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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망각에 대항하는 게임,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프로듀서 엘린 페스퇴이와 문답을 통해 들여다 본 게임 제작스토리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임상훈(시몬) 2018-05-13 15:19:11

5월 8일 노르웨이에서 출시된 게임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에서 우리는 역사의 망각에 대항하는 게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 게임의 제작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여다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임상훈, 김규현 기자


 ※ 디스이즈게임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특별기획

[출시] 나치가 남긴 비극의 현장을 담은 게임이 나왔다

[리뷰] 게임이 역사의 비극에 대항하는 방법

[카드] 오늘도 난 아무 잘못 없이 맞았다. 나치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기획] 제작 스토리: 역사의 망각에 맞서는 게임

[칼럼] 디스이즈게임이 이 게임을 편애하는 4가지 이유


 

# 잊혀져가는 레벤스보른의 아이들

 

1945년 5월 8일 노르웨이, 2차대전은 끝났다. 하지만,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나치에 의해 잉태된 아이들. 이른바 ‘레벤스보른의 아이들’(Lebensborn Child)이 겪어야 했던 인생의 전쟁.

 

레벤스보른 시설 내부. 친부모는 아이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고, 아이들은 나치 친위대원 부부에게 입양됐다. 노르웨이의 레벤스보른은 1941년부터 설치돼 1945년까지 유지됐다. 

  

인종학과 우생학에 광분했던 나치가 남긴 비극이었다. 유럽을 장악할 순혈 아리아인을 급속히 늘리기 위해 조성된 아기 배양소, 레벤스보른. 나치는 푸른 눈과 금발의 북방인종이 사는 노르웨이에 적극적으로 이 황당한 시설을 설치했다. 9곳의 레벤스보른에서 약 1만 2,000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종전 후 독일 가정에 입양되지 않고 노르웨이에 남겨진 아이들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됐다. 증오가 팽배한 혼란한 사회 속에서 멸시와 모욕을 견뎌야 했다. ‘티거반’(독일자식)이라고 불리던 이들은 성장하며 계속 박해를 받았다. 수치와 두려움 속에서 숨죽여 지내야 했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큰 사회 문제였다.

 

나치가 뭔지도 모른 채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가 나치 독일군이었다는 이유로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는 이 일을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직 기자 출신의 엘린 페스퇴이(Elin Festøy)는 이런 사실을 안타까워 했다. 2015년 초 그녀가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이라는 게임을 구상하게 된 이유다.

 

“노르웨이에 사는 노르웨이인으로서 우리는 우리 나라에 거주하는 독일군의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듣게 됐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년 동안 그들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군’이 자신들의 증오를 무고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퍼붓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에 등록된 아이들이 겪은 고통도 전해줘야 한다고 느꼈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을 꼭 알리기로 결심한 전직 기자 출신의 엘린 페스퇴이 프로듀서

 

 

# 역사의 망각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게임이 선택된 이유

 

그런데 왜 게임이었을까? 영화와 드라마도 있고, 책과 음악도 있는데. 게다가 엘린은 게임 개발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게임을 택했다. 게임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의 큰 문제는 사회적 과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행동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 속에 파묻혀 산다. 하지만 게임은 스스로 경험하도록 하는 훌륭한 방법을 갖고 있다.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대신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고통 받는 아이의 사연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렌>의 개발 주역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로듀서 테크노필롯 소속 엘린 페스퇴이(Elin Festøy), ​사렙타 스튜디오 소속 선임 프로그래머 리차드 바로우(Richard Barlow​), 아트 디렉터 키아르탄 바이뤼 포르툰​(Kjartan Widerøe Forthun​), CEO 겸 선임 디자이너 카타리나 듀 뵐러(Catharina Due Bøhler​)​.

 

다행히 그녀에게는 게임 개발사를 운영하는 지인이 있었다. 사렙타 스튜디오의 CEO 카타리나 듀 뵐러(Catharina Due Bøhler)는 엘린의 아이디어에 호응했다. 카타리나와 사렙타 스튜디오는 아트와 프로그램, 플레이 메카닉 등 게임 개발 전반을 맡았다. 엘린은 역사를 연구하고 레벤스보른 출신의 아이들과 대화에 집중했다. 게임이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운명을 표현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프로듀서 엘린의 몫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귀중한 도움을 줬다.

 

“다른 사람의 스토리를 말하려 할 때에는 항상 위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전체 게임 개발 과정에서 노르웨이에 소재한 레벤스보른 협회와 여러 명의 레벤스보른 아이들과 밀접하게 협업했다. 워크샵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한 CBOW(전쟁으로 태어난 적군의 아이들, Children Born of War) 주제를 연구하는 최고의 과학자 그룹,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입은 아이들 및 바디랭귀지 전문가들과도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게임 베타테스트에도 우리에게 도움을 줬다.”

 

 

# 백발의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

 

레벤스보른 생존자는 백발이 성한 70대였다. 모바일게임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조금 밖에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바일게임이 젊은이들과 접촉하는데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했다. 보통의 훌륭한 할아버지나 할머니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고통과 학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접하며 엘린은 감동과 함께 경건함마저 느꼈다.

 

그들은 증오로 가득찬 밀실 공포증에 시달리던 상황과 그것이 그들에게 미쳤던 부정적 영향이 시간이 지나며 누적됐던 경험을 보여주는 게임의 시도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에 진정 원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CBOW의 운명에 대해 듣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오늘날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엘린과 토르라이프 블라트(Thorleif Blatt​) 레벤스보른 협회장

 

엘린이 아픈 역사를 소환하려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CBOW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다. 보스니아 내전, 콩고전쟁, 나이지라아 내전 등 최근에도 대량학살과 함께 반복되고 있는 비극이다. 91~95년 사이 보스니아에서는 2만 여명의  보스니아 무슬림 여인들이 세르비아 군인과 민병대에 의해 계획적으로 강간당했다. 임신한 여자들은 갇혀있다 낙태가 불가능한 시기에야 풀려났다. 인종학살을 위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악마의 행위였다. 2000년대 초반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단체 보코하람은 수많은 여학생을 납치해 임신을 시켰다.

 

“모든 충돌에서 태어난 CBOW가 있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전후 시기에 고통을 겪은 적군의 아이들인 CBOW 글로벌 그룹의 일부일 뿐이다. 모든 그룹이 같은 유형의 과제를 안고 있음을 연구가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흥미로운 실제 스토리를 말하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에 적을 향한 증오심이 무고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분출되는지에 생각해 보도록 만들기 원한다. 스토리의 핵심은 ‘그것들이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이다. 게임은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주변의 사회가 취하는 태도에 대해 다루려고 시도했다.”

 보코 하람에 납치된 여중생을 애타게 기다리는 학부모들. 여중생들은 보코 하람의 강제 임신으로 또 다른 피해를 겪어야 했다.

 

 

# 단순한 스토리 전달이 아닌 흥미로운 게임플레이 경험의 제공

 

엘린과 사렙타 스튜디오는 서두르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주제와 게임플레이 조정에 관해 논의하는데 투자했다.

 

“우리는 단순히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지양했다. 우리의 주된 초점은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흥미로운 게임플레이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의미가 있는 게임이 플레이하기에 재미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게임 경험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게임이 ‘유익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게임이 재미없다는 소리로 들린다. 의미를 가지면서 훌륭한 게임은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플레이가 재밌는 것은 물론 플레이한 후에 흥미로운 통찰력과 사고를 남겨야 한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에서 플레이어는 제공되는 모든 조각을 한데 합침으로써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아이의 경험과 연관된 스토리를 플레이하는 동안 아이의 배경 그리고 아이가 처한 모든 어려움의 이유에 대해 알아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것의 일부로 2차 세계대전 동안 노르웨이의 CBOW와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생물학적 엄마에게 편지 보내기(왼쪽)와 '독일인 노르웨이 입국 절대 반대'사설. 게임에는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만날 사회적 상황이 잘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레벤스보른의 실제 이야기를 올바른 방향으로 풀어가는 것과 아이를 위해 개성을 가진 복잡한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플레이어는 아이의 바디 랭귀지에서 자기 행동의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고 다양한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에 정말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게임 속에는 레벤스보른 아이들과 관련된 보편적인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엘린과 사렙타 스튜디오는 게임 속에 대표성을 가지는 실제 역사적인 스토리를 넣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대부분 가난한 한 부모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입양을 꺼렸을 것이다.) 따라서 게임플레이 안에서 플레이어는 편부 또는 편모이며 돈을 벌어야 하고 시간 단위를 관리하여 아이를 부양해야 한다. 게임플레이는 이러한 방법으로 플레이어에게 역사적 컨텍스트를 보여준다.

 

무고한 아이가 자신이 겪는 아픔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 속에는 Mr. Berg라는 엄격하지만 공정하고 소신있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역시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증언에 기반한 캐릭터이다.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모든 레벤스보른 피해자들은 특정 인물의 친절이 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사회가 부정적일 때, 그러지 않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매우 큰 희망을 준다. 우리는 ‘훌륭한 개인’의 대표자로서 선생님을 갖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사례들도 있었는데, 한 레벤스보른 피해자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말한 유일한 선생님, 그리고 그것이 내가 교육을 받는데 필요한 자신감을 주었다"고 우리에게 증언하기도 했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가 그런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유저들은 게임에서 학대와 차별의 시기에도 한줄기 희망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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