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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게임] 인생에서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원더스탑'

차 한 잔으로 인생을 바꾸진 못할지라도

쿠타르크(쿠타르크) 2025-03-17 11:55:12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괴롭고 지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좀처럼 돌파하기 쉽지 않은 한계를 마주하거나 투자한 노력 대비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그리고 희망찬 기대가 절망적인 좌절로 다가왔을 때.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더불어 다시금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 나아가기 위한 잠시 간의 휴식과 따뜻한 위로를 갈망하게 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와 탈진을 느끼는 상황에서 무작정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는 잠시 쉬어가야한다는 건 기본 상식과도 같은 것이니 말이다.

2020년에 출시됐던 <커피 토크>(Coffee Talk)야말로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휴식과 위로와도 같은 게임이었을 것이다. 간간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차를 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넌지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임 플레이는 무미건조한 현실에 지친 게이머들에게 간접적인 휴식과 위로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리라. 

특히 심야 카페라는 배경, 다양한 종류의 차와 커피, 그리고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조심스레 털어놓는 고민의 내용이 어느 정도 게임 바깥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었기에 더욱 게이머들의 공감을 모았던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2025년, 커피 토크와 마찬가지로 손님들에게 차를 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휴식과 위로를 건네는 또 다른 찻집 시뮬레이션 게임 <원더스탑>(Wanderstop)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이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휴식과 위로의 개념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소 다른 것 같다. /작성=쿠타르크(인디게임 블로거), 편집=김승주 기자

차 한 잔에 한 마디 위로. 어쩌면 우리가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찻집의 형태. <커피 토크>(Coffee Talk)

어렵사리 만든 차 한 잔이 삶을 바꾸지 못할지라도, <원더스탑>(Wanderstop)


# 우여곡절 끝에 찻집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원더스탑>은 깊은 숲 속의 작은 찻집에서 일하게 된 여전사 알타의 이야기를 담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찻집 안팎의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편안한 색감의 비주얼과 감미롭고 편안한 느낌의 사운드트랙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차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확보하고 손님을 맞이하며 차를 맞이하는 게임 플레이는 다소 가볍고 캐주얼하다. 

다만, 실제 게임은 차를 만드는 것보다는 알타와 다른 캐릭터들과의 대화 그리고 알타 본인의 사연을 다룬 서사의 비중이 훨씬 크게 잡혀있는 모습이다. 내러티브 어드벤처 혹은 비주얼 노벨 게임으로 취급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여담으로 이 게임의 개발사 Ivy Road에는 <더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 <더 비기너즈 가이드>(The Biginner's Guide)의 제작자와 <곤 홈>(Gone Home), <타코마>(Tacoma)의 공동 제작자, 그리고 <마인크래프트>(Minecraft)의 음악 담당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원더스탑>이라는 게임 안에서 앞서 언급한 어느 게임의 흔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나름 흥미롭게 다가온다.

탁 트인 평야, 정갈하고 목가적인 찻집. 잠시 쉬어가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

판타지라기엔 어딘가 수상한 것들이 조금씩 섞여있다.

우여곡절 끝에 찻집에서 일하게 된 알타 그리고 그런 알타를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직접 체험하는 찻집에서의 일상은 평화로우면서도 불편하고 단조로우면서도 번거롭기 그지없다. 차의 재료가 되는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씨앗을 심어 식물을 키우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찻집 안팎을 청소하거나 가구를 배치하고, 손님의 부탁을 받아 알맞은 차를 만들어 대접한다. 

그나마 차를 만드는 과정이 불편하고 번거로운 편인데, 차를 만드는 기계가 무슨 골드버그 장치마냥 복잡하게 설계돼있는 데다가 손이 은근히 많이 가서 그렇다. 커피 포트와 티백을 활용해 간단하게 차를 끓여본 이들이라면 여기서 자괴감을 느낄런지도 모르겠다.

일단 차를 만들어 손님에게 알맞은 차를 대접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적이고 그 밖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긴 하지만, 그 모든 일에 딱히 강제성은 없다. 찻집 주인인 보로는 매사에 천하태평이라 느긋한걸 넘어 나태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고, 찻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주문이 늦어진다고 해서 전혀 보채지도 않으니 말이다. 

밭 갈아 열매 수확하고 찻집 주변을 청소하는, 편안함을 넘어 따분함마저 느껴지는 찻집에서의 일상

차를 만드는 과정은 번거롭고 불편하다. 물론 차가 늦게 나온다고 보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찻집에서 해야할 일을 스스로 찾아가며 부지런히 움직여도 게임이 크게 진전되지도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게임 속 캐릭터들(특히 보로는 더더욱)보다도 플레이어가 오히려 조바심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심지어는 게임의 도전과제도 예사롭지 않다.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 해금되는 여타 게임의 도전과제와는 다르게 원더스탑의 도전과제는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어느샌가 슬며시 해금된다. 도전과제의 설명을 읽어봐도 도무지 해금 조건을 추측할 수가 없다. 버그인가 싶기도 하지만 뚜렷한 목표나 목적 없이 진행되는 게임의 흐름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든 것 같다.

이렇듯 평화롭기 그지없는 한적한 찻집이건만 주인공 알타는 찻집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좀처럼 녹아들지 못한다. 찻집에서의 모든 일상에 부정적이기만 하고 느긋한 표정에 뚱딴지 같은 소리만 하는 보로는 못미더우며 찻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항상 퉁명스럽다. 항상 강해지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그녀다보니 강해지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찻집에서의 일은 영 어색하고 미숙하기 그지 없다. 

찻집 주인이라는 양반은 매사에 천하태평이다.


# 의미 없는 설득 대신, 조용한 관조를

몸은 찻집에 있어도 머리 속에는 하루 빨리 숲을 떠나 다시 강해지려는 생각만 가득하다. 정작 찻집을 떠나려고 시도해도 언제나 도중에 쓰러진 채 다시 찻집으로 돌아올 뿐이다.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 평화로운 찻집의 분위기는 그다지 만족스럽게 다가오진 못할 것이다.

찻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라고 딱히 다를 게 없다. 대다수의 손님들은 무례한게 아닌가 싶을 만큼 맹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을 늘어놓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주문한 차가 안나와도 보채지 않는다는 건 찻집에서 일하는 알타 입장에서는 편하게 느껴질 수 있어도 다르게 보면 주문한 차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알타의 깊은 고민에 공감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몇몇 손님은 알타에게 시비를 걸어오기도 하고, 찻집을 떠났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더욱 악화된 채로 돌아와 알타와 보로의 걱정을 키우는 손님마저도 존재한다.

평화로운 찻집 안에서는 왠지 모를 불협화음이 감지된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제대로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 모든 걸 지켜보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이런 전개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여지가 다분하다.

절이 마음에 안들어서 떠나려는데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다시 절로 돌아오는 꼴


어느 누구도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보로도, 손님들도 그리고 알타 본인조차도.

이 아이가 자신이 한 말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을까, 아이의 말을 듣는 알타의 입장은 어떨까.

그런 와중에 찻집 주인인 보로는 언제나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한다.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태연히 찻집에서의 일상을 영위해 간다.

찻집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막진 않지만 그 이상으로 간섭하지도 않는다. 숲 속에 쓰러져있던 알타를 찻집으로 데려온 것도 그지만, 찻집을 떠나 원래 삶으로 복귀하려고 안달이 난 그녀에게 마땅한 위로나 해답을 주지 않는 것 또한 그이다. 그저 찻집에서의 모든 상황을 묵묵히 그리고 담담히 지켜보고 그의 덩치만큼이나 크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호연지기란 이런 것임을 몸소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다.

어쩌면 이런 그의 태도야말로 심신이 지친 자들을 맞이하는 그만의 방식이자 이 게임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일런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고민을 지니고 있거나 고된 역경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나 명쾌한 해답을 직접 제시하기보다는 스스로 깨닫고 일어설 수 있게끔 담담히 지켜보고 또 지켜주는 것. 

스스로 겪는 고민의 근본적인 원인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한 알마나 여러 손님 같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극심한 번아웃을 겪은 적이 있거나 오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오래도록 헤매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게임에 공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심리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따뜻한 위로보다는 담담한 관조. 이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변화의 시작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 어렵사리 만든 차 한 잔이, 인생을 바꾸진 못할지라도

<원더스탑>은 보이는 것만큼 단순한 게임은 아니다. 작은 찻집의 분위기는 편안함과 불편함이 어색하게 공존하고, 찻집에서의 일상은 단조로우면서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플레이어가 찻집에서의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게임이 얼마나 진행됐는가를 곧바로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원인을 모르는 부진에 처한 주인공이 시종일관 괴로워하는데 명쾌한 해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도 아니라 그녀의 고민은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는 그녀를 담담하게 지켜볼 뿐이다. 언제나 옅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그녀를 지켜보고 또 지켜주는 찻집 주인 보로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 게임은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올런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무미건조한 위로나 무의미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 스스로 문제를 의식하고 변화를 맞이할 수 있게끔 지켜보는 '관조'의 자세가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누구나 공감하긴 힘들겠지만 누군가는 깊게 공감할 만하다. 극심한 번아웃이나 오랜 부진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이들이라면 (비록 해답이나 위로를 찾을 수는 없을 지라도) 이 게임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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