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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리뷰] 베스트 서브드 콜드, "술을 섞고, 진실을 밝힐 시간"

칵테일, 재즈, 복수는 '차가워야 제 맛'

한지훈(퀴온) 2025-05-10 11:35:37

칵테일, 재즈, 그리고 복수. 벨기에의 인디 개발사 로그라이드의 신작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차가워야 제 맛’인 세 가지를 소재로 한 신작이다.

게임의 제목은 “Revenge is a dish best served cold”라는 유명한 격언에서 비롯됐다. 해석하면 “복수는 차가워야 제 맛”이라는 뜻으로, 복수는 갓 나온 음식처럼 뜨거울 때가 아니라 오래 곱씹은 분노가 차갑게 식었을 때 해야 더욱 만족스럽다는 의미다.

금주령이라는 그늘이 미국을 덮쳤던 ‘광란의 2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비주얼이 인상적인 이번 작품은 익숙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또 낯설다. 게임의 테마나 구성은 전형적인 ‘발할라이크’의 게임인데, 이야기와 배경은 <L.A. 느와르>, 게임의 시스템은 <역전재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발할라이크라는 베이스에 자신만의 독특한 요소들을 더한 오묘한 맛의 칵테일 같은 게임이다. 그 맛을 본 소감을 여러분께 전한다.



베스트 서브드 콜드 (Best Served Cold)
출시일: 2025-05-05
개발사: Rogueside
유통사: Rogueside
플랫폼: PC(Steam)
가격: 19,500원
장르명: 비주얼 노벨
리뷰 버전: PC
리뷰 빌드: 정식 출시 버전


# ‘발할라이크’, 근데 추리 요소를 곁들인

2016년 <VA-11 HALL-A: 사이버펑크 바텐더 액션>(이하 발할라)의 등장은 이후 인디 게임 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커피 토크>나 <태번 토크> 같은 <발할라>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으며, 이런 스타일에 게임을 즐기는 나름의 탄탄한 팬층도 자리를 잡았다(기자도 그 중 하나다). 

이번 리뷰에선 이제는 엄연히 비주얼 노벨 장르의 하위 장르 중 하나로 자리잡은 이 게임들을 ‘발할라이크’라고 부르고자 한다.

발할라이크 게임들이 공유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무대가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드는 가게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의 주인공이자 플레이어의 대리인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관찰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한 플레이어가 음료를 제조해서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이들과 교류하는 구성도 발할라이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발할라이크 장르를 최초로 탄생시킨 작품 <발할라>와


이에 많은 영감을 받아 제작된 <커피 토크>.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전형적인 발할라이크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임의 배경은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의 미국을 쏙 빼닮은 가상의 도시 ‘부코비’로, 이야기의 무대는 경찰들의 단속을 피해 서점으로 위장한 ‘나이트캡’이라는 스피크이지(Speakeasy) 바다. 

도시에 남은 유일한 술집인 이곳에는 지친 노동자부터 유명 연예인, 그리고 범죄자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매일 밤 찾아온다. 플레이어의 역할은 바텐더로서 손님들에게 술을 제공하고 이들의 취중진담을 들어주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른 발할라이크 게임들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에 그친 것에 반해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조사와 심문을 통해 도시에서 발생한 범죄의 진범을 찾는 추리 게임에 더 가깝다.

이야기의 내막에는 살인 사건이 존재하고, 가게를 찾은 손님 중에는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있다. 이들의 말 속에는 사건의 전말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들이 숨겨져 있으므로, 이 같은 단서들을 모아서 사건의 진범을 추적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두 번째 역할이다.


게임의 모든 이야기는 범죄로부터 시작한다.


매일 밤 가게를 찾는 손님 중에는 사건의 진범이 숨어 있으므로

플레이어는 이들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아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 좋아하는 술, 잘 만든 술이 능사가 아니다

<베스트 서브드 콜드>에선 플레이어가 손님들에게 술을 제공하면 일정량의 행동력 포인트를 얻는다. 이 행동력 포인트를 사용하면 손님으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다양한 단서를 얻기 위해선 ‘적절한 술’을 제공해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곳은 고해성사실이 아니기에 손님들은 함부로 자신의 속사정들을 술술 털어놓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는 기분이 좋을 때만 들을 수 있고, 또 어떤 이야기는 취기가 알딸딸하게 올랐을 때만 들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든 꺼내게 만드는 것이 플레이어의 몫이다.

아무리 술김이라지만 이건 좀…

중요한 것은 어떤 술을 마시느냐에 따라 손님들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손님마다 좋아하는 술 취향이 다르고, 같은 술을 마셔도 취하는 정도가 다르다.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 호감도가 오르고,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시면 취기가 높게 오른다. 만약 지나치게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시면 손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기 때문에 대화의 기회를 잃게 되며, 제조에 실패한 술을 마시면 손님의 기분이 나빠진다.

앞에서 손님들에게 ‘적절한 술’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정 대화는 손님의 상태에 따라 해금되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이를 위한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술을 선택해야 한다. 좋아하는 술, 잘 만든 술만 제공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때로는 싫어하는 술, 못 만든 술을 제공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여느 발할라이크 게임처럼 손님들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손님의 호감도와 기분, 취기 등에 따라 대화의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게임의 진행이 훨씬 다채롭다. 이러한 요소들을 잘 관리해서 대화의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은 다른 게임에선 맛 볼 수 없는 이 게임만의 독특한 ‘킥’이다.

만들 수 있는 칵테일 리스트.
리스트는 매 시나리오마다 달라지며, 술마다 얻을 수 있는 행동력 포인트와 도수가 다르다.


손님의 호감도와 기분, 취기 등에 따라 대화의 범위가 달라진다.
선택지 앞에 하트 표시는 호감도 조건, 술잔 표시는 취기 조건, 태양 표시는 기분 조건을 의미한다.
손님의 상태는 어떤 술을 제공했는지 또는 어떤 선택지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니 신중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 꽤 훌륭한 ‘추리물의 맛’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총 5가지 사건을 다루게 되며, 각 사건마다 약 2주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 안에 최대한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단서를 조합해 용의자의 범행 동기와 범행 수단, 또는 알리바이를 찾는 게 게임의 주된 목표다.

매일 가게가 북적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루하루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바뀌며, 이들과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다. 중요한 정보를 얻어야 할 손님과의 대화에서 실수하거나 타이밍을 놓치면 언제 그 기회가 다시 올지는 알 수 없으므로 매 순간 대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실마리들을 손님의 말과 사소한 표정 변화에 숨겨뒀다. 이런 요소들은 게임 내에서 직접적으로 단서로 표시되지 않지만, 특정 인물에 대한 손님의 생각이나 태도 변화 같은 것들을 잘 캐치해서 따라가면 추리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될 정도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특정 인물에 대한 생각은 대사 외에도 인물의 표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술집의 영업이 끝난 이후에는 매일 밤 단서 게시판에선 지금까지 모은 단서들을 조합해 새로운 단서를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사건과 무관할 줄 알았던 단서가 다른 손님의 증언과 만나서 사건의 핵심적인 단서로 밝혀지는 식이다. 이 역시 평소 손님들과의 대화 또는 술집 한 편에 자리잡은 형사의 조언을 참고하면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이처럼 모자란듯하지만 넘치지는 않는 적당한 수준의 시간 제한은 게임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거기다 고민과 선택이 필요한 추리 과정이 주는 재미도 꽤 훌륭하다. 누구에게 어떤 술을 줄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누구를 용의자로 지목할 것인지 같은 고민들이 추리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 

바로 이 점에서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술과 이야기, 그리고 추리라는 요소를 알맞게 섞은 매력적인 발할라이크 게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손님과의 대화 도중 관련 증거를 제시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수집한 정보를 조합해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낼 수도 있다.


# 칵테일 만드는 게임인데 칵테일 만들기가 지루하다

물론 모든 부분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다. 대표적인 게 칵테일을 만드는 방식이다.

기존 발할라이크 게임의 음료 제조 과정을 떠올려보자. <발할라>에선 칵테일별로 정해진 레시피에 맞게 재료를 넣고 섞는다. <커피톡> 역시 주어진 재료들을 어떻게, 또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나오는 음료가 달라진다. <태번 토크>는 여기에 가니쉬를 더해서 레시피를 맞춘다. 이러한 방식들은 모두 단순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음료를 제조한다는 느낌을 충분히 전달한다.

또 다른 발할라이크 게임 <태번 토크>의 포션 제조.
오른쪽에 있는 5종류 포션과 가니쉬를 사용해 레시피에 맞는 원하는 스탯이 나오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들어갈 재료의 양을 고민하고 마우스로 직접 재료를 넣는 과정에서 직접 포션을 만든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어떤가? 칵테일마다 들어가는 술의 종류가 꽤 사실적으로 적힌 것은 좋지만, 정작 술을 만드는 방식은 ‘한붓 그리기’다. 칵테일별로 정해진 도안을 따라서 마우스 커서를 옮기면 된다. 이 과정에서 정해진 재료들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 출발점에서 붉은 커서가 플레이어의 커서를 추격하는데, 여기에 잡히면 칵테일 제조가 실패한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난이도가 너무 낮아서 의도하지 않은 이상 실패할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 이 과정이 칵테일 제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칵테일을 제조한다는 느낌도 전혀 받지 못했다.

이 부분이 아쉬운 이유는 이것이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유일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졌어야 할 부분이 지루해서 넘겨버리고 싶도록 만들어졌다. 칵테일을 매개로 이야기를 이끄는 게임에서 정작 칵테일 제조가 가장 밋밋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베스트 서브드 콜드>의 칵테일 제조.
칵테일마다 다른 도안을 따라 그리는 방식으로, 중간 지점들을 지날 때마다 재료가 투입된다는 설정인가 보다.
차라리 직접 재료를 넣고 음료를 만드는 게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 좋은 술에는 좋은 잔이 필요한 법

칵테일에선 술만큼이나 이를 담는 잔도 매우 중요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눈으로 보는 맛을 살리는 역할도 있지만 술의 맛과 향을 살리는 데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분명 좋은 맛을 가진 술이다. 설정도 흥미롭고, 사건의 수사 과정은 흥미로우며, 시스템적으로도 발할라이크라는 장르에 나름의 변주를 더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술이 담긴 잔에 흠이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발할라이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몰입’이다. 플레이어가 바텐더로서 등장인물들과 대면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듯한 감각, 그 가상 세계 안에서 진짜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느낌이 발할라이크의 핵심 매력이다.

하지만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이 부분에서 디테일이 아쉽다. 대화 중 실수로 잘못된 선택지를 골랐을 때, 혹은 다른 분기를 보기 위해 같은 대화를 반복할 때, 스킵 기능이 없어 모든 대사를 다시 넘겨야 한다. 자동 진행 기능이 있긴 하지만 속도가 느려서 오히려 시간을 더 잡아먹는다. 이 때문에 반복 플레이 시 피로감이 상당하다.

전반적인 UI/UX 구성도 불친절하다. 손님을 바 앞으로 부를 때마다 같은 인사를 반복해야 하고, 좁은 텍스트 박스에 답변 선택지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실수가 잦다. 몰입이 한창 올라올 때마다 번거로운 조작이 끼어들어 흐름이 뚝 끊기는 것이다. 

저 작은 텍스트박스에 선택지를 꽉 채워놓으니 선택 과정에서 클릭 실수가 자주 발생한다.
문제는 대사 스킵 기능이 없어서 선택한 선택지의 대사를 일일히 다 념겨줘야 한다.

게다가 인터페이스 외적인 기술적 문제도 존재한다. 대화 도중 ‘/n’ 같은 정체불명의 문자 코드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단서 게시판에선 마우스 커서가 사라지지 않는 버그가 빈번히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게임 전체의 완성도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좋은 술은 반드시 좋은 잔에 담겨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베스트 서브드 콜드>는 분명 독창적인 매력과 흥미로운 시도를 갖춘 발할라이크 게임이지만, 그것을 담아낸 그릇이 아쉬워 빛을 다 발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의 디테일과 표현의 완성도가 조금만 더 다듬어졌더라면, 이 게임은 단순히 ‘괜찮은 시도’로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르겠다.


나름 치밀한 추리 끝에 사건을 해결하고 나니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래서일까, 조금만 더 손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끝내 남는다. 


베스트 서브드 콜드 (Best Served Cold)
7.5  /10
한줄평
독창적인 매력과 흥미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발할라이크, 다만 담은 술잔이 아쉽다.
장점
- 1920년대 금주령 시기의 독특한 비주얼과 사운드
- 취기와 호감도를 조절해 대화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시스템
- 짜임새있게 녹아든 추리 요소

단점
- 단조롭고 지루한 칵테일 제조
-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이로 인해 깨지는 몰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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