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코'는 카리브해의 플랜테이션 국가를 경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다. 독재자의 여러 통치를 풍자적으로 묘사하는 블랙코미디적 요소로 꽤 인기를 끌었다. 지난 2019년에 6편까지 출시된 장수 프랜차이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단순한 경영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작은 섬나라의 개발독재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연합국과 추축국,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면서 수출 주도 경제를 통해 국력을 키워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트로피코 6>에는 거래할 수 있는 자원의 종류가 양모, 럼주, 시가부터 대학교육을 받은 인재까지 다양하다. 게임은 개발독재의 무시무시한 권능을 느낄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개발독재는 멀리 있지 않다. 카리브해 이야기는 아니지만, 훈 센은 '킬링 필드'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캄보디아의 권력을 잡은 뒤 나무를 베어다 팔고 의류 OEM 사업을 하면서 40년 가까이 집권 중이다. '중앙아시아의 북한'으로 알려진 투르크메니스탄도 석유, 천연가스 같은 지하자원으로 독재정권을 유지 중이다.
지금도 전 세계의 독재국가들은 천연자원의 주름을 꽉 잡고 있는데, <트로피코 6>의 섬은 대체로 모든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졌다. 난도가 올라가면 특정 자원이 희박한 상태에서 게임을 하게 되는데, 그 경우에 다른 국가와 무역을 통해서 자원을 수입해야 한다. 보통 여기까지 가는 경우는 <트로피코 6> '고인물'로 본다.
각설하고, 자원이 많다고 해서 승승장구의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엘 프레지덴테(플레이어)는 국가를 경영하면서 쌓은 자원을 공산주의자, 자본주의자, 종교인, 군국주의자 같은 여러 세력에게 적당히 나눠주면서 민심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 상대 후보를 꺾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로피코 6>의 가상 국가는 형식적으로 5년에 한 번 선거를 치른다. 여러 세력은 선거를 앞두고 '금주령을 시행해달라'거나 '카바레를 지어달라'는 등의 민원을 요구해 온다.
높은 지지율을 가져가는 요구는 리스크가 크기 마련인데, 한쪽의 지지를 얻는 대신에 다른 한쪽의 지지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보통은 두 개의 세력을 꽉 붙잡은 상태에서 상대 후보를 공략하는 것이 '정석'으로 제시된다. 정석이 먹히지 않는다면 매수, 마타도어(모략 선전), 암살 등의 기능도 있다. 6편부터는 스위스 은행에 은닉한 비자금으로 지지율을 올리는 기능도 추가됐다.
이러한 권모술수를 남발해도 승리의 가능성이 없을 때 선택되는 옵션이 있으니, 계엄령이다. 계엄령을 선포하면 선거가 즉각 취소되면서 정권의 생명력이 연장된다.
하지만 포고 즉시 해외 국가들과의 관계가 떨어지고, 관광객들이 섬을 떠난다. 시민의 자유도 또한 바닥으로 떨어지며, 군국주의자를 제외한 모든 세력과의 '우호'가 바닥난다. 계엄령을 거두지 않으면, 게릴라들이 창궐해 주요시설을 습격해서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투옥된 '동지'를 구출하기 위해 교도소를 공격한다. 계엄이 장기화되면 반대 세력과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한다.
그래서 <트로피코 6> 플레이어에게 계엄령은 그리 추천되는 옵션이 아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낮은 지지율에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어서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선택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돌아선 민심과 파탄 난 경제 탓에 자신이 지도자로서 가꿔야 할 국가가 망가지고 만다. 계엄을 수습하고 각 지도자를 모조리 숙청한 뒤에도 반대 여론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50%의 반대 세력과 상대하는 기존의 플레이보다 게임이 더 어려워진다. 군국주의자를 제외한 모든 세력이 반대파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트로피코 6>에서는 계엄령을 걸고, 해지했다가, 다시 정상으로 복귀하기도 어렵다. 상식적인 상황에서 계엄령은 절대로 고르면 안 되는 선택지다. 이렇게 <트로피코 6>는 오로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지배자의 행태를 비판한다. 엘 프레지덴테가 권좌에 앉아 있는 시간이 잠시 연장될 수 있어도 온 국가에는 위기가 퍼진다.
계엄은 국가가 처한 비상식적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마련된 마지막 버튼이다. 지난밤, 국민의 대표자였던 사람은 게임 속 플랜테이션 개발독재 국가가 아니라 현실에서 계엄령을 남발했다. 민주공화국이 지켜온 헌정 질서에 대한 '빡종'(빡쳐서[화나서] 종료)을 선택한 윤석열 씨와 내란의 지도부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