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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창간 15주년] 제노바 첸과의 만남 #4 - 플레이어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 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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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이(세이야) 2020-03-19 10:10:24

디스이즈게임이 창간 15주년을 맞아 <저니>의 개발자 제노바 첸과 <룸즈> 시리즈의 개발자 김종화 님의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두 사람은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로, 졸업 후에도 꾸준히 게임 개발에 대해 생각을 나눠 왔습니다. 지난 11월 제노바 첸의 지스타 컨퍼런스 강연을 계기로 그러한 생각을 좀 더 많은 분들께 전해드리기 위해 대담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목차

#1 - 감정적인 경험의 지평을 넓히는 게임 (바로가기)

#2 - 낙인찍지 않는 온라인 게임 만들기 (바로가기)

#3 - 비록 단 하나의 완벽한 디자인은 아닐지라도 (바로가기)

#4 - 플레이어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 BM

#5 -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 (바로가기)


제노바 첸 댓게임컴퍼니 CEO

 

김종화 <스카이> 개발 도중 인터뷰에서 '플레이어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 무료 모델'로 발매한다는 것을 보고 꽤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 아주 궁금했어요. 그 자체로 큰 실험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과가 어떻게 됐나요?
 

제노바 첸 대부분의 문제는 저희가 이 게임이 가족 친화적이기를 바라서 생겨났어요. 가족 친화적이려면 부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누구나 가챠는 유사도박이라는 것을 알죠. 여러분 아이들이 도박 티켓을 사며 자라기를 원하세요? 제가 부모라면 그렇지 않을 것 같군요. 

 

자 그럼 가장 '효과적인' 미드코어 무료 플레이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완전히 물 건너갔어요. 개인이 소비하는 돈의 양을 극단적으로 늘리고, 가챠를 돌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쓰게 하는, 그런 플레이어들을 갉아먹는 도박에 기대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어떻게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까요? 

 

 

충동 구매를 조장하는 <캔디 크러쉬 사가>같은 게임들이 있죠. 그들은 게임을 너무 어렵게 만들어서 9번 실패하고 10번째 시도할 때쯤, 딱 한 두 스텝만 더 가면 되는 상황에서 "이봐요. 1달러만 내면 치트를 써서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어요. 돈을 내고 넘어갈까요?" 라고 물어오죠. 이건 마치 편의 기능 같은 치트지만, 누구도 치트를 써서 친구의 레벨을 넘어섰다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렇죠? 그렇게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에요. 친구에게 난 돈을 써서 너보다 더 높은 레벨이 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을테니까요. 

 

가족 친화적인 환경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부모님은 언제나 헌신적이고, 아이들을 돕고 싶어 하죠. 부모 자식 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와 여자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만약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위해 반지를 샀다면 그건 애정을 표시하는 방법이죠? 하지만 만약 그 반지를 90% 할인할 때 샀다면, 리퍼 제품이라면, 여자친구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스카이>에서라면 가족이 함께 플레이 하다가 아빠가 아이에게 모자를 사 주고 싶었다고 생각해 보죠. 그럼 팝업이 나와서 지금 사면 90% 할인을 받을 수 있다거나 지금 사면 하나를 공짜로 더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어쩌면 아이들에게 90% 할인할 때 사서 돈을 아끼라고 가르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모자를 아이에게, 또는 여자친구에게 주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내가 이것 밖에 가치가 없나? 내가 90% 할인 가격만큼의 가치라서 나에게 이 선물을 주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때 저는 제 목표가 연인끼리, 친구끼리, 동료끼리, 가족끼리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게임에서의 지출은 명예로워야 해요. 친구들 앞에서 돈을 썼다고 나쁘게 보이고 싶지 않죠?  

 

 

저희는 마켓에 있는 대부분의 게임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욕심, 질투, 게으름 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건드려서 돈을 내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사람들이 돈을 쓸 때 서로에게 감사하기 때문에 돈을 쓰게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부하고, 돕고 싶어서 돈을 쓰게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것은 업계에 매우, 매우 희귀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딱 한 가지 그런 모델이 동작하는 곳은 킥스타터였죠. 내가 킥스타터에서 무엇인가에 후원을 했다는 사실을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부끄러워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까요. 레딧에는 '레딧 골드'라는 게 있어요. 누군가 아주 좋은 포스트를 쓰고, 만약 제가 그게 정말 마음에 든다면 그냥 '좋아요'가 아니라 1~2달러를 줘서 이건 2달러짜리 좋아요라는 것을 보여줘요. 그저 제가 그것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죠.

 

이것은 트위치 구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요. 따라서 이런 모델이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도 동작하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임에서는 사람들이 쉬운 길을 택해요. 그냥 유저들의 돈을 가져가는 것 말이죠.  

 

 

<스카이>는 사람들이 돈을 내게 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에만 2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수많은 것들을 시도하느라요. 만약 사람들에게 줄 수만 있는 게임이라면 그것 역시 모든 것이 트레이딩으로 귀결되는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 버리겠죠. ‘나는 너한테 줬는데 왜 너는 안 줘? 나도 필요해. 너도 나한테 줘야 해!’ 이런 상황 말이죠. 이런 이상한 사회적 압박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저희는 주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모토를 여러모로 활용해야 했어요.

 

중국에서는 최근 경제적 붐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엄청난 부자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어요. 그 아이들은, 아시다시피 보통 버릇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주 많은 적을 만들어요. 이런 현상을 무료(F2P) 플레이 게임에서 보게 되는데, 가장 많은 돈을 쓴 사람이 다른 플레이어로부터 종종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죠. 

 

특히 서양 문화권에서 게임은 스포츠의 연장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공정함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할 때 아주 중요한 요소에요. 그런데 돈을 내고 이길 수 있다면? 서양 플레이어들은 그런 것을 받아 들일 수 없어요. 돈을 내고 이기는 게 중국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양 문화권에선 아주 큰 이슈였어요. 그래서 저는 서양이든 동양이든 가장 부유한 사람이 눈에 띄게 도드라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돕고 존경받는 사람이 게임에서 도드라진다면 누구나 이를 인정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모델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돈을 쓴다고 서버의 넘버원이 될 수 없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어요. 그건 그저, 돈이 사회적 인기의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죠. 네, 그게 저희가 <스카이>에서 하는 큰 일 중 하나에요. 

 

 


김종화 요즘은 그 정반대의 모델이 너무 일반적이고, 현실 세계의 경쟁력과 돈이 그대로 게임 세계까지 반영되는 것이 흔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 이상 그에 대해 문제삼지도 않아요. 

 

예전에 한국의 1세대 게임 개발자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이 ‘생각해보면 내가 어린 시절 했던 게임들, 봤던 만화들, 애니메이션들… 그런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만드는 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라고 하셨죠.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제노바 첸 저도 이야기 하나를 나누고 싶네요. 구글에서 만난 누군가가 들려준 이야기에요. 그녀는 인도에서 왔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마을 최고 부자에 모든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인도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어요. 땅은 모두 나라 소유가 됐고, 할아버지에게 남은 건 땡전 한푼 없었죠. 

 

하지만 순전히 그의 지혜와 부지런함으로, 인도가 정책을 바꾼 이후 할아버지는 다시 그 마을에서 최고의 부자가 됐어요. 그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에요.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그녀의 아버지는 사업에 재능이 없는데다가 할아버지만큼 재치있거나 똑똑하지도 않아서 다시 재산을 잃었죠.

 

그녀가 할아버지를 알던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사람들은 ‘오, 너희 할아버지는 가장 큰 차를 가졌지.가장 큰 정원이 있었어’ 같은 말이 아니라, ‘너희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병원을 지어 줬단다. 우리가 식량이 없을 때 우리한테 음식을 나눠 줬지.’ 라고 말했어요. 그들은 할아버지가 남겨준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그때 그녀는 깨달았어요. 마을에서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당신을 절대 그런 것으로 기억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준 것으로 기억할 것이라고요. 웃긴 건 현대 사회죠. 우리는 돈을 성공의 척도로 삼잖아요? 

 

 

통화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 많은 사회는 사실 제가 ‘선물 경제’라고 부르는 상태였어요. 현재는 통화 경제죠. 선물 경제에서는 내가 어떤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도 내게 답례를 했어요. 내가 너에게 생일 선물을 주면 너도 내 생일 때 선물을 주는 것 같은 식으로요. 여기에 화폐는 없어요. 내가 닭을 주면, 나에게 염소를 줘. 뭐 이런 거죠. 

 

어느 동남 아시아 섬에는 최후의 선물 경제가 아직까지도 있어서 과학자들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록하러 갔다고 해요. 그 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가장 많이 꿔 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도와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느끼다 보니, 공동체의 리더가 돼 버린 것이죠. 이런 것이 제가 만들고 싶은 모델이었어요.

 


김종화 정말 비디오 게임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군요.


제노바 첸 웃긴 사실은 우리는 더 나은 세계에 살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숫자로 뒤범벅된 삶으로 퇴화했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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