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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시몬, 인도네시아를 가다

온라인게임 인기가 급상승 중인 나라, 인도네시아

임상훈(시몬) 2010-12-23 08:27:19

12월에는 외국에 안 나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서울 책상 위에 일들이 수북이 쌓였지만,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온라인게임 시장은 그만큼 얼른 보고 싶었던 곳이니까요. 원래 내년 봄쯤 한번 가볼까 생각했는데, 좀 빨라졌습니다. , 아닙니다. 사실은 느려터진 겁니다. 올 한해 해외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뜨거웠던 곳을 이제서야…. 


국내 게임매체 최초의 인도네시아 방문 취재. 그러나, (늘 그렇듯) 무식함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처음 와보는 거니, 시각은 편협하고, 관심은 산만합니다. 게다가 가는 비행기에서 냉방병까지 걸려서 골골했습니다. 양해 부탁합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디스이즈게임 임상훈 기자

 

 

에메랄드 목걸이를 둘러싼 탐욕, 향료 전쟁


대항해시대, 인도네시아는 서유럽 열강에게 에메랄드 목걸이로 불렸습니다. 삼림이 우거진 녹색 열대 섬들의 모양새가 에메랄드 목걸이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귀한 존재로 여겼던 거죠. 순전히 향료 덕분이었습니다. 누린내 나는 고기를 먹던 유럽 상류층에게 이곳 향료는 맛의 신세계를 열어줬죠

 

대항해시대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리는 무자비한 약탈과 인신매매의 황금기, 유럽 열강은 경쟁적으로, 거룩한 신의 이름을 앞세우고, 총칼 들고 인도네시아 쟁탈전에 나섰습니다. 하긴 후추 같은 향료는 한때 금과 같은 무게로 값이 쳐졌었으니까요

 

마지막까지 남은 영국과 네덜란드는 향료 전쟁이라고 불리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고, 일본인 고문기술자까지 고용했던 네덜란드가 이겼죠. 동아시아 무역의 중심 물품이 향료에서 면직물로 넘어가기 전까지, 현재의 자카르타에 본부를 설치했던 네덜란드는 육두구와 정향의 독점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했습니다.

 

대항해시대, 네덜란드 함선의 모습. 인도네시아를 차지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1602~1799)는 2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습니다.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전쟁선포, 조약체결, 군인채용 등 국가로부터 상당한 공권력을 부여받은 ‘국가 밖의 국가’가 되었죠. 군인 수가 부족해서 값싸고 용맹한 일본인 사무라이까지 고용했던 VOC에 밀린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인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2차 대전 후 독립국이 된 인도네시아는 열강의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잠깐 나타난 적이 있긴 하죠. 미국과 소련 중 한쪽으로 붙기를 강요당하던 냉전시대, 비동맹중립주의를 내세우며 제 3세계의 상호협력을 제창했던, 세계사적으로 그 유명한 반둥회의가 이 곳에서 열렸으니까요


하지만, 행사 장소가 국가 브랜드와는 별 상관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체는 별로 주목받지 못 했으니까요. 게다가 한쪽 열강의 옆에 붙어 그 시각을 열심히 내면화한 우리에게, 낭만의 섬 발리는 유명하지만, 그 섬이 속한 나라는 아웃오브안중이었습니다.

 

 

세계경제에 관심있다면, 기억해야 할 단어, VISTA


브릭스’(BRICs)는 아시겠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향후 세계 경제를 주도할 나라들의 앞 글자를 딴 약자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비스타’(VISTA)라는 단어가 뜨고 있습니다. MS 윈도우 이야기가 아닙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아르헨티나의 앞 글자를 딴 용어죠. 이 나라들이 브릭스에 이어 향후 세계 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인도네시아는 적도에 걸쳐 있고 ,자카르타는 적도 남쪽에 있죠. 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남반구는 지금이 더 더울 때입니다. 그런데, 야외를 나가도 생각보다 덥지 않더군요. 올해 내내 날씨가 한국의 여름에 비해 무난했다고 하더군요. 에어콘이 필요 없었던 독일은 더위 때문에 고생하고, 적도는 오히려 덜 덥고. 지구온난화는 무섭습니다. 왼쪽 아래는 인도네시아 국기입니다. 약 2:3의 비율로 빨간색과 흰색이 차지하고 있는데, 빨간색은 용기, 하얀색은 선의(purity of intent)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나라가 인도네시아입니다. 세계 4위의 인구와 어마어마한 지하자원 덕분이죠. 최근 중국이 거의 유일하게 미국과 맞짱을 뜨는 것도 거대한 내수시장의 덕이 큽니다. 인구는 국가 경쟁력에 매우 중요한 요소죠. (노총각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얼른 한국도 애를 많이 낳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24,500만 명의 인도네시아 인구 중 3분의 1 20대 미만입니다. 우리나라가 고령화로 골치 아플 때 생생한 젊은이들이 나라를 이끌 가능성이 큰 거죠. 게다가 97억 배럴의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의 니켈 매장량, 세계 3위의 동·주석 매장량, 액화천연가스 공급량 세계 2위 등 지하자원도 든든합니다.

 

향료전쟁 이후 400여 년, 인도네시아가 다시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해외 열강은 총칼 대신 돈다발을 들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억지로 껴맞춘) 인도네시아와 한국 온라인게임 사이의 나비효과


1997년 인도네시아와 태국은 세계 외환위기의 진원지였습니다. 동남아발 외환위기는 우리나라에 폭풍처럼 밀려왔죠. IMF 관리체제와 대량해고 사태. 그 덕분에 뿌리 깊은 지역주의와 막무가내 빨갱이 딱지에도 경제 달인포지셔닝을 했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이후 IT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해고된 이들의 PC방 창업 열기는 한국 온라인게임이 전 세계에서 가장 일찍 성장하는 토대가 됐죠. 90년대 말 환란이라는 이름을 달고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온 나비는 IMF 폭풍을 거쳐, 우리나라 온라인게임 산업과 그렇게 연결돼 있습니다.

 

<라그나로크>는 현재 57개국 이상에서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온라인게임 초창기 동남아시아의 최고 인기 게임이었죠. 신생 퍼블리셔 ‘리또’에게는 ‘로또’와 같은 게임이었을 거고요. 현재도 1만 명 가까운 동접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지난 10월 초 자카르타에서는 11개국 <라그나로크> 유저들이 참여한 ‘라그나로크 월드챔피언십 2010’이 열렸습니다.

 

IMF 체제가 잦아질 무렵, 나비는 게임을 안고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갔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동남아시아를 휩쓸던 <라그나로크>는 인도네시아도 가만 두지 않았죠. 이 게임을 서비스한 ‘리’(Lyto)를 단숨에 인도네시아 최대 퍼블리셔로 키워놨습니다


이후 <오디션>의 춤바람도 인도네시아를 흔들었습니다. ‘메가수스는 이 게임 덕분에 단숨에 리또와 함께 인도네시아 온라인게임 양강 체제를 구축했고요. 그렇지만, 이것은 산들바람에 가까웠습니다. 15년 전 한국으로 날아왔던 폭풍처럼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나비도 마침내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포인트블랭크>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인도네시아의 <스타크래프트>’ <포인트 블랭크>


세계 시장의 온라인 FPS 지형은 좀 특별합니다. 우리나라는 <서든어택>이 앞을 달리고, <스페셜포스> <카스 온라인> <아바> 등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크로스파이어>가 동시접속자 수 200만 명을 넘기며 고공행진 중입니다. 태국으로 가면 <스페셜포스>가 최강자. 베트남에는 다시 완연한 1등인 <크로스파이어>. 대만에서는 <카스 온라인>, 유럽에서는 <컴뱃암즈> 1등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미 언급했던 <포인트블랭크>의 독주입니다.

 

인도네시아 국기를 집어 넣은 마케팅을 선보였던 <포인트블랭크>. ‘시장 선점자(First Mover)’의 어드벤티지와 시장에 적합한 효율적인 마케팅이 <포인트블랭크>를 인도네시아의 ‘국민게임’으로까지 올려놨습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사정은 다른 곳과는 사뭇 다릅니다. 다른 나라의 1 FPS는 해당 장르에서 잘 나가는 모양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다른 모든 온라인게임의 동시접속자 수를 다 합해도 크레온이 서비스하는 <포인트블랭크> 최고 동시접속자의 50~70% 수준이니까요. PC방 초창기 <스타크래프트>가 장악했던 우리나라 게임 시장의 모습을 <포인트블랭크>가 인도네시아에서 재현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본격적으로 온라인게임의 포텐셜이 터지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와르넷과 <포인트 블랭크>의 사정


인도네시아의 온라인게임 사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일단 인도네시아는 1만 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나라입니다. 그중 자바섬에 인구의 절반이 넘는 13,000만 명 가량 살고 있죠. 소비 시장도 자바섬이 전체의 4분의 3을 차지합니다. 대다수 게이머는 자바섬에 몰려 있고, 그중에서도 자카르타, 수라바야 등 몇몇 대도시에 밀집된 상황입니다.


일반적인 게이머는 와르넷이라고 불리는 PC방에서 게임을 즐깁니다. 와르넷은 인도네시아 전역에 약 1만 개 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개의 동남아시아 PC방이 그렇듯PC 사양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와르넷 이용가격도 무척 낮아서 PC를 업그레이드할 만한 사정도 아니죠. 하드디스크 공간이 부족해서 새로운 게임을 설치하려면, 기존 게임을 지워야 하는 곳도 꽤 있다고 합니다. 일부 와르넷은 게임만 가능하고, 인터넷 접속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런 곳일수록 와르넷을 한번 잡는 게임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죠.

 

PC가 20대 정도 있는, 인도네시아의 전형적인 와르넷 내부 모습입니다. 자카르타 대학가 근처여서, PC 사양은 꽤 괜찮은 상황입니다.

 

20096월 인도네시아에서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포인트블랭크>는 론칭 초창기 <카운터스트라이크>(이하 <카스>) 팬들을 흡수하면서 성장했습니다. 대만, 터키 등 많은 나라에서는 한국의 온라인게임이 들어오기 전부터 <카스>가 장악하고 있었죠. 인도네시아의 경우, <카스>의 유저층을 <포인트블랭크>가 완전히 흡수했고, 그 유저층을 기반으로 새내기 게이머들을 받아들이며 1년 반 만에 동시접속자 수 20만 명을 넘었습니다.


화교계 자본이 세운 기존 퍼블리셔와 달리 한국인들이 만든 회사였던 까닭에 한국 개발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좋았다고 합니다. <포인트블랭크> 이후에 들어온 <아틀란티카>와 <프리스타일>도 꽤 선전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따로 준비 중인 인터뷰를 통해 더 자세히 전해 드릴게요.

 

 

인도네시아, 온라인게임 산업의 에메랄드 목걸이’가 될 것인가?


인도네시아 온라인게임 시장은 가능성과 어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포인트블랭크>가 보여줬던 폭발적인 동시접속자의 증가는 세계 인구 4위의 대국의 잠재력을 확인한 사례입니다. 특히 20대 미만의 인구가 전체의 3분의 1 이상인 점은 온라인게임의 성장에 좋은 토대가 될 것임은 틀림없죠. 인터넷 인프라는 계속 구축될 것이고, 오는 2020년까지 매년 7%대의 GDC 성장률이 기대되는 경제는 구매력을 높일 테니, 이만한 시장을 찾기도 힘들죠.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좋아지고 있지만, 수요의 스피드를 따라오지 못하는 IT 인프라 성장 속도는 온라인게임 산업의 성장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소입니다. 최근 대형 와르넷들이 생기고 있지만,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열악한 와르넷 환경 역시 게임시장 성장의 걸림돌입니다. 이 밖에 와르넷에서 파는 선불카드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결제수단의 취약성이나 온라인게임 전문인력의 부족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습니다.

 

인도네시아 와르넷 외부 전경. 동남아시아 PC방들이 대개 그렇듯, 바깥에는 오토바이들이 겹겹이 정차돼 있습니다. 앞으로 저 창문 위에 어떤 게임의 포스터가 걸리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포인트블랭크>의 성공 이후, 올해에만 10여 곳의 퍼블리셔들이 새로 문을 열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발목을 잡는 요소들이 있지만, 비약적인 시장 성장 전망에 이견이 없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25% 이상 성장한 인터넷 유저 수, 그리고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상류층과 15% 정도의 중산층 소비력은 다른 해외시장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크레온 안재국 이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저희가 서비스하는 게임 중 하나는 열성 유저가 많아, 오빠, 동생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전 가족이 함께 플레이하며 일반 근로자 평균 월급의 몇 배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쓰는 데 한계가 없고, 돈 있는 사람이 돈 쓰는 것을 인정하는 문화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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