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사회적으로 이직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다. 일본의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로, 한 번 들어간 회사에서 가급적 오래 일하고, 새로운 도전보다는 잘 만들던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물론, 이런 풍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려고 나선 사람들도 있다.
에이밍(Aiming)의 타다시 시이바 대표는 테크모에서 경력을 시작한 인물로, <SD삼국지>의 개발을 맡기도 했었다. 지난 5일에는 에이밍 코리아를 통해 최신작 <로드 오브 나이츠>(모바일 카드배틀게임)를 한국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선보이기도 했다. 모바일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개발사를 차린 시이바 대표를 만나 일본과 한국의 모바일게임 시장 전망을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 “한국은 온라인게임 강국이자 스마트폰 대국, 가능성을 봤다”
사업에서 개발로 분야를 변경한 계기가 있다면?
타다시 시이바: 예전에 게임온에 재직할 때 한국에서 개발한 온라인게임을 일본에서 퍼블리싱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 계기다. 그때 앞으로는 인터넷과 연결되는 게임의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었고, 2011년에는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기기가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세상이 열렸기에 가능성을 봤다.
한국이 PC 온라인게임에 집중해 세계적으로 성공시켰던 것처럼 스마트폰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새로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타이밍에 개발에서 퍼블리싱까지 직접 할 수 있는 회사를 세웠다.
과거 한국산 온라인게임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었나?
한국산 온라인게임을 보며 많이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예전에 한국 기자로부터 ‘일본이 온라인게임을 만들면 한국을 이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딱 잘라서 ‘아니다’고 대답했었다. 당시 일본 시장에 <리니지 2>가 나오기도 전이었고, 나는 콘솔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온라인게임과 콘솔게임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쉽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온라인게임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회사나 개발자도 별로 없고, 성공한 회사도 드물다. 그래픽도 잘 만들고 20년 이상 게임을 개발하던 사람들도 애를 먹는 분야가 온라인게임 개발이다.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온라인게임 강국이자 스마트폰 대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에서 모바일게임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시작은 이렇게 단순한 이유였다.
이런 결심을 했던 것이 작년인데, 당시 한국에서 개발한 스마트폰게임은 전 세계에서 볼 때 정말 작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적으로 온라인게임에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유저들이 있는 나라다. 그래서 반드시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도 일본인이 직접 와서 하기에는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지사를 차렸다. 한국에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있어서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이 결정을 굳힐 수 있도록 만들어 줬다.
필리핀과 대만에 지사가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필리핀 지사를 설립한 이유는 영어권 서비스를 위해서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중요한 영어권 국가인데, 여기서 고객 서비스를 하면 인건비 등의 비용이 줄어든다. 역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리핀에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대만 지사는 개발을 위해 차린 곳이다. 보통 대만을 중국 진출 교두보로 삼고자 하는 회사가 많은데,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중국과 대만은 확실히 다른 나라다.
우리는 대만에 개발사를 차려서 그래픽 제작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그래픽 개발자의 비용은 중국이 싸겠지만, 일본인 특유의 귀여운 캐릭터나 SD 캐릭터는 중국이 잘 만들지 못한다. 대만은 일본의 애니메이션도 인기 있고, 한국과 중국산 온라인게임을 플레이해 본 사람들이 많아 다양한 게임이나 아트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다. 동시에 10년에 가까운 개발 역사가 있는 나라이기도 해서 인건비가 싸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대만에 지사를 차렸다.
한국지사에서 직접 개발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개발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이직률이 높고 대기업들의 장벽이 너무 강력해서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일본 모바일게임? <퍼즐앤드래곤>과 카드형 소셜게임을 빼면 남는 게 없다”
일본은 게임업계도 이직을 하지 않는 분위기인가?
그렇다. 일본 10대 게임기업을 보면 이직이 드물다. 그중에서 다른 분야가 있다면 카드형 소셜게임 업계뿐이다. 그 안에서도 이직하며 개인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분야는 프로그래머뿐일 정도다.
모바게나 그리(GREE) 같은 경우가 좀 예외라고 할 수 있는데, 이직할 때 첫 평가를 잘 받으면 500만 엔(약 6,50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이직률이 낮은 국가다.
일본의 낮은 이직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에서는 직장을 그만두는 걸 굉장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이직률이 높다는 건 국가적으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직률이 낮은 풍토가 좋지 않다고 보는 건 사람이 향상심을 갖지 않고 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본의 게임업계가 썩었다는 표현도 하곤 하는데, 이직하지 않고 안주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모바일게임 같은 새로운 시장에서 좋은 기회를 잡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직을 자주 해야 하는 나라에서 산다면 다음 회사를 옮길 때는 더 좋은 회사로 가고 싶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앞으로 시장에서 어떤 것이 더 큰 기회가 될까를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일본에서는 스퀘어에닉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바게 같은 회사를 보고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런데 <퍼즐앤드래곤> 같은 게임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퍼즐앤드래곤>은 정말 스마트폰 역사에 길이 남을 게임이다. 카드형 소셜게임 같은 경우도, 게임 개발과 운영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카드형 소셜게임을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유저가 어디에서 많이 유입되고, 어디서 그만두는지를 시간 단위로 쪼개서 계산할 정도다. <퍼즐앤드래곤>같은 경우 여기에 매주 이벤트를 진행하고 주말 이벤트를 따로 열기도 한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으로서 재미를 주는 것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온라인게임에서 커뮤니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도도 부족하다. <퍼즐앤드래곤>은 거의 혼자서 하는 게임이고, 네트워크에 연결해 재미를 만들어 내는 역량을 비교하자면 한국과 일본은 100:1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계를 넘어서 네트워크 연결로 재미를 주자면 일본에서는 아직 장벽이 높다. 카드형 소셜게임을 만든 사람들은 콘솔 개발자들이 아니다. 콘솔게임을 만드는 사람들도 그 분야에 있긴 하지만 양쪽 사람들이 전혀 섞이지 않는다. 이 두 분야의 개발자들이 융합되면 정말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올 거라고 보지만, 지금 일본 모바일게임은 <퍼즐앤드래곤>과 카드형 소셜게임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
역시 아까 말했듯, 그들이 서로 물과 기름 같이 생각하고 있기에 개발력도 있고 모바일게임 운영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 전혀 다른 게임을 만들라고 한다면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기업들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스타 2012를 관람해 보니, 이미 일본은 한국에 따라잡혔다고 느끼게 되더라.
■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 일본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것”
지스타 2012 현장을 둘러본 소감은?
확실히 한국은 모바일게임 비중이 늘어났다는 걸 느꼈다. 네오위즈게임즈가 MMORPG <블레스>의 부스를 크게 차려 놓았는데, 옆에는 위메이드 모바일과 컴투스가 모바일게임을 전시한 것이 인상 깊었다. 마치 현재와 미래의 게임이 대조되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위메이드와 컴투스의 게임 중 눈에 띄는 것들이 있었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많이 배워야겠다고 느꼈다.
지금 한국에는 캐주얼 모바일게임들이 인기인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라 보나?
지금은 시장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애니팡>이나 <드래곤 플라이트>처럼 가벼운 게임들이 성공하고 있는데, 이건 페이스북 초기에도 있던 현상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히트한 SNS인 믹시에서 초기에 유행했던 게임들도 <주 키퍼> 같이 간단한 게임들이었다.
이런 간단한 게임들은 시장 초기에 유행하지만, 금방 질리기 때문에 라이프 사이클이 짧다. 나는 사람들이 점차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지나면 게임다운 게임이 모바일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유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내년에는 한국에서 퍼즐이나 캐주얼보다는 좀더 어려운 모바일게임이 성공할 것이라고 보나?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일본 믹시에서 소셜게임이 성공한 뒤 카드형 소셜게임이 뜨기까지 1년 정도 걸렸다. 유저가 이런 게임을 받아들이기까지 1년이 걸린 건지, 아니면 게임 디자인으로서 이런 걸 만드는 혁신 과정이 1년 걸린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일본에서 1년 걸린 사례가 있다.
현재 한국의 카카오 게임에서 게임을 즐기는 유저가 급성장하는 모양새를 볼 때, 일본보다는 조금 빨리 그런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한국은 원래 온라인에서 프리투플레이(Free-to-Play, 부분유료화) 모델이 있었고, 인터넷을 사용해 게임을 한다는 감각은 10년 이상 한 유저들이 많다. 그래서 일본에서 걸린 1년보다 빠른 시기에 그런(코어 장르) 게임들을 즐기는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 “<로드 오브 나이츠>는 <SD삼국지>를 업그레이드한 게임”
시이바 대표의 전작 <SD삼국지>도 그렇고, 소셜형 카드게임은 돈을 주고 뽑은 카드를 강화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자기가 돈을 주고 산 아이템이 조합을 하면서 사라진다는 개념에 대해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자기 카드가 합성해서 사라진다는 게 잘될까?’는 의문을 가졌지만, 결국 유저들이 받아들여 주더라.
소셜형 카드게임으로 매출이 높은 <바하무트>의 원조격인 게임이 코나미의 <드래곤 컬렉션>이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드래곤 컬렉션> 개발자들이 <SD삼국지>를 보고 많이 배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그렇지만, 일본 카드형 게임의 시초는 <SD삼국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로드 오브 나이츠>가 <SD삼국지>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점은?
보다 카드의 성장에 중점을 뒀다. 마을을 만드는 건설 부분은 웹 시뮬레이션 게임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SD삼국지>보다는 몇 배 더 빠른 템포로 진행돼 유저가 지루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특히 카드배틀이 재미있는 콘텐츠다. <SD삼국지>의 카드배틀은 스스로 잘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고찰을 통해 <로드 오브 나이츠>에서는 카드배틀에 보다 열중할 수 있을 것이다.
<로드 오브 나이츠>의 카드배틀 콘텐츠를 보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로드 오브 나이츠>의 카드배틀은 총 6개의 속성 중에서 3장을 골라 자신의 부대를 편성하게 되는데, 완벽한 조합은 없다는 게 특징이다. 유저가 자신의 카드 중 좋은 카드를 고를 수도 있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부대를 편성할 수도 있다.
그리고 카드배틀 자체는 유저가 대전을 신청해 두면 자동으로 진행되지만, 전투 결과를 분석하면 부대을 어떻게 편성해야 승률을 높일 수 있을지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로드 오브 나이츠>도 웹 시뮬레이션 게임의 게임성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게임에서 마을을 만드는 부분이 웹 시뮬레이션 게임들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항상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아도 되고, 게임 내용 자체가 길드나 동맹 등의 커뮤니티를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PC 온라인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비는 시간에 조금씩 즐겨줬으면 좋겠다.
PC 앞에 앉아서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을 하면 되지 않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는 사람들도 잠깐씩 비는 시간은 있을 테고, <로드 오브 나이츠>는 그 비는 시간에 할 만한 게임이다. 캐주얼 게이머보다는 코어 게이머들이 많이 즐겨줬으면 좋겠다.
<로드 오브 나이츠>의 유저 인터페이스(UI)를 보면 일본의 카드형 소셜게임 같은 세로 UI가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로드 오브 나이츠>의 UI는 정말 많이 연구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바하무트> 같은 경우, 일본의 피처폰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져서 그런 UI를 갖고 있는데, 나도 스마트폰으로 플레이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일본 유저들이 이런 데 익숙해져 있어서 받아들여 주는 것 같다.
<로드오브 나이츠>는 이런 게임들과 다르다. 버튼 하나 하나 손끝 크기에 맞춰 아이콘을 배치했다. 에이밍에는 손이 무척 큰 이시카와라는 사원이 있는데, 항상 이 사원을 대상으로 삼아 이른바 ‘이시카와 체크’를 하고 있다. 이시카와가 버튼을 눌러도 두 개가 동시에 눌러지지 않게끔 아이콘 사이의 간격 등을 신경 썼다. 화면 좌우 스크롤도 손가락에 맞춰 밋밋하게 움직이지 않고 살짝 관성을 넣었다. 살짝 만져봤을 때 상쾌한 느낌이 들도록 구현했다.
한국 시장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로드 오브 나이츠>가 <SD삼국지>만큼의 성과를 거뒀으면 한다. 한국은 현재 구글 플레이에서 세계 2위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런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목표일 텐데, 그 전에 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일본 온라인게임 업계에서 이름을 알렸지만, 이건 모두 한국에서 개발한 온라인게임의 퍼블리싱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온라인게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나와 에이밍이 만든 게임이 한국 유저의 마음에 든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