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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빛나는 자들이 드러난다"

전쟁 생존기 RPG 만드는 우크라이나 개발사 ‘트위게임즈’

방승언(톤톤) 2024-09-11 18:09:48
우크라이나 게임사 ‘트위게임즈’는 보기 드문 프로젝트에 몰두 중이다. 출시 예정작 <할로우 홈>은 게임 역사상 최초일지도 모르는 ‘전쟁 생존자들이 만드는 전쟁 생존 게임’이다. 트위게임즈 임직원들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공습경보와 폭발음을 일상 소음처럼 여기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할로우 홈>의 진정한 특별함은 그러나 게임이 품은 메시지에 있다. 트위게임즈가 게임을 통해 전하려는 주제는 다름 아닌 ‘인류애’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빛나는 자들이 드러난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트위게임즈 창립자 발레리 미넨코(Valerii Minenko)는 이야기한다.

참화 속에서도 창작욕을 불태우는 우크라이나 개발사는 생각보다 많지만, 트위게임즈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을 직접 다루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당사자들에게 특히나 괴로울 비극을 창작 소재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은 무엇일까? 미넨코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직접 알아봤다.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다"

Q. 디스이즈게임: 우선 본인과 트위게임즈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발레리 미넨코 대표: 저는 트위게임즈의 설립자 발레리 미넨코입니다.

트위게임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위치한 개발사입니다. 2015년 설립되었고, 현재는 20명 규모입니다. 모바일, PC, 콘솔, AR/MR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게임을 개발 중이에요. 자체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있고, 외주를 맡아 개발 중인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Q. 전쟁은 우크라이나 게임 산업에도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많은 게임사가 개발을 이어 나가기 위해 국경을 넘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트위게임즈의 경우 전쟁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A. 침공이 시작했을 때, 우리 개발팀은 우크라이나 서부로 2개월간 대피했습니다. 특이하게도 해당 기간 임직원 절반과 그 가족들 전부 한 집에 대가족처럼 모여 살았어요. 나중에 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에서 철수한 다음에 키이우로 돌아왔습니다.

전쟁 전과 비교했을 때, 저희 일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물론 주기적으로 들리는 공습경보와 가끔 들리는 미사일 폭발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기는 하지만요.

그리고 팀원 대부분 나라를 뜰 수 없는 상태고, 저 역시도 원래 연간 수차례 찾아다녔던 해외 게임쇼 방문을 못 하고 있어요. 성인 남성 출국이 전면 금지되어 있으니까요. (2022년 2월 25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총동원령을 내리고 60세 이하 남성의 출국을 금지했다)

그 외 매일 들려오는 여러 소식 때문에 감정적으로 늘 힘들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일 자체는 바뀐 게 없어요. 저희는 여전히 같은 사무실을 써요. 팀원들과 고객사들도 간신히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요.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게임을 개발 중입니다.

트위게임즈 로고


# 전쟁과 게임

Q. <할로우 홈> 개발을 시작한 직접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많은 우크라이나 개발사들이 게임을 만들고 있지만, 그중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를 다루는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는 것 같은데요.

A. 앞서 말했던 2022년 봄, 저희 멤버들이 함께 모여 살던 시기에 <할로우 홈>의 콘셉트가 처음 탄생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정보도 전쟁에 관한 것이었고요.

그때 저희 사이에서 그런 의견이 나왔어요. ‘지금 세계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알게 된다면 분명 이 참사를 막으려 나설 것이다.’ 그래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쟁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던 거예요.


Q. 트위게임즈나 <할로우 홈>을 향한 혐오는 없었나요? 현실의 참사를 다루는 데 있어 게임은 적합한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 참사가 현재 진행형일 때는 더욱 그렇고요.

A. 실제로 게임을 처음 발표했을 때, 저희 지역 사회는 조심스러워하는 반응이었어요. 저희가 이토록 민감한 주제를 적절히 다룰 수 있을지, 충분히 세심하게 접근할 것인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듬해에는 <할로우 홈>으로 몇 차례 상을 받았습니다. 올해 8월에에는 ‘우크라이나 게임즈 페스티벌’에 데모를 출품해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고요. 책이나 영화 같은 매체는 얼마든지 심각한 주제를 다루잖아요? 게임이라고 해서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Q. 게임은 유희 수단이라는 인식이 많은 반면, <할로우 홈>은 유희와는 거리가 아주 먼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간극은 어떻게 메우고 있나요?

A. 저는 게임이 유희를 위한 수단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얘기한 책이나 영화의 경우에도 일부는 유희를 위한 것이지만, 생각을 유발하기 위한 작품들도 많아요. 게임 역시 영화나 책과 같은 하나의 매체입니다. 똑같이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봐요.

게다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많지 않더라도 분명 존재하고요. 가장 잘 알려진 예시를 꼽자면 11비트 스튜디오의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있겠네요.

어떤 게임은 유희뿐만이 아닌 생각거리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이 대표적


# 현실을 담으려는 노력

Q. 현실적인 인게임 플롯을 위해 전쟁 생존자들의 경험담을 수집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한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이야기를 어떻게 선정하고 각색했는지 등이 궁금합니다.

A. 일단 프로젝트 초창기에는 침공 직후의 사건들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어요. 당시 저희와 협업하던 우크라이나 기자분께 조사를 의뢰했죠.

그분은 공공 정보 수집에 능숙했어요. (여러 조직의) 공식 텔레그램 채널, 뉴스 보도, 그리고 일기예보 및 기타 자료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취재를 했죠. 이를 통해서 각종 데이터와 이야기가 수록된 6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해 주었어요.

게임을 공식 발표한 이후에는, 일반 시민들이 직접 사연을 제보하거나 일기를 공유해 주셨어요. 이 또한 저희의 정보 소스가 되어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어 게임 속 이야기를 썼을 뿐, 특정 인물의 사연을 곧장 각색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에요. 수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이야기를 새로 구상했어요.

가령 마리우폴 포위 공격 당시 물 구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라디에이터에 들어있는 물을 뽑아 썼다는 증거를 다수 확보했습니다. 또, 총격이 오가는 상황 속에도 마당에서 음식을 조리했다는 증언도 많이 있었어요. 이러한 경우 특정 인물의 사연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었기에, 게임 스토리라인에 차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토리의 주제 의식이 무엇인지 말해 본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그리고 전쟁이 이들의 삶과 행동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Q. 데모 버전을 플레이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배경이 다채로우면서도 각자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어요. 실제 현지인들을 반영해 만든 것인가요?

A. 저희 게임의 캐릭터들은 말하자면 실존 인물들의 성격을 종합한 하나의 총체적 이미지입니다. 상당 부분은 저희(개발진) 스스로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어요. 저희는 침공이 시작된 이후 각양각색의 주변 사람들이 침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기회가 있었고, 이 경험을 캐릭터 제작에 많이 참고했습니다.


Q. 꼬마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쟁이 특히 연약한 계층에게 미치는 피해를 강조하기 위함인가요?

A. 주인공은 사실 꼬마가 아니라 십대 청소년이예요. 십대로 설정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그것이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 정도의 나이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성장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전쟁 때문에) 너무 빨리 찾아와 버린 성장 말이에요.


Q. 스팀 스토어 페이지 설명을 보니,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많이 등장할 거라고 적혀 있던데요. 어떤 의미인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A. 맞아요, 어려운 선택은 저희 게임플레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게임에서든지 유저는 선택을 내리게 되어 있어요. 그게 아니면 게임이 애초에 성립되지 않잖아요. 다만 저희 게임의 경우, 비극적 스토리로 인해 선택이 더욱더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작중 인물들은 제작진이 침공 후 실제 목격한 여러 유형의 사람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빛나는 자들이 드러난다’

Q. 글로벌 유저들이 <할로우 홈>을 하면서 어떤 것을 느끼기 바라나요?

A. 유저분들이 게임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느끼고,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각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전체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는 몇 시간 정도가 소요될까요? 멀티 엔딩이 준비되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25시간 게임플레이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엔딩이 존재합니다.


Q. 전쟁 속에서 ‘인류애’(humanity)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전쟁을 겪고 있는 당신은 이 게임을 통해 인류애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인류애가 전쟁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고 믿나요?

A. 물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빛나는 이들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 또한 전쟁 발발 이후 주변에서 멋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들이 제게 계속 나아갈 동기를 주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회에는 정말 많은 상호 연대와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승리로 이끌기 위해 자진하여 나서고 있어요



Q. <할로우 홈>과 트위게임즈, 그리고 본인의 미래에 거는 희망을 밝혀주실 수 있나요?

A. 먼저 <할로우 홈>은 무사히 출시되어서 유저분들을 만나고, 개발비를 회수할 만큼의 수익을 내고, 바라건대 세상을 조금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트위게임즈의 경우 최소한의 목표는 생존이고, 최대 목표는 차기 프로젝트를 마음대로 고를 만큼의 자유를 획득하는 겁니다.

저 자신은… 전쟁이 끝나서 휴가를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바다가 있는 곳으로요.


Q. 마지막으로 한국 게이머들께 전하고 싶은 말을 부탁합니다.

A. 부디 저희를 많이 지원해 주세요. 스팀 찜목록에 저희 게임을 넣어주시고, 뉴스레터 구독과 디스코드 가입, SNS 팔로우도 부탁드립니다.

게임을 개발하다 보면, 실제로 출시하기 전까지는 게임이 괜찮게 나올지 알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어떤 응원이라도 보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개발 의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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