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 산업이 그 주무대를 '프리미엄 게임'으로 옮기고 있다.
이 흐름의 포문을 연 것은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이라 할 만하다. 이 게임의 성공에 힘입어 네오위즈는 콘솔게임 개발력을 강화하는 한편, 강력한 글로벌 팬덤을 갖춘 IP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라운드8 스튜디오가 있다. 라운드8에는 <P의 거짓>의 최지원 디렉터는 물론 이상균 디렉터, '수일배' 진승호 디렉터가 함께 일하고 있다.
현재 라운드8이 2025년 여름 출시를 목표한 DLC <P의 거짓: 서곡>은 글로벌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이미 수많은 <P의 거짓> 관련 인터뷰가 나왔지만, 창간 20주년을 맞아 라운드8 스튜디오의 박성준 스튜디오장을 오래간만에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P의 거짓>의 개발이 시작된 이유, 개발하며 느낀 점, 결과에서 느낀 교훈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듣고 싶었다.
<P의 거짓>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 콘솔게임의 시대를 맞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성준 스튜디오장은 게임의 퀄리티와 내러티브를 강조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라운드8 박성준 스튜디오장
Q. 디스이즈게임: 그러고 보니 라운드8 스튜디오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현재 개발 인력은 어느 정도 되는가?
A. 박성준 스튜디오장: 저희 스튜디오의 이름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야구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응원하던 팀이 너무 못 해서 잘 보지는 않지만, '약속의 8회'라는 말이 있지 않나. 모든 역전이 일어나는 시발점은 8회부터라는 믿음이 있다.
게임 개발에서도 같다. 실패할 수 있지만 약속의 8회에서 뒤집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든다. 아무리 큰 회사나 좋은 스튜디오라도 실패할 수 있는 것이 게임이다. 실패에 너무 좌절하지 말고 마지막의 승자가 되자는 마음이다. 현재 스튜디오 2개가 합쳐져 라운드8의 규모는 300명 정도다.
Q. 2019년 <P의 거짓>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콘솔게임을 개발하기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 게임사에게 콘솔은 불모지와 같았다.
A.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발은 2020년 시작했다. 2019년은 콘솔 게임을 만들자는 방향성을 정했던 때다. 게임은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산업이다. 굉장히 많은 게임이 실패하고, 극소수의 게임이 수익을 가져간다. 전형적인 '흥행 산업'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영화 산업이 생각하는 고민과 같다. 영화를 잘 만들어 대박 내면 좋지만, 스크린에 걸기 전에는 결과를 아무도 알 수 없다. 잘 만들어진 것 같은데 개봉하고 나니까 아닌 경우가 있다. 이런 하이 리스크 산업은 비즈니스적으로 투자하기 어렵다. 리스크가 큰데 '기도 메타'로 갈 수는 없지 않는가. 산업이 장기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영화도 게임과 비슷하게 진화를 해왔다. 좋은 영화를 위해선 좋은 감독이 있어야 하고,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있어야 한다. 감독 혼자 영화를 찍는 것은 아니므로 좋은 역량을 가진 스태프도 중요하다. 이런 팀이 만들어져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같은 관점에서, 게임에서도 좋은 역량을 가진 개발진을 구축해 리스크를 줄이고 지속적인 성과를 내고 싶었다.
게임에는 특징이 하나 있다. 국내 업계에서 2019년까지 만들어 온 것은 대부분 경쟁 베이스의 라이브게임이다. 성공하면 지속적이고 많은 수익을 가져오지만, 승자가 성과를 독식한다. 라이브게임은 '성공한 게임의 지속성'이 강하다. 전성기 시절의 모두는 아니겠지만 아직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애정하며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나. 20년의 역사를 가짐에도 말이다.
성공한 입장의 게임에게는 정말 좋겠지만, 도전자에겐 정말 어려운 영역이다. 반대로 콘솔은 대부분의 게임이 결국 플레이타임이 있다. 얼마나 게임이 얼마나 좋고 재미있던지간에, 최대 몇 달 동안 하나의 게임을 플레이하면 결국 다른 게임으로 넘어간다. 아무리 시장을 지배하는 대작이 나오더라도 다른 게임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시장이다. 이런 점을 잘 공략하고 싶었다.

2020년 올라왔던 <P의 거짓> 프로젝트 공고
Q. 직접 최지원 디렉터와 함께 경영진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들었다. 당시 어땠는가?
A. 당시가 2020년 초였다. 이미 전략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합의가 됐었고, 어떤 콘셉트를 가져갈 것이냐가 중요했다. 우려했던 것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소울라이크 장르가 제작 난이도가 높아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만들기가 어렵기에 진입이 힘들지만, 한 번 잘 만들기만 하면 경쟁자가 적으리라 생각했다. 요즘은 그런 액션 게임이 많이 나왔지만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마니아들에게 인정받은 게임은 더 적었다. 진입 장벽이 높다는 이야기는 성공하면 더 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지원 디렉터가 장르를 정말 사랑하고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컸다.
Q. 온라인 MMO나 모바일에서 콘솔게임 개발 체제로의 변화에 어려움은 없었는가?
A. 굉장히 어렵다. 이 부분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만드는 조직과 프리미엄 콘솔게임을 만드는 조직은 구조, 분위기, 구성원의 생각이 아예 다르다. 라이브게임은 한 팀이 그 게임을 쭉 개발한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게임이 잘 안되면 구성원을 줄이고, 신작을 만들기로 결정하면 새로운 팀을 셋업하고 인력을 채용한다.
프리미엄 타이틀은 이어지지 않는다. 사후 지원 패치가 있지만, 거기에 개발팀 모두가 매진하는 것은 아니다. 한 게임이 개발 막바지에 이르면 다른 타이틀을 준비해야 한다. 개발자가 차츰차츰 이동하다가, 한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나면 다른 프로젝트를 곧바로 프로덕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기존의 개발 구조에서 개발자들은 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에 익숙했다. 다른 프로젝트를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회사로 이적하는 것이지, 내부에서 프로젝트를 옮기기 쉽지 않았다.
콘솔게임 개발 스튜디오는 프로젝트의 경계가 희미하고, 개발진이 활발하게 소통해야 한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하니까 쉽게 옮겨야 한다. 그러나 저희 산업은 팀 단위로 한 프로젝트에 매진하다 보니 이것이 장벽이 됐다. 쉬운 변화는 아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Q. 그런 점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다들 처음이다 보니 "<P의 거짓> 만들 사람?"하면 선뜻 개발자가 손을 들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한데.
A. 그나마 상대적으로 라운드8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부분이 있다. 저희가 처음 개발한 <블레스 언리쉬드>는 콘솔 베이스의 액션 MMORPG였다. 프리미엄 콘솔 타이틀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콘솔에 집중하다 보니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개발자가 많았다.
아예 모바일게임 개발만 하던 개발자가 다수였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갓 오브 워>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P의 거짓>을 만들려 하면 힘들 수밖에 없지 않나. 단, 콘솔 개발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기에 완전히 쉽지는 않았다. 어려움은 지금도 해소해 나가는 중이다.

2021년 초 처음으로 공개됐던 <P의 거짓> 트레일러 (출처: 네오위즈)
Q. 경험이 없어 가장 막막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A. 매 순간이 난관이었지만 핵심은 '퀄리티의 기준'을 잡는 것이었다. 지금도 이 부분은 어렵다. 예민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MMORPG를 만드는 마음가짐과 프리미엄 콘솔 타이틀을 만드는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프리미엄 콘솔 게임은 '완전판'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니까, 목표로 삼아야 하는 퀄리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온라인게임은 추후의 대형 업데이트로 바로잡을 수 있다. 유저에게 "앞으로 이 부분은 개선하겠다"고 말하며 개선에 대한 계획을 납득시킬 수도 있다. 프리미엄 콘솔게임도 사후 지원으로 변화할 수 있지만 하나의 옵션일 뿐이다. 론칭할 때의 퀄리티 자체가 높아야 한다. 경험이 없어서 이 기준을 어떻게,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지를 알기 어려웠다.
중간중간 "이만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내부에서 채찍질하며 게임을 다듬었다. 최지원 디렉터가 가진 퀄리티 기준이 높았다. 본인 스스로가 높기에 개발팀을 끝없이 독려할 수 있었다.
Q.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공개하고 나서부터 채용이 원활해졌다고 들었다. 당시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가?
A. 2021년 5월 쯤 첫 공개된 시네마틱 영상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 당시까지는 네오위즈를 '개발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었다. <P의 거짓>이야기를 하면 "네오위즈가 게임 개발도 하나요?"라는 반응이 오더라. 슬펐지만 현실이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만들고 목표하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시네마틱 동영상 공개 이후 관심이 늘어났고,콘솔 게임 개발을 원하던 개발자들이 지원해 주셨다. 다른 사람에게 제안하기도 쉬워졌다. 그 전까지는 말로만 설명했지만 이제 보여줄 것이 생기지 않았나.
Q. 그 부분도 어려웠을 것 같다. 게임을 판매하는 데 있어서는 이름값도 중요하다. 가령 <몬스터 헌터 와일즈>가 있다. 3일 만에 800만 장을 팔았다. 출시되자마자 그렇게 빨리 팔린 이유는 아무래도 '네임벨류' 때문이지 않나 싶다. 캡콤은 오랜 기간 멋진 콘솔게임을 만들어 왔고, <와일즈>의 전작 <월즈>와 <라이즈>가 크게 흥행하며 글로벌 게이머에게 <몬스터 헌터>라는 IP가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게임의 완성도를 따지기 이전에 네임벨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수치인 셈이다. 하지만 네오위즈는 첫 도전이었기에 일단 '이름'부터 알리기 참으로 어려웠을 것 같다. 2021년쯤 당시 인터뷰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어려움이 컸다고 들었다.
A. 개발사로써 유저에게 신뢰를 쌓는 것은 중요하다. 캡콤이 그동안 게임 개발사로써 보여준 역사가 있기에 사람들이 믿고 구매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위치에 오르고 싶다. 게임으로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첫 도전이기에 인지도는 없지만, 게임플레이를 잘 만들고, 이를 선보이는 과정을 차츰차츰 밟아가자고 생각했다.
Q. <P의 거짓>은 피노키오가 주요 소재였다. 적절한 소재 선택이 출시 전 글로벌 게이머의 눈길을 끌 수 있었던 핵심이었던 것 같다.
A. 그렇긴 하지만, 해외 시장에 잘 팔기 위해 피노키오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최지원 디렉터 본인이 이전부터 피노키오를 소재로 소울라이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도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가 순탄하게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원동력이 확실히 되긴 했다. 스팀에서의 경쟁을 보라. 지금도 치열하다. 특히 '소비자의 눈에 들기 위한' 싸움이 엄청나다. 인지도를 쌓지 못하면 실패한다. 잘 만들었는데 1만 장도 못 판 게임이 많다. 스팀에는 수많은 게임이 날마다 출시되고 있고, 소비자의 눈에 들어오지 못하면 실패한다.
게임을 공개했을 때 피노키오라는 그 짧은 카피라이트가 관심을 끌었다. 공개 후 "피노키오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울라이크를 만든다고? 흥미롭네"라는 해외 반응이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출처: 네오위즈)
Q. 코로나19 때문에 내부적으로 흔들렸던 시기도 있을 것 같다. 스튜디오장으로써 어떻게 다잡았는가. 역시 개발 중간에 있었던 게임스컴에서의 수상이나, 체험판의 호평이 개발팀에게 사기 진작이 됐나?
A. 시네마틱 영상을 발표한 후 11월 게임플레이 영상을 처음 공개했다. 반응이 좋았다. "동영상을 어떻게 믿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말이다. 2022년 8월에는 게임스컴에 부스를 내고 체험판을 시연했다. 어워드에서는 3관왕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확실히 이런 일들이 개발 중간중간에 있어 개발팀이 힘을 내고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과정 자체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저희가 출시 후 이야기를 나누며 놀란 것은 생각보다 빠르게 게임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P의 거짓>에 대한 개발 방향성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기존의 장르 문법을 차용하면서 어떻게 개성을 선보일지에 대한 것이었다.
회사 내부에 아직도 프로토타입 빌드가 있다. 프로토타입인 만큼 퀄리티나 폴리싱의 차이는 있겠지만, 방향성이나 게임플레이에 대한 감각은 출시 버전과 완전 똑같다.
Q. 게임을 알리기 위해 코로나 시기에도 많은 곳을 돌아다닌 것으로 안다. 콘솔 게임을 들고 해외 게임쇼를 돌아다니니 어땠는가?
A. 처음으로 게임스컴에 갔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이 쉬워졌다. 왜냐햐면 그 덕분에 많은 개발자가 저희 게임을 알게 됐다. 먼저 와서 "너희 게임 잘 봤다. 기대한다. 힘내라" 그런 덕담을 해 주더라.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없었기에 엄청 힘이 됐다. 해외 개발자가 먼저 다가와 좋은 이야기를 해 주니 말이다.
서머 게임 페스티벌에서 데모를 공개한 이후부터는 행사장에서 <P의 거짓> 옷을 입고 다니면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얼마 전에는 북미 팀이 다이스(DICE)가 주최하는 행사에 갔는데,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더니 직원이 "<P의 거짓>만 5회차를 했다"라며 팬이라고 자청해 주셨다고 한다.
Q. 혹시 해외 게임쇼에 관심 있는 업계인을 위한 팁 같은 것이 있는지.
A. 팁이라면... 팁까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있다. 지금까지 많은 글로벌 미디어와 인터뷰를 했는데, 가장 관심있고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내러티브'였다.
정말 글로벌 미디어는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더라. 게임의 콘셉트와 거기에 담은 철학에 대해 굉장히 많은 질문을 한다. 액션 게임이기에 액션 시스템도 중요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주고 싶은지를 많이 물었다. 내러티브와 세계관 설정이 더더욱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게임스컴 2022에서 디스이즈게임과 인터뷰한 두 개발자
게임스컴 2023에서도 기자에게 "세계관과 관련한 질문이 많았다"고 이야기했었다.
Q. <P의 거짓>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예상치의 어느 정도인가? 확실히 현재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가?
A. 처음 시도하는 것이니 예상치는 없었다. 감을 잡기 어렵더라. 내부에서는 모든 플랫폼을 통틀어 100만 장을 팔면 너무 좋겠다, 그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많은 사랑을 보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 혹시 동종 장르의 게임이 출시되면 판매량이 올라가나?
A. <검은 신화: 오공>이 엄청 뜨겁지 않았나. <오공>이 출시되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그 게임 덕분에 소울라이크에 관심이 생긴 분들이 비슷한 게임을 찾아다니시더라. 이 부분에서 혜택을 보긴 했다. DLC 공개 이후에도 관심이 늘었다.
Q. 개발, 혹은 스튜디오의 입장에서 <P의 거짓>의 가장 큰 성과나 교훈은 무엇이라 보는가? 어떤 부분에서 자신감이 붙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겠다고 느꼈는지.
A. 하나의 완전한 프로세스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개발 단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출시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언제, 어떤 정보를 공개해야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마일스톤에 대한 경험을 얻은 것도 좋았다.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정말 예상하기 힘든 다양한 절차가 있기도 하다. 다음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가장 큰 것은 '게임의 퀄리티'가 부족하면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확신하게 됐다. 노력하고 고생한 것을 소비자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그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야 한다. 게임의 완성도가 좋아서 지금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지, 아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퀄리티가 좋은 게임을 만들어야 앞으로 더 멋진 게임을 만들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Q. 그 부분도 확실히 주효했던 것 같다. 아무리 콘솔 경험이 없더라도, 개발자가 '경험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P의 거짓>의 성공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한다.
내부 개발자가 잘 만들 수 있는 액션 시스템을 소울라이크 장르에 응용했고, 음악에 조예가 깊은 네오위즈의 'Studio LAY-BACK'과 협업해 멋진 OST를 만들었다.
A. 저는 국내 개발자들의 평균적인 개발 능력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단지 콘솔 게임에 대한 개발 경험이 부족할 뿐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인터뷰에서 강조한 내용인데, <P의 거짓>에서는 무기 조합 시스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개발에 드는 공수도 컸다. 무기에 따라서 모션이 달라지고, 조합에 따라 어떤 모습이 나오는지 등 수많은 가능성을 모두 테스트하고, 밸런스를 잡고, 버그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 게임의 특징으로 잡자고 결정했던 것이다. 유저가 한두 번 대충 쓰다가 버려지는 시스템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만든 의미가 없지 않은가.
길지 않은 개발 기간에도 개발팀이 이 부분을 정말 잘 해줬다. 라운드8에 새로 오시는 분이 있다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라고. 저희는 "프리미엄 콘솔 타이틀을 만들고 인정받고 싶다면 이렇게까지 해야 된다"고 답한다.
스튜디오 레이백과의 협업은 최지원 디렉터의 아이디어다. 밴드 경험까지 있어 음악에 관심이 많으시다. 입사 당시부터 <디제이맥스>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셨고, 레이백과의 협업을 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멋진 음악이 나온 것 같다.

레이백과의 협업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OST
Q. 그것도 있었다. 마니아 친구에게 물어보니 "<P의 거짓>은 회차플레이를 신경써서 좋다"고 하더라. 놓칠 수 있는 부분인데, 소울라이크 장르는 1회차의 경험이 모든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 말을 걸어 준 식당 직원도 5회차를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A. 최지원 디렉터도 회차 플레이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많이 신경 쓴 부분이다. 정말 장르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이번 DLC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할 순 없지만, 일단 '어마어마하다'고 하겠다.
Q. 부담감도 있겠다. 본편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니.
A. 엄청나다. 최지원 디렉터가 느끼는 부담이 크다. 그리고 본편을 넘어서야 하니 DLC에 요구되는 퀄리티의 기준이 더 높더라.

많은 부담감을 안고 개발되고 있는 DLC
그만큼 '어마어마한' 것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Q. 초기에 어려움을 느꼈던 '이름값' 부분에서도 달라졌을 것 같다. 이제 네오위즈나 라운드8 스튜디오를 확실한 <P의 거짓> 개발사로 알고 있지 않나. 이번에 GDC에 간 것으로 아는데, 확실히 반응이 달라졌던가.
A. 직책 상 출장을 많이 다니고 미팅도 많이 한다. 잠재적인 퍼블리싱 타이틀도 찾고 검토하고 있다. 어떤 개발사를 만나건 꼭 한 명은 <P의 거짓> 이야기를 한다. 이 게임 때문에 만나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게임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좋아 회사 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
Q. 혹시 GDC 2025 방문을 통해 느낀 점이 있나?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업계 동향이 있나?
A. 일을 하러 간 것이라 아무래도 정확한 답변을 드리긴 어렵다. 너무 바빠서 세션은 하나도 못 들었다. 감상이라면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비가 급격히 올랐지만 여기에 맞춰 매출의 규모까지 확대된 것은 아니다. 해외 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도 있었다. 여기에 대한 여파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느낌이다. 신작을 개발하는 곳들이 예산을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 작년과 확실히 다르다. 전반적으로 업계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
하나 또 기억나는 것이 있다. GDC를 3번 정도 방문했는데, 작년에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하는 곳이 많았다. 특히 서구권은 프리미엄 콘솔게임 위주로 게임을 개발하고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잘 시도하지 않았었다. 이것이 작년에 화두가 됐었고, 현장에서 라이브 서비스를 목표한 게임이 많이 보였다. 올해는 모두 사라졌다. 안 좋은 결과를 보인 케이스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 국내 게임사하고는 반대였던 상황 같다. 여기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콘솔로 넘어가려 하는데.
A. 10년, 20년 동안 성과를 내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보며 매력적으로 느낀 것 같다. 하지만 라이브 서비스 게임도 정말 쉽지 않다. 그런 위치로 오르기부터 어려운데, 자리를 잡은 게임도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곳이다.
- 확실히, 배틀로얄 장르를 예로 들면 <배틀그라운드>가 거듭된 업데이트로 동시 접속자 130만이라는 기록을 새로 세웠다. 여전히 사람들은 <배틀그라운드>를 한다.
A. 정말 도전자에게 힘든 시장이다.
Q. 국내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2019년 당시만 하더라도 "콘솔게임을 만든다고?" 이런 분위기였던 같은데 이제는 너도나도 만든다. 관련한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몇몇 게임의 성과 덕분에 "우리도 이제 이런 게임 만들 수 있다"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A. 좋은 일이다. 콘솔 게임을 만드니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다변화되는 과정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너무 한쪽의 게임에만 집중했다. 게이머의 취향은 정말 다양한데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적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의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있어서도 좋지 않나 싶다.

(출처: 네오위즈)
Q. <P의 거짓>이 성공했으니 개발자를 모집하는 것도 한층 쉬워졌는가? 프로젝트를 론칭할 때와는 반응이 상당히 달라졌을 것 같다.
A. 이전에 비해 쉬워지긴 했다. 그러나 여전한 난관이 있다. 특정 개발 직군은 한국에 없는 수준이다. 가령 이런 게임의 레벨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못 구한다. 기존에 개발하던 게임이나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이런 직군이 필요 없었으니 말이다. 전투 기획도 저희가 원하는 것과 온라인게임의 전투 기획은 다르다. 해외 개발자 영입의 필요성까지 느끼고 있다.
- 개발자를 키울 수는 없나.
A. 당연히 생각해 봤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정말 장르에 대한 높은 수준의 게임플레이 경험이 필요하다.
Q. 현재 라운드8 내부에서 몇 가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가? 어떻게 다루는 콘솔게임의 장르를 확장하려 하나?
A. 많은 프로젝트가 준비되고 있지만, 콘솔 게임 프로젝트의 특성 상 론칭되리라 장담하긴 어렵기에 섣불리 말씀드리기 힘들다.
장르라면, 프로젝트가 논의될 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먼저 가능성이다. 누군가 배틀로얄 장르를 만들고 싶어한다면 그건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미 시장에 뛰어난 게임들이 있고, 새로운 도전자가 들어올 틈이 없다. 그러나 수요 층이 확실히 장르고, 거기서 훌륭한 게임이 있더라도 우리가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고려한다.
두 번째로는 개발팀이 장르를 얼마나 잘 아느냐는 것이다. 그 장르의 진정한 팬이어야, 팬이 어떤 것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니즈를 아는 상태에서 게임을 만들어야 가능성이 생긴다. 디렉터는 그 장르를 얼마나 해봤는지, 개발팀은 얼마나 아는지부터 시작한다. 만들고자 하는 장르를 좋아하고 잘 알아야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의 거짓>은 핵심 개발진이 정말 소울라이크 마니아였다.

라운드8 스튜디오는 2024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진승호 디렉터, 이상균 디렉터를 영입했다. 사진은 진승호 디렉터
Q. 콘솔 게임 개발이 항상 꽃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아바> 관련한 프로젝트는 결국 멈춘 것으로 안다.
A. 지금은 진행하지 않는 것이 맞다.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자연스런 일이라 생각한다. 10개의 게임이 출시되면 그 중 하나라도 성공하기 어렵지 않나. 그런데 1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여기서 9개는 반드시 출시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많은 프로젝트를 프로토타이핑하다 보면 생각보다 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기획은 정말 좋은데,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니 아닌 것 같은 판단이 들 때도 있다. 이걸 억지로 만들면 안 된다. 빠르게 다른 것을 해야 한다. 이런 판단이 자연스럽고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Q. 궁극적으로 라운드8 스튜디오가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믿고 구매할 수 있는, 확실한 팬덤과 네임벨류를 가진 '콘솔게임 명가'인가?'
A. 맞다. 여러 신작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목표를 판매량으로 잡지 않는다. 좋은 유저 평가가 우선이다. 판매량은 여기에 따라오는 것이다. 아까 언급하신 <와일즈> 같은 경우도 소비자가 캡콤이라는 개발사를 믿고 신뢰한 결과다. 좋은 결과물을 계속해서 선보여 신뢰받을 수 있는 개발사가 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Q. 진승호, 이상균 디렉터의 영입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A. 두 디렉터 분이 국내에서 내러티브 중심의 게임 개발을 이끌 수 있는 분들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아까 언급했듯이, 저희가 목표로 삼은 시장은 내러티브의 중요성이 정말로 높다. 아트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이를 받쳐 줘야 하는 기반은 내러티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