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겉으로 보기엔 자극적인 콘셉트로 점철된 퀄리티 낮은 게임처럼 보인다. 세일러복 차림의 주인공이 총으로 악령들을 퇴치한다는 콘셉트와 게임 초반부의 스산한 분위기와 점프 스케어 연출까지, 영락없는 저급 공포 게임 그대로다. 실제로 게임은 스팀 출시 당일에 긍정적 평가 30개, 부정적 평가 41개로 ‘복합적’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인 평가가 크게 늘고 있다. 현재는 ‘매우 긍정적’ 등급으로 평가가 뒤집어졌다. 한국어 리뷰에서도 “영화 한 편 본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있다” 같은 호평이 이어진다.
게임명: 긴키영무국 (近畿霊務局 - Kinki Spiritual Affairs Bureau)
장르: 액션, 어드벤처, 슈팅, 공포
출시일 및 플랫폼: 2024년 10월 4일 / Steam
개발 및 유통: 노토 무테키(Noto Muteki)
가격: 11,000원
한국어 지원: 공식 지원 안 함(유저 한국어 패치)
플레이 타임: 4시간 내외
게임 플레이 차원에서 <긴키영무국>은 완성도가 매우 떨어진다. QA 작업이 있었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멀쩡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단연 최적화다. 프레임 저하가 체감될 정도로 심각해지다가도 다른 미션으로 넘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프레임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비주얼만 봐서는 그리 높은 사양의 게임도 아닌데 CPU와 메모리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다. 진행 도중 한번은 컴퓨터가 먹통이 된 적도 있고, 게임이 중단되어 진행 경과가 완전히 날아간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그럼 조작감은 좀 나을까? 그것도 아니다. 기본 이동속도가 너무 느려서 달리기 키를 상시 입력하고 있어야 한다. 점프는 존재하지만 정작 넘을 수 있는 구조물은 거의 없다. 때문에 건물 앞 작은 발 디딤돌도 올라가지 못해 이동이 막힌다. 건 슈팅 액션의 기본적인 문법도 무시해 우클릭으로 정면을 조준해야 모든 공격이 가능한 난해한 조작이 요구된다.
이러한 조작감은 불친절한 UI와 겹치면서 플레이어를 분노케 하는 상황을 만든다. 게임은 3인칭 숄더뷰 시점을 채용했는데, 화면 가운데 크로스헤어와 실제 조준점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크로스헤어로 적을 조준해도 벽과 구조물에 가려져 적을 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심지어는 수류탄, 섬광탄의 투척 궤도와 재장전 알림 같은 전투에서 꼭 필요한 정보들을 조금도 제공하지 않는다.
화면 가운데 크로스헤어와 실제 조준점이 일치하지 않아 짜증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먹었던 화장실 스테이지. 양쪽 화장실 칸에서 적들이 급습하는데, 조작이 불편해 상대하기 무척 까다롭다.
무엇보다 적들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죽은 줄 알았던 적에게 뒤통수를 여러 번 맞았다.
무엇보다 적들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죽은 줄 알았던 적에게 뒤통수를 여러 번 맞았다.
이런 문제들이 게임 진행 중 한두 번 발생해 흐름을 잠깐 끊는 수준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서사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 몰입을 방해하니, 이를 결코 좋게 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게임의 모델링이 유독 눈에 띈다. 게임 속 인물들은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풍의 조악한 모델링으로 표현됐다. 모델의 리깅도 제대로 안 됐는지, 총을 쥐는 손이 이상하게 뒤틀리기도 한다. 그런데 게임에서 등장하는 총기의 모델링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총기별로 장탄 수와 발사 소리가 다르게 표현되는 디테일도 살렸다. 방탄복과 전술 헬멧 등 전술 장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선 개발자가 능력이 없어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중요한 요소를 살리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후 드러나는 서사에서는 이 게임이 그저 못 만든 공포 게임이 아닌 일본의 심각한 사회 문제에 기초한 진지하고 심오한 전쟁물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캐릭터 모델링은 단순한데 전술 장비는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래부터는 <긴키영무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게임은 현대 일본에 위치한 가상의 마을 ‘사이가 마을’을 무대로 한다. 설정상 일본 정부는 늘어나는 악령으로 인한 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영무국’이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인공 ‘시라이시’는 ‘긴키영무국’, 즉 간사이(Kinki) 지방 영무국의 제령사다. 일종의 악령 전담 경찰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흔한 공무원의 평범한(?) 공무 집행.jpg
이들의 목표는 사이가 마을의 결계를 사용해 소멸해가는 지방 마을을 고립시킨 뒤 그곳에 악령들을 한데 모아 함께 소멸시킨다는, 속칭 ‘후나토 계획’이다.
악역 코히나타 과장이 주인공(그리고 플레이어)에게 '후나토 계획'에 대해 설명한다. 무지하게 구린 PPT와 함께.
영무국의 이 같은 계획에는 배후에 총리 내각과 언론, 자본의 유착 관계가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영무국은 훈련받은 악령들을 중심으로 한 군사 조직 ‘유(幽)격연대’를 휘하에 두고 있다. 사건의 전말을 모두 파악한 시라이시는 제2, 3의 사이가 마을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살아남은 사이가 마을의 무녀들과 함께 영무국과 전면전에 나선다는 것이 게임의 줄거리다.
이후 사건은 더욱 커져 일본 전체를 뒤흔드는 스캔들로 번진다.
게임 속 인물들의 대사에는 ‘말 맛’이 살아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부터 시작해 잠깐 등장하는 조연들까지도 대사 몇 줄로 자신의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게임 전반적으로 일본 특유의 B급 감성의 대사로 점철되어 있지만, 진지할 때는 뼈 있는 대사로 깊은 울림을 전하기도 한다.
어린 무녀가 씹은 쌀로 '쿠치카미자케'를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가능"을 외치고,
자신을 배신한 코히나타 과장을 "니코틴 쓰레기 오십견"이라 부르는 대단한 언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트라우마로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하는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시라이시와 코히나타 과장의 갈등을 통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영무국의 계획은 다소 극단적이었을 뿐,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게임은 엔딩 부분에서 시라이시의 대사를 통해 영무국의 의도가 틀린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며 플레이어에게 지금의 문제를 곱씹어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제임스 건 감독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그 중에서도 3편이 떠올랐다. 공통점은 불완전한 등장 인물들과 전반의 깔린 B급 위트, 종교적 심볼, 그리고 블랙코미디. 차이점은 영화가 완성도까지 잡았다면, 게임은 완성도 측면에선 엉망이라는 것.
게임을 끝내고 올라가는 스탭롤(1인 개발 게임이기에 내용은 에셋 출처 표기가 전부였다)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좋은 게임인가?” “글쎄.” 게임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하는 것이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분노를 떠올리면 “스토리는 좋았으니까”라는 말로 평가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기자가 이 게임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은 독자들에게 개발자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보자고 청유하기 위해서다. 그의 전작 <스테이호머>를 살펴보면 특유의 강렬한 블랙코미디가 그의 개성임을 알 수 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 있는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다.
작품 전반에서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연출들이 등장하지만,
사이가 마을의 무녀 '아야네'가 도쿄 대학 진학을 꿈꿨다는 설정은 이후 그녀의 희생을 더욱 숭고하게 만들고,
그녀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시라이시의 다짐과 함께 나오는 피안화는 이 게임의 연출이 얼마나 영화적인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