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창세기전> 팬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못이 박힌 사건이 있었다. <창세기전> IP로 2종의 게임을 만들고 있는, 뉴노멀소프트가 2025년 초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창세기전 3 리버스>(rebirth)의 모습을 일부 공개한 직후 큰 파장이 일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인터페이스가 바닐라웨어의 <유니콘 오버로드>와 비슷해도 너무 비슷해, 유저들 사이에선 "이렇게 만드는 게임은 우리가 바라던 <창세기전>이 아니다"라는 성난 반응이 쏟아졌다.
커뮤니티에서 더 큰 화제가 된 것은 <창세기전 3 리버스>였지만, 더 심각해 보이는 쪽은 뉴노멀소프트가 여름부터 서비스 중인 <그만 쫌 쳐들어와>다. 111퍼센트가 만든 <운빨존많겜>의 아트, 사운드, 기본적인 룰까지 모두 복사 붙이기를 한 수준의 게임이라는 유저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뉴노멀소프트의 첫 게임인 카드게임 <템페스트> 또한 세컨드 디너의 <마블 스냅>과 많은 부분이 유사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뉴노멀소프트 또한 '부끄러움'은 아는 듯하다. 지난 주까지 뉴노멀소프트 공식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던 <창세기전 3 리버스> 소개 페이지는 현재 삭제된 상태다. 정확히 무엇이, 얼마나 비슷했길래 <창세기전>, <유니콘 오버로드>, <운빨존많겜>, <마블 스냅> 팬들이 모두 그토록 화가 났던 것인지, 그리고 이런 개발 행태가 게임 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조목조목 살펴보려 한다.
게임 기자들 사이에선 정식 출시되지 않은, 아직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해서는 과한 비판을 자제하는 게 예의라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을 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비판 받아 마땅한 지점이 있다면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뉴노멀소프트가 개발 중인 <창세기전 3 리버스>는 극히 일부 장면만 공개됐음에도, 각종 커뮤니티에서 <유니콘 오버로드>와 '인터페이스' 유사성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인터페이스' 또한 엄연한 창작물이다. <유니콘 오버로드>에서 '의도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말풍선부터 대미지 표기 방식까지 바닐라웨어는 얼마나 많은 고심 끝에 인터페이스를 구성했을까.
<유니콘 오버로드>의 팬들만 성난 게 아니다.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장 뿔이 난 쪽은 <창세기전> 시리즈의 팬들이다. 떳떳하지 못한 신작을 기대한 팬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긴 말이 필요할까. 세부 항목을 함께 보자.
뉴노멀소프트는 지난 8월부터 <그만 쫌 쳐들어와>라는 디펜스 게임을 서비스 중이다. 그리고 이 게임은 111퍼센트가 개발한 <운빨존많겜>과 룩 앤 필, 사운드, 룰, 인터페이스, 배치 방식까지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만 쫌 쳐들어와>의 유료 광고를 진행한 유튜버들의 영상 제목, 내용, 태그에도 <운빨존많겜>이 (매우 비난 일색인 어조로) 함께 언급되고 있다. 주로 <운빨존많겜>보다 <그만 쫌 쳐들어와>가 BM이 저렴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유료 광고를 진행할 때 뉴노멀소프트가 검수를 안 했을 리 없고, 결국 이와 같은 영상 구도로 나가도 좋다고 승인(또는 의도)했다는 의미다.
비슷하게 옮겨왔으면, <운빨존많겜>만큼 재밌을까. '재미' 자체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니, '완성도'의 측면에서 먼저 접근해보자.
일단, <그만 쫌 쳐들어와>는 <운빨존많겜>보다 가시성이 훨씬 떨어진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캐릭터 디자인의 화풍까지 옮겨왔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그만 쫌 쳐들어와>는 캐릭터끼리 구분이 잘 안 되고, 산만하다는 인상이다.
사운드 또한 마찬가지다. <그만 쫌 쳐들어와>는 <운빨존많겜> BGM의 뉘앙스까지 흡사하게 따왔지만, <운빨존많겜> 특유의 플레이어를 긴장시키는 맛은 적게 느껴졌다. 재미있게도 <그만 쫌 쳐들어와>는 프로 성우들의 보이스를 적극 활용했는데, 사운드 밸런스가 깨진 구간이 많아 보이스가 게임플레이의 집중을 깨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래는 두 게임의 플레이 비교 영상이다.
기자가 최근 반 년 사이 모바일게임 개발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 가장 참신한 캐주얼 게임으로 많은 개발자들이 손에 꼽았던 작품이 <운빨존많겜>이다. <운빨존많겜>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덤'으로 기회를 계속 주는 뽑기 방식과 '미션'으로 메타까지 바뀔 수 있는 전략의 재미다.
일례로, 지금은 업데이트로 사라진 <운빨존많겜>의 '주마등'(몬스터가 90마리 이상 모였을 때 추가 보상을 주는) 미션은 두 플레이어가 일부러 템포를 늦췄다 시작하는 독특한 전략의 근간이었다. <그만 쫌 쳐들어와>는 <운빨존많겜>의 외관을 상당 부분 따라했지만, 정작 이런 핵심 요소는 옮겨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아래에서 설명할 <템페스트>와 <마블 스냅>의 관계에서도 보이던 모습이다. 기자는 <운빨존많겜>을 만든 111퍼센트에 연락해 입장을 들어봤다. 111퍼센트 관계자는 "뉴노멀소프트 측에 표절에 대한 시정을 요청했고, 시정 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노멀소프트가 지스타 2023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이번 년도 3월에 정식 출시한 카드게임 <템페스트> 또한 <마블 스냅>과 많은 부분이 비슷해 논란이 됐었다. <마블 스냅>은, <하스스톤> 디렉터였던 '벤 브로드'가 세컨드 디너를 설립한 이후 출시한 카드게임으로, 3개의 구역 중 2개의 구역에서 이기면 승리하는 특유의 룰과 신선한 카드 효과로 많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템페스트>와 <마블 스냅>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을까.
<템페스트>와 <마블 스냅>의 공통점
▶ 3개의 구역 중 2개의 구역에서 이기면 승리하는 핵심 룰이 동일하다.▶ 전반적인 인터페이스가 매우 흡사하다.
▶ 두 게임 모두 한 구역에는 카드를 4장까지만 낼 수 있다.▶ 핵심 메카닉 및 일부 덱 타입(패 버리기, 액티브=출현, 패시브=지속)이 같다.
▶ <템페스트>에선 '탭', <마블 스냅>에선 '스냅'이라 부르는 승점을 건 배팅 시스템이 있다.
<템페스트와 <마블 스냅>의 차이점
▶ <템페스트>의 카드는 '동화'와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왔다.(세컨드 디너는 '마블'과 라이선스를 맺었다는 차이가 있다)
▶ <마블 스냅>은 6턴까지 12장의 덱으로, <템페스트>는 7턴까지 14장의 덱으로 진행된다.
▶ <템페스트>에는 대전이 시작되기 전 밴, 픽 시스템이 있다.
▶ <템페스트>에선 특정 카드로 구역에 효과를 부여하기 전엔, 모든 구역이 아무 효과가 없는 빈 구역이다.
<템페스트>에서도 뉴노멀소프트는 <마블 스냅>의 핵심 요소를 놓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예를 들어, <마블 스냅>에서 '매 판 구역 효과가 새롭게 부여되는 요소'는, 12장으로 구성된 덱이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성보다 훨씬 큰 변수로 작용해, 지속적인 플레이 안에서도 게임이 질리지 않게 만들어주는 코어 메카닉이다. 그러나 <템페스트>는 모든 구역이 바닐라(효과 없음)인 상태로 게임을 반복하게 한다.
지난 해, <템페스트>가 기자들에게 처음 공개된 때, 기자는 뉴노멀소프트 박장수 대표에게 따로 질문을 했다. 다른 부분은 <마블 스냅>과 모두 유사하게 했으면서, 왜 핵심인 '구역 효과'를 축소한 것인가. 그는 랜덤한 구역 효과가 승패에 영향을 주는 것을 일부러 배제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줬다. 론칭 때부터 <마블 스냅>을 계속 했던 기자가 바라보는 <마블 스냅>의 재미와는 정반대의 해석을 했던 것이다.
뉴노멀소프트는 지난 해 <템페스트>를 공개한 쇼케이스 자리에서, '1년에 두 개 이상 다른 장르 게임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모든 게임을 글로벌 론칭할 것'이라 밝혔다. 빠른 출시와 다작보다 더 중요한 미덕은 '신작'다운 '신작', 유저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뉴노멀소프트 홈페이지에서는 <창세기전 3 리버스> 소개 페이지가 사라졌다. <창세기전 3 리버스>를 포함한 <창세기전> IP 게임 2종과 JRPG로 추측되는 <프로젝트 SS> 등 향후 출시될 뉴노멀소프트의 신작들은, 이미 출시된 <템페스트>, <그만 쫌 쳐들어와>가 비판 받은 지점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것이 <유니콘 오버로드>, <창세기전>, <운빨존많겜>, <마블 스냅>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 11월 25일 18시 업데이트
기사 출고 이후, 뉴노멀소프트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했다. 이하 사과문 전문 인용이다.
"안녕하세요, <창세기전 3 리버스> PD 장원우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창세기전 3 리버스>(가칭)의 초기 개발 버전으로 인해 혼란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창세기전 3 리버스> 개발 초기에, 약 6~8개월간 다양한 아트 스타일과 장르를 테스트하며 방향성을 탐구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이러한 초기 테스트 중 하나로, 최종적으로 <창세기전>의 세계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폐기된 개발 방향입니다. 하지만 홈페이지 개편 과정에서 잘못 전달된 자료가 업로드되어 혼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창세기전 3 리버스>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으로 개발 중이며, 장르부터 아트 스타일까지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추후 현재 개발 중인 <창세기전 3 리버스>를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혼란을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