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크리틱 종합 평점 90점대 기록은 물론 발매 후 유저 호평이 이어진 서바이벌 호러 액션 게임 <바이오하자드 RE:2>. 게임은 1998년 발매된 캡콤의 <바이오하자드 2>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원작 콘텐츠 구현은 물론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 등을 더해 원작 특징인 ‘생존’과 ‘공포’를 한층 더 강조했습니다. 좀비는 물론 건물에 공허하게 울리는 발소리 등 ‘소리’에서부터 극한 공포를 줬던 게임. 과연 <바이오하자드 RE:2> 사운드는 어떻게 개발됐을까요?
NDC 2019를 찾은 캡콤 사운드 디렉터 호에이 미야타(Hohei Miyata)와 유스케 키노시타(Yusuke Kinishita)는 보다 불쾌하고 무서운 소리를 연출하기 위해 현실 속에서 나는 각종 소리를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극한의 공포를 만들기 위해 어떤 연출이 들어갔을까요? 금일 강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박준영 기자
<바이오하자드 RE:2> 개발진은 작품 개발 전, '호러 게임' 장점이자 재미 요소라 할 수 있는 '유저가 공포를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유저가 ▲ 공포의 대상을 보는 '시각' ▲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괴하고 불쾌한 소리 '청각' ▲ 이 모든 게 어우러져 누구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운드 개발진은 유저가 소리를 듣고 '무섭다, 불쾌하다'를 느낄 수 있도록 고민하던 중, 사람에게 친숙한 '일상생활 속 소리'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일상 속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지만, 이것이 공포 게임 속 '특정 상황'에 쓰인다면 무서움과 불쾌함을 유발하는 소리를 말이죠.
<바이오하자드 RE:2>에 쓰인 '살 뜯어지는 소리'의 정체는 사실 양배추를 손으로 뜯는 소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장이 떨어지는 소리는 슬라임 장난감을 떨어트리는 소리, 뼈가 뜯어지는 소리는 피망이나 샐러리를 뜯고 씹는 소리였다고 합니다.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지만, '좀비가 뼈를 뜯는 소리' 등 섬뜩한 상황이라 상상하고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 소리로 작용하게 됐습니다.
개발진은 이처럼 게임 사운드 제작에 있어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소리 들을 이용하고 녹음했으며, 특수효과 등을 이용해 소리에 가변을 주지도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좀비 등 크리쳐가 내는 소리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호에이 미야타는 "유저가 공포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일상에 친숙한 소리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는 좀비 등 크리쳐도 마찬가지다. 좀비는 괴물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던 존재다. 때문에, 걷는 소리나 목소리에 과도한 변형을 주고 싶지 않았다. <바이오하자드 RE:2>에 사용된 사운드는 녹음한 것을 대부분 그대로 사용했으며, 좀비, 크리쳐 등이 내는 소리 역시 성우들이 녹음한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상에서 나는 소리를 공포 요소로 가져오는 것 뿐 아니라, 개발진은 모든 소리가 입체적으로 나는 건 물론, 소리가 거리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리얼타임 바이너럴 시스템(Realtime Binaural System)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공간과 거리에 따라 듣게 되는 소리가 달라지는 일종의 '입체 음향'입니다.
다만, 이를 구현하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2킬로헤르츠(khz) 인근 소리가 극도로 변형되는 문제. 다음으로 유저가 소리를 들을 때 실제로 소리가 나는 지점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진은 상하좌우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녹음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입체감을 줄 수 있도록 새로운 녹음 방법을 택했습니다. 예를 들어, '2시 방향에서 소리가 난다면 정면 스피커 소리 50, 오른쪽 스피커 소리 50으로 사운드를 재생하고 녹음'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호에이 미야타는 해당 방법에 대한 주의 사항을 덧붙이며 "입체감 있는 소리를 녹음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소리 잔향'이 있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무향실 녹음은 필수, 스피커는 되도록 동축 스피커를 사용해 녹음에 안정을 줘야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RE:2> 개발진은 유저가 소리를 통해 공포를 느끼는 건 물론이고, 특정 소리가 들리는 지점과 플레이어 캐릭터 간 거리, 캐릭터가 서 있는 공간의 상태와 상황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소리에 변화를 주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착향음’(Cohesive Sound)을 살리기 위한 작업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공간과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연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IR 레코딩'이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RE:2>에는 경찰서부터 하수도, 연구소 등 다양한 스테이지(환경)가 등장하고 각 스테이지는 크기가 다른 방이 수십 개 구현되어 있습니다. 스테이지 특성은 물론 공간 크기에 따라 울림과 소리 퍼짐 등 모든 요소가 다르기에 '공간에 맞는 소리'를 낼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진은 콘서트홀, 연구소, 공장, 스타디움 등 게임 내 등장하는 실제 공간을 찾아 소리 울림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이때 사용한 방법은 TSP(Time Stretched Pulse)로 모든 대역폭 소리를 한 번에 방출해 여기서 발생하는 파형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유스케 키노시타는 TSP 측정에 대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측정 전 게임 내 장소와 유사한 곳에 꼭 사전 답사 해 공간 크기와 구성하고 있는 재질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TSP 신호는 매우 큰 소리기 때문에 재생 전 토지 관리인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녹음 장소에 베이스 노이즈가 없는지와 공명이 없는지 역시 추가로 파악해야 원하는 데이터값을 얻을 수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호에이 미야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개발진은 <바이오하자드 RE:2> '호러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펼쳤고, 이 도전은 앞으로 만들 게임에서도 이어가고자 한다. 다양한 도전을 했지만 기기 성능이나 시간이 모자라 아직도 도전하지 못한 요소가 분명 있다. 앞으로도 도전을 이어가 NDC 같은 자리에서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으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소리라 할지라도 공간에 따라 소리 울림과 퍼짐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