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히트작이 없었어요. 그래서 올해가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한빛소프트가 ‘신야구’의 퍼블리슁 계약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네오플이란 개발사를 게임포털 ‘캔디바’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솔직히 기자도 그랬다.
하지만 네오플의
그러면 신야구는 20번째?
“맞습니다. 신야구가 20번째, 던전 앤 파이터가 21번째가 되는 거죠.”
기자와 함께 도심을 걸으며 나누는 허 대표의 대답이 간명했다. 만 4년간 19개, 아니 진행형 2개 합쳐서 21개면 2개월에 게임을 한 개씩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중에서도 캔디바를 대표하는 히트작 ‘쿵쿵따’는 1개월 만에 만든 게임이다. 아무리 캐주얼 미팅게임이라지만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만들 수 있었을까?
문득 네오플의 지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 영웅의 꿈을 꾼 괴짜 대학생
허 대표는 학창시절부터(서울대 화학공학과) 뭔가 범상치 않은 ‘괴짜’로 통했다. 학교 생활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학생회장에 출마해서 당선된 것이 아마 가장 대표적인 일화일 것이다.
강한 이념? 학생 운동경력? 그런 것은 없었다. 단지 그저 ‘학교 생활을 재미있게 해보자’는 목표로 선거활동을 해서 남들 다 안 될 거라고 예상했던 회장에 당선됐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게 만들었을까? “대학간 연합 축제와 문화활동을 지원했죠. 나름대로 임기 기간 동안엔 재미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네오플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어린 마음에 영웅이 되고 싶었다”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영웅은 언젠가 죽는다. 그래서 오래도록 영속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네오플의 시작이었다. ‘재미를 팔아서 영웅적인 조직을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또래 대학생 친구들과 뭉쳤다.
2001년에 세워진 네오플의 첫 작품은 게임이 아닌 ‘잠 깨는 기계’였다. 회사 옆 사우나에서 옷장 열쇠를 손목에 감고 자는 것에 착안, 손목밴드에 고주파를 흘려 보내 혈을 자극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특허만 받고 대량생산은 포기했다. 생산자금도 문제였지만 ‘기분 나쁘게 잠이 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 장남들이 모여서 만든 미팅 게임
첫 작품 후에 네오플 멤버들은 ‘다음에 뭐 할까?’를 고민했다… 곤 했지만 사실 대학생이었던 이들, 밥 먹고 농구하고 밥 먹고 스타크래프트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던 중 한 멤버가 ‘소개팅 좀 시켜달라’는 전혀 건설적이지 않은 의견을 내놨다.
사실 공교롭게도 멤버들 대부분은 결혼이 절실한 장남이었다. 그 순간 번뜩 아이디어가 스쳤다. 미팅을 게임으로 시켜주는 사이트는 없었던 것이다. 캔디바의 첫 게임이 된 ‘러브러브 스튜디오’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 즈음에 허 대표는 원래 알고 지냈던 써니YNK
네오플은 창업 1년만인
그러나 처녀작 러브러브 스튜디오에도 곧 정체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한 달 만에 ‘러브러브 플러스큐’를 만들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기획에,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죠.” 그렇게 말 해 놓고 허 대표는 곧바로 “한 달 만에 쿵쿵따를 만들었죠”라며 빙그레 웃었다. 문득 기네스북에 가장 빨리 만든 상용 온라인게임의 기록의 있는지 궁금해졌다.
캔디바를 막 오픈했던 낙성대 시절의 네오플 개발팀.
◆ 게임흥행 타율 3할대 보장
캔디바는 네오플이 써니YNK에서 독립하던 2003년 여름까지 고속성장을 계속했다. 그러나 다른 대형 게임포털에서 캔디바와 비슷한 개념의 게임들을 내 놓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 때 느꼈어요. 이젠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게임을 만들자고 결심했죠.”
2003년 여름부터 네오플은 기존의 ‘속전속결’ 체제를 바꿔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나누고 굵직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네오플은 총 6개의 스튜디오가 있다. 스튜디오가 늘어나면서 2003년 초 20여명 남짓했던 인원은 어느새 80명으로 늘어났다.
신야구를 만들고 있는 스포츠 스튜디오인 네스(NESS), 던전 앤 파이터를 제작중인 아드레날린 쇼크(A-Shock), MMORPG 스머프를 개발중인 emag, 캔디바에 공급할 캐주얼게임을 만드는 A,I(인공지능), 캔디바2를 개발중인 라온(Raon), 그리고 캔디바 스튜디오까지 현재 네오플의 식구들이다.
“언제나 그랬듯 돈 걱정은 안 해요. 다작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게임흥행타율은 3할대 이상이라고 자신합니다.” 재수까지 해가며 서울대 간다고 했을 때도, 학생회장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허 대표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그의 곁에 언제나 든든한 창업동료 친구들과 네오플 식구들이 있다.
그의 방에는 아직도 직원들이 챙겨준 생일파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 신야구는 내 인생의 정점
허 대표에 있어서 야구는 특별한 운동이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 항상 학교 대표(비공식)로 앞장 서서 야구공을 던졌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야구선수 출신이었다고. 아버지는 그를 좋은 투수가 되도록 훈련시켰다. 오죽하면 수학능력시험 보기 전날도 아버지와 야구를 했을까.
“한 때는 회사를 누구에게 물려주고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을 정도에요.” 그럼 서울대도 야구부가 있어서 선택했을까? 허 대표가 빙그레 웃었다. 그의 포지션은 투수였는데 고등학교 시절 너무 어깨를 혹사시켜 인대가 끊어졌다. 그래서 대학교 때는 패전처리 전문의 후보 투수였다.
“야구에 대해서는 진짜 열정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허 대표의 눈빛이 진지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끼고 살아온 그에게 게임과 야구는 인생을 대표하는 두 가지 키워드다. 그 둘이 교차하는 온라인 야구게임 신야구는 그래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에 방에 꽂혀 있는 투수 관련 전문서적들. 이젠 구하기 힘든 것들이라고.
◆ 참고는 했지만 베끼진 않았다
허 대표와 개발진은 신야구를 만들기 위해서 거의 모든 동서양 야구게임을 섭렵했다. 개인적으로도 야구게임 마니아였던 허 대표는 신야구의 기획을 직접 챙길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역시 역사가 오래된 콘솔용 야구게임을 ‘따라 하지 않았냐’는 시선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참고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모든 야구게임을 참고했습니다. 하지만 참고한 것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온라인을 위한 새로운 개념을 넣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허 대표는 솔직하고 또 단호했다. “무관절 캐릭터요? 그건 옛날 ‘보난자 브라더스’나 ‘레이맨’부터 시도됐던 그래픽 구현기법의 하나입니다. 그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신야구도 사용한 것입니다.”
단순히 겉모습의 첫 인상이나 단편적인 것들만 보지 말고 온라인 야구를 위한 시스템과 게임요소를 봐 달라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야구인에게 보여줘도 떳떳한 진짜 야구게임을 만들었다고 자신하거든요.”
◆ 2007년엔 범우주적 게임을 만들고 싶다
신야구와 함께 네오플의 2005 ‘원-투 펀치’가 될 '던전 앤 파이터'는 계약금만 신야구의 2배가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허 대표는 던전 앤 파이터가 오락실에서 즐기던 게임들의 재미요소에 온라인의 성장과 대결요소를 결합한 새로운 액션게임으로 큰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네오플의 지난해 매출액은 50억 원 대, 올해는 300억 원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돈을 벌겠다는 허 대표의 이유가 흥미로웠다. “2007년부터 100명이 3년간 만드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할 겁니다. 지금은 그것을 위해서 자금과 인재를 모으는 중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른바 ‘범우주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허 대표의 'D-데이'는 2009년이다. 그는 200억원 정도가 투입될 범우주적 프로젝트는 전세계 게이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 번도 돈 때문에 뭐 해본 적은 없어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게임회사 보다는 좋은 생각과 도전을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은 건 그가 아직 젊기 때문에, 그리고 게임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매출이 10억 원이라도 좋은 회사는 될 수 있잖아요”라는 패기 어린 말처럼 허 대표의 초심이 변치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