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예술가는 수줍은 듯 연신 웃었다. 사람들 앞에 주인공으로 서는 것이 어색한 듯 보였다. 모바일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의 원화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봐 팀원들을 동원(?)했단다. 토크가 진행되기 전과 후, 애정과 장난이 반씩 섞인 응원이 뒤편에서 들려왔다.
게임 아트라는 분야가 그렇다. 스타급이 아닌 이상 원화가가 게임 메인에 서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넥슨의 이번 행사가 반갑다. NDC에서 열린 여덟 번째 아트워크 전시회. 전시된 그림 뒤에서 묵묵히 관람객들의 반응만 지켜보던 아티스트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넥슨은 NDC 2018이 열리는 3일 동안 총 세 번의 아티스트 토크를 마련했다. 첫날은 <야생의 땅: 듀랑고>, 둘째 날은 <프로젝트 DH>, 셋째 날은 <프로젝트 A1>의 아티스트들이 NDC 관람객들과 만남을 갖는다.
NDC 1일차. <듀랑고>를 개발한 왓스튜디오 임재준, 장정아 아티스트와의 시간. 긴 시간이 아니어서 깊은 문답이 오가지는 못했다. 넥슨이 앞으로 사내 금손들을 좀 더 많이, 긴 시간 내놓아(?) 주길 기대하며,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전한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왓스튜디오 임재준 아티스트(위), 장정아 아티스트
사회자: 두 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정아: <야생의 땅: 듀랑고>에서 컨셉 원화를 포함해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장정아입니다.
임재준: 배경 모델러 임재준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하신 작품을 설명해 주세요.
장정아: 제가 직접 <듀랑고>를 플레이할 때 생각했던 모습을 담아 봤어요. 아마 게임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본 분이라면 아실텐데요. (웃음) 안전뿔을 쓰고 펫이랑 사냥 다니고 그런 모습을 재밌게 그려 봤습니다.
임재준: 세계관 안에 기타가 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가지고 놀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사내에서 밴드를 하고 있거든요. 취미에서 영감을 받은거죠. <듀랑고>에 악기가 있다면 재밌을 것 같아요.
장정아 아티스트 작품
임재준 아티스트 작품
<듀랑고>는 생존이 최우선 과제인 게임이죠. 도입부에서는 열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눈 떠 보니 야생. 뭐 이런 상황인데요. 이런 독특한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아티스트로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뒀나요?
임재준: <듀랑고>에서는 워프 현상을 ‘스쿱(scoop)된다’고 표현하는데요. 땅에서 이렇게 숟가락으로 푸는 것처럼요. ‘자연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모티프로 작업했습니다. 주상절리라든지 그런 실제로 독특한 자연 현상도 참고했고요.
장정아: <듀랑고>는 판타지 세상이 아닌, 현대인이 공룡이 사는 ‘듀랑고’라는 세계로 워프한다는 설정이에요. 현대인들이 워프해 갔을 때 내가 사는 세상에서 함께 워프해 온 물건들을 실제 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물들도 세계관을 형성하는 요소 중 하나죠. 안전뿔이 워프를 통해 이 세계로 오면 완전히 다른 용도로 쓰인다던가... 그런 설정들 자체가 아이디어 구상에 도움이 돼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도구’를 많이 쓰지 않습니까. 어떻게 구현했나요? 굉장히 힘들고 중요한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장정아: 현대인이 워프해서 초기 환경부터 개척하는 설정이기 때문에 보통 시작은 ‘작업용 칼’ 같은 게 되는데요. 이게 현실에서는 ‘과도’정도의 개념이에요.
하지만 모바일에서 과도는 너무 작게 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도의 비율을 모바일에서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했어요. <듀랑고>에서는 실제로 작업용 칼이 공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 특히 비율을 많이 고민했죠.
임재준: 모바일처럼 작은 환경에서 중요한 건 그 작은 화면에서 실루엣만 봐도 어떤 가구인지, 어떤 도구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저는 가구와 건축물을 담당했는데, 해당 사물의 포인트를 살려가며 작업했어요. 작게 봤을 때도 이게 아궁이다, 제작대다 알 수 있도록요.
내가 그 환경에 실제로 있다는 상상을 많이 했어요. 원시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느낌을 어떻게 하면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했고요.
작은 화면으로 봐도 작업대는 작업대, 건조대는 건조대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작업했다.
<듀랑고> 작업을 하며 영감은 어떤 방법으로 얻나요?
임재준: 정글에서 생활하는 그런 영상들도 많이 보고, 요즘은 사람이 야생에서 집 만들고 하는 영상들이 있어요. 제가 직접 해 보진 않았으니 영상으로 간접 체험을 많이 하죠.
장정아: 재준님 말처럼 우리가 직접 야생에 떨어졌다고 상상해요. 그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만들까. 야생에 떨어져서 한 2년정도 열심히 살면 이 정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것도 상상해 보고요. 내가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기준으로 서로 얘기 나누는 일도 많죠.
<듀랑고>가 이번에 게임과 예능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장정아: 저희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아마 게임을 즐겨 하고 예능도 즐겨 보시는 분이라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시도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게임이 다른 예술과 결합하는 시도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경향을 예측해 보신다면요?
임재준: 보통 게이머들은 게임과 함께 드라마나 예능도 함께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요. 본인이 좋아하는 IP가 다른 콘텐츠로 연결된다면 즐길 것이 늘어나는 셈이니 당연히 좋을 것 같고요. 여러 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사람으로써 그런 시도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야생의 땅: 듀랑고> 소재 예능 프로그램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
<듀랑고>에 신입 아티스트를 뽑는다면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보실 것 같나요?
임재준: 상상력이 좋으신 분들, 여러가지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작업물은 그런 것들이 접목돼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럿이 함께 작업하는 만큼 성격이 원만하신 분이면 좋겠죠.
장정아: 일단 <듀랑고> 세계에 관심이 있는 분이어야겠죠. 이 세계를 그려보고 싶다. 하는 욕심이 있는 분들요. 재준님 말대로 협업을 많이 해야 하니 함께 작업해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분이면 좋겠고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있는 분이면 좋을 것 같네요.
<듀랑고>말고 아트가 인상깊었던 다른 게임이 있다면요?
임재준: 최근엔 <인사이드>라는 게임이 인상깊었어요. 아트가 굉장히 회화적이고 생략이 예쁘게 잘 됐다고 생각했죠. 그런 스타일도 작업해 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장정아: 저는 게임은 아니고 영화 중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꼽고 싶네요. 그 세상은 사실 너무 많이 파괴돼 버린 것 같아요. 좀 우울하기까지 해서, <듀랑고>처럼 도구를 사용하는 설정 같은 게 추가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의 황량함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아트 일을 하면서 힘들거나 보람찰 때가 있나요?
임재준: 힘들 때는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을 만났을 때? 구현해야 하는 스킬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힘들다고 느껴요. 잘 하시는 분들 보면 그 분들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죠.
장정아: 패치 일정에 시달릴 때는 너무 힘들죠. 근데 패치하고 나서 그걸 재밌게 가지고 노는 유저들 스크린샷을 보면 뿌듯해요.
게임 아트를 지망하는 분들께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어떤 소질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지 알려주세요.
임재준: 일단 분야에 대한 관심이 중요합니다. 게임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요. 일하면서도 저는 항상 배우는데요. 시작할 때의 관심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질이라면, 마치 현미경으로 보듯 구조적으로 세세히 관찰할 수 있는 관찰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장정아: 제가 업계에 입문하고 생업으로 아트를 시작할 때는 이런 NDC 같은 행사가 없었어요. 해외 개발자 인터뷰 하나 찾아 읽기도 어려웠죠. 반면 이렇게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돼 있고, 또 여기까지 찾아온 여러분은 저와 시작점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많은 발전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열심히 할 거고요. 여기까지 오신 만큼 그 열정을 유지하셔서 언젠가 좋은 작업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