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뒤면 봉준호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한다. <기생충>으로 영화사를 새로 쓴 봉준호의 컴백이다. 문득 다큐멘터리 <봉준호를 찾아서>가 떠오른다. 2015년, 세 명의 고등학생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 무작정 봉준호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별다른 인맥이 없었던 이들은 페이스북을 뒤지고, 영화 잡지사를 찾아가고, 영화과 교수들에게 전화를 돌리면서 봉준호를 만나려 시도하지만, 어른들은 난처한 기색을 보인다.
어떻게든 봉준호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천진난만한 바람은 세 학생이 봉 감독이 자주 찾는다는 카페에서 이루어진다. 천진난만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간 잊고 왔던 꿈과 낭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봉 감독은 세 학생에게 "무언가를 상정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진심은 통한다'라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긴 이 다큐는 서울시립 청소년미디어센터에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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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배경이 된 한강에서 사진을 찍은 <봉준호를 찾아서>의 세 감독
최근 기자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 2>에 푹 빠졌다.
<마피아> 시리즈를 개발했던 2K 체코의 개발자들은 15세기 보헤미아 왕국의 후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일인칭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전편은 미흡한 최적화와 수많은 버그로 인해 출시 초기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개발진의 꾸준한 노력으로 문제점들을 해결해 냈다. 개발사 워호스는 곧장 속편 개발에 착수했고, 지난 5일 출시된 후속작은 최적화와 버그 문제를 대폭 개선하면서도 전작의 장점을 잘 살려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게임은 스팀에서 약 16만 명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했다. 워호스는 투입된 개발비 600억 원(10억 코루나)을 출시 하루 만에 회수했다. 서유럽과 북미의 AAA급 게임들보다 낮은 가격인 60,8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퍼블리셔 딥실버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 2>가 벌써 200만 카피 이상 판매되었다고 발표했다. 폴란드에 <위쳐>가 있다면 체코에는 <킹덤 컴>이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유럽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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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컴: 딜리버런스 2>
기자가 <킹덤 컴: 딜리버런스 2>에 푹 빠진 이유는 중세식 블랙 유머가 게임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게임의 주인공 헨리는 중요한 순간에 딱 한 번 정도 역사를 바꿀 수 있지만, 왕위 쟁탈전의 큰 역사에서 그는 일개 병정에 불과하다. 게임의 귀족들은 신앙에 살고 명예에 죽지만, 평민들은 천국이 있으므로 현세는 아무래도 좋다는 마인드로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다.
이 게임은 <스카이림>처럼 드래곤이 나오지 않고, 용언 같은 마법을 쓸 수도 없다. 대신 헨리는 망치질을 하고, 물약을 만들고, 사냥을 하면서 중세 세계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워호스 스튜디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세에 푹 빠져 있는데, 게임스컴에서 만난 <킹덤 컴: 딜리버런스 2> 부스에서는 갑옷 입은 병사들이 중세 검술을 시연하고 대장장이가 갑옷을 손질하고 있었다. 중세 '덕후'들은 그렇게 최고의 중세 시뮬레이터를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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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게임스컴에 출전한 <킹덤 컴: 딜리버런스 2> 부스. 마침 기자 말고는 아무도 앞에 서 있지 않았는데 대장장이 역할을 맡은 저 사람은 계속 갑옷을 손질하고 있었다.
게임사들의 경쟁이 날로 심해지는데, 게임 이용률은 줄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장에서도 결국 진심은 통하게 되어있다.
<데이브 더 다이버>의 황재호 디렉터는 공식 자리에서나 사석에서나 <용과 같이>의 팬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용과 같이>에서 야쿠자들이 장사를 하고, 골프를 치고, 야구를 하고, 낚시를 하는 모습에서 <데이브 더 다이버>의 영감을 받았다. 지난 12월 <데이브 더 다이버>는 500만 장의 판매고를 돌파했고, 최근에는 <용과 같이>와 컬래버레이션을 발표했다. 황재호 디렉터는 마침내 '성덕'이 됐다.
고백하건대 기자는 서브컬쳐 게임과 격조하는 타입의 게이머다. 하지만 서브컬쳐 게이머들의 '진심'은 감히 기자의 필설로 옮길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느낀다. 킨텍스의 장사진과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을 볼 때마다 기자는 경외를 느낀다. 시프트업은 지난 주말 <승리의 여신: 니케>의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열었다. 4,400석은 전부 매진됐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공식 MD를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이것이 개발사와 게이머의 '진심'이 아니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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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같이>의 이치반이 반쵸 스시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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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5일 열린 <승리의 여신: 니케> 오케스트라
인공지능을 쓰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AGI에 진심이나 '덕후', '성덕' 같은 개념은 없다. (물론 특정 대상을 좋아하는 것처럼 트레이닝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몰두야말로 창작자에게 주어진 소중한 퍽(Perk) 아닐까?
그러므로 기자는 인공지능을 쓰지 않는 게임보다 진심 없는 게임이 더 빠르게 도태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 '진심'이 그저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사겠지?'에 쏠린다면, 게이머들은 금방 알아보고 <킹덤 컴>, <데이브>, 또는 <니케>를 하러 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떻게든 봉준호를 만날 거야'나 '중세 게임을 만들어야지' 같은 천진난만한 진심이 필요하다. "Audentes Fortuna Iuvat", 행운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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