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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2025년 게임 업계 전망 ④ - 정부는 콘솔게임 개발하라는데…

패키지게임이 새로운 패러다임? 아직은 이르다

한지훈(퀴온) 2025-01-08 18:02:49

“이 땅의 게임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게임을 사랑하는 게임 유저들께 이 게임을 바칩니다.”


한국 최초의 PC게임으로 알려진 <폭스 레인저>의 엔딩에 나오는 문구다. 1992년 4월 IBM 호환 PC용으로 개발된 이 게임은 자장면 한 그릇이 1,700원이었던 당시 15,000원이라는 높은 판매가에도 불구하고 2만 5천 장 이상 판매됐다. 당시에는 게임이 2천 장 이상 판매되는 일이 드물었으니, 사실상 한국 게임 산업의 태동을 알린 '대히트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한국 게임 산업은 패키지게임으로부터 시작했다. 개발 경험도 없고, 개발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 한국에서는 <폭스 레인저>의 개발자 남상규가 93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게임의 국적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일념 하나로 수많은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의 노력이 한 점으로 모였고, 그렇게 초기 한국 게임 산업이 '빅뱅'처럼 폭발하듯 탄생하게 됐다.

이후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패키지게임이 다시 게임 산업의 주요 화두로 언급되고 있다. 해외 시장을 겨냥한 패키지게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여기에 정부까지 가세해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게임 산업의 시선은 왜 패키지게임을 향하고 있으며, 2025년은 패키지게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도래하는 해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살펴보았다.


1992년 한국 게임 산업의 태동을 알린 게임 <폭스 레인저>


# 패키지게임에서 온라인·모바일게임으로


1992년 <폭스 레인저>의 출시에서 시작된 한국 게임 산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변곡점을 만나게 된다.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과 머드(MUD) 게임의 유행, 그리고 PC방의 확산 등 여러 요인들이 얽혀 만들어진 온라인게임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넥슨의 <바람의나라>, 그리고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등이 당시 온라인게임의 유행을 이끌었다. 온라인게임은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누구든 접근할 수 있었고 당시 패키지게임의 골칫거리였던 불법 복제 문제에서도 자유로웠으며, 월정액으로 거둬들이는 매출은 초기 판매에 의존하는 패키지게임을 빠르게 추월했다. 당시 많은 게임사들이 온라인게임 개발에 도전했으나 이 과정에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초기 <바람의나라>와
<리니지>의 게임 스크린샷

이어 2000년대 초에는 <뮤 온라인>, <라그나로크 온라인> 등 3D 그래픽을 접목한 온라인게임이 등장하고 흥행에 성공하면서 온라인게임은 한국 게임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리니지 2>, <아이온> 등을 비롯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의 온라인게임이 주류가 된 게임 산업은 부분유료화 모델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온라인게임의 포화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한 2007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게임 산업은 다시 변곡점을 맞는다. 이번엔 모바일게임이 산업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스마트폰의 등장 이전에도 모바일게임은 있었다.

당시 모바일게임은 피처폰 전용 무선인터넷 포털인 ‘오픈넷’을 중심으로 유통됐는데, 개발사의 수수료 부담이 부가옵션에 따라 최대 50%를 넘었고 통신사마다 유통 플랫폼이 달라 같은 게임을 3번 이상 개발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등장한 앱 마켓은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 수수료는 30%로 통일되었으며, 동일한 OS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에서 게임 접근이 가능했다. 더 나아가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글로벌 서비스도 가능해졌다.

이 같은 이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한 모바일게임 시장은 2010년대 중반 모바일 MMORPG의 등장으로 도약에 성공한다. <뮤오리진>, <리니지 2: 레볼루션>, <리니지M>이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가자 이후 너도나도 비슷한 게임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너무 비슷해서 저작권 침해 소송도 수차례 제기될 정도였다.


엔씨소프트가 제시한 저작권 침해 사례 이미지. 왼쪽이 <리니지W>, 오른쪽이 <롬>

# 패키지게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아직은 이르다


최근 국내 모바일 MMORPG 장르의 영향력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모바일 MMORPG 타이틀의 MAU(월간 활성 이용자 수)도 3년 전에 비해 70~90%가량 하락했고, 매출 역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이와 함께 지난해 게임 업계 최대 화두 중 하나였던 확률형 아이템도 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게 됐다.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모두 매출의 75% 이상을 확률형 아이템에서 발생할 정도로 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상황에서 이용자들의 반감은 커지고 관련 규제도 거듭 강화되고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활로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이 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해외 게임 시장이다. 한국 내지는 아시아라는 시장을 벗어나 북미와 유럽 같은 게임 산업의 중심지에 뛰어들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를 위해서는 모바일게임이 아닌 현지 시장에 맞춰 PC·콘솔 플랫폼의 패키지게임으로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과거에는 패키지게임으로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퍼블리셔가 반드시 필요했다. 현지 유통망을 이용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선택이고 한국 게임들을 이것이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현재는 스팀 같은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ESD)이 보편화되어 해외 진출의 허들이 낮아졌다. 각 콘솔 플랫폼별로 고유의 ESD를 보유하고 있어 입점만 성공하면 전 세계에 게임을 유통할 가능성이 열렸다. 

더불어 성공 사례도 하나씩 나오고 있다.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와 네오위즈의 <P의 거짓>, 그리고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다. 이들이 연이어 해외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른바 ‘K-콘솔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포화된 기존 게임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성공을 위해서는 패키지게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정부도 편승해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5월 정부는 K-콘솔게임 개발을 집중 지원하는 5개년 게임산업 진흥계획을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콘솔게임(정책 브리핑 이후 질의에서 "하나의 완성된 패키지게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MS, 소니, 닌텐도 등 주요 플랫폼사와 협력해 유망 게임을 발굴하고 홍보까지 연계를 지원할 예정이다. 더불어 콘솔게임 제작 선도 기업의 비법과 경험을 전수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잠재력 있는 게임을 선정해 홍보 및 유통을 다년간 지원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게임을 포함한 콘텐츠 부문 예산으로 1조 2,715억 원을 확정했다. 이 중 콘솔게임 지원을 위한 예산은 155억 원이다.

이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도 콘솔게임 개발을 위한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확대된 이번 지원 계획은 지원 기간 내 PC 및 콘솔게임의 상용화 버전을 기획·개발·출시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총 107억 원의 개발비를 지원한다. 추가로 모바일 및 PC 버전 게임의 콘솔 전환에 대한 지원과 함께 퍼블리싱과 홍보 지원도 제공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지원을 통해 패키지게임이 다시 한국 게임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글쎄, 당장 올해는 힘들 것이라는 게 기자의 전망이다.


문체부가 발표한 '24~'28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


# 패키지게임 지원 정책, 실효성에 의문


패키지게임은 개발 과정에서 타 플랫폼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PC와 콘솔을 모두 지원하는 크로스 플랫폼이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금은 그 부담이 훨씬 크다. 콘진원의 자료에 따르면 일반적인 게임 프로젝트의 기획 및 개발 소요 기간은 평균 19개월 25일인데 반해 PC와 콘솔에 동시에 출시하는 것을 전제로 개발할 경우 소요 기간은 평균 28개월 20일로 대폭 늘어난다.

또한 패키지게임은 매출을 발생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다. 특히 콘솔 플랫폼으로만 출시할 경우 매출을 발생시키는 데 평균 49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게임산업 평균 매출 발생 기간이 20개월임을 고려하면 확실히 큰 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사는 필요한 개발비를 어떻게 충당할까? 패키지게임 개발비의 조달 비중을 따져보면 게임 산업 평균에 비해 정부 지원금 혹은 게임의 유통을 돕는 퍼블리셔가 지급하는 선급금의 비중이 상당히 높게 잡힌다. 자금 조달 방법의 경우, 패키지게임 개발사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 금융권 대출과 퍼블리셔로부터 자금을 조달받는 경우가 많은 반면,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경우는 모바일 및 PC 플랫폼의 3분의 1 수준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게임 유통 경로별 제작비 조달 비중과


업체 특성별 필요한 자금 조달 방법 (출처: 콘진원)

정리하자면 패키지게임 개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퍼블리셔의 역량이 크게 작용한다. 특히 콘솔 플랫폼의 경우 플랫폼홀더와의 긴밀한 협업이 중요한 영역으로 이들의 기준과 요구를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콘솔 개발 경험이 없는 신생 개발사나 중소 개발사가 단독으로 이를 수행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번 정책에서 이에 대한 지원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지난 5월 발표된 자료에서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MS), 소니, 닌텐도 등 글로벌 콘솔 플랫폼홀더와 연계해 총 3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지의 취재 결과 이들과 관련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설령 플랫폼홀더가 지원 사업에 참여한다고 해도,이들은 자선 기업이 아니다. 다른 플랫폼으로 출시될 게임의 개발을 굳이 도와줄 필요도 없으며, 독점 출시를 조건으로 지원이 이뤄질 경우 게임의 판매에 제약이 걸린다. 무엇보다 플랫폼홀더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끔 유도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동인이 마련될지도 알 수 없다.


글로벌 플랫폼사와 연계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취재 결과 관련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현재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는 단계

현재는 많은 국내 게임사가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개발에 맞게 인력과 인프라를 쌓아둔 상태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시기는 맞지만,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패키지게임 개발을 위해 새롭게 인프라를 구축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하물며 관련 경험이 전무한 개발사가 선뜻 패키지게임 개발에 도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올해는 <퍼스트 버서커: 카잔>, <인조이>, <붉은사막> 등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패키지게임 출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들은 그 필요성을 빠르게 인식해 자사가 보유한 탄탄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수익을 기반으로 한발 앞서 패키지게임 개발을 준비했지만, 모든 게임사가 이렇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성과는 한국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포트폴리오가 될 수는 있으나, “한국 게임 산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명제로는 이어질 수 없다.

해당 명제가 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시행착오다.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는데 게임 산업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패키지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 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흐름이 바뀔 때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 역경을 딛고 벼려진 것이 지금의 게임 산업 아닌가. 지치지 않고 망치질을 이어갈 수 있는 충분한 동력이 필요한데, 이를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작년 말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문체부의 콘솔 지원 관련 예산은 변화 없이 그대로 최종 확정됐다.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적어도 올해 예산안은 그대로 집행될 예정이다. 콘솔게임 지원 예산 155억 원. 평균 제작 비용인 33.6억 원을 고려해 지원한다는데, 과연 누가 얼마나 지원을 받을지, 기대한 효과는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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