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혼자 만든 게임이라고?”
지스타를 한 주 앞둔 지난 4일, SCEK 라인업 공개 행사에서는 수많은 게임들이 쏟아졌다. 특히 한국 개발자들의 타이틀도 15개나 등장했는데, 그 중 시선을 사로잡았던 게임이 있었으니. 보기 좋은(?) 언니들이 스패너를 휘두르는 시원스러운 액션이 돋보였던 <스매싱더배틀>이 그 주인공. 영상부터 보자.
<스매싱 더 배틀>(SMASHING THE BATTLE)은 고전 아케이드 형식의 액션 게임과 탄막 슈팅 게임을 근접 전투 형식으로 해석한 하이브리드형 액션 게임이다.
미래를 배경으로 대기업의 공사장에서 공사 로봇들이 해킹이 되면서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플레이어는 두명의 주인공을 플레이하면서 이 공사장 해킹 사건에 전모를 알아내야 한다. 많은 적들이 쏟아내는 공격을 비집고 들어가 한번에 몰살시키는 쾌감 플레이가 포인트.
두 개의 에피소드, 두 명의 주인공 플레이어는 두 명의 주인공으로 두 가지의 시나리오를 즐길 수 있다. 각각의 시점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통해서 독립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에피소드를 진행하면서 비밀 문서를 언락하고 동료들을 구출하면서 점점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게 된다.
다른 플레이 방식을 가진 캐릭터들 단순히 공격력, 쿨타임만 다른 스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캐릭터 고유의 능력과 유니크한 플레이 방식으로 각각의 캐릭터가 고유의 재미를 준다.
게임을 풍부하게 해주는 장애물들 고전 아케이드 액션 게임의 스테이지를 독특하게 만들어주던 장애물들을 기억하는가? <스매싱 더 배틀>에서는 플레이어를 괴롭힐 재미난 장애물들이 등장한다. 플레이어를 머리 위를 노리는 철거 스틸 볼부터 작은 불빛에 의존해서 싸워야 하는 정전 현상까지 다양하게 장애물을 만날 수 있다.
안전복 파괴 시스템 일정 이상 데미지를 입으면 입고 있던 안전복이 파괴되면서 데미지를 입어서 변화된 상황을 비쥬얼적으로 보여준다. 안전복이 부서지면 고유의 스킬을 못쓰는 패널티가 있지만 스스로 안전복을 벗어 던졌을 때는…?
|
소규모 인디개발사의 작품이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규모를 떠나 무려 1인 개발 게임이란다. 그래도 아트는 외주를 줬겠지, 싶었다. 맙소사. 오히려 아트 디렉터 출신 개발자가 독학으로 코딩을 배워 만든 게임이란다.
모바일 시대를 접어들며 흔히 볼 수 있는 게 1인 개발이라지만, 아트 디렉터의 홀로서기는 흔하지 않았다. 또 한국에서 콘솔게임에 도전하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 사실 <스매싱더배틀>은 모바일로 시작해 콘솔로 정착한 게임이다. 이 역시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한대훈 스튜디오 HG 대표에게 1인 개발자의 생존기를 직접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1인 개발,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니 완전 좋겠네!"
지난 8개월 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할 수는 있다는 ‘낭만’만큼 부담감과 외로움이라는 ‘짐’도 뒤따르니까. ‘완전’ 좋다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
혹자들은 배부른 소리라고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지난 8개월은 내 게임 개발자 인생 10년 만큼 치열했고 더 노력했다. 게임이 론칭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그간의 이야기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힘든 점]
1. 코딩은 어렵다. 너무 어렵다.
10년 간 아트를 전담했던 개발자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코딩'. 큰 회사에 다니며 곁눈질로 배웠던 것들이 있지만(심지어 든든한 무기도 됐지만), 혼자 살아남기에는 뭐랄까, 간신히 속옷 한 장 걸치고 있는 수준이랄까. 완성은 커녕 제대로 된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스무살, 3D 모델링도 혼자 독학해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책은 넘쳐나리니 까짓 것 부딪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헌데 막상 부딪쳐 보니 되게 아프다.
일단 시중에 판매되는 기본서는 ‘작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말 그대로 기본서일 뿐이다. 그저 만들어 놓은 것에 수치를 바꿔가며 원리를 이해해 나가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책에 나오는 예제가 썩 좋은 게임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
2. 즐기는 건 콘솔게임, 만드는 건 모바일게임?
유니티 엔진을 공부했고, 1인 개발이라는 규모에 맞게 플랫폼은 모바일로 정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했던, 하고픈 게임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모바일이라는 그릇은 어울리지 않았다.
스스로가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보다는 콘솔을 더 즐기는 게이머다. 추구하는 게임의 재미는 스토리 중심으로 캐릭터 하나에 몰입하며 과정을 즐기는 방식이다. 결과를 중시하는 요즘의 모바일게임 스타일과는 타협할 수 가 없다.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한계도 있다. 수집욕을 자극하기 위해 수많은 캐릭터와 장비들을 찍어내는 게 일반적인 모바일게임 비즈니스모델인데, 이런 방대한 콘텐츠를 혼자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단순하게는 캐릭터 노출 수준도 문제다. 청소년 이용불가를 걸어도, 오픈 마켓의 심의는 우리 생각보다 꽤 엄격한 편이다.
3. 외롭다.
아쉽게도 스스로가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다. 늘 목표하는 할당량은 있지만, 스케줄까지 정해놓고 사는 건 일단 태생적으로 어렵다. 무엇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온전히 나만의 것도 아니고, 살림과 육아도 병행해야 했으니 모든 시간을 컨트롤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쉬어서는 안 된다. '내가 쉰다=게임 개발이 멈춘다'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슬픈 공식이다. 조직 안에서는 혼자 차 한잔 마시고, 잠 한 숨 자도 게임은 굴러갔는데, 이게 얼마나 행복한 경험인지는 나와보지 않고는 모른다. 내가 놀면 모든 개발 진행이 멈춰진다는 생각에 죄책감 마저 든다.
외롭다. 가고 싶은 길을 걷는 건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의 몫이다. 잘 되면 내 덕이지만, 안 되도 내 탓이다. 그런데 잘 가고 있는 건 맞는 지 모를 때가 많다. 황무지를 홀로 걸어가는 건 너무나도 고독한 일이더라. 주위에서 힘을 보태겠다고 하는 이들이 없었던 건 아닌데 선뜻 팀을 꾸리기는 어려웠다. 미래가 불확실한 프로젝트를 하며 ‘잘 되면 나눠 줄게’라는 건 책임감 없는 말 아닌가.
[극복]
1. 배워야 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이 별로라는 핑계로 전학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일단 하라는 건 다 해보는 수 밖에. 갖고 있는 책들의 예제는 일일이 다 직접 따라 했다. 한 두어 달 굴렀더니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손에 익기 시작했더라.
물론 예전에 곁눈질로 배워 둔 것들도 큰 도움이 되긴 했다. 또 시대가 훨씬 좋아졌다. 모르는 부분은 구글에게, 유튜브에게 물어봤다. 책보다 나은 것들도 많다. 다시 생각해도 이들은 참 친절한 선생님들이다.
2. 콘솔게임도 만들면 되지 뭐.
에라잇, 부분유료화는 포기했다. 돈을 많이 벌기 어렵다는 건 안다. 그래도 무리해서 게임성을 망치느니, 조금 덜 버는 게 낫다 싶었다. 대신 출시 플랫폼을 늘렸다. 어차피 유료게임 출시를 위해서는 글로벌 마켓을 노려야 하는데, 현지화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그 시간과 노력을 플랫폼 대응에 쏟자! 모바일에 콘솔도 하고, PC도 하고. 트렌드에 맞게 VR 버전도 하고.
따라서 게임은 철저히 ‘콘솔라이크’다. 모바일식 문법은 과감히 버렸다. 많은 캐릭터, 많은 장비대신 각기 다른 기믹이 펼쳐지는 여러 스테이지를 기획했다. 예를 들어 장애물이 위에서 쏟아진다든지, 아예 암전이 된다든지, 과거 오락실 게임들처럼 특색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캐릭터는 단 2개. 하나의 캐릭터로 스토리를 끝내면, 다른 캐릭터가 해금된다. 약간의 부분유료 시스템도 적용되지만,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버프’를 받는 수준으로 끝낼 생각이다.
플랫폼 확장을 위해는 소니의 문을 스스로 두드렸다.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게임을 보여주고 나서야 그들이 웃었다. 또 반겨줬다. 때로는 조언도 줬다. 사실 비타버전을 염두에 뒀는데 최적화 문제도 있고, 보다 유저풀이 넓은 PS4버전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받았다. 현재는 PS4 론칭 준비에 전력을 쏟고 있다. 지난 6일 SCEK 발표 라인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바일로 시작했지만 콘솔 버전을 먼저 낼 예정이다. 이곳에서 하고 싶은 (높은 수위라든지...) 것 다 해본 후에 모바일에서는 덜어내는 작업을 거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살길을 찾았다! 욕심을 더 내어 VR버전까지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미 개발 진행 중. 느낌이 좋다.
3. 집 밖을 벗어나다.
팀원이 없는 대신 지인들을 쫓아 다녔다. 때마다 판교투어에 나섰다. 아는 형, 동생들에게 게임을 보여주며 가감 없는 피드백을 받고 있다. 게임 개발자들이 잔뜩 모인 판교에서 함께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멘탈이 무너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살아야하니까, 열심히 쫓아다녔다.
특히 SNS를 적극 활용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개발 일지를 남겼다. 게임에 관심을 가져주고 원하는 요소를 부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갑옷을 스스로 벗게 함으로써 방어력을 낮추고 공격력을 높이는 건 많은 이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때문이기도 했다. 때로는 번역에 도움을 주시기도 하고, 팬아트를 보내주기도 한다. 팬아트는 게임 안에서 보너스 콘텐츠(오마케)로 보여줄 계획이다.
외로움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버거움, 부담감도 내 몫이다. 게임이 론칭되는 그날까지 계속되겠지.
1인 개발을 시작한 후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묻는다. 단순하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으로 ‘매출’을 올려야 한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게 아니다. 그게 목적이었다면 웹툰 작가인 아내의 작품을 활용해 캐주얼 게임 하나 만드는 게 훨씬 쉬웠겠지.
게임 개발이 재미있다고 하는 동료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하루하루가 뼈와 살을 깎는 기분인데. 대신 굉장히 난도 높은 게임에 도전하는 기분이다. 이른바 ‘유 다이’(YOU DIED)를 계속 보자니 짜증나고 힘들기도 한데, 엔딩이 무엇이 있을 지 궁금하다. 엔딩으로 가는 방법도 알고 싶다. 내가 만든 게임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꿈’이 무엇이냐고도 묻는다. 욕먹을 각오하고 과감하게 답하련다. ‘메타스코어 90점’! 죽기 전에 한번은 받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