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이 11월 30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게임이용자 패널 4차년도 연구'(이하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동안 아동·청소년과 학부모 2,000여 명을 직접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연구에는 게임을 사용하는 패널의 뇌검사 등의 임상 의학 방법 설문조사 및 정성조사 등이 활용됐다. 연구진으로는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를 비롯한 22명의 연구자가 참가했다.
보고서는 총 756장 분량으로 연구 개요와 목적, 시행한 조사 방법 및 세부적인 연구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 보고서의 요약문을 바탕으로 ⓐ 아동·청소년에 게임에 과몰입하는 원인 ⓑ 게임과 정신장애 사이의 상관관계 ⓒ 게임이 청소년의 사회성 발달 등에 미치는 영향 3가지를 추려냈다. 보고서 전문은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바로가기)
연구진은 아동·청소년 게임 이용자 그룹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으로 구분했다. 연구진은 이어서 이들 대상자에게 게임과몰입 지수를 부여해 65점을 기준으로 점수가 넘으면 '문제적 게임이용군', 넘지 않으면 일반군으로 분류했다. 여기서 문제적 게임이용이란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좋지 못한 행동이나 사회적인 기능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정도로 게임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문제적 게임이용군과 일반군을 조사한 결과, 게임과몰입 지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게임을 하는 자체적 요인으로 볼 수 있는 '게임 시간'(게임 이용시간)이 아니라 이용자 자신의 '자기 통제력'이었다. 자기 통제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조절하는 것'으로, 이를 행하는 자기 통제력이 낮으면 게임에 과몰입되기 쉽다.
연구진은 낮은 자기 통제력의 원인으로 높은 학업스트레스를 꼽았다. 문제적 게임이용군은 정상군보다 낮은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 공통적으로 학업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업스트레스가 높을수록 게임에 과몰입하는 경향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세 그룹 모두 고르게 나타났다. 학업스트레스의 요인은 아래 그림과 같이 정리되었는데, 연구진은 학업스트레스가 부모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다.
연구 결과, 게임 사용 시간과 게임을 맺고 끊을 수 있게 하는 힘인 자기 통제력 사이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았다. 연구진이 게임 이용 시간이 많은 그룹을 3년간 살펴본 결과, 도덕성, 고독, 공격성, 자기통제, 행복 요인의 유의미한 변화는 관측할 수 없었다. 이들은 오히려 우울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연구진은 '게임 이용 시간'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심리적 영향력에 관계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진은 2014년부터 2017년 전반기까지 아동·청소년 169명을 대상으로 게임과몰입과 아동·청소년의 정신장애를 조사하는 데 쓰는 질문목록인 DISC-IV 사이의 연결관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169명 중 게임과몰입군은 19명, DISC 검사 위험군은 15명이었다. 둘 다 모두 겹치는 대상자는 단 1명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게임과몰입과 관련된 정신장애 유병률*을 6.67%로 추정했다.
* 유병률(prevalence rate): 일정기간 동안 한 집단 내에서 어떤 질병에 걸려있는 환자의 수 (출처: 의협신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순수 인터넷게임장애(Internet Game Disorder, IGD) 그룹과 ADHD가 공존하는 IGD 그룹의 뇌 연결성이 상당히 비슷하다. 연구진은 "우울증 공존 질환에 따른 인터넷게임장애의 진찰 결과는 그 패턴이 달랐기 때문에 IGD를 ADHD의 아형 질환으로 볼 수 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게임에 과몰입하는 것은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4년간의 추적 검사에서 일반군과 게임과몰입군 사이의 해부학적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게임 자체가 알코올 물질처럼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게임이 더 중독성이 강한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단, 연구진은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중독에 대한 기준이 발표된다면 문제적 게임이용을 물질 중독에 준하는 병리적 현상으로 판단하는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구를 이끈 정의준 교수는 지난 9월 '불법 온라인 게임물 사후관리 강화 포럼'에서 게임과 도박이 다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일각에서 게임과 도박을 동일시하는 근거로 두 콘텐츠 모두 ▲ 자신이 보유한 자원을 통해 놀이를 즐기고 상호작용적 표현 있는 등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인다는 것 ▲ '우연성'이 비중 있는 장치라는 것 ▲ 심리적·물질적 보상이 과다한 이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꼽았다.
하지만 정의준 교수는 게임과 도박이 본질적으로 다른 콘텐츠인 이유를 아래 4가지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 도박중독(물질중독)이 질병인 9개 기준 중, 게임 과몰입은 4가지만 충족함.
ⓑ 자존감, 물질 가치 추종도, 중독지수 3개 분야에서 두 콘텐츠는 정반대의 영향력을 보임.
ⓒ 도박은 '보상'만 강조된 콘텐츠지만, 게임은 보상뿐만 아니라 액션, 서사를 즐기는 재미가 있음.
ⓓ 폐쇄적인 도박과는 달리 보드게임부터 온라인/모바일게임까지 널리 커뮤니티가 있음.
관련기사: 도박과 동일시되는 게임. 게임은 정말 '도박'과 같은 성격일까? (바로가기)
# "게임중독이라는 낙인은 창의성과 가능성 말살"
연구진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한(정성조사) 결과, 다수의 청소년이 게임을 매개로 교우 관계를 맺고 있음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교우 간 게임을 즐기는 집단 경험이 긍정적인 정서적 에너지를 발현한다고 봤다.
정상군 아동·청소년의 경우 혼자보다 친구들과 함께 게임할 때 즐거움이 크다고 응답했다. 연구진은 이를 단순히 게임 자체에 대한 즐거움보다 집단 속에서 경험하는 즐거움의 비중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시기에 게임을 중심으로 단순 교우 관계 이상의 특정 집단을 형성했던 경험은 매우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아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아동·청소년은 PC방 같은 물리적 공간이나 게임 속 가상공간에서 게임을 하며 전략이나 서로의 정서를 공유하며 소속감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소속감과 유대감 같은 정서적 에너지는 모든 사회 작용에서 중요한 요소로, 정서적 에너지가 높은 쪽일수록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하 정성조사 결론 전문을 옮긴다.
- 결론적으로 청소년에게 게임은 단순 교우관계를 넘어 청소년기 사회화 과정의 핵심인 집단 형성의 경험을 제공하는 주요한 매개라는 측면에서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 특히 게임을 통한 정서적 에너지의 발현 과 유동을 경험하면서 유대감과 소속감을 가지게 되고 이는 개인에게 매우 긍정적인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됨을 알 수 있음.
- 그러나 이러한 측면은 매우 면밀히 살펴보아야하며, 특히 게임을 통해 자신만의 창작활동을 하며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유형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됨.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게임중독이라는 낙인을 새기는 것은 개인의 무한한 창의성과 가능성을 말살시키는 행위임. 따라서 게임에 대한 인식전환과 더불어 청소년의 직업 탐색의 가능성으로 게임의 역할에 대해 타진해야할 필요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