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중 안성재 셰프가 남긴 말이다. 기자는 이 말을 빌려 <로스트 아이돌론스: 위선의 마녀>(이하 위선의 마녀)를 평가하고 싶다.
<위선의 마녀>는 오션드라이브 스튜디오가 개발한 <로스트 아이돌론스>의 스핀 오프 타이틀이다. 첫 작품부터 시작해 두 번째 작품까지 SRPG 장르라니, 개발사가 얼마나 이 장르에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SRPG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장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기자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캐릭터와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는 묘미와 체스를 두듯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이뤄지는 치열한 전략 싸움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이토록 ‘맛있는’ 장르가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맛있는 음식은 남들에게도 알려줘야 하는 법. 6일 출시된 <위선의 마녀>를 직접 플레이해보고, 그 소감을 전한다.
아래부터는 <흑백요리사> 관련 밈이 쏟아진다. 시즌 2 제작이 확정된 지금, 뒤늦게나마 유행에 편승하고 싶었던 기자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란다.
가장 먼저 게임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스테이지, 그 안에서 이뤄지는 전투에 포커스를 맞춰 보자. <위선의 마녀>의 전투를 맛본 기자의 소감은 이렇다. “전투가 아주 타이트하다.”
‘타이트하다’에는 내용 따위가 자세하고 충실하다는 뜻이 있다. <위선의 마녀>의 전투는 너무 쉽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어렵지도 않다. 등장하는 적의 수가 다소 과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SRPG 장르의 팬이라면 충분히 맛있게 즐길 수 있을 정도다.
지난 게임스컴에서 만난 개발사 오션드라이브 스튜디오는 인터뷰에서 “’짧고 강렬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게임의 전투 시간을 최소 15분 정도로 잡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의도대로 스테이지별 전투는 짧으면 15분, 길어도 30분 이내로 이뤄졌다. 쫀쫀한 전투의 긴장감이 딱 지치지 않을 수준으로 이어지니 전투의 볼륨감도 적절하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타이트하다’에는 상기한 뜻 외에도 꽉 낀다는 뜻도 있다. 알맞다기엔 조금 과하다는 것이다. 충분한 플레이버와 볼륨을 가진 전투에 비해 그것을 담아낸 게임의 구성이 조금 부족하다. 어찌어찌 담아내긴 했지만, 살짝만 건드려도 쏟아질 것 같은 요리를 보는 듯하다.
몇 가지 문제를 짚어보자. 먼저 등장하는 스테이지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게임의 특성상 플레이어 파티가 전멸하고 다시 도전하는 반복 플레이가 이어지는데,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미 몇 번을 본 스테이지 기믹을 또 만나게 된다. 처음이야 반갑고 재미있지, 변형도 없이 반복되면 지루한 반복 노동으로 다가올 뿐이다.
또 스테이지마다 맵은 참 넓은데, 카메라가 담아내는 시야는 좁다. 최대한 카메라를 뒤로 당겨도 전투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기는 힘들다. 특히 적들이 난입하는 기믹이나 무작위로 등장하는 보물상자가 있을 때면 그 위치를 찾기 위해 마우스를 한참 옮겨야 한다. 한 눈에 유닛과 오브젝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미니맵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지나치게 높은 회복 스킬의 가치였다. <위선의 마녀>에서 등장하는 스킬은 전반적으로 쿨타임이 상당히 긴데, 이는 체력 회복 스킬도 마찬가지다. 파티원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보니 최대한 체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접근을 최대한 기다리는 ‘니가와’ 플레이가 강제되고, 이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의 폭은 좁아진다.
이제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게임의 진행 방식을 볼 차례다. 전투 방식이 SRPG였다면, 게임의 진행 방식은 <슬레이 더 스파이어> 같은 로그라이크 스타일이다.
플레이어의 여정은 매 순간 무작위로 결정된다. 까마귀가 가져다준 세 가지 유물 중 하나를 고르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스테이지를 선택하여 경로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스테이지 보상은 유물, 골드, 공명석, 룬, 불꽃의 잔재 등 총 5가지다. 이 중 룬과 불꽃의 잔재는 해당 게임이 끝나도 유지된다. 룬은 캐릭터의 등급을 향상시키는데 사용되며, 불꽃의 잔재는 불의 제단에서 파티 전체에 유용한 효과를 부여할 때 사용된다.
보상을 얻는 스테이지 외에도 상점과 휴식처를 만나는 스테이지도 있다. 스테이지 진행 중 발생하는 이벤트로 일시적인 강화 또는 저주 효과를 얻거나 주인공과 다른 동료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고 새로운 동료를 만나기도 한다.
공명석을 활용한 장비 강화, 캐릭터 성장과 이벤트 모두 확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운이 좋으면 좋은 유물, 좋은 강화 효과를 얻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그저 그런 혹은 정말 나쁜 효과를 얻는다.
<위선의 마녀>가 전투를 SRPG의 영역에서, 게임 진행을 로그라이크의 영역에서 풀어낸 것은 감히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최대한 많은 변수를 고려해 치밀하게 짜인 전략이 기대한 대로 실현될 때 느끼는 SRPG의 매력은 살리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진행에 확률적 변수를 더해 플레이어를 울고 웃게 만든다. 이 알맞은 밸런스를 빚어내기 위한 개발진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돋보였다.
이렇게 훌륭하게 디자인된 여정의 끝에는 보스와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이 보스전이 앞서 경험한 풍성한 전투와 짜임새 있는 진행 방식만큼 ‘이븐하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게임을 총 16시간 가까이 플레이하면서 처치한 보스는 첫 번째 보스인 ‘칼로타’가 전부다. 기자가 게임을 못한 것일까? 억울하게도 아니다. 일반적인 게임 진행으로는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보스 스테이지가 요구하는 성장 수준이 높은 것이다.
예를 들어 기자를 몇 차례 좌절시킨 칼로타의 스테이지 기믹을 보자. 시작 단계에서 등장하는 적 유닛의 수는 칼로타 포함 약 9명 정도다. 이게 뭐가 어렵냐 싶겠지만, 해당 스테이지에는 처치된 적이 부활하는 기믹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실제로 처치해야 하는 적 수는 훨씬 많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면 적 무리가 계속 추가되는 기믹까지 있어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 불리해진다.
이처럼 높은 난이도 구성은 반복 플레이를 통한 영구적인 능력치 성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스전을 위한 성장 수준을 맞추려면 전투가 포함된 스테이지를 최대한 많이 선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구 성장에 필요한 자원까지 얻기는 벅찬 노릇이다. 반대로 캐릭터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공명석은 해당 게임이 끝나면 전부 사라진다. 영구 성장을 목표로 하면 보스전이 어려워지고, 보스전을 의식해 게임을 진행하면 영구 성장이 제한되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 시간 넘게 머리를 써가며 진행했던 게임이 맥없이 무너질 때의 좌절감은 더할 나위 없이 컸고, 이 좌절감을 게임을 한동안 내려놓게 만들었다. 플레이어의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준으로 일반 스테이지와 보스 스테이지의 난이도 밸런스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흑백요리사>에서 최종 우승을 거머쥔 ‘나폴리 맛피아’도 1라운드에서 잘 만든 음식에 무미한 식용 꽃을 올렸다가 탈락 위기를 맞는다. 최고의 실력자가 만든 음식도 사소한 차이 하나에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법이다.
<위선의 마녀>는 결코 맛 없는 게임이 아니다. SRPG로서의 플레이버는 훌륭했고, 로그라이크 요소는 익숙한 맛에 신선한 느낌을 더했다. 다만 ‘나폴리 맛피아’의 꽃처럼, 아주 사소한 디테일 하나가 발목을 잡는다.
다행히 게임은 아직 얼리 엑세스 단계다. 정식 출시 전까지 시간과 기회는 충분히 남아 있다. 게임을 정말 재밌게 즐긴 한 사람으로서 조금만 더 다듬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알차고 맛있는 게임이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