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양궁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입니다. 한국 지도자에 대한 해외의 수요가 높죠. 태권도 사범들은 1960년대부터 해외에 나갔습니다. 국기원에 따르면, 현재 해외에서 활동 중인 사범의 수는 2만 여명. 양궁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지도자의 해외 진출이 두드러집니다. 2012년 올림픽에 출전한 40개국 가운데 한국인 감독이 있는 곳이 무려 11곳이나 됐죠.
두 종목만큼 한국 선수의 실력이 출중한 분야가 있습니다. e스포츠입니다. 이제동, 장민철, 문성원 등이 북미와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죠.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말 한국 e스포츠는 사상 처음으로 해외 진출 지도자를 배출해냈습니다 . 지난해 10월 28일, 전 제닉스 스톰 매니저 이인철은 VED(Vietnam eSports Development, 이하 ‘베트남 e스포츠’)의 e스포츠 감독이 됐습니다. 현지에서는 이 감독이 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환영 인파가 몰렸을 정도로 큰 이슈가 됐죠.
해외에 나간 지 두 달 남짓. 한국 최초의 해외 진출 e스포츠 지도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디스이즈게임(TIG)은 베트남에서 고군분투 중인 이인철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
베트남 공항에서 환대받은 한국 e스포츠 지도자 이인철 감독
호치민 공항에서 이인철 감독을 기다리고 있던 베트남 e스포츠 선수들과 팬들.
공항 도착 후 자신이 가르쳐야 할 선수들을 만난 이인철 감독.
그 후 현지 방송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인철 감독. 이 감독은 “인생에서 받은 가장 큰 환대”라고 그 날의 상황을 기억했다.
2013년 10월 28일, 베트남 호치민 공항 입국장은 마치 한류 스타를 맞이하는 것처럼 젊은이들로 붐볐다. e스포츠 선수들과 팬들이 한국에서 오는 e스포츠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이인철 감독.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환영 인파에 이 감독은 깜짝 놀랐다. 이런 환대는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 베트남 e스포츠 열기와, e스포츠 종주국 출신 감독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 감독은 이튿날부터 ‘베트남 e스포츠’ 사무실로 출근했다. 베트남 e스포츠는 현지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서비스하는 회사. 두 개의 프로팀이 이 회사에 속해있다. 사이공조커스(SAJ)와 사이공판타스틱파이브(SF5). 이 감독의 공식 직함은 인스트럭터다. 두 팀에 관한 모든 지도는 그가 책임진다. 이 감독은 출근 첫 날부터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게이밍하우스가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열흘 정도 사무실로 출근한 뒤 게이밍하우스가 문을 열었죠. 제가 부임하기 전 선수들은 사무실 한쪽으로 출근해 훈련했습니다. 제가 오기로 하면서 게이밍하우스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던 거죠. 제가 오는 타이밍에 완성을 못해 11월 중순부터 게이밍하우스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이제 두 팀 선수들은 출퇴근 없이 게이밍하우스에서 합숙하며 훈련할 수 있게 됐다. 우리에게는 낯익은 장면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시스템. 이 감독의 요청사항이었다. 게이밍하우스 위치는 호치민 시의 중심가인 시청 근처 18층 짜리 빌딩 속. 이 감독의 숙소는 10층이고, 게이밍하우스는 8층이다.
“제가 여기 오면서 회사에 원했던 것이 한국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는 거였습니다. 이제 선수들은 여기 살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훈련하고, 일요일 쉬는 식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물어보면 선수들은 좋다고 하는데, 말이 잘 안 통하니까 정말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열심히 하겠다는 열의가 보여서 맘에 듭니다.”
게이밍하우스에 들어온 선수들은 학교를 다니다가 프로게이머로 발탁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이 감독과 전담 통역, 그리고 일정과 기타 업무를 처리하는 매니저가 이들을 돕는다. 베트남 e스포츠에 출근하는 직원들도 그 밖의 업무에서 이들을 도와준다.
멀리 외국에서 감독을 불렀으니, 이 감독의 대우는 한국보다 좋은 편이다.
“정확하게 계약조건을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요, 한국에서 받는 것보다 급여는 조금 더 많이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잘 해줘서 불편함 없이 살고 있습니다. 물가는 한국의 반의 반 정도 느낌이 들고요. 싱가포르에 있는 본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 기간은 따로 없고, 회사원들처럼 매년 연봉 협상을 하게 돼있습니다.”
베트남 선수들과 이루고 싶은 목표는 롤드컵 진출과 GPL 우승
베트남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계에는 5~6곳의 프로팀과 5~6개의 프로-아마 경계의 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감독이 지도하는 SAJ와 SF5는 그 중에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팀들. 최근 끝난 GPL 겨울 리그에도 베트남 대표로 출전했다. 동남아 최고 리그인 GPL(Garena Premier League)은 5개 국가의 12개 팀들이 참가하며, 1등에게 400 서킷 포인트와 8만 달러를 준다.
“선수들의 현재 수준은 아무래도 한국 선수들보다는 조금 못 미치는 게 사실입니다. 현재는 거의 대만과 비슷한 수준 같아요. 처음 가르칠 때는 좀 답답하긴 했는데, 흡수하는 것은 확실히 빠릅니다. 제 이야기를 새기면서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게이밍하우스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전략과 전술을 가르치고 있는 이인철 감독.
베트남은 유교문화가 배어있는 나라다. 대가족이 함께 사는 게 일상적이고, 경로사상이 강한 편이다. (국제결혼에서 베트남 신부들이 인기 있는 이유기도 하다.) 스승의 권위도 당연히 세다. 이 감독의 권위도 마찬가지. 게다가 베트남 선수들은 좋은 지도자로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에 대해 목 말라왔다.
“제가 처음 선수들을 만났을 때, 미리 정신교육을 받은 건지 저에 대한 신뢰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지적을 해서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하면 본인들이 원래 잘 하는 것도 다 버리고 일단 시키는 것부터 하는 게임을 많이 했거든요. 아마 말레이시아 팀을 이틀 동안 코치했는데 그 때 소문이 퍼진 것 같아요.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 같다는. 또, 문화적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의견이 부딪치려 하면 대부분 제 방식에 수긍해버려요. 저는 뭐 ‘그냥 그런갑다’ 하는 스타일이어서…. ”
베트남 MMORPG 유저들이 ‘전쟁’ 코드를 좋아하듯, 베트남 선수들은 호전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런 기질을 숨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련미는 부족하다. 이 감독이 오기 전까지 체계적인 훈련을 해보지 못한 탓이다.
“선수들이 열의가 높습니다. 출발점이 다르니 성장 속도로 한국보다 빠르고요. 하지만, 주로 감이나 관행으로 플레이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게임 리플레이를 보면서 ‘왜 이렇게 했어?’라고 물어보면 ‘원래 하던 대로 했다’거나 ‘그게 좋은 것 같았다’ 정도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게임을 이기려면 상황 정보를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죠. 움직이는 판단의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인생도 그렇지만, 게임도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그 전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해줘야 하는데, 결과의 좋고 나쁨만 중시하면 체계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이인철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이 한국팀과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못 한다면 제가 선수들을 잘못 가르친 것이겠죠.(웃음)”
그렇게 두 달 가까이 가르친 덕분일 것이다. 연습할 때도 지면 스트레스만 받던 선수들이 이제는 지는 경기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져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은. 이 감독의 지도 덕분에 SAJ와 SF5 선수들은 지면 분해만 하던 단계에서 지더라도 무언가를 배워서 강해지는 단계로 성장했다.
“아무래도 출발점이 다르다 보니 성장속도가 빠릅니다. 한국은 게임에 대한 자신의 이론이 있을 정도로 이미 성장한 선수들이 팀에 들어오지만, 그것을 팀 플레이로 바꾸는 작업은 꽤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그 부분을 허물어 내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게 굉장히 빨라요. 다만, 빠르게 적용은 하는데 그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 같아요. 아직은 제 주문한 것을 가져다 쓰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이 감독을 만난 선수들의 팀 경기력은 꽤 향상됐다. GPL 겨울 리그에서 부진했던 팀이 그의 지도를 받고는 승리에 익숙하게 됐다.
“SAJ는 제가 와서 2주 때까지 GPL에서 최하팀과의 대전을 빼고는 5연패를 하고 있었죠. 그때 제가 푸시메타를 변형해서 가르쳤던 게 주효해서 이후 4연승을 해 조별리그를 통과했죠. IEM 싱가포르 시즌8에서는 나중에 CJ에게 지긴 했지만, TPA를 2:0으로 이겼죠. 이후 GPL 8강에서도 3승 1패를 했고요. 지도한 지 3주 정도 지나고 나서 상승세를 타는데 성공한 거죠. SF5는 상승세를 늦게 타서 GPL 조별 예선을 떨어졌지만, 지금 성적은 나쁜 편은 아니에요.”
IEM 싱가포르 시즌8에서 대만의 강팀 TPA를 물리치고 기뻐하는 사이공조커스 선수들과 팬들.
SAJ는 아쉽게 2014 GPL 겨울 시즌 4강에서 TPA에 2:3으로 졌다. TPA는 결국 우승했고, 4위를 한 SAJ는 1만 5,000 달러의 상금과 100점의 서킷 포인트로 만족해야 했다.
“경기력의 향상이 있어서 4강까지 올라갔죠. 회사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주시면 됩니다’라고 완전히 저에게 팀들을 맡기고 있어요. 보고도 안 받고요. 특별히 요청하거나 주문하는 게 없어서 그게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제가 가진 팀 목표는 롤드컵 진출과 GPL 우승입니다.”
외로움 빼고는 별 불편 없는 베트남 생활
아직까지 베트남 생활은 크게 어려운 점은 없다. 베트남 e스포츠는 필요로 하는 모든 지원을 해주고 있다.
“어떤 지원이 있다고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국에서 시설이 약간 부족해도 정신력으로 극복해 오는데 익숙했던 저로서는 행복하네요. 사실 게임을 잘하는 데는 ‘헝그리 정신’도 필요한 법인데, 오히려 그런 부분을 걱정해야 될 정도입니다.”
기후와 음식도 별 문제가 없다. 동장군이 무서운 요즘 한국과 달리, 베트남의 겨울은 추운 게 아니라 덜 더운 편이다. 대부분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 베트남 음식도 다른 국가보다는 우리나라와 가깝고, 이 감독도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다.
“지금은 여기도 겨울이라 따뜻한 정도이긴 한데, 여름이 오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먹는 것은 큰 문제는 없어요. 아직 음식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이긴 하지만요. 흔히 아는 쌀국수도 여긴 종류가 너무 많아요. 향신료 고수(샹차이)가 들어간 음식은 아직 먹기 어렵습니다.”
숙소와 직장이 같은 건물에 있다 보니 외부에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다. 외부로 나갈 경우 주요 이동수단은 오토바이와 택시.
오토바이로 가득찬 호치민 시내의 일상적인 모습. 오토바이 뒷자리에 분필로 적은 숫자는 식당 등에 주차시킬 때 적는 일종의 주차 번호다.
“여기는 차를 다닐 필요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매니저나 선수들은 다 오토바이를 갖고 있어요. 제가 오토바이로 이동할 때는 뒷자리에 앉습니다. 공식적으로 이동할 때는 택시를 이용하는데, 기본료가 우리나라 돈으로 600원 정도예요.”
회사가 대부분의 편의를 봐주고, 별다른 불편함이 없는 생활을 하지만 이 감독에게도 고충은 있다. 외로움이다.
“사실 외로운 게 제일 힘들죠. 선수들 지도하느라고 정신 없이 지냈지만, 가끔 외로움을 느낍니다. 관심이 필요한 영혼이랄까. (웃음) 갑용이 형(제닉스 스톰 김갑용 감독)이랑 자주 연락하고 있습니다. 은퇴한 영관(제닉스 스톰 김승관)이는 군대 가기 전에 한번 오라고 했는데 아르바이트 한다고 아직 안 오고 있네요.”
그가 베트남으로 가게 됐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물어봤던 질문 중 하나. 혹시 베트남 여자와 결혼할 생각도 있을까?
“말이 통하고, 예쁘고, 착하다면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 분이 저를 좋아할 지가 문제네요.”
e스포츠 지도자의 해외 진출에 대해
이 감독의 해외 진출은 PC잡지 객원기자, 인터넷 방송 게임 해설과 캐스터, 프로팀 매니저 활동 등 그 동안 그가 거쳐왔던 도전적인 행보의 연장이다. 그럼에도, 말도 안 통하는 생면부지 외국 선수들을 맡기 위해 혈혈단신 낯선 땅으로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네.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지 생각도 많이 했고요. 이번에도 이것저것 생각하기보다, 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입니다. 이직을 결심하면서 수십 번씩 ‘내가 미쳤지’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저는 프로게이머 출신도 아니고, 중계 캐스터도 정식 절차를 밟아서 시작한 게 아닌 ‘길거리 출신’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유를 이기는 단 하나의 이유는 ‘하고 싶으니까, 좋아서’인 것 같아요. 이번 결정도 그렇게 이뤄진 겁니다.”
외국에서 그를 찜한 것은 그가 걸어온 도전적인 경력과 함께 게임을 객관적으로 보는 태도 덕분이다. 그는 정량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주요한 게임 지표들을 추출하고, 이를 게임을 리뷰하거나 선수들을 지도할 때 적용하려고 한다. <LOL>에서도 A/K(어시스트/킬) 값을 대응시켜 팀을 분석하려는 시도 등을 해왔었다.
“저는 게임 외에도 스포츠 중계 등의 경험을 꽤 다양하게 거쳤지만, 정작 프로게이머로서의 경험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직접 게임을 잘 해서 지금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게이머 출신의 분들과는 다른 관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당연히 게임 쪽의 경험이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축구나 야구 등의 중계 경험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데요. 특히 야구의 정량화되어 있는 수치들과 축구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는 간단한 기준들(퍼스트 터치라던가, 공을 잡기 전과 바라본 후의 시선 등 실제 경기 결과와는 상관없지만 축구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기준) 등을 게임에 접목시켜 보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전적인 경력과 분석적인 태도가 그를 국내 최초의 e스포츠 지도자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앞으로 e스포츠 지도자가 해외로 진출을 할 경우, 그는 본의 아니게 그 기준 또는 참고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제가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부담이 많이 됩니다. 열심히 해야겠죠. 그것밖에는 답이 없네요.”
한국의 e스포츠 수준을 고려하면 지도자의 해외 진출이 너무 늦게 이뤄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감독은 언어 문제와 한국 e스포츠의 교육 및 라이선스 시스템 부재를 핵심 이유로 꼽았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의 장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한국에서도 코칭스태프에 대한 교육절차나 라이선스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해외 진출이 늦어진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저 같은 경우도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하면서 이곳에서 할 일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외로 진출하려는 지도자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디스이즈게임(TIG)의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제가 조언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우선 의사소통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 영어는 꼭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네요. 저도 이 부분에서 가장 고생하고 있습니다. 통역이 있더라도 선수들과 기초적인 의사소통 능력은 꼭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인데요. 아직 e스포츠에는 코칭스태프에 대한 검증이나 선수 교육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선수들에게 게임만 열심히 시킨다고 선수들이 잘해진다면, 코칭스태프가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수들과 팀을 이뤄나갈지도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이 부분은 유리하겠네요. 생각보다 게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많이 평가합니다.
해외에서 코칭스태프를 한다는 것이 누군가의 동경을 받을 만큼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결국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열정입니다. 저 같은 경우도 이 분야에서 뭔가 속 시원하게 끝장을 보고 싶어서 여기 온 것이니까요.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요소를 극복해야만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만, 이 분야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나타나는 장애물이 너무 많고 험난해 보이기만 할 겁니다. 장애물을 넘으면서 버틸 수 있는 끈기와 열정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