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갑작스럽게 한게임을 떠난 정욱 전(前)대표대행이 모바일게임 개발사 넵튠의 대표로 돌아왔다. 퍼블리셔는 넥슨. 게임이름도 <넥슨 프로야구 마스터 2013>이다. 자연스레 궁금증이 쏟아진다. 게임업계 최고의 자리 중 하나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 이유가 뭘까? 왜 NHN이 아닌 넥슨을 택했을까? 모바일 야구게임을 만든 이유는 뭘까?
한 해 매출 1,500억 원을 넘기던 한게임의 수장에서 독립 개발사의 대표로.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게임을 개발할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는 정욱 대표를 디스이즈게임에서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한게임 대표를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한게임 퇴사 후 10개월. 오랜만에 만난 정욱 대표는 몰라볼 만큼 달라져 있었다. 홀쭉하게 빠진 살과 덥수룩한 수염, 세련된 정장 대신 편안한 후드티를 걸친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개발자’였다. 다만 표정만큼은 한층 밝았다.
한게임 대표대행을 스스로 관두고 나왔다. 예전부터 창업하고 싶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는데 이번이 도전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게임에서 대표대행을 하면서 많은 게임에 얕게 관련돼 있었다면 이제는 한 게임을 깊게 파 보고 싶더라.
사람 사이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심했고 내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큰 게임을 매니지먼트 하는 것보다 직접 하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다. 쭉 반대하던 와이프도 작년에는 허락해주더라.
그래서 나와보니 어떤가? 한게임에 있을 때도 책임감은 컸지만 내가 그들을 직접 먹여 살린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는 직원들이 있고 그들의 가족까지 책임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책임감이 더하다. 잠이 안 올 때도 잦다. 살도 많이 빠졌고(웃음).
서비스를 시작한 지 열흘 정도가 지났다. 성적은 어떤가? 앱스토어에서는 스포츠게임 1위. 전체에서 10위 내외다. 티스토어에서도 비슷한 성적이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는 시스템상 순위가 천천히 오르는 편이라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퍼블리셔가 넥슨이다. 이유라도 있나? 개발사가 퍼블리셔를 택한다기보다는 넥슨이 우리를 선택해줘서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웃음)? 왜 한게임을 택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한게임이랑 일하면 서로 불편한 점이 많을 거다.
그쪽에서는 내가 전 대표였으니 할 말을 다 못할 수도 있고 나는 나대로 아는 사람이다 보니 요구사항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할 수도 있고. 퇴사한 이상 같이 일하지 않는 게 배려가 아닌가 싶다.
■ 매니지먼트는 모바일과 딱 어울리는 시스템
정욱 대표는 한게임 근무시절부터 야구광으로 유명했다. <야구9단>의 개발부터 와이즈캣의 인수, 프로야구선수의 초상권 위임계약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넵튠에서 개발한 <넥슨 프로야구 매니저 2013> 역시 야구 매니지먼트 게임이다.
왜 하필 매니지먼트를 택했나? 야구게임을 만들자는 생각은 전부터 있었다. 부산 출신이기도 하고(웃음). 그런데 모바일에서는 직접 치고 달리는 야구게임을 만들기가 어렵다. 조작 문제도 있고 동기화 문제도 있다. 반면 매니지먼트게임은 조작이나 실시간 연동이 거의 필요 없으니까 한층 낫다고 생각했다.
게임이 나온 후의 반응은 어떤가? 마니아들은 경기에 더 많은 개입을 하길 원하고 라이트 유저들은 인터페이스나 라인업 구성 등이 어렵다는 의견을 주더라. 일단 라이트한 유저들을 위해서는 인터페이스를 다듬고 마니악한 유저들을 위해서는 선수 보강과 새로운 모드를 생각 중이다.
사실 모바일에서는 인터페이스를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다. 맞다. 화면이 작다 보니 데이터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고민이 되더라. 그래서 그 손이 많이 가는 부분에는 아예 자동화 기능을 넣었다. 선수 라인업 역시 일일이 배치할 필요 없이 자동화 버튼으로 한 번에 구성할 수 있다.
넥슨을 통한 사내테스트에서도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부분인데 정작 게임이 나오고 보니 게임회사 사람이랑 일반 유저가 느끼는 난이도는 체감상 차이가 있더라. 그래서 인터페이스는 지금도 더 쉽게 만드는 중이다.
사실 지금 코치나 감독을 맡은 선수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1990년대 이전 선수들은 언제 어느 팀에서 뛰던 선수인지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부분은 천천히 업데이트를 진행해 나갈 생각이다.
새로운 모드로는 랭킹전과 소셜리그를 생각 중이다. 랭킹전은 일정 기간 성적이 뛰어난 유저들끼리 모아 일종의 전장처럼 순위를 매기며 싸우는 거고, 소셜리그는 유저들이 직접 친구나 주변 유저들을 대상으로 리그를 만들어 즐기는 방식이다. 2주 단위로 최고레벨 유저들만 참가할 수 있는 월드 리그도 생각 중이다.
넥슨에서 서비스 중인데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나? 업데이트 방식이다. 한게임에 있을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 넥슨은 업데이트를 정말 잘한다. 신규 유저를 위한 업데이트와 만렙 콘텐츠 업데이트, 양쪽의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 <넥슨 프로야구 매니저 2013>에서도 이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 모바일 시장은 절대 레드오션이 아니다
모바일게임 시장이 ‘레드오션’ 이야기를 들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1~2년 전부터 모바일게임은 ‘끝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고, 새로운 ‘대박 게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욱 대표의 생각도 같다. 그는 모바일게임 시장을 아직 ‘초기 단계’라고 판단했다.
모바일게임 시장에 굉장히 늦게 뛰어든 편이다. 걱정은 없나? 모바일게임이 이제 레드오션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니라고 생각한다. 레드오션의 특징은 시장이 굉장히 안정적이고 신규개발사가 더 이상 뛰어들 수 없는 환경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 모바일게임 시장은 전혀 다르다.
컴투스나 게임빌이 안정적으로 순위를 독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상위권은 전부 신생개발사에서 휩쓸고 있다. 특히 카카오톡이 나온 이후 시장이 더 불확실해졌는데, 이건 신생시장의 특징이다.
모바일게임의 수익이나 지속성을 걱정하는 곳도 많다. 일단 수익은 온라인게임이나 PC게임처럼 생각하면 안 될 듯하다. 일단 게임 하나에 들어가는 자금이 적다. 바꿔 말하면 온라인게임보다 수익이 적어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구조다. 지속성에서 봐도 <룰더스카이>처럼 온라인게임이나 PC게임 방식의 업데이트를 택해 장기적으로 인기를 끄는 게임도 늘고 있다.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모바일게임은 금액을 지불하는데 훨씬 관대하다. 일례도 내가 한게임에 있었을 때 <테트리스>에 플레이횟수 제한을 넣었다고 엄청난 욕을 들었는데 <애니팡> 제한에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더라(웃음). PC나 온라인기준의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
직접 모바일게임을 만들며 깨달은 점이라면? 한게임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모바일게임으로 퀄리티가 있는 게임을 만들자. 서버나 멀티플레이 요소 등이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게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멀티플레이보다는 소셜플레이를 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아직 멀티플레이가 모바일게임에 잘 어울리는 방식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이용한 소셜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잘 녹아드는 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넥슨 프로야구 매니저 2013>도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이용한 친구 기능 정도를 추가할 생각이고.
모바일게임 특성상 슬슬 차기작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이미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회사 구성원들이 캐주얼게임을 잘 만드는 인력은 아니다 보니(웃음) RPG를 하나 만들고 있다. 모바일게임의 특성에 맞춰서 오토플레이가 중심이 되는 RPG가 될 것이다.
요즘 오토프로그램들을 보면 굉장히 세세한 부분까지 잘 갖춰져 있는데 온라인게임에서는 오토플레이가 유저들과 개발사의 적이지만 모바일게임에서는 이를 잘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슬슬 결론을 듣고 싶다. 그래서 한게임을 떠난 데 만족하나? 지금까지는 만족한다. 지금까지라고 단서를 붙인 건 이 회사가 내년에도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웃음).
모바일게임 시장이 매우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카카오톡이 나오면서 이전에는 게임에 전혀 손대지 않던 유저들을 게임에 맞춰 학습시켰고, 온라인게임을 넘는 매출을 보여주는 게임도 나왔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성인 여성 게임시장을 만든 것도 큰 변화다.
그만큼 많은 회사가 생기고 많은 회사가 실패를 겪다 보니 레드오션이다 뭐다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2000년대 초반 온라인게임도 똑같았다. 그런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우리도 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