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게임 과몰입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자,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게임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정부터는 게임을 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있죠.
이런 가운데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게임을 못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게임을 바르게 즐기는 법을 알려주는 교육이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교육 방법을 모색하는 연구소가 있습니다. ‘창의수업연구소’입니다.
디스이즈게임은 창의수업연구소에서 인터넷·온라인게임 과몰입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강의하고 있는 석민호 연구원을 만나 교육 과정을 취재해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 창의수업연구소는?
창의수업연구소는 대한민국의 과도한 경쟁에 지친 학부모와 아이, 교사가 만족할 수 있는 대안 교육을 모색하는 곳이다. 2011년 3월 8일에 설립된 창의수업연구소는 아이들에게는 방과 후 수업, 학부모에게는 양육 태도 검사, 아동 심리의 이해, 유·아동 성교육 등을, 교사에게는 다양한 창의적 체험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창의수업연구소는 구리시 16개 지역 아동센터와 보건복지부산하 단체 드림스타트와 함께 ‘온라인게임&인터넷 과몰입 예방 치료 프로그램’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 운영 목표는 학부모와 아이에게 게임을 무조건 못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게임을 바르게 즐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현재는 학부모에게 아이들이 온라인게임을 하는 이유를 알리고,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직접 보드게임을 시연하는 등 이색적인 교육을 연구하고 시행하는 중이다.
먼저 게임을 바르게 즐기는 교육을 하려는 취지가 궁금하다.
석민호 연구원: 과도한 학원 교육과 경쟁 위주의 교육방식 탓에 적지 않은 아이들이 게임을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 수단으로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은 이미 아이들에게 문화이자 친구로 자리 잡혀 있다.
예전의 아이들은 방과 후 친구들과 운동장에 모여서 놀 수 있었지만, 지금 아이들은 그러기 어렵다. 방과 후에 학원을 가느라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학원 위치와 종료 시간도 각각 달라서 오프라인 공간에서 약속을 잡기가 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같이 놀기 위해 온라인게임을 선택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게임을 절대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유일한 놀이 문화, 친구와의 소통 행위를 빼앗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게임을 못하게 하는 교육 대신, 게임을 바르게 즐기는 교육방법을 모색해 봤다.
학부모에게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가?
일단 ‘우리 아이들이 왜 게임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 어째서 우리 아이들이 온라인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그래서 보드게임을 활용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드게임을 활용한 부모 교육은 학부모들이 함께 어울려 보드게임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게임에 대한 학부모의 인식을 바꾸고, 아이들이 게임을 재미있어하는 이유를 학부모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학부모의 인식을 바꾸는 수단으로 보드게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학부모 중에서 PC 온라인게임을 낯설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온라인게임에 적응하는 시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이들이 왜 게임을 좋아하는지 공감하기가 어렵다. 반면 보드게임은 비교적 학부모가 쉽게 적응하고 바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보드게임의 성향은 온라인게임과 매우 유사하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고, 같은 팀끼리는 협력해야 한다. 아이들이 온라인게임을 하며 다른 유저를 이겼을 때 느끼는 뿌듯함, 팀원과의 협동이 잘됐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학부모가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드게임을 체험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게임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뭘 이런 걸 하나요?”라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참여하던 학부모들이 나중에는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게임에 몰입한 나머지 엉덩이를 떼고 책상에 몸을 붙여 게임판을 바라보는 학부모도 종종 보였고, 심지어 보드게임을 하다가 좋은 아이템을 얻으면 서로 자기 것이라고 학부모끼리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게임을 직접 체험한 학부모들은 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화내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이가 게임을 하다 화내는 것을 보고 “게임이 폭력적이라 우리 아이에게 영향을 줬구나”고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교육에 참여한 학부모의 자녀 교육관, 태도에 변화를 줬을 것 같다.
교육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게임을 절대 하지 말라는 말 대신 적당히 하라고 자녀를 타이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보드게임에 참여한 뒤 “이거 얼마예요?”, “이거 어디에서 살 수 있어요?”라며 흥미를 보인 일부 학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내서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런 학부모들은 아이와 3시간 대화하는 것보다 30분 동안 보드게임을 같이 하는 것이 아이들과 교감하기 좋았다며 만족했다. 아무래도 게임을 하는 동안은 심리적인 거리 없이 솔직하게 아이와 어울릴 수 있는 것 같다.
심지어 교육에 참여한 학부모 중 창의수업연구소의 강사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강사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니 “내 아이를 가르치다 보니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런 좋은 교육을 해주고 싶었다”는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학부모들이 현재 창의수업연구소 정규 교사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시행하는 교육에도 보드게임을 응용하고 있는가?
학부모에게는 게임의 재미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보드게임을 체험하게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하고 있다. 많게는 주 1회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적게는 월 1회 2시간씩 아이들끼리 보드게임을 즐기도록 한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는 아주 만족스럽다. 장기간 보드게임 교육이 이루어진 교실에서 집단 따돌림 문제도 줄어들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보드게임이 집단 따돌림 문제를 줄였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아이들은 성적이 낮은 아이나 몸이 약한 아이 등 뭔가 모자라 보이는 아이를 주로 따돌렸다. 하지만 우리가 다양한 보드게임을 준비하고 하나씩 시켜 보니, 모자라 보이는 아이도 어떤 보드게임에서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실제로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아이가 있었는데, 사칙연산이 필요한 보드게임을 하니까 그 누구보다 빠르게 계산했다. 덕분에 사칙연산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이 아이와 같은 팀이 되고 싶어서 친해지려 노력했고, 그 아이는 따돌림을 받지 않게 됐다.
아이들은 다양한 보드게임을 하면서 누구나 잘하는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어느 하나의 잣대로만 남을 평가하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배웠다. 보드게임이 집단따돌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판단한 것은 이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더 시행해 보면 아이들의 잘못된 태도 개선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다른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보드게임 교육을 실행해 봤는데, 보드게임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은 아이가 태도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보드게임 외에도 게임을 아이들의 교육에 응용하고 있는가?
온라인게임의 ‘레벨업’ 시스템을 수업에 적용해 참여율을 높이고 있다. 아이들은 수업에 참여하면서 특정한 행동을 하면 경험치를 얻고 레벨업을 할 수 있는데, 레벨 1은 회색, 레벨 2는 분홍색, 레벨 3은 보라색 등으로 표시해 준다. 레벨업을 한 아이들은 클루라는 가상의 돈을 얻을 수 있는데, 이 포인트를 사용해 원하는 보드게임을 구매할 수 있다.
레벨에 따라 다른 색의 명찰을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레벨업 시스템 덕분에 아이들이 교육에 활발히 참여할 것 같다.
그렇다. 레벨업을 하려면 보드게임의 특징을 파악하고 플레이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게임 포인트’,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받을 수 있는 ‘활동 포인트’, 질서를 잘 지키고 예의 바르게 게임을 하면 주는 ‘매너 포인트’, 그리고 특정 ‘퀘스트’를 달성했을 때 주는 ‘미션 포인트’를 모아야 한다.
아이들은 레벨업을 하고 싶어서 보드게임을 더 적극적으로 플레이하고 수업에 적극 참여한다. 또, 다른 사람이 보드게임을 하는 동안 얌전하게 자기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레벨업 시스템은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를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앞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스마트폰을 바르게 사용하는 교육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적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즐기고 수많은 앱을 놀이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스마트폰의 수많은 앱 중에서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앱을 골라서 사용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학부모들이 게임을 아이들의 놀이문화로 이해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적어도 학부모가 아이에게 게임 그만하라고 했을 때 아이가 “지금 당장은 그만둘 수 없다”는 답변에, 학부모가 “우리 아이가 게임 중독에 걸렸어”라며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가 게임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는 상황은 대개 친구들과 파티를 맺고 협동 플레이를 할 때다. 상당수의 아이들은 친구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게임을 바로 끄지 않는 것이지, 무조건 언론에서 말하는 ‘게임의 중독성’ 때문에 게임을 못 끄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게임의 교육 효과에도 주목했으면 한다. 게임은 아이들이 할 수 없는 직·간접 체험을 제공해준다. 미성년자인 아이들도 게임을 통한다면 차를 운전해 보고, 결혼도 해보고, 아이도 키울 수 있다.
심지어 <석유가 없는 세계>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전기를 낭비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체험하고, 이후 게임을 해본 사람들이 절약을 생활화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원절약, 환경보호와 같이 잊고 살기 일쑤지만 꼭 필요한 행동을 게임으로도 배울 수 있는 셈이다.
창의수업연구소는 이와 같은 게임의 교육적 효과를 발굴하고, 동시에 아이가 건강한 게임을 즐기고 학부모가 이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게임을 못하게 막는 교육 대신 게임을 바르게 즐기는 교육에 관심을 두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