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돌아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따르면 <엑소스사가>를 개발을 총괄하는 정병익 PD와 개발사 우주는 누구보다도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사람이다.
<S4리그>부터 <브랜뉴 보이>, <RPG매니저>까지. 그들이 손을 댄 게임은 언제나 확실한 특징이 있었다. '마니아들로부터 재미와 완성도는 인정받은 참신한 게임' 하지만 반대의 꼬리표도 있었다.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게임'
당연히 개발사와 개발사로서 만족스러울 리는 없다. 상업적인 흥행이 부족했다는 점보다는 대중성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신작에서는 지금까지 그가 겪었던 다양한 실패에서 얻은 경험들을 녹여보기로 했다. 마니악한 취향은 조금만 아껴두고.
그래서 시작된 게임이 <엑소스사가>다. 이른바 기획자 정병익과 우주가 살아온 결정체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교통정리부터 하자. <엑소스사가>의 개발사인 '우주'는 엔씨소프트와 펜타비전, 웹젠 출신의 개발자가 설립한 개발사다. <브랜뉴 보이>와 <RPG매니저> 등 개성이 강한 모바일게임들을 선보였지만 미드코어RPG 시장이 중심인 국내에서는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엑소스사가>의 개발을 총괄하는 정병익 PD는 가마소프트에서 <R.Y.L온라인>을, 펜타비전에서 <S4리그>를 개발하다가 우주에 합류한 기획자다. 다른 개발자들보다 조금 더 마니악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 매번 일회성으로 버려지는 콘셉트아트. 이걸로 액션을 만들면 어떨까?
<엑소스사가>의 개발은 단순한 계기에서 시작됐다. 차기작을 논의하던 개발팀은 <브랜뉴 보이>에서 보여줬던 액션에 주목했다. 이를 <RPG매니저> 같은 전투에 녹이면 재미가 있을 거로 생각했고 실행에 옮겼다. 다만 여느 게임이 그러하듯 시작부터 모든 일이 순탄치 않았다.
먼저 그래픽. 개발팀은 도트 그래픽을 원했지만, 인력을 찾기도 쉽지 않았고, 정작 우주가 경험한 그래픽은 3D가 거의 전부였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매번 쓰고 버려지는 콘셉트아트.
지금까지는 주로 3D 모델을 만드는 데 활용됐지만, 우주의 콘셉트아트는 굉장히 호화롭다. 유명 일러스트 작가인 SR과 Sinbaru 등이 창업초기부터 활동하고 있었고, 3D 모델을 만들기 위한 콘셉트아트도 버리기 아까울 만큼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정 PD는 여기에 곧바로 관절을 달아서 움직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시범적으로 몇 개를 만들었더니 예상 이상으로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별이 되어라>는 아직 출시되기 전이었고 바닐라웨어 등 당시에는 콘솔 액션게임 개발사들이 사용하던 관절애니메이션 방식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이 되어라>를 비롯해 관절 애니메이션 방식을 활용한 모바일게임들도 연이어 출시되면서 <엑소스사가>의 그래픽도 더 대중적인 그래픽으로 자리 잡았다. 언제나 '게임성은 좋지만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듣던 우주에게는 정말 천금 같은 기회다.
■ 처음에는 모두가 가볍게. 뒤에는 유저에 따라 게임의 무게가 다르게
정병익 PD가 <브랜뉴 보이>부터 <RPG매니저>까지 모바일게임을 개발하며 뼈저리게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무겁게 보이지 말 것. 대부분 마니악한 유저들을 붙잡는 걸 어려워하지만, 우주에서 내놓은 게임은 언제나 반대다. 출시 초반부터 많은 유저들이 지레 겁을 먹거나 지쳐서 떨어져 나가고, 이후에 남은 유저들만 큰 재미를 느낀다.
그래서 이번에는 게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단계를 나눠서 고민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저가 접속했을 때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모두 감안해서 반복하고, 새로운 시스템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처음 경험하는 시기와 실제로 사용하는 시기를 달리했다.
시스템을 이해하면 더 편하고 빠르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지만 몰라도 일정수준까지는 무난하게 따라붙을 수 있는 방식이다. 동영상과 튜토리얼의 항목이 들어가는 구간까지도 세심하게 검토했다.
깊이 있는 콘텐츠는 굳이 내세우며 보여주지 않아도 유저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그리고 모바일게임이라도 재미를 만들 자신은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유저들이 재미보다 먼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것. <엑소스사가>에서 정병익 PD가 처했던 과제다.
다행히 게임초반까지는 너무 쉽다, 조금은 허무하다, 우주답지 않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고, 정 PD는 이를 충분히 좋은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니악함을 보여줄 기회는 정식 출시 이후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 과거의 게임들에서 겪었던 안정적인 서비스의 중요함
지금까지 대중성과 담을 쌓았던 개발사가 마음만 먹는다고 대중적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에서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정병익 PD 역시 경험을 통해 그것을 잘 알고 있다. <S4리그>와 <RPG매니저>가 특히 더 그랬다. 마니악한 게임일수록 잘못 판단한 업데이트 한 번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그때 퍼블리셔인 아이덴티티 모바일이 권한 방법이 소프트론칭이라는 안전망이다. 소프트론칭이란 모든 플레이를 실제 서비스와 똑같이 진행하고 이후 환불을 해주는 일종의 모의 서비스를 뜻한다.
<엑소스사가>는 결국 5월 21일부터 9월 4일까지 필리핀과 베트남 등 일부국가에서 소프트론칭을 진행했고, 그 사이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생각했던 정 PD는 매주 1회의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사실상의 출시과정을 겪은 셈이다.
덕분에 결과는 대성공. 론칭이 끝난 후 소프트론칭에 참가한 거의 모든 유저가 결제금액을 환불하는 대신 정식서비스 이후 캐시로 받기를 원했다. 출시 이후의 업데이트나 문제에 대한 걱정도 반감됐다.
"맞을 매를 반씩 나눠 맞는 느낌이에요" 정병익 PD의 소프트론칭에 대한 소감이다.
■ RPG매니저에서 남은 밸런스와 시뮬레이터
꼭 실패에 대한 아픔만이 도움이 된 건 아니다. 그의 전작인 <RPG매니저>는 <엑소스사가>에서 예상치 못하던 큰 도움을 줬다. <엑소스사가>의 최종 콘텐츠는 PVP다. 캐릭터의 직업은 16개. 파티의 구성이나 레벨, 스킬과 장비에 따라 정말 다양한 조합과 변수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모바일게임의 PVP는 운이나 반복플레이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온라인게임 규모로 일일이 밸런스를 잡기도 어려울뿐더러 어느 정도는 밸런스가 어긋나 있는 편이 오히려 유저에게 더 많은 플레이를 유도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PVP와 직업간 밸런스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게임인 <RPG매니저>를 경험해 본 개발팀 입장에서 <엑소스사가>의 밸런스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수치로만 유저의 행동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패치가 진행될 때마다 가능한 모든 조합을 찾아내서 계속 전투를 반복하고, 승률이 유난히 높거나 낮은 조합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시뮬레이터를 갖췄고, 이를 토대로 다음 업데이트를 대응하는 방식도 배웠다.
그래서 <엑소스사가>는 모바일게임으로는 드물게 '진짜 공평한 PVP'를 해 볼 계획이다.
■ 대중적인 부분은 퍼블리셔의 역할. 우주의 대중성에 도전
주제를 조금 바꿔서, 그럼 아이덴티티 모바일은 왜 많은 <엑소스사가>를 골랐을까? 아이덴티티 모바일에서 내세우는 건 우주의 장점이자 약점인 마니아층에 특화된 재미다.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핵심유저층이 있다는 건 재미의 포인트를 잡을 줄 안다는 거에요. 대중성이랑 시장에 대한 어필은 우리와 함께 찾으면 되는 거고요" 아이덴티티 모바일 이유상 PM의 이야기다.
"<엑소스사가>는 내 이전 타이틀에 대한 반성 같은 게임이에요" 정병익 PD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게임은 없겠지만 대중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엑소스사가>는 그와 우주에게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엑소스사가>는 지난 10일부터 사전예약을 받고 있으며 조만간 글로벌 출시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