 MORPG라고 분류하고 있다. 요즘 보기 드물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사실 그만큼 <리그 오브 레전드>가 크게 흥행했으니까 지금도 다들 익숙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시점을 고민해봤는데 쿼터뷰만큼 치고받는 공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시점이 없더라. 유저들이 익숙한 만큼 접근하기도 쉬울 테고, 전황을 보여주기 쉬우니까 전략성을 살리기도 좋다.
TIG> 반대로 액션을 보여주기엔 약하지 않을까? 캐릭터도 작을 텐데.
우리가 보여주려는 액션이 <크리티카>나 <던전앤파이터>처럼 이펙트가 팡팡 튀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대신 짜임새 있는 스킬 연계로 손맛 있는 액션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적을 기절시키고, 스킬과 스킬을 이어서 큰 대미지를 주고, 이런 액션이 자신의 생각대로 들어갔을 때 쾌감을 느끼는 그런 구조다.
TIG> 그래서 스킬 덱 같은 시스템도 들어가는 건가?
MORPG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스킬 4개만 갖고 싸울 수는 없잖나.(웃음)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대략 50개의 스킬 중 최대 12개의 스킬을 골라서 던전에 들어가는 방식을 생각 중이다. 다만 12개는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지적도 있어서 8개와 12개, 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TIG> 일종의 카드게임 덱 구성을 떠올리면 되나?
비슷하다. 확정된 건 아니지만 스킬 구성도 ‘코스트’에 맞춰서 진행할까 생각 중이다. 강한 스킬은 그만큼 덱에 담는 데 제한이 많은 식이다. 스킬에도 수집요소를 둬서 최고 레벨이 됐다고 50개 스킬을 모두 주진 않을 생각이다. 기본 스킬을 주고, 이후에는 아이템처럼 획득하는 방식으로 만들 거다. 레어 아이템처럼 레어 스킬을 얻으면 그만큼 강해지고, 파티에도 도움이 되는 구조다.
TIG> <길드워>가 떠오르는 방식인데?
거기에 코스트가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모바일게임에서 다들 익숙한 방식이다 보니까 위화감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스킬 덱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도 정해지는데, 예를 들어 컨트롤이 좋은 유저라면 논타겟팅의 강력한 스킬로만 배치하고, 컨트롤이 부족하다면 쉽게 맞출 수 있는 광역 스킬이나 타겟팅 스킬로만 덱을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역할에 맞춘 스킬 덱도 가능할 거고. 스킬만 제대로 공급해 준다면 파고들기에도 재미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TIG> 스킬 간의 합성이나 강화 같은 것도 나올 기세다.
생각은 하고 있는데 부작용도 많아서. 고민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유저와 호흡하는 ‘드라마 같은 게임’이 목표
TIG> 개발실을 슬쩍 둘러봤는데 개발 툴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우리의 모토가 ‘예측보다 대응’이다. 게임은 서비스 비즈니스라서 피드백이 왔을 때 바로 고쳐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빠른 대응속도가 필수다. 왜, 드라마에서 ‘이 등장인물을 죽여주세요~’ 그런 의견이 잔뜩 나오면 결국 진짜 죽게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 정도로 극단적은 아니지만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응답해주는 건 필수하고 생각한다. 덕분에 개발 툴에서도 많은 부분을 다듬었고, 굉장히 ‘다양한 기능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TIG> 예를 한 가지 든다면?
보스를 비롯해서 각종 몬스터로 유저나 운영자가 로그인할 수 있다. 물론 기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후의 이야기겠지만. 이벤트 던전의 보스는 운영자가 직접 조작한다거나, 일부 유저가 ‘실제 던전에 위치한 몬스터’ 중 한 마리로 로그인해서 다른 유저를 괴롭힐 수도 있다.
관전모드도 가능하고. <마비노기>에서 홈페이지에 게임 내 화면을 중계해주던 카메라걸 같은 시스템도 가능하다. 생각할 수 있는 어지간한 건 다 구현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확장성에 많은 공을 들였다.
TIG> 역시 <마비노기> 개발 경험이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넥슨에 있을 때 <마비노기> 초기 운영을 보고 많이 부러워했다. 왜, 초기에 김동건 디렉터가 있을 때 운영이 특히 좋지 않았나? 그때 개발자들도 참 재미있게 게임을 만들었다. 요즘은 이런저런 이슈도 많고, 개발과정도 빠듯해지다 보니까 개발자가 자신이 만든 게임세상에서 멀어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작 유저들이 원하는 건 그 반대이지 않나?
TIG> 결국 정리하면, 유저와 호흡하고 함께 놀기 위해서라도 확장성이 필요하다?
비슷하다. 굳이 이벤트나 보상이 아니더라도 유저의 대화상대가 되고, 찾으면 언제나 나타날 수 있는 헬퍼 같은 느낌을 주길 원한다. 퍼즐이 정 막히면 나타나서 힌트라도 알려주고, 마을에서 헤매는 유저에게 길을 알려주고, 들어가서 욕도 먹고.(웃음)
인스턴트 대신 슬로푸드! 느긋한 판타지의 맛 살릴 것
TIG> 유저와 개발자가 함께 즐긴다. 좋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런 ‘여유’가 가능할까?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온라인게임에서 관습적으로 이어지는 행동이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개발자와 유저 모두 게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다들 개발이든 게임이든 높은 레벨이 되고 나니까 낮은 레벨 유저를 케어할 수가 없게 된다. 진짜 레벨이 낮은 유저가 느끼는 고민이랑 높은 레벨이 보는 고민이랑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두 번째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흥행 이후 두드러진 현상 같은데, 자꾸 다른 게임 이상의 편의성을 주려고 한다. 경매장을 만들고, 퀘스트 목적지를 알려주고, 이동도 자동이고, 매칭도 자동이고. 그러다 보니 반대로 게임에서조차 ‘여유’가 사라진다.
TIG> 게임을 개발하면서 겪게 되는 필연적인 현상 아닌가?
솔직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있는 경매장이 우리 게임에는 없다고 게임을 접는 경우는 없다. 모든 게 버튼을 누르자마자 이뤄져야 할 이유도 없고. 고민 끝에 불편한 부분을 제거하기보다는 그냥 다른 게임에도 있으니까, 혹은 이렇게 하면 다른 게임보다 더 편할 것 같으니까 만드는 시스템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프로젝트 AX>에서는 조금은 ‘느린 삶’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개발자로서 조금은 위험한 이야기이긴 한데 기다림의 재미를 주고 싶다. 예를 들어 좋은 무기를 얻었는데 이게 고장이 나 있다. 그럼 대장간에 맡기고 다른 일을 하며 수리를 기다리는 식이다. 대장간에서는 ‘이 정도 무기는 다룬 적이 없어서 책을 보고 고쳐야 할 것 같소’ 같은 이야기를 하며 수리에 들어가고.
TIG> 말한 것처럼 위험해 보인다.(웃음) 오해하기 딱 좋은데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 게임들이 패스트푸드처럼 되어 간다면, <프로젝트 AX>는 슬로푸드로 만들고 싶다. 당장 모 MORPG만 봐도 파티플레이에서 나오는 대화는 딱 세 가지다. ‘레디, 고고, 수고요.’ 그나마도 자음만 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유저를 제외하고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드물고 당연히 감정을 나눌 일도 없다.
근데 초창기 온라인게임의 재미, 온라인게임이 흥하게 된 계기는 그게 아니지 않나? 대화도 나누고, 쉬어가며 이야기도 듣고, 그런 즐거움이 온라인게임의 원동력인데 요즘 게임은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TIG>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여유’가 가능할까?
‘비(非) 전투 요소’만 본다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금 <프로젝트 AX>의 구성은 몬스터 한 그룹을 물리치고 나면 잠깐 쉬는 시간이 있고, 모든 던전에 퍼즐이 있다. 던전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구간이다.
여기에 파티플레이 던전은 아예 ‘소통이 필요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보스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9개의 방을 나눠서 열어야 하는데, 서로 순서나 방의 현재 클리어 상황을 만들어 준다거나, 눈이 오는 설원에서는 누군가 전투 대신 횃불을 들고 모두의 체력이 떨어지는 걸 막아야 하고, 다른 유저는 그를 지켜주는 등 감정적인 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요소들을 배치하고 있다.
TIG> 전투는 최신 유행에 맞춰 빠르고 가볍게, 그리고 비 전투 콘텐츠는 느긋하게 인 건가?
그렇다. 그래서 MORPG 임에도 불구하고 마을만큼은 정말 거대한 MMO 지역으로 만들었다. 앞서 개발자나 운영자가 출몰하고, 다양한 교류를 나누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TIG> 초창기 <마비노기>처럼?
운영만 보면 그렇다. 보다 본질적인 재미를 추구하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아무래도 우리가 넥슨 초기부터 함께 있었던 세대라 그런 향수가 있는 것 같다. 근데 최근 <페리아 연대기> 등의 반응을 보면 비슷한 향수를 지닌 유저도 많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