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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경계허물기와 이승찬의 컴백

임상훈(시몬) 2006-04-18 16:17:08

 

승찬(30)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승찬이 누구냐고요?

 

그렇죠. 일반 게이머에게 그리 알려진 인물이 아닙니다. 하지만 게임 퍼블리셔에게 그의 존재는, 뭐랄까, 이를테면 제갈공명+여포같은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과장 아니냐구요? 제가 오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제 오바’의 근거는 무얼까요.

 

짧지만 굵직한 게이머그라프를 잠깐 들춰볼까요.

 

 


<퀴즈퀴즈>(99년, 넥슨) 기획 및 개발

 

90년대 말, 퇴근 시간 후나 주말, 회사에 남아 친구 한 명과 몰래 게임 하나를 만듭니다. 파트너는 갓 제대한 중학교 친구. 함께 ‘밤일’을 하기 위해 ‘알바’로 회사에 들어왔죠. 중간에 사장에게 걸렸지만, 업무 시간 외에 만든 것이었으니 대충 용서. 서비스 때까지 6개월 동안 단 둘이서 뚝딱뚝딱,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런 ‘사소한’ 게임이 ‘온라인게임=MMORPG’였던 국내 온라인게임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온라인게임 최초로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거죠.


 


<크레이지 아케이드>(01년, 넥슨) 기획

 

독립할 생각을 했지만 병역특례 기간이 1년 정도 남아있던 상태. 인터넷에서 오락실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주류에서 한참 떨어진 생각을 했습니다. <비엔비>의 모태가 된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그렇게 만들어졌죠. 여전히 MMORPG가 대세이던 시절, 온라인에서 오락실처럼 가볍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는 ‘삐딱한’ 구상은 그 뒤 <비엔비>로 싹을 피웠습니다. 최근 선보이고 있는 ‘스타이리아’나 ‘엔씨포털’ 모두 이런 아이디어의 한 형태니, 빨라도 아주 빨랐던 거죠.


 


<메이플스토리>(03년, 위젯) 기획

 

2001년 넥슨 퇴사, 위젯 창업. 이제 월급을 받는 처지에서 주는 처지로 바뀌었죠. 당장 매출이 없으니, 닥치는 대로 웹 애플리케이션 용역을 하며 게임을 만듭니다. 3D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던 2003년, 2D 횡스크롤의 <메이플스토리>를 세상에 내놓았죠. 3D에만 눈이 먼 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대략 이랬죠. ‘이것도 게임이냐?’ 그렇게 꾸역꾸역 어렵게 만든 게임이 지금은 <카트라이더>보다 더 큰 매출을 거둬들이고 있죠. 아시아는 물론 미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때 굴러온 복을 차버렸던 창투사 관계자들,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그의 게이머그라프는 그야말로 비용 대비 효과에서 탁월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세 게임을 살펴보니 두 가지 공통점이 있더군요. 유저의 눈높이에서 메인스트림의 상식을 비트는 기획력과 그 아이디어를 퇴근 후 둘이서든, 용역으로 자금을 임시변통해서든, 기어코 번듯하게 만들어낸 실행력. 이 둘의 결합 덕분에 저런 게임들이 나왔겠죠.

 

상식을 비트는 기획력의 핵심은 경계 허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연히 다른 것이고 배타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선들을 그는 가볍게 쓰~윽 지우는 남다른 재주가 있습니다. 그가 지운 곳을 통해 선 너머의 사람들이 가볍게 게임으로 넘어왔던 거죠. (어떤 역사학자는 역사의 발전은 서로 갈라졌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 덕분이라고 설명합니다.)

 

<퀴즈퀴즈>는 게임이면서도 그 당시 흔하던 애플리케이션에 가까운 다소 미묘한 물건이었습니다. 덕분에 게임에 익숙하지 않았던 유저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죠. <크레이지아케이드>는 오락실+인터넷이었고요. <메이플스토리>는 RPG의 두터운 벽을 2D 횡스크롤로 가볍게(혹은 허무하게) 무너뜨렸습니다. 덕분에 아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초등학생들까지 버섯나라에 빠져버린 것이고요.

 

 

그런 그가 야인생활 2년 만에 다시 게임계로 돌아온다니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이겠죠. "외국에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외국보다 한국이 좋고, 공부보다 게임이 좋더라구요." 그래서 지난 2월 법인을 설립하고 수서에 사무실을 냈습니다. 그곳에서 과거 <메이플스토리>를 만들었던 초창기 멤버 6~7명이 다시 뭉쳤고요. 위젯을 넥슨에 넘길 때, 함께 퇴사한 멤버들이죠. 그 뒤 결혼이나 학교, 취업 준비 등 각자 자기 인생을 살다가 다시 거사를 도모하기 위해 의기투합을 한 셈이죠. 분위기가 좀 드라마틱하죠.

 

올해 안에는 무언가 나오는데, 무슨 게임을 만드는지는 비밀이랍니다. 다만 제 느낌에는 경계 허물기퓨전이라는 키워드가 이번에도 적용될 것 같습니다. 뭐 만드느냐는 제 물음에 두 가지 엔테테인먼트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하나는 게임인데, 나머지 하나는 꼭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답했으니까요.

 

경계 허물기를 즐기는 이 사내가 또 어떤 사고를 저지를지 참 궁금해집니다.

 

뱀다리) 아참, 며칠 전 둘째 아이를 낳았다고 하네요. 축하합니다. sim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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