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박주영을 열심히 키웠습니다. 또 이순신이 되어 왜구를 베었습니다. <박주영 키우기>와 <불멸의 이순신 게임>은 '너구리알'이라는 1인 개발자가 만든 게임으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자전거로 남친 날리기' 게임도 재밌게 했습니다. <나나카 크래시>가 에로게임 <크로스 채널>을 원작으로 하는 동인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먼 훗날의 일입니다. 그땐 <무개성전대>도 '후레쉬맨 게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친구가 컴퓨터실에서 회색 후레쉬맨을 골라서 하길래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봤는데 "궁금하면 유희왕 카드를 내놓으라"는 대답만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최근 플래시게임과 관련해 안타까운 소식이 연이어 들리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많은 플래시게임을 서비스했던 쥬니어네이버 게임랜드가 지난 2월 28일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했습니다. 다수의 플래시게임 사이트도 이미 문을 닫거나 닫을 준비를 하고 있고요.
게다가 대표적인 플래시게임 사이트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던 '주전자닷컴'은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미등록 게임물을 유통하고 있다"며 서비스 제한을 통보 당했습니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문화체육관광부가 비영리 게임물 등급 심의에 대한 방침을 밝히기는 했지만 서운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2000년대 이후 PC를 사용한 게이머라면 아마 대부분 플래시게임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플래시게임이 우리와 함께했는데요. 안타깝게도 플래시를 만든 어도비가 내년 말부터 플래시에 대한 지원을 전면 종료한다고 밝히면서 플래시게임을 서서히 추억 속으로 보내줄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8일 완전히 문을 닫은 쥬니어네이버 게임랜드(이하 게임랜드)는 총 세 단계를 거쳐서 서비스를 끝냈습니다. 작년 12월에는 게임뭉치와 스타일업, 지난 2월 1일에는 쥬디게임과 키니위니가 서비스를 종료한 데 이어 28일에 모든 게임이 내려갔습니다. 이로써 2000년 8월 문을 연 쥬니어네이버 게임랜드는 무려 18년 6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마치게 됐습니다.
게임랜드가 문을 닫은 이유는 어도비의 플래시 서비스가 2020년부터 전면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플래시'는 어도비가 만들고 배포한 멀티미디어 제작 툴로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첫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플래시는 간편하게 그래픽을 꾸미고 공유할 수 있는 기능으로 오래도록 각광받았고 애니메이션과 광고 분야에서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HTML5를 비롯한 웹 브라우저 기술이 발전하면서 플래시는 상대적으로 소외받기 시작했습니다. 플래시 콘텐츠는 용량이 작은 대신에 시스템 자원을 많이 소모하고, 스마트폰과 태블릿 브라우저에도 플레이어를 따로 설치해야 한다는 불편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에 애플은 오래전부터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플래시 기능을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취약한 보안은 플래시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힙니다. 플래시는 2010년대 들어 보안 문제로 수차례 도마에 올랐는데요. 지난 2015년 커뮤니티 '클리앙'에 대규모 랜섬웨어가 돌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플래시가 악성코드의 유입 경로로 밝혀졌습니다. 어도비가 여러번 보안 패치를 진행했지만, 다변화된 웹 생태계에서 플래시는 아쉬움이 많이 존재했습니다.
어도비는 작년, 블로그를 통해 "플래시는 보안에 취약하니 사용 중단을 권고한다"는 선언을 했고 결국 7월 25일에는 공식적으로 플래시의 지원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2020년 말까지 유지, 보수는 하겠지만 그 이후로는 서비스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게임랜드는 플래시가 지원이 되지 않는 2020년 전에 미리 문을 닫은 것입니다.
아동층의 스마트폰 이용 증가에 따른 수요 감소도 게임랜드 운영 중단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제 대부분의 저연령층은 스마트폰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한 아동용품 회사가 만 5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부모 4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0%의 넘는 아이들이 스마트폰 등의 기기로 영상을 감상한 적 있습니다.
굳이 쥬니어네이버에 들어가지 않아도 게임, 영상, 학습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쥬니어네이버는 게임랜드 뿐 아니라 각종 영어 학습 콘텐츠와 동요 동영상 콘텐츠의 서비스도 중단했거나 중단할 계획입니다.
쥬니어네이버의 게임랜드 폐쇄는 젊은 층에게 각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플랫폼이 사라지는 것으로 다른 콘텐츠의 서비스 중단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에서는 게임랜드에서 플래시게임를 즐겼던 유저들의 아쉬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게임랜드 운영 종료를 아쉬워하며 내부에서 서비스하던 다른 게임을 어디서 할 수 있는지 모은 정보글은 트위터에서 10,000개 이상의 리트윗을 기록했고 (바로가기), 플래시게임과 관련한 자신의 추억을 그린 단편 만화는 디씨인사이드 힛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바로가기).
게임랜드에서 즐기던 게임을 아주 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쥬니어네이버 게임랜드 플랫폼에 서비스되던 게임은 모두 내려가지만 <스타일업 옷 입히기>는 '게임엔젤' 사이트에서, <쥬디게임>과 <키니위니>는 '키니위니' 홈페이지에서 '아직은' 할 수 있습니다. <슈> 시리즈를 만든 '아이부라보'는 현재 서비스 개선을 위해 잠시 문을 닫았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월 25일, 주전자닷컴, 플래시365 등 국내 주요 플래시게임 사이트도 공통적으로 자작 플래시게임의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공지를 발표했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이들에게 서비스 금지 통보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사이트에 등록된 모든 자작 게임물이 미등록 게임물로 유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이들은 플래시 지원이 중단되는 2020년보다 더 빨리 악재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공개된 게임물이면 그것이 플래시로 만들었든 HTML5로 만들었든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플래시게임 사이트는 대체로 법인 등록도 마쳤는데요. 따라서 이들 사이트는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물을 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의 적용을 받습니다.
하지만 주전자닷컴 측은 "프로도 아닌 학생들이 중심이 된 UCC 작품의 서비스를 금지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혼란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게임위의 이같은 조치가 발표되면서 "게임 지망생이 개발한 비영리 게임에게 등급 분류를 받게 하는 것이 과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적잖이 나왔습니다. 현재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단순 캐주얼 플래시 게임'에 적게는 3만 원에서 많게는 8만 원의 심의 수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학생 입장에서 적은 돈은 아니지요.
논란이 커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8일, ‘아마추어 게임개발자의 창작의욕 고취방안 마련’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비영리 게임물 등급 심의에 대한 정부 방침을 설명했습니다. 보도자로에 따르면 문체부는 우선 앞으로 청소년이 개발한 비영리 기능성 게임의 등급 분류를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문체부는 등급 분류를 하지 않는 대신 청소년들이 개발한 게임을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공공 기관 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것을 검토 중입니다.
아울러 정부는 비영리, 단순 배포 목적으로 개인이 제작한 아마추어 게임물에 한해 등급 분류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교육 및 비영리 목적, 또는 단순 공개 목적의 게임물을 제작/배포할 경우, 등급 분류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플래시이든 HTML5이든 개인이 제작하는 비영리/단순 공개 목적의 게임물은 등급 분류가 면제됩니다. 문체부는 이번 달 중으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담긴 ’게임콘텐츠 진흥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해당 계획이 발표 전, 플래시게임 사이트에 자작 게임 서비스 금지 통보를 내렸던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아직 현행 방침을 유지 중입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니만큼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장기 계획'이 나오면 그에 따른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여러 플래시게임 사이트의 자작 코너를 가보면 플래시게임을 '추억'으로만 여기지 않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이들의 창작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한때 플래시는 게임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을 쉽게 만들어 유포할 수 있는 툴이었습니다. 타워 디펜스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인 <킹덤 러쉬>, 지금까지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로그라이크 <아이작의 번제>, 또 무수히 많은 '방탈출' 장르 게임이 플래시의 품 안에서 탄생했습니다. 이제 '옛것'이 되어 개발, 배포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툴이 되었지만 말이죠.
정부가 플래시게임에 대한 심의를 완화한다는 방침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플래시게임과 작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플래시게임을 보내주기 전, 추억이 담겨있으면서도 나름의 재미도 겸비하고 있는 플래시게임 다섯 편을 뽑아봤습니다. 서비스를 종료해서 해볼 길이 없는 <동물농장>을 제외하고 전부 아직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추억 속에는 어떤 플래시게임이 남아있나요? 오늘은 평소에 즐기던 게임을 잠시 내려놓고 플래시게임과 함께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1. 동물농장
<동물농장>은 쥬니어네이버에서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서비스하던 웹게임입니다. 과거엔 사람이었던 동물들을 분양받아 잘 키워내며 농장을 자신의 가꾸는 게임의 목표. 게임은 캐쥬얼한 디자인과 높지 않은 진입장벽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게임은 웹 기반에서 게임 내 재화인 '포인트'를 벌 수 있는 여러 가지 미니게임과 아이템을 유저들끼리 경매하는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쥬니어네이버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농장을 가꾸는 '농장주'가 있었는가 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내 농장은 어떻지"라는 생각으로 가끔씩 게임을 하는 유저도 많았습니다. 게임은 오랜 시간 유저들과 함께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사실상 운영이 방치되었고, 2016년 6월에는 "13년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공지와 함께 문을 닫았습니다.
2. 아빠와 나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아빠와 나>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하얀색 가면을 쓴 보라색 캐릭터를 조종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죽이면 됩니다. 개중에는 플레이어에게 먼저 공격하는 NPC도 있지만 그네를 타거나 모래성을 쌓으면서 평화롭게 노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맵 상의 NPC들을 전부 죽여야 합니다. 게임은 왜 캐릭터가 아이들을 죽이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빠와 나>는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각종 플래시 사이트 '인기 플래시게임' 순위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기자도 한때 <아빠와 나> 콤보를 열심히 익혔는데요. 그중 몇몇 콤보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시원한 타격감과 콤보플레이를 자랑하는 <아빠와 나>는 출시 14년이 지난 지금 플레이해도 매력적입니다.
3. 라스트 스탠드
<라스트 스탠드> 시리즈는 좀비떼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슈팅 디펜스 게임입니다. 플래시 플랫폼으로 무수히 많은 디펜스류 게임이 나왔는데요. <라스트 스탠드> 역시 플래시 디펜스 게임입니다. 게임은 해외 커뮤니티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2012년 MMORTS <라스트 스탠드: 데드 존>까지 총 4편이 제작되었습니다.
<라스트 스탠드>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간단한 볼륨의 게임을 제공하는 타 플래시게임과는 달리 여러 편의 작품을 통해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처절한 생존기를 연출했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 몰입감을 더하는 음악과 컷씬까지 더해지면서 <라스트 스탠드>는 플래시 환경에서 훌륭한 연출을 선보인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4. 전쟁시대
<전쟁시대>는 원시 시대부터 미래 시대까지 자신의 진영을 운영하면서 적 진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입니다. 현재 2편까지 나와 있으며 스마트폰 버전도 존재합니다. <전쟁시대>에는 평면 필드에서 펼쳐지는 1:1 디펜스 환경에서 다양한 유닛과 터렛을 조합해 상대를 무찌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각종 업그레이드와 특수 스킬도 존재하며 다양한 난이도를 골라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UI에 전략성을 더한 콘셉트의 <전쟁시대>는 많은 플레이어를 확보했으며 플래시가 한풀 꺾인 이후에는 모바일 마켓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그래서 <방어의 시대> 등 <전쟁시대>를 따라하는 아류작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캐쥬얼 속에 전략이 가장 잘 살아있는 게임은 역시 <전쟁시대> 시리즈입니다.
5. 곡괭이 시리즈
마지막은 <곡괭이> 시리즈입니다. 한국의 인디 개발자 '줏어'와 '노인'이 만든 플래시 어드벤처 RPG <곡괭이> 시리즈는 2009년 <더 킹 오브 곡괭이>, 2011년 <더 갓 오브 곡괭이>, 2015년 <더 레전드 오브 곡괭이>까지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곡괭이> 시리즈는 빼어난 조작감과 다양한 패러디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열풍을 몰고 왔죠. 주무기 곡괭이와 각종 보조무기를 활용한 액션도 훌륭합니다.
두 명의 개발자가 2014년 텀블벅에 올린 시리즈 완결편 <레전드 오브 곡괭이> 크라우드펀딩은 목표액의 5.6배에 달하는 281만 원을 모으며 성공했습니다. 개발진은 작년 11월 블로그를 통해 <레전드 오브 곡괭이> 3주년을 기념해 게임 설정집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게임은 현재 웹 버전과 다운로드 버전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최근까지 플래시게임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개발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플래시와의 이별이 더 아쉽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