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중국은 저작권의 사각지대로 알려졌다. 저작권 분쟁은 해마다 발생하는데 반해, 이를 원만히 해결한 사례는 극히 적었다. 승소한 사례는 찾기도 힘들고, 대부분 취하나 합의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 20일 이스트소프트는 중국의 게임유통사 ‘몰리요’와의 저작권 분쟁에서 최종 승소했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한때 <카발 온라인>(중국명: 경천동지)의 중국 서비스를 위해 손을 잡았지만, 2009년 몰리요의 무단 서비스로 분쟁을 빚었다.
흔치 않은 중국 저작권 분쟁 승소가 반가웠던 디스이즈게임은 이스트소프트를 찾았다. 김장중 대표이사가 밝힌 분쟁의 뒷이야기와 노하우를 들어 보자.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사실 몰리요가 먼저 고소했다”
TIG> 그동안 <카발 온라인>의 저작권 분쟁과 관련해 밝혀진 정보가 적었다. 몰리요와는 <카발 온라인>의 무단 서비스와 후속작 사칭 두 가지 문제가 얽혀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사안에서 승소한 것인가?
김장중 대표이사: 승소한 사안은 <카발 온라인> 퍼블리싱 계약 건이다. 몰리요는 계약이 종료된 지난 2009년 1월 이후 무단으로 <카발 온라인>을 중국에서 서비스했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했다.
참고로 후속작을 사칭한 <경천동지 2> 건은 합법이다. 설사 우리가 <경천동지>라는 IP(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중국 현행법에 따르면 다른 업체가 <경천동지 2>라는 판호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다. 다행히도 대다수의 유저들이 <카발 2>가 <카발 온라인>의 진정한 후속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TIG> 몰리요와는 어떻게 퍼블리싱 계약 분쟁이 발생하게 됐나?
2007년 1월 몰리요와 <카발 온라인> 퍼블리싱 계약을 하면서 ‘2년 서비스, 목표수익 달성 시 1년 연장’에 합의했다. 하지만 2008년에 퍼블리셔가 서버 해킹 등을 방어하지 못해 성과가 좋지 못했고, 2008년 금융위기로 몰리요의 자금 사정이 안 좋아 지면서 계약 연장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계약서에 따라 재계약을 준비했다. 몰리요도 처음엔 재계약에 호의적이었지만, 갑자기 목표수익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막지 못한 이스트소프트의 탓이라며 무단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무단 서비스는 올해 1월까지 계속됐다.
TIG> 일반적으로 중국에선 외국회사가 법정에 서는 것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다. 법정 투쟁을 결정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마음을 굳혔나?
사실 소송은 몰리요가 먼저 걸었다. 몰리요는 2009년 5월 <카발 온라인>의 중국 내 서비스권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이스트소프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많이 고민했다. 당시 중국 내 저작권 인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너그러웠고 이와 관련해 좋지 않은 풍문도 많았다. 또한 <카발 2>를 개발 중인 입장에서 향후 <카발 2>의 중국 진출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했다.
많은 고민 끝에 국제적으로 높아져 가는 중국의 위상을 믿기로 했다. ‘G2’라 불릴 만큼 국위가 높아진 중국이기에 법정도 세계적인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 믿었다. 또한 사안 자체도 명명백백하게 우리에게 유리했다.
TIG> 법정 투쟁을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몰리요가 우리를 고소한 것은 2009년 5월이었고, 우리가 맞대응한 것은 2010년 3월이었다. 이러한 선례가 없다 보니 중국 법률을 검토하거나 현지 로펌을 수소문하는 등 준비 기간이 길었다. 당시에는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 “저작권 보호 단체의 활동이 미비해 아쉽다”
TIG> 국내 다른 게임업체들도 이와 유사하게 저작권을 침해당한 사례가 있다. 이와 관련해 소송을 준비하면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가?
소송을 준비하며 정부가 주최하는 ‘저작권 보호 세미나’ 같은 행사에 몇 차례 참석했다. 생각보다 로열티 허위지급이나 저작권 분쟁 등의 문제가 많아 놀랐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업체에 맞춰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이스트소프트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카발 온라인>의 중국 내 비즈니스가 종결된 상황이었고, 중국 법원도 이러한 판례가 생김으로써 향후 외국기업의 중국진출이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 승부수를 던졌다.
TIG> 소송을 진행하면서 특히 신경 쓴 점이 있는가?
아무래도 게임이 현지 로펌에는 생소한 분야이다 보니 로펌과의 소통에 신경 썼다. 제반 증거자료는 물론 싸움의 논점 또한 지속적으로 공급해 우리의 입장을 100%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이해에 많은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현지 로펌이 예상보다 빨리 적응해 놀랐다.
이외에도 소송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 불필요한 소문이 없게끔 최대한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TIG> 소송 중 특별히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올해 중국 서비스를 다시 시작한 <카발 온라인>의 재진출이 늦어진 것이 가장 힘들었다. 몰리요가 게임을 무단으로 서비스하다 보니 많은 업체들이 재오픈을 꺼렸다. 재진출이 3년 넘게 늦어졌다.
그래도 지금은 U1GE사와 퍼블리싱 계약을 해 <신경천동지>란 이름으로 4월 하순 서비스에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중국의 소득 수준이 오른 덕분에 이전보다 수익도 늘었다. 로열티 수익만 따지면 전 세계 퍼블리싱 파트너 중 최고다.
<카발 온라인>은 중국에서 <신경천동지>란 이름으로 다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TIG> 비슷한 사정의 업체 중에선 국내의 무관심이 힘들다고 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의미한 정보를 최대한 차단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느끼기 힘들었다. 다만 이런 사안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국내 단체가 적은 것은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지금 한국은 저작권 보호의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적당히 복제품도 만들면서 성장했는데 어느덧 적극적으로 IP(지적재산권)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이렇게 변한 것이 최근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단체가 부족하다. 물론 정부나 협회 차원에서 해외에 사무실도 만들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수출된 IP에 비하면 아직 미비하다.
TIG> 소송 진행 중에 몰리요 측이나 회사 내부에서 합의하자는 제안은 없었나?
우리가 먼저 ‘미지급 로열티와 무단 서비스로 인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면 라이선스를 연장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몰리요 측도 대표가 바뀐 이후 협상에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몰리요에서는 구체적인 금액은 언급하지 않은 채 모호적인 말만 반복해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 “중국 정부가 저작권 보호 의지를 보여줬다”
TIG> 이번 승소에 대해 자평을 한다면?
먼저 이번 사례로 중국 정부가 외국 회사의 저작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 기쁘다. 사실 처음 이 일을 겪었을 때는 중국에서 저작권이라는 권리를 가지고 사업을 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게임이나 다른 소프트웨어 모두 당분간 중국에는 진출시키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중국 정부가 저작권을 보호해 준다는 사례가 생겼기 때문에 앞으로는 중국 비즈니스에 더욱 신경을 쓸 예정이다.
또한 <카발 온라인>을 기다려 준 중국 유저들에게 정상적인 서비스로 보답할 수 있어 뿌듯하다. 그 동안 업데이트조차 되지 않은 게임을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번 소송으로 한층 더 발전된 <카발 온라인>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 앞으로도 게임을 지속적으로 서비스해 중국 유저들에게 책임감 있는 회사로 남겠다.
TIG> 끝으로 중국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업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만, 먼저 경영진이 믿을 수 있는지 최대한 고려한 후에 계약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어렵다고 진출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아무리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너그럽다고 하더라도 ‘G2’라고 불릴 정도로 선진화됐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 분쟁이 생겨도 <카발 온라인>의 사례처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