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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짝퉁, 카피 혹은 산자이 ①

임상훈(시몬) 2009-08-04 11:47:45

차이나조이에 가면 한국 기자들이 만사 제치고 눈이 빠지라 찾는 게 있습니다. 한국 게임을 닮은 ‘짝퉁 게임’입니다. TIG에도 이런 기사들이 가끔 뜹니다. 화제가 되고, 댓글 창도 후끈해집니다. 해당 게임과 업체는 몰매를 맞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대륙’ 자체가 도마에 오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입니다. 더 이상 나가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이런 현상의 배경이나 대책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내심 불편했습니다. 현상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과 대비되는, 배경에 대한 무지 혹은 무관심. 올해 차이나조이 출장에서는 이 부분을 한번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중국 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게이머들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몇 가지 맥락이 읽히더군요. 두 꼭지로 나눴습니다. 이번 꼭지는 ‘산자이’와 ‘산자이 게임’에 대한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시각에 대해 다룹니다. 가슴 뻥 뚫리는 해결책은 얻을 수 없더라도, 배경을 들여다보고, 현실적인 대책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

 


[허접칼럼] 짝퉁, 카피 혹은 산자이 


 

‘산자이’(山寨), 협객으로 칭찬 받는 도둑질에 관한 이야기

 

‘산자이’(山寨, 산채) 지난해 중국을 달군 최고의 유행어입니다. 대략 우리 말로 ‘짝퉁’, 영어로는 ‘copy’ 정도에 해당하는 단어지만 부정적인 느낌은 덜합니다. 산자이는 원래 산에 목책을 둘러친 터나 산적의 소굴을 뜻합니다. 이를테면 <수호전> 108 두령이 기거했던 양산박 같은 곳이죠. 양산박 산적들이 송나라 조정의 정규군과 맞서 싸우듯중국 무명 기업이 세계적인 브랜드에 대항(?)하는 양상에서 산자이라는 용어가 유래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산자이 휴대폰이 사회적 화제가 된 이후 TV, 냉장고를 거쳐 최근엔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넷북까지 산적들의 영역은 확대됐습니다. 하드웨어만 아니라, TV 오락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 심지어 연예인으로까지 산자이의 성장은 거침없습니다. 자동차, 탱크, 비행기까지 확대되고 있다니 말 다했죠. 산자이는 비단 온라인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대륙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인 거죠.

 

'빅토리아 시크릿'의 란제리 패션쇼도 산자이를 빗겨나갈 수는 없습니다.

 

산자이는 우리 눈으로 보면 분명 나쁜 짓입니다. '가짜와 표절에 불과한 저질문화'라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중국 대중으로부터는 지지를 받습니다. 중국 인터넷 포털 '소후'에서 실시한 '산자이 제품에 대해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하는가'라는 설문조사. 중국 네티즌들은 약 8:1의 비율로 '지원해야 한다'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심리적으로, 중국인의 자존심과 관련돼 있습니다. 산자이는 개혁개방 이후 글로벌 기업에 내어준 자국 시장을 다시 회복하는 협객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요. 산자이의 대표격인 양산박이 나오는 <수호전>이 외세와 군벌과 맞서싸운 뒤 중국을 통일시킨 마오쩌둥의 애독서였다는 점도 흥미롭네요.

 

중국에 있는 양산채(양산박 산채)의 입구. 

 

물질적으로는, 자본주의화에 따른 급격한 사회 양극화 영향이 큽니다. 상류층만 구매 가능한 비싼 브랜드 상품을 서민들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거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1등만이 살아남는 강자의 법칙에 저항, 공생의 가치를 일깨운 쾌거”라고 상찬하기도 합니다. 자본주의화와 그에 따른 빈부격차로 체제위협을 걱정하며 ‘조화 사회’를 추구하는 후진타오 정부가 산자이를 묵인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겠죠.

 

게다가 산자이는 결코 흉내만 낸 허술한 짝퉁이 아닙니다실용적인 쓸모에서 진품에 밀리지 않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물건들이 나올 정도로 진화했으니까요. '옴니아'(삼성)의 산자이인 '애니캣'이나 '아이폰'(애플)의 산자이인 '하이폰' '마이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산자이 휴대폰은 지금까지 1 5,000만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급기야 국내 한 대기업은 기술력이 뛰어난 산자이 휴대폰 제조사에 OEM 제작을 의뢰했던 일도 있었죠그래서 ‘모방을 통한 제2의 창조’라는 옹호도 나오고 있고요. 저렴한 가격에, 외산 브랜드에 맞서, 중국 소비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탑재한 산자이에 대한 대중의 정서는 양산박 108 호걸을 의리의 협객으로 여기며 응원하던 송나라 민중들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베끼기, 자본주의가 걸어온 성장 비결에 관한 이야기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자이를 바라보는 눈길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비판은 형평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베끼기’ 선배들은 대륙 바깥에서도 수두룩했습니다. 60~70년대 우리나라의 가전제품 등 소비재들도 해외 제품을 꽤 모방했습니다. 브랜드까지 거침없이 흉내 내진 않았지만, 산업화 초기 개발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베끼기 수준의 모방은 거의 필수적인 성장과정이긴 했죠.

 

최고의 카피 중에 하나로 기억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은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저렴한 인건비 덕분에 쌌으니까요. 대부분의 자국 소비자들은 모방 여부를 몰랐을 거고요. 처음 접하는 신제품에 그저 감격했을 가능성이 더 크죠. 자기 집에 처음 컬러TV가 들어왔는데, 그게 어찌 만들어졌는지를 따질 정신은 없었을 테니까요. 이런 모방의 과정을 거쳐 기술력을 키운 뒤 자기 색깔의 상품을 만들어 왔던 것이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체적인 산업화 과정입니다. 개발도상국 소비자들은 그 덕분에 할부로라도 전화나 TV 등 현대 문물을 향유할 수 있었고요.

 

이런 성장모델은 아시아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을 보면 구체적인 사례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영국이나 미국 등 현 선진국들도 베끼며 산업화를 진행했죠. 엄청난 보호무역 속에서 자국 산업을 키웠고요. (자국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니까, 입 싹 닦고 자유무역을 신성시 하며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게 좀 얄밉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쉽고,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니, 시간 되시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대륙 바깥의 역사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방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책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반면, 중국의 산자이는 아주 두드러지게 알려졌죠. 로고 모양 등 상표 자체를 베끼는 대담함 탓이 클 겁니다.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패권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차이메리카시대로 들어섰다고 여길 정도로, 공장 또는 시장으로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관련 있겠죠. 인구가 많으니, 생산되는 산자이의 양과 수도 많고, 질도 높은 것도 그렇고요. 게다가, 인터넷 덕분에 이 같은 일들이 이미지와 함께 바로바로 전해지고 있고, 많은 산자이 제품이 우리 수출상품과 겹치는 것도 연관 있을 겁니다. 그 중에 온라인게임이 끼어 있어, 이렇게 우리까지 들여다 보고 있는 거겠죠.

 

 

 게임은 작품인가? 상품인가?

 

지금까지의 글의 전개에 불편함을 느끼실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표절을 협객으로 여기는 대륙 정서에, 비판의 형평성을 운운한 점도 그럴 테지만, 게임은 일반 제조품과 다르다고 여기시는 분이 많으실 테니까요. 맞습니다. 게임은 휴대폰이나 냉장고 등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량 생산되는 상품과 다릅니다. 디지털 예술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최소한 창의성이 중시되는 ‘문화 컨텐츠’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만난 대부분의 중국 게이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국내에서는 가끔 게임의 작품성에 관한 논란이 빚어집니다. 거칠게 나누면, 게임을 ‘작품’으로 보는 층과 ‘상품’으로 보는 층의 충돌 같습니다. 개발자를 ‘크리에이터’(Creator)로 부르느냐, ‘디벨로퍼’(Developer)로 부르느냐, 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긴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게임을 지칭할 때 이 상품은같은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새 게임을 신작이라고 하지, “신상혹은 신상품이라고 부르지 않죠. 대개, 국내에서 온라인게임은 작품과 상품 사이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느 쪽에 얼마나 더 비중을 두느냐?’는 개발자나 게이머가, 게임과 게임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거고요.

 

 게임에서 '작품'의 비중을 더 높이 치는 일본에서는 이런 만화도 나왔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게임을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클수록 모방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성을 강조하는 쪽은 콘솔이나 PC패키지의 경험이 많고, 이에 대한 애정이 강한 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런 관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당연한 거죠게임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니까요. 게다가 최근 중국에서는 하루 한 개꼴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온라인게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장르 별로 엇비슷한 게임들이겠죠. 이런 유례없는 특별한환경에 속한 탓도 크겠죠. 제가 만난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게임을 오락용 상품으로 여기는 것은요산자이 게임에 대한 관대한 태도 뒤에는 이런 맥락이 있을 겁니다.

 

비율은 낮지만, 패키지 경험이 많은 중국 게이머 층의 시각은 우리와 비슷한 편입니다.

 

 

 산자이의 배다른 동생, 막장 드라마

 

대다수 중국 게이머에게는 ‘관대함’보다 ‘무관심’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적재산권이나 저작권의 개념을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잘 모르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비교할 만한 다른 게임들에 대한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한 것도 있고요. TV 캡처 사진 하나만 블로그에 올려도 범죄행위고, 산자이의 표본이 되는 많은 온라인게임을 미리 접해온 우리와 비슷한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저작권이나 지적재산권은 일상에서 흔히 나오는 단어가 아닙니다. 저만 해도 대학 때 외국 원서를 복사하면서, 처음 어렴풋이 저작권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표절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의 인생이나 문화에서 그와 관련된 경험이 없으셨을 테니까요. 지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을 배우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던 게이머들에게 저작권 보호에 대한 호응을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근 <조강지처클럽> <아내의 유혹> <너는 내 운명> <에덴의 동쪽> <꽃보다 남자> 등 '막장 드라마'가 붐이었습니다. 불황기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듯, 팍팍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말초적인 자극을 찾는데서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얼마 전 국내에서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몇몇 드라마들이 현실감 없는 황당한 설정과 선정적인 스토리, 극단적인 전개 등으로 평론가들에게는 뭇매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시청률은 날아 다녔죠. 상당수 시청자들은 골치 아프게 드라마에서 개연성이나 작품성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일상의 피곤함을 덜어줄 시간 때우기용 오락거리를 원했을 뿐이죠.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논한다고, 혹은 표절 의혹이 있다고 해서 그 드라마를 안 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상당수 중국 게이머들에게 온라인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 게임은 그냥 재미만 있으면 될 뿐이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에 대한 해석의 차이

 

어떤 상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소비자의 니즈 또는 반응입니다. 중국 게임업체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제 느낌으로는 오히려 더 충실한 듯합니다. 우리나라 개발자처럼 공급을 통해 수요를 만들어내 본 경험이 덜 했으니까 더욱 그렇겠죠. 게다가 수출은 염두에 둘 필요 없이 내수시장의 니즈만 신경 쓰면 될 거고요. 중국 게이머들의 반응, 즉 ▲산자이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 또는 옹호 ▲게임을 오락 상품으로 보는 정서 ▲저작권에 대한 무관심 등은 산자이 게임이 부담 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이머 출신 개발자들도 게이머들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을 거고요.

 

우리 시각으로 보면, 산자이 게임 개발자들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을 격하게잘 따르는 듯합니다. 사실 이 격언은 잘못된 게 아닙니다. 모두 모방을 하면서 성장하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잖아요. 특정 게임이 성공을 하면, 그와 비슷한 장르의 게임이 우르르 나오는 현상이 있으니까요. 문제는 수준 차이일 겁니다. 산자이 게임 개발자들은 모방에 대해 무척 적극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일 테고요.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연한 과정 아니냐.’ 고 맞받아 치는 수준의.

 

이런 배경이었기에, 바다 건너의 비판, 비난, 아우성, 푸념, 저주,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전기세계>(미르의 전설 2)

<큐큐탕>(비엔비)

<슈퍼댄서>(오디션)

<익스트림바스켓볼>(프리스타일)

<패트릭스>(페이퍼맨)

<귀취등>(던전앤파이터)

<명장삼국>(던전앤파이터)

<X>() 등의 타이틀들이 속속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제목 옆은 표절한 원본으로 이야기되는 우리나라 게임입니다. 원래 중국 게임 이름의 한자는 본토 발음에 맞게 표기해야 하나, 편의상 이미 익숙해진 우리 식 발음으로 썼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대부분 내수용으로 만들었으니까 외국 눈치 볼 일도 없을 거고요. 온라인게임 초창기에는 국산 온라인게임시장에 먼저 깃발을 꼽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로, 이후 경쟁이 치열해진 뒤에는, 검증된 흥행도 중요하고, 투자도 받아야 하니까, 흥행한 게임을 열심히 참조했을 거고요.

 

중국 업계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비주얼과 기본 플레이 방식이 한국 게임과 너무 비슷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예상 못 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프로그램 코드를 복사한 것이라면 문제겠지만, 겉모습이 비슷한 게 뭐가 문제냐.” 휴대폰이 다 비슷한 겉모양에, 기본 작동방식이 비슷한 것처럼 게임도 그럴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2편에서는 시각을 좀더 넓혀볼까 산자이 게임을 둘러싼 환경을 살펴보겠습니다. 판호 정책과 산자이의 관계라거나 점증하는 신중화주의의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불법서버와 산자이의 커넥션 등을 짚어볼까 합니다. 더불어 결코 충분치는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필요한 대책에 관한 제 허접한 생각을 덧붙이겠습니다. sim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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