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마교주가 나빴다. 올리지 말라고 했다. 신신당부했다. 기사가 올라왔다. 뽀록났다. 앗, 이것 일본어에서 온 말. 들켜버렸다.
1월이었다. 나는 한 모임에 초대됐다. 게임에 관한 발표를 부탁 받았다. 어리버리하게 했다. 그날 그 모임의 멤버가 됐다.
즐거움에는 대가가 따랐다. 엉겁결에 SDF 연사가 됐다. 7~8분의 시간이 배정됐다. 그 시간에 ‘한국 게임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매력적으로 발표해야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원고를 대충 썼다. 10분이 훌쩍 넘었다. 많이 깎아냈다. 알짜가 빠졌다며 멤버들이 아쉬워했다. 뜯어 고쳤다. 파워포인트 페이지수를 줄였다. 또 줄였다. 발표 내용을 파워포인트 10페이지에 포개넣었다.
난생 처음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가수 이승철이 이용한다는 논현동 스튜디오(Photo Ray 1)에 갔다. 메이크업을 받고 카메라 앞에 섰다. 신기했다.
결과물이 나왔다. 넌 누구냐?
5월 20일 발표 하루 전 리허설을 하기로 했다. 집에서 발표할 내용을 외웠다. 내 발표에는 수치 자료가 거의 없었다. 스토리 중심이었다.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통째로 외워야 했다. 썰을 푸는 1~2시간 발표보다 훨씬 어려웠다.
타이머를 재며 스토리를 읊었다. 8분 정도 걸렸다. 거울 앞에서 지겨운 얼굴을 보며 발표 시뮬레이션을 했다. 중간중간 말을 씹었다. 그럭저럭 외웠다, 고 생각했다.
5월 19일 난생 처음 동대문플라자로 갔다. 실제 방송할 곳에서 리허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무대 위에 앉을 의자가 덩그러니 있었다.
마이크를 차고, 무대 위 의자에 앉았다. 무대 앞에 발표자를 위한 4대의 모니터가 보였다. 각각 ▲방송되는 내 모습 ▲현재의 PT 페이지 ▲다음 PT 페이지 ▲타이머를 보여주는 용도였다.
내가 발표할 순서가 왔다. 서있어야 할 지점으로 갔다. 하일라이트 조명이 나를 비췄다. 인사를 하고, 내 소개를 했다. 메인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됐다. 멍~해졌다. 머리가 하얘졌다. 백지. 아무 것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난생 처음, 날것의 ‘멘붕’을 경험했다. 강렬했다.
어버버버 말을 더듬다, 어영부영 발표문을 넘겼다. 서둘러 내 순서를 마쳤다. 식은땀이 났다. 부끄러웠다. 앞에는 겨우 10명 남짓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생방송 무대의 압박을 실감했다. 리허설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집으로 왔다. 원고를 20% 이상 또 덜어냈다. 얼른 잤다. 생각해보니 혼자 외는 건 필요 없었다. 거울을 보고 하는 연습은 무용지물이었다. 거울 속에 있는 건 가장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튿날 SDF 시작 전 회사에 갔다. 아브릴을 앞에 앉혀 놓고 발표 시뮬레이션을 했다.
아브릴은 타이머로 시간을 쟀다. 첫 연습에서 용케 7분을 맞췄다. 하지만, 아브릴이 찡그렸다. 말을 한 번 씹으면, 바로 그 다음부터 말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7분 남짓 생방송 발표시간의 압박이 그만큼 무거웠다.
이 실수 패턴을 염두에 두고 다시 시뮬레이션을 몇 차례 했다. 아브릴이 이쯤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동대문플라자로 출발했다. 밥을 먹고, 메이크업을 받고, 마이크를 찼다. 무대에 섰다.
초반 두세 번 말을 씹었다. 그 뒤부터는 그럭저럭 넘어갔다. 큰 사고 없이 마무리했다. 다행이었다. 리허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크게 느꼈다. 이런저런 곳에서 몇 차례 발표도 했고, 방송에 고정출연한 적도 있지만, 이번 경험은 무척 특별했다. 생방송과 무대의 수준, 관객의 규모, 7분이라는 매우 제한된 시간. 한 뼘은 자란 느낌이 들었다.
신라호텔 풀밭에 갔다. 럭셔리한 리셉션이었다. 처음 먹어봤다. 프랑스산 푸아그라와 트러플 매쉬드 포테이토.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에일리가 제일 좋았다.
리셉션이 끝난 뒤 함께 강연을 준비한 사람들과 찻집에 가서 간단한 품평회를 했다. 리허설 때의 우려와 달리, 모두 만족스러워 했다.
다음날, 우리는 인사동 '식구 프로젝트'에서 다시 만났다. 쫑파티를 했다.
멋진 곳에서, 고마운 사람들과, 진기한 맥주를 마셨다. 운이 좋았다. 꽤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인생의 한 챕터를 시마이, 앗 또 일본어... 마무리했다. sim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