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SF 장르는 게임사의 금기에 가깝다. 지금까지 수많은 SF게임이 시장에 나왔지만 어느 하나 안착한 게임이 없기 때문이다. 헌데 한 인디 개발사가 이러한 금기에 도전장을 던졌다. 휴학생과 대학생 6명이 뭉쳐 만든 개발사 ‘집연구소’가 그 주인공이다.
‘집연구소’의 처녀작 <코즈믹 온라인>은 웹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는 SF MMORPG다. 게임의 콘셉트는 웹과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는 샌드박스 MMORPG. 집연구소 권오현 대표는 아예 “웹과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는 <이브 온라인>같은 게임을 만들겠다”라고 말할 정도다. 집연구소 6명의 개발자는 무슨 꿈, 무슨 배짱으로 이 금기의 장르에 도전한 것일까? 집연구소 개발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군대 2년, 사회에서 2년 간 기획한 문서로 무작정 시작한 창업
게임사 중 평범한 이름을 찾기 힘들다지만 집연구소는 그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케이스다. 건축회사를 연상시키는 회사 명은 사실 ‘집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수상한 사람들의 연구소’라는 긴 뜻을 함축하고 있다. 처음 MMORPG 개발을 결심했을 때부터 만만치 않은(?) 작업량을 예상하며 만든 명칭이었다.
집연구소의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웹프로그래밍을 전공한 권오현 대표의 꿈은 <리니지>와 같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여러 게임 장르 중 RPG를 특하나 좋아했던 권오현 대표는 <리니지>가 보여줬던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더 크게 구현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는 <리니지>의 혈맹들이 만들던 다양한 관계를 <리니지>보다 더 자유로운 세계에서 구현하고 싶었다.
“가상의 세계라는 것 자체가 개발자의 로망 아닌가요? 저는 그래서 여러 장르 중 RPG, 그 중 MMORPG가 가장 좋아요. 현실과 가장 닮은 그림들을 연출할 수 있으니까요” 십 수년 간 MMORPG를 꿈꿔 왔다는 권오현 대표의 이야기다.
이렇게 꿈만 꾸던 권 대표는 군대에서 자신과 유사한 것을 꿈꾸고 있던 김덕현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권 대표가 <리니지>에서 영감을 받아 샌드박스 MMORPG를 꿈꿨다면, SF를 좋아했던 김덕현 프로그래머는 방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샌드박스 MMORPG를 꿈꾸고 있었다. 서로 꿈꾸던 그름의 색은 달랐지만 뼈대는 같았다. 둘은 곧 의기투합해 군생활 2년을 꼬박 <코즈믹 온라인>의 기획에 쏟아 부었다.
이러한 기획은 제대를 하고 나서도 계속 됐다. 둘은 복학한 후에도, 공부를 하며 아르비아티를 하며 수시로 연락하며 기획을 계속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4년여에 이른 긴 기획이 일단락됐다. 권오현 대표와 김덕현 프로그래머는 바로 답십리에 방을 잡고 사람을 모아 무작정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집연구소 6명 모두 사업이나 창업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없었다. 기기나 소프트웨어 대여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다. 종잣돈을 쪼개고 사비를 모아 기기와 프로그램을 샀다.
첫 사무실은 닭장과 같은 원룸이었다. PC 여섯 대와 개발자 여섯 명이 나란히 앉으니 좁은 원룸이 가득 찼다. 한 사람이 화장실을 가려면 다른 다섯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방이 이렇게 좁으니 한 겨울에도 컴퓨터 열기 덕에(?) 보일러도 필요 없었다. 오히려 다들 열기를 이기지 못해 반팔 차림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작업을 할 정도였다.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다행히 올해 3월, 집연구소는 세종대학교의 지원으로 닭장 원룸을 떠나 세종대학교 안에 새로운 사무실을 얻게 되었다. 개발진의 말을 빌리자면 ‘집에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환경이 쾌적해졌다. 이제는 간이침대도 온전히 펼 수 있게 되었고 야근할 때 몸을 눕힐 수 있는 소파도 늘었으니까. 학교 건물이라 '빵빵한' 에어컨 지원은 덤이다.
“생각해보면 그 좁은 원룸에서 어떻게 일했나 싶어요. 컴퓨터 때문에 한 겨울에 찜통더위를 느낀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이젠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웃음)” 집연구소 임재균 팀장의 회상이다.
■ 진짜 우주 RPG를 구현하고 싶다
허나 이러한 집연구소의 고생은 당분간은 계속될 듯 하다. 집연구소 개발진이 만드는 <코즈믹 온라인>은 개발진 모두가 대중성과의 거리를 인정할 정도로 마니악한 콘셉트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코즈믹 온라인>의 콘셉트는 한마디로 어디에서나 접속할 수 있는 <이브 온라인>이다.
게임의 기본 틀은 <이브 온라인>과 흡사하다. 유저는 방대한 우주에서 광부나 군인, 상인, 탐험가 등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 광부는 소행성대에 우주선을 끌고 가 광석을 캐고 상인은 수송선 가득 광물이나 특산품을 싸 들고 행성과 행성, 행성계와 행성계 사이를 여행한다. 전함에 탄 유저들은 변경에서 이들을 보호하거나 역으로 습격하기도 한다.
각 캐릭터나 우주선은 성장 한계가 정해져 있어 다른 유저와의 협력이 필수다. <코즈믹 온라인>의 우주는 이러한 협동을 더욱 강조한다. 당장 우주의 크기부터 가장 빠른 우주선도 워프 없이는 열흘 넘게 날아야 종단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데다가 구현 예정된 행성계만 10개 이상. '행성'마다 보유하고 있는 기술 수준과 구할 수 있는 재료도 모두 다르다.
여기에 행성 간 우편은 거리나 수화물의 수량이나 무게에 따라 짧아도 수 시간이 소모되는 방식. 어떤 경우는 유저가 직접 고속 수송선을 타 왕복하는 것이 빠를 정도다. 맵 부터가 유저가 직접 발품을 파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발품이 쉬운 것도 아니다. 당장 행성계를 벗어나 외우주에 가까워질수록 치안 수준이 급락해 NPC(혹은 유저) 해적의 습격이 시작된다. 가까스로 해적을 피해도 가스성운이나 소행성대, 블랙홀 등의 위험 요소가 곳곳에 널려 있다.
더군다나 <코즈믹 온라인>은 한 번 우주선이 파괴되면 새로 사는 것에 버금가는 수리비를 지불하거나, 수 시간에 걸쳐 다른 행성에 보관해 둔 우주선을 찾아야 하는 게임. 위험천만한 우주를 탐험하기 위해선 좋든 싫든 다른 유저와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게임이 틀이 이런 탓에 개발진도 대중성이나 흥행성보다는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는 목표만 바라보고 개발하고 있다. 지난 겨울 그 고생을 했는데도 이런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싶을까? 이런 질문에 권오현 대표의 답은 간단했다. “돈 벌고 싶었으면 취직했죠. 우린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히려 돈 버는 것 보다는 제대로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더 걱정돼요”
권 대표는 이러한 틀 위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꿈이다. 대표적인 것이 땅따먹기(?) 콘텐츠다. <코즈믹 온라인>의 행성은 유저가 점령할 수 있다. 점령도 단순 무력적인 점거뿐만 아니라 돈이나 영향력 등 다양한 수단 존재한다. 심지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인공 천체를 지울 수도 있고, 새로운 행성을 발견해 직접 이름짓고 차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얻은 행성은 유저, 혹은 길드의 의사에 따라 발전 속도와 방향이 달라진다. 교통의 요지에 상업 행성을 만들어 부를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자리에 요새 행성을 만들어 통행세를 거두는 것도 가능하다. 적대 행성의 기반 시설을 초토화시켜 행성이 없느니만 못한 것처럼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동맹 행성을 기습해 행성을 빼앗는 것도 가능하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데스스타도 나올 수 있을까? 이미지는 집연구소 사무실에 전시된 스톰트루퍼 모형.
권 대표가 꿈꾸는 마지막 모습은 유저 간 일어난 일들이 그대로 게임의 이야기와 역사가 되고, 나중에는 직접 게임의 퀘스트 등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NPC가 ‘길드전쟁이 일어났던 X 섹터의 잔해를 탐험하라’라는 퀘스트를 주는 거죠. 개발자의 개입 없이, 유저가 직접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정말 멋지지 않나요? 개인적으로는 우리 게임에서도 <리니지2>의 ‘바츠 해방 전쟁’이나 <이브 온라인>의 ‘BOB 해체 사건’ 같은 것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그 흔적을 게임 속에 그대로 추가하는거죠.”
■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이브 온라인>이 목표
물론 이러한 틀 자체는 이미 <이브 온라인>이 대부분 구현한 상태다. 더군다나 클라이언트 게임인 <이브 온라인>은 웹 방식인 <코즈믹 온라인>에 비해 구현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이미 긴 시간에 걸쳐 이 시스템을 다듬어 온 상태. 그렇다면 <코즈믹 온라인>은 <이브 온라인>과 어떻게 차별화를 하려는 것일까?
이에 대해 권오현 대표는 웹과 모바일 모두를 지원하는 크로스플랫폼을 이야기했다. HTML5로 개발된 <코즈믹 온라인>은 별도의 클라이언트 없이, PC나 모바일에서 웹브라우저로 접속만 하면 언제든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이다. 게임은 이를 이용해 수시로 접속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을 보여줄 예정이다.
대표적인 예가 워프 이동 중 발생하는 랜덤 이벤트다. <코즈믹 온라인>은 일(日) 단위 이동까지 고려한 맵 특성 상 플레이타임의 대부분을 이동에 투자할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다. 게임은 이러한 긴 이동을 완화하기 위해 안전하지만 느린 항로와 위험하지만 빠른 항로라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 중 위험하지만 빠른 항로는 크로스플랫폼을 염두에 둔 콘텐츠다. 위험하지만 빠른 항로는 수시로 랜덤 이벤트가 발생하는 항로다. 랜덤 이벤트의 대부분은 유저가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든 실시간 이벤트. NPC 해적이 위프 방해 장치로 유저의 이동을 막은 후 습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당연히 이 경우 대처가 늦으면 화물은 물론, 우주선까지 잃고 알거지 되기 십상인 이벤트다.
“만일 PC 웹만 지원했다면 이런 것은 넣지 못했겠죠. 이런 것이 없으면 항로의 위험성을 살리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이를 그대로 구현했다면 유저가 몇 십분 간 모니터만 봐야할 테니까요. 그런데 모바일을 지원하면 얘기가 달라지죠. 오히려 푸쉬가 가능하니 부담없이 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었죠.”
이동 중 발생하는 해적 습격 등의 이벤트는 모두 푸쉬 메시지로 알려질 예정
권 대표는 웹의 한계로 단순화된 시스템도 강점으로 꼽는다. 애초에 <코즈믹 온라인>의 목표는 접근성 높은 <이브 온라인>. 개발툴 특성 상 <이브 온라인>의 깊이를 살리진 못하겠지만, 오히려 큰 시스템만 남긴 덕에 접근성 자체는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초반 디자인 또한 자유도를 낮춰서라도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일례로 자유도를 내세운 <코즈믹 온라인>이지만, 정작 튜토리얼이 끝난 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 유저는 해적들이 많은 행성계, 광물이 풍부한 행성계, 교통이 발달된 행성계 등만을 선택해 한동안 해당 성계에 특화된 직업훈련(?)을 받게 된다.
물론 이러한 선택지 제한은 유저가 성장할수록 조금씩 풀릴 예정이다. 나중에는 유저가 직접 은하 가장자리를 개척하고 허공에 인공천체를 지을 수 있을 정도까지 자유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다.
■ 6월 CBT, 연내 OBT가 목표
게임의 추구하는 바가 크다 보니 걱정도 많다. 최근 집연구소의 가장 큰 걱정은 경제다. 아무리 기획만 4년 가까이 걸렸다곤 하지만 적은 인원이 이 정도 규모를 만드는데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특히 <코즈믹 온라인>은 단일서버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밸런스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게임.
개발진은 경제 밸런스를를 위해 느리고 제한된 우편, 고가의 우주선 수리비 등 다양한 장치를 더했다. 허나 마음이 놓이진 않는다. 경제는 유저들의 행동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예측도 하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은 유저들을 불러 모아 테스트하는 것이죠. 그동안 열심히 만들었으니 여름 안에 테스트를 해 직접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을 살펴 볼 계획입니다. 부디 4년 간 고생한 것이 헛되지 않았기 만을 바랄 뿐이죠.”
집연구소의 처녀작 <코즈믹 온라인>은 6월 중 첫 테스트를 실시해 유저들의 행동 패턴과 게임 내 재화 흐름 등을 체크할 계획이다. 게임은 여름 테스트를 마친 후, 연내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