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우한 폐렴) 사태를 맞아, 게임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치명적인 판데믹으로 붕괴한 뉴욕에서, 환경 미화원들은 청소기 대신 화염방사기를 손에 들었습니다. 그들은 뉴욕을 '정화'하기 위해 어떤 대가도 불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과연 그들의 선택은 옳았을까요? 전염병 상황이 부추기는 차별과 혐오가 위험한 이유, 그리고 그 해법을 게임을 통해 알아봅니다.
블랙 프라이데이, 한 테러리스트가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을 겨눕니다. 그의 무기는 총이나 폭탄이 아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뿌려진 현금 다발. 훗날 달러 플루, 혹은 그린 플루라 불리게 된 이 전염병은8 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세계 경제의 중심지를, 순식간에 시체가 굴러다니는 아수라장으로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사태 수습에 동원된 환경미화원들. 격리 구역을 조성하고 시체를 처리하는 등, 언제나 그렇듯 궂은 일을 도맡으며 헌신합니다. 하지만 전염병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고, 모든 것이 무너지며 겉잡을 수 없게 되자, 이들은 도시와 함께 버려졌습니다.
배신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전염병으로부터 이 도시를, 그리고 나아가 국가와 인류를 구해야한다고 믿었죠. 다만, 더 과감한 수단이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감염된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따라서 감염된 순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누군가는 희생해야한다. 이들은 화염방사기와 소방용 도끼, 그리고 소이탄으로 무장하고, 바이러스가 묻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불태워 없애기로 다짐합니다.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들까지도.
뉴욕의 환경미화원들은, 그렇게 인간 청소부, '클리너'가 됐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마치고 세상을 구하면, 모두가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다.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하는 환경미화원, 조셉 페로의 지도 아래, 그들은 뉴욕의 마지막 생명이 정화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2015년 출시된 유비소프트 매시브의 게임, 더 디비전의 이야기입니다.
근대와 전근대 사회를 나누는 수많은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위생의 발명입니다. 근대 이전, 인류는 딱히 전염병에 대항할 지식과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역병 때문에 지도자를 잃은 아테네는 전쟁에 패배했고, 14세기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1억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기록했습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역병은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재앙이었고, 그에 대한 공포는 우리 문화 이곳 저곳에 스며들었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종말을 몰고 오는 네 기수(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중 하나, 하얀 말을 탄 정복의 기수는 흔히 '질병'으로 해석되곤 하며, 워크래프트 시리즈에서, 죽음의 역병을 통해 탄생한 언데드 세력에는 스컬지, 즉 '천벌'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긴 부리 모양의 방독면을 쓴 17세기 역병 의사의 모습은, 대중문화에서 전염병에 대항하는 인류의 절박함, 그리고 공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죠.
근대 의과학이 발달하면서, 인류에게는 전염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 위생과 청결이라는 무기가 생겼습니다. 비록 완벽하게 정복하진 못했지만, 전염병은 이제 불가피한 재앙이 아니라, 싸워 몰아낼 수 있는, '전쟁'의 대상이 됐죠.
하지만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 위생과 청결은 환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의미했고, 이는 자유를 억압하는 아이디어의 확산으로 이어졌습니다. 환자와 비환자, 건강과 비건강, 정상과 비정상... 근대적 이분법은 때때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했고, 갈등과 폭력의 근원이 됐습니다.
이러한 근대 위생 담론의 어두운 면을, 디비전의 악역 클리너는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언뜻 보면 그들은 정당한 명분과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선한 의지를 가졌지만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일종의 안티 히어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으로 말해 그저 민간인 학살, 파괴 공작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행동을 부추기는 핵심 아이디어는, 바로 감염자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그들이 쉽게 감염자들을 '정화', 즉 소각의 대상으로 볼 수 있게 합니다. 나아가 불특정 다수의 시민 생존자들을 모두 잠재적 감염자로 간주하게 만들고, 그들을 학살자로 만드는 원흉이기도 하죠.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것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감염자들, 혹은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고, "나만 아니면 상관 없다"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현실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습니다.
비록 화염방사기를 들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혐오와 차별의 언어라는, 아주 치명적이고 끔찍한 무기를 사용하죠.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라는 유서깊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대부분의 철학적 질문이 그렇듯, 주장만 있을 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대신, 인류는 그러한 판단이 필요할 때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즉, 판단 그 자체의 옳고 그름 대신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에 천착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디비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클리너들의 지도자 조셉 페로는 결국 플레이어, 전략국토부 요원들에게 처단됩니다. 전략국토부, 디비전은 굉장히 특이한 조직입니다. 평소엔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활동을 게시하는 일반인 겸 특수 요원들의 집단이죠.
비록 국가로부터 초법적인 권한을 허용받기는 했지만, 의지와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디비전 요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한 가지 관점을 암시합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대하고 완결된 시스템이나 제도가 아니라, 선한 의지를 가진 개인들의 성찰, 그리고 연대라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