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이 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콘텐츠가 되는 것은 이전에도 종종 있던 일이다. GM이 자신을 캐릭터화 해 유저들과 소통하는 것은 흔치는 않지만 간혹 존재했다. GM이 자신의 맨 얼굴을 온라인 상에서 공개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물론, GM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정기적으로 콘텐츠까지 만든다면?
<파이널 판타지 14>가 GM을 앞세운 이색적인 콘텐츠를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업데이트를 시작된 '에오르제아 컴퍼니'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게임 소개 콘텐츠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다르다. 과거 게임잡지를 연상시키는 콘텐츠도 콘텐츠지만, 무엇보다 GM들이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얼굴과 캐릭터를 내걸며 적극적으로 망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독특하다.
과연 <파이널 판타지 14>는 무슨 이유, 무슨 목표로 이런 흔치 않은 시도를 한 것일까? 액토즈게임즈 <파이널 판타지 14> 서비스팀을 만나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GM도 즐거움을 줘야 한다! 2년 간 기획한 잡지형 콘텐츠
<파이널 판타지 14> 홈페이지를 둘러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GM들이 만든 각종 콘텐츠다. 일반적인 게임 소개 콘텐츠는 물론, GM이 직접 영상으로 게임 속 춤을 유저들에게 가르치거나 게임 속 요리를 재현(?)하는 등의 독특한 시도 또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월간 에오르제아’라는 콘텐츠는 아예 GM들을 캐릭터화 해 과거 게임잡지와 흡사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러한 콘텐츠는 모두 각 GM이 직접 겪거나 구상한 것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월간 에오르제아 창간호에 실린 ‘민필리아를 찾아서’ 코너는 실제로 <파이널 판타지 14> 글로벌 서버를 플레이하던 중 겪었던 일을 재구성한 것이고, 유저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 준 GM 오보로의 <파이널 판타지 14> 궁중 무용 교실은 해당 GM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 14> 안에는 재미있는 모션이 많아요. 특히 춤 관련 모션들이 특이한 것이 많은데 이것을 실제로 추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시작해 봤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안팎에서 반응이 좋더라고요.” GM 댄스 교실의 아이디어를 처음 냈던 오보로의 이야기다.
이 콘텐츠는 과거 <라테일>에서 GM을 했던 ‘카이조’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라테일>의 GM은 일반적인 운영 업무 외에도, GM이 직접 신규 콘텐츠 소개 영상에 등장하거나 GM끼리 꽁트를 하는 등 햔재 <파이널 판타지 14>에서 선보이고 있는 GM 콘텐츠의 원형을 시도했었다. 처음에는 게임뿐만 아니라 운영자 딴에서도 즐거움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의외의 결과가 발견되었다.
“아무리 운영자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도 그것이 재미 없으면 유저들은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GM이 망가지며 이야기를 전달하니 유저 분들도 즐거워하고 정보의 전달력도 커지더군요. 뿐만 아니라 GM이 유저들에게 이렇게 다가가자 유저들도 GM을 단순 자판기나 자동응답기가 아닌, 보다 사람처럼 친밀하게, 정중히 대해줬고요. 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렇지, 시도 자체는 유저와 GM 모두에게 의미 있었죠.”
한 때 <라테일>에서 GM을 했던 카이조의 이야기다. 그리고 마침 그가 담당하게 될 <파이널 판타지 14>는 긴 역사와 서비스 시기 때문에 전달해야 할 정보도, 콘텐츠도 많은 작품. 액토즈게임즈 운영팀은 카이조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파이널 판타지 14>의 국내 서비스 판권을 가져오기로 마음먹은 시기부터 운영 기획을 시작했다. 햇수로는 2년에 가까운 기획 기간이었다.
2년 동안 수시로 기획 회의가 열렸다. 현재 선보이고 있는 잡지형 콘텐츠 외에도 만화나 방송, 팟캐스트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논의되었다. 팟캐스트의 경우, 실제로 내부에서 좋은 반응이 있어 기획과 담당 인원 배정까지 거의 다 완료되었지만 환경 문제로 아쉽게 불발되기도 했었다.
진행된 것은 기획 만이 아니었다. <파이널 판타지 14>의 GM 콘텐츠의 목표는 GM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GM이 전면에 나서서 유저와 소통하는 것. 이를 위해 글로벌 서버 플레이로 게임 자체에 대해 학습하거나, 선임 GM 주도로 콘텐츠 기획이나 유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학습도 계속됐다. 실제로 앞서 이야기한 ‘민필리아를 찾아서’ 코너도 글로벌 서버 플레이 중 일명 ‘민폐리아’(…)의 악명을 알게 된 덕에 나온 콘텐츠다.
■ <파이널 판타지 14>의 느긋함과 유저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GM들이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게임의 정보뿐만 아니라 <파이널 판타지 14> 특유의 분위기도 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오랜 역사만큼 국내에 많은 팬들이 있는 작품. 시리즈를 잘 모르는 이들도 GM 노트나 월간 에오르제아 등을 통해 <파이널 판타지 14>를 알고, 기존 팬들과 어울리도록 하는 것이 GM들의 목표다.
게임잡지의 형식을 빌린 월간 에오르지아도 이러한 고민 때문에 만들어졌다. 일단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팬 대부분이 최소 20대 중반인 만큼, 지금은 보기 힘든 게임잡지라는 포맷을 살려 그 때의 향수를 살리기 위함이다. 또한 월간 에오르제아에 포함된 각종 기행기 형식의 콘텐츠로 <파이널 판타지 14>의 감성을 다른 소개글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그렇다면 GM들이 생각하는 <파이널 판타지 14>의 감성이란 무엇일까? 초보 GM인 로웨나는 ‘휴가가고 싶을 정도로 따뜻한 빛 묘사’를, GM 콘텐츠에서 맨날 망가지는 역할로 나오는 오보로는 ‘풍부한 이야기’를 꼽았다. 그리고 GM 카이조는 이들의 의견을 묶어 '여유'라고 이야기 했다.
“<파이널 판타지 14>는 여유가 있는 게임입니다. 잘 묘사된 세계 덕에 눈 돌릴 것도 많고, 그 때문에 유저들도 전투만 집중하기 보다는 서로 아기자기하게 떠드는 것을 즐겼거든요. 글로벌 서버의 분위기가 그랬던 것도 크지만, 시스템도 은근히 이런 것을 유도했죠. 어떤 이들은 이를 단점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저는 이것이 우리 게임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글로벌 서버를 즐기는 GM들도 게임을 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GM 로웨나처럼 전투에만 매달리는 GM이 있는 반면, 다른 MMORPG에서는 스토리릴 쳐다보지도 않았던 오보로는 오히려 이야기만을 파고 다닌다. 어떤 GM은 특정 NPC에 ‘꽃혀’ 그의 복장을 재현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기도 하고 어떤 GM은 레벨 업 대신 낚시만 즐기기도 한다.
<파이널 판타지 14> 운영팀이 바라는 것도 글로벌 서버에서 즐겼던 유저들이 맛 본 이런 분위기를 한국 유저들에게도 안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GM노트나 월간 에오르제아 곳곳에 기행 형식의 콘텐츠도 추가하려 하고 있고, 앞으로의 목표 또한 유저들이 게임하며 만들어 낸 소소한 에피소드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월간 에오르제아 최근호에는 인상 깊은 유저 댓글에 대한 답도 올리고, 콘텐츠 말미에는 아예 옛날 게임잡지처럼 엽서(?)도 만들어 유저들의 이야기를 유도하고 있다.
■ 단순한 자동응답기가 아닌, 유저들과 직접 소통하는 GM이 되겠다
하지만 GM의 주 업무는 GM노트나 월간 에오르제아가 아닌 운영. 그리고 <파이널 판타지 14>는 가깝게는 오는 11일 첫 CBT, 멀게는 올해 안 OBT까지 준비 중인 게임이다. 그렇다면 GM의 본래 업무가 시작되어도 이들이 만든 콘텐츠를 볼 수 있을까? 액토즈게임즈의 GM들은 다른 것은 어떻게 될 지 모르더라도 월간 에오르제아의 정기 업데이트만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다.
“애초에 GM노트와 월간 에오르제아라는 두 포멧 모두 OBT 이후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입니다. GM노트야 특성 상 업데이트가 다소 들쑥날쑥할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월간’이라고 못박은 월간 에오르제아는 반드시 정기 업데이트할 계획입니다. 물론, 정식 오픈 뒤의 월간 에오르제아는 우리뿐만 아니라 유저 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콘텐츠가 되겠지만요.” 월간 에오르제아 업데이트를 총괄하는 카이조의 다짐이다.
GM들이 유저들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투고다. 애초에 GM 노트와 월간 에오르제아 모두 유저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든 콘텐츠인 만큼, 유저들의 반응이 있어야만 더 재미있고 가치 있는 콘텐츠가 나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GM들이 가장 바라는 것도 유저들의 댓글, 그리고 엽서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GM 콘텐츠의 모습은 GM들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콘텐츠가 아닌, GM과 유저들이 직접 의견을 주고받고 이를 바탕으로 유저들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담을 수 있는 동네 신문과 같은 모습이다.
“1년에 사진 한 번 찍으면 많이 찍었었는데, <파이널 판타지 14> 덕분에 몇 년 치 사진을 다 찍었네요. 맨 얼굴도 노출하고 취향도 숨기지 않았는데 설마 자동응답기로 여기시진 않겠죠? (웃음) 개성을 숨기지 않은 만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얼굴까지 공개한 만큼 책임있는 업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단순히 콘텐츠 제공자가 아닌, 진솔하게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GM이 되겠습니다.” 새내기 GM 로웨나의 각오다.
<파이널 판타지 14> GM들의 본격적인 업무는 11일, 1차 CBT로 시작된다. CBT가 시작되거나 끝나더라도, OBT가 시작되더라도 GM들의 콘텐츠는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