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나? 정신없었을 것 같은데.
배수찬 지회장: 넥슨에 전사 메일 발송 기능이 없다. 그래서 우선 선언문을 써 본부별로 메일 보낼 준비를 쭉 해 놓고 시간 돼서 쫙 발송했다. 인트라넷 자유게시판이랑 중고장터에도 올렸고. 10시쯤엔 조합원들과 합류해 층별로 돌면서 노조 가입서 돌렸다. 나는 전화를 하루 종일 받았고. 전화 이렇게 많이 받아본 것 처음이다.
지금도 조합원들은 홍보물 돌리고 있다. (3일 오후 5시) 넥슨코리아는 끝났고, 다른 계열사 가서 돌리는 중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가입했나?
300명 향해 가고 있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운영진으로 합류하겠다는 연락이 많이 와서 운영진도 13명에서 14명으로 한 분 충원했다.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조직 분위기에 따라 좀 다르더라. 눈치 보는 분들도 있고, 막 뛰어와서 응원해 주시거나 음료수 주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분들이 있어서 앞으로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성악설을 믿는 사람인데,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선의를 확인한 기분이었다. 익명 커뮤니티 앱에서도 다들 응원해 주시는 분위기더라.
회사에선 따로 연락받았나?
서로 별말 없었다. (웃음) 인사 본부장님이 앞으로 잘 해 보자고 하셨다. 노조 설명회를 열기 위해 넥슨의 홀 중 하나를 대관할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는데 허가가 났다. 조만간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노조 가입에 직급 상한선이 있나?
단체 협약에서 가입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하느냐의 문제인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우리는 임원급이 아니면 다 받을 생각이다. 다만 관례적으로 재무, 인사, 총무부쪽 직원들은 사측에서 가입을 막는 회사들도 있다.
언제부터 준비했고, 어떤 계기로 설립을 결심했나?
약 두 달 전부터 준비했다. 주 52시간제 시행을 위해 취업 규칙을 수정해야 했는데, 취업 규칙을 수정하려면 노사위원회를 열어 사용자 대표 3명, 노동자 대표 3명이 합의해야 한다. 나는 노동자 측 위원으로 입후보했고, 그때 같이 입후보해 당선된 두 분과 함께 시작했다.
지금 노조 사무국장이신 김태효 님도 당시 노동자 측 위원으로 입후보 한 상태셨는데, 어느 날 나머지 후보들에게 메일을 보내셨다. 노동조합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 있느냐고. 그때 뜻을 모은 사람들이 모두 노동자 측 위원으로 당선됐다.
당시 노사위원회가 잘 안 풀렸나?
합의가 된 부분도 있고 불발된 부분도 있지만 노사위원회로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주 52시간제 시행 관련해 사측과 유연근무제 논의를 할 때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넥슨에는 ‘코어 타임’이라는, 반드시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시간대는 스튜디오마다 다르다. 만약 어느 스튜디오의 코어 타임이 10시부터 4시간이라면, 유연 근무제에 따라 이날 근무 시간을 4시간으로 정하고 반차를 쓴 사람은 회사를 안 나와도 된다는 게 우리 측 논리였다. 반차는 4시간 휴가고, 이날 근무 시간은 4시간이니까.
그런데 사측은 “반차를 썼는데 왜 하루를 쉬느냐”라는 논리로 반차 쓰는 날은 근무 시간을 6시간으로 정하고, 2시간은 나와서 일을 하라고 하더라. (유급 휴가는 근무 시간으로 인정받으므로 휴가 4시간 + 근무 2시간 = 총 6시간) 여기에 우리 입장이 반영이 안 됐다.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슈들도 몇 개 있었는데, 얘기하다보니 노사위원회로는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다고 느꼈다.
넥슨 지회 설립 배경
넥슨코리아의 근로자 대표 및 근로자 위원 전원(배수찬, 김태효, 남현수)은 노사협의회의 논의 과정에서 진정으로 노동자를 대변하고 권리를 행사하기에는, 노동조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있으나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회사는 늘 법의 최저선만을 지켰고 그런 보수적인 태도 속에서 다른 협상은 불가능했습니다. 포괄임금제, 강제적인 크런치, 불공평한 분배, 쉬운 해고 등 넥슨에 팽배한 불합리한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이들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후략)
조직도를 보니 ‘네오플’ 분회가 있더라.
노조를 준비하던 시점에 네오플과 연락이 닿았다. 노조 같이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그쪽에서도 마침 비슷한 걸 준비하는 중이었다. 네오플도 주 52시간제 해야 하니까 노사위원회 참여할 노동자 대표가 선출돼 있었고. 흔쾌히 참여하셔서 같이 하게 됐다. 계열사 분회는 현재 네오플만 있는데, 다른 계열사에서 참여하면 더 늘려나갈 생각이다.
네오플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던가?
게임업계 다 똑같다. 포괄임금제, 분배 문제, 해고 문제. 네오플은 해고 문제가 더 치명적인 게 거긴 제주도니까. 해고되면 갈 데가 없다. 제주도 안에서 이직이 안 된다.
네오플 쪽 분위기는 어떻다고 하나?
굉장히 폭발적이라고 하더라. 얼마 전 태풍 왔을 때 제주도 쪽 피해가 컸지 않나. 그때 네오플 직원들이 거의 목숨 걸고 정상 출근했던 일이 있어서, 사측에 대한 여론이 흉흉하기도 했다. 판교 쪽은 피해가 덜한데도 쉬었으니 상대적 박탈감도 컸을 거고.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이하 화섬노조) 산하로 출범했다. 이유가 있나?
화섬노조가 최근 파리바게뜨 제빵사 노조를 성공적으로 설립했고, 이번에 네이버도 화섬노조 산하에 노조를 만들었다. 화섬노조가 지금까지 다뤄온 분야들을 보면 IT 산업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젊은 노동자들, IT 노동자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판단했다.
파리바게뜨 제빵사 노조 합류 이후 화학섬유 다음에 ‘식품’이 추가됐다고 하던데.
산하에 식품 노조는 원래 많았다고 들었다. 파리바게뜨 제빵사 노조가 워낙 화제가 되니 사람들이 “왜 파리바게뜨 노조가 화학섬유노조에 들어갔냐”라고 궁금해 했고, 어차피 식품 노조 많으니 이름에 ‘식품’을 넣은 것이라고 하더라. 지금 IT 노조는 네이버와 넥슨밖에 없는데 다른 IT 노조가 많이 생기면 이름에 IT가 들어갈 수도 있겠지.
네이버 노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네이버랑은 상황이 좀 달라서 과정이 완전히 똑같진 않았지만, IT 회사에서 노조가 만들어지는 방식, 사람을 설득하는 법, 홈페이지나 메신저를 이용하는 법 등 실제로 해 보고 얻은 노하우들을 많이 알려 주더라. 넥슨 노조도 실제로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와 각종 메신저를 통해 가입 문의와 제보를 받고 있다.
네이버 노조는 일단 스탭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조합 일을 할 사람 말이다. 네이버는 스탭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는 게임 회사니까 ’운영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처음에는 ‘선언부터 먼저 해야 하나?’ 하고 우왕좌왕했는데 네이버 노조 만난 뒤에 아는 사람들 위주로 ‘일할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넥슨에 8년 다녔으니, 관심 있어 할 만한 사람들을 좀 알고 있었다.
운영진을 구성한 다음에는 어떤 과정을 따랐나?
화섬노조 지회로 들어갔기 때문에 따로 신고는 할 필요가 없었다. 기본적인 운영 인력과 운영 방안, 목표 등을 세운 다음 신청하면 된다. 기왕 할 거면 잘 해야 하니 완전히 의욕만 가지고 맨몸으로 간다고 받아주는 건 아니라고 들었다. 다른 회사에서 노조를 준비한다면 참고하셨으면 한다.
설립 준비할 때 화섬노조에서도 도움을 많이 주셨다. 조직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일은 어떻게 나눠서 해야 하는지 등이다. 상부 조직은 이런저런 조언을 주시고, 기본적인 운영권은 우리에게 있다.
게임업계도 노동 이슈가 많은 편인데, 왜 진작 노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여긴 좋아해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 좋아하니까 밤 새가며 일을 하고, 어느 순간부터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됐고. 나만 해도 그랬다. 옛날에는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게임 만들었다. 내가 재밌었으니까 무수한 밤을 야근으로 보냈고. 회사 입장에선 잘 갖다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
언제부터 문제가 있다고 느꼈나?
잘려나가는 사람들을 봤다. 고용 불안을 겪는 사람들. 회사가 필요해서 뽑아 쓰던 사람들인데 게임이 접혔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 5년 정도 일하다 보니 점점 떠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노사위원회 노동자 위원에는 어떻게 입후보하게 됐나?
기다리면 회사가 바뀌겠지 싶었는데 안 바뀌더라. 넥슨에 8년 다녔는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안 나서겠다 싶었다. 노동자 위원 하게 된 것도 그런 계기고, 노조도 그런 이유로 하게 됐다. 단체를 조직해 본 경험도 없고 리더를 해 본 경험도 없다. 하지만 노조 지회장은 내가 하고 싶었다. 이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다려서, 무엇이 바뀌길 기대했나?
여러 가지. 포괄임금제부터, 게임 접히면 사람들 잘리는 것,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게임이 있으면 그 팀의 노동자들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까지.
노조가 우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모두가 공감하는 이슈는 일단 포괄임금제 폐지다. 조합원들 의견을 더 받아 봐야 알겠지만, 그게 불합리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이후에는 차근차근 조합원들 의견 들어가며 하나씩 해 나갈 예정이다.
운영은 어떻게 해 갈 생각인가. 사무실이나 상근자 이슈가 있을텐데.
교섭을 할 때 노조가 가장 처음 요구하는 게 노조 일을 할 수 있는 전임 시간과 사무실이다. 노동조합이 제대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를 회사에 요구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 전에 이걸 먼저 요구할 생각이다.
분위기 어떤가. 잘 될 것 같나.
이미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전과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익명 커뮤니티 앱에서도 “네이버가 노조한다고 우리가 할 수 있겠냐”, “헛된 희망 품지 마라” 이런 얘기들이 많았는데 일단 일을 치니 응원해 주시고 있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우들이 노조 가입으로 힘을 실어주시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꾸준히 해 나가겠지만, 출범했을 때 뜨거운 지지를 보내주시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고 본다. 어떻게 우리가 먼저 하게 됐는데 우리만 나서서 싸우려고 노조를 만든 게 아니다. 사우 여러분과 함께 싸우고 싶다. 저희 곁에 함께 서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