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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

[TIG룩백] 동료애가 주제인 게임에서 동료를 하나씩 없애버릴까 고민한 이유

스튜디오 두달 포스트모템 ③ 팀에서 회사로의 전환 그리고 '라핀'의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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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두달(스튜디오두달) 2024-12-31 10:09:08

2021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인디게임 기획개발 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라핀> 개발은 취미에서 업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스튜디오 두달은 인디게임 '팀'에서 '회사'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 계기 중 하나는 충남글로벌게임센터의 2022 신규게임 제작 지원에 선정된 것이었다. 센터의 개발 공간과 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지원사업이었기에 개발에 있어 큰 메리트가 있었다. 단점이라면, 위치가 충남 아산이다 보니 기존에 모두 서울에 있었던 우리 팀에겐 낯선 환경이라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아산으로 내려가야 했고, 그 말은 서울에 잔류하는 팀원들과 대면 소통이 불가해짐을 뜻했다. 여러 미팅이 어려워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개발 공간과 자금을 지원 받는 좋은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지원이 없다면 <라핀> 개발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직 학부생이었던 팀원들을 제외하고, 두 공동대표가 아산으로 내려가게 됐다. 약간의 불안함과 설렘을 안고, 충남글로벌게임센터에 입주했다. 그리고 이것은 회사로서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기고=스튜디오 두달 김민정 공동대표,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TIG룩백 스튜디오 두달 포스트모템 5부작]
① 두 달의 프로젝트가 5년의 여정이 되기까지 (바로가기)
② 바꾸고 고치고 또 변경하고...'라핀'의 원동력은 각별함이었다 (바로가기)
③ 동료애가 주제인 게임에서 동료를 하나씩 없애버릴까 고민한 이유 (현재 기사)
④, ⑤ (주간 연재 중) 

<라핀>


# 팀에서 회사로, 첫 직원 채용

2022년, 당시 스튜디오 두달 팀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공동대표를 제외한 팀원 네 명이 아직 대학생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방학 중엔 개발 속도가 어느 정도 빨라지지만, 학기 중엔 개발 속도가 굉장히 더뎠다.


이미 <라핀>을 개발한 지 햇수로 3년이 되던 참이었고, 첫 작품에 더 이상 많은 시간을 쏟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2022년 하반기엔 꼭 <라핀>을 얼리 액세스로 출시하고 싶었고, 그 목표를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개발자가 필요했다. 게임의 분량이나 퀄리티를 조정하는 방향도 있었겠지만, 이 부분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남은 방향은 채용뿐이었다.


팀 시절, 방학 기간 중엔 다른 팀원의 집에 가서 개발하기도 했다.

물론,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위험부담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작은 인디게임 팀일수록 새로운 구성원 한 명이 조직에 끼치는 영향력은 크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공고를 통해 채용하는 것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큰 부담감이 따랐고, 이 부분을 기존 팀원들도 걱정하던 상황이었다. 그 외에도 관리 코스트나, 비대면 소통의 문제 등 걱정스러운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라핀>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증원의 부작용을 감수하고 직원 채용을 결정했다.


신규 인원의 채용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일이었다. 우리와 결이 맞는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우리 팀의 일 하는 방식’에 대해서 팀원들과 대화했을 때, 우리는 모두 여러 분야에 배움을 추구하고 도전하며,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고 그것에서 게임 개발의 인사이트를 얻는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대화를 기반으로 인재상을 정리했다.


기존 팀원들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정한 인재상


그렇게 공동대표 둘만 있어 썰렁했던 아산 사무실에 레벨디자이너 한 분을 시작으로 총 네 분의 직원분이 추가로 합류하게 되었다. 채용을 결정하기 전의 걱정들이 무색하게, 너무나 우수한 분들이 <라핀>에 대한 애정으로 입사하셨다. 이 채용들로 스튜디오 두달은 임직원 10명의 인디게임 회사가 되었다. 취미에서 업으로의 변화에 이어, 팀에서 회사로 변화되는 순간이었다.


충남글로벌게임센터 사무실



# 지키고 싶었던 것 - 팀의 문화

팀에서 회사로 변화함에도, 지키고 싶은 사소한 문화가 있었다. 낙성대 작업실 시절, 매일 집중력이 흐려지는 오후쯤 팀원들과 카페에 가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작업실로 돌아가곤 했다. 작업실 밖으로 나가 카페에 갔다 오는 과정은 업무에서 잠깐 숨을 돌리며 몸을 움직이는 리프레시가 되었고, 바깥에서 나누는 잡담들로 게임 개발에서 고민되던 지점들에 대해 생각지 못한 인사이트를 얻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을 ‘커피 타임’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했다. 그렇게 매일 오후 3시, 함께 게임센터 근처 카페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매일 여섯 명이 똑같은 시간에 커피를 우르르 마시러 가다 보니, 카페 직원분들이 우리가 주로 마시는 커피를 미리 준비해 두시고 있기도 했다. 이 ‘커피 타임’ 문화는 어느새 스튜디오 두달의 특이한 문화로 자리 잡아,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론 기존 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싶어, 기존 팀원분들과 새롭게 합류한 분들이 최대한 많이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었다. 그 일환으로 두 번째 사내 게임잼을 아산에서 개최했다. 기존 인원의 두 배 가까이 인원이 늘어났지만​, 이런 과정 끝에 다행히 큰 무리 없이 하나의 팀으로 융화되어 <라핀>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잼은 기존 팀원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함께 참여해, 서로 슬랙으로만 소통하다 얼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트 디렉터는 나무를 깎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라핀> 책갈피를 송년회에서 모두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 바꿔야만 했던 것 - 업무 프로세스

한편으론, 회사가 되며 팀일 때와 같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특히 업무 프로세스는 변경이 필요했다. 팀으로서 <라핀>을 개발했을 때 우린 탑다운 방식이 아닌 개인의 자율에 기반한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했다. 각자가 한 주에 자신이 할 일을 주도적으로 정하고, 각자가 세운 세부 목표를 지키는 방식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낙성대 작업실 시절. 자율성에 기반해, 업무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체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에서 우리는 한 파트에서 개발이 늦어져도 다른 파트를 담당한 사람이 이해해주며 자신의 일정을 조절했다. 하지만 이는 인원이 적고, 모두가 비슷한 작업 환경을 공유했기에 서로 합의하며 조절해서 가능한 개발 방식이었다. 인원이 늘어나면서 대략적인 일정 합의는 어려워졌고 세세한 조절이 필요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팀이었을 때는 모두가 모두의 작업물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 장려되었다. 모두 의욕에 넘치기도 했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서로의 피드백이 게임을 좋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질수록, 구성원들이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두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거나,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게 일하는 과정에서 괜한 오해를 하거나 상처를 받는 사람이 생겨나기도 했다.


결국, 이제 우리 회사에 필요한 것은 업무의 명확한 규정이었다. 탑다운 방식을 기본으로 하여, 이규원 공동대표가 일정 관리를 맡아 한 달의 스프린트를 정하고, 이후에 한 달의 스프린트를 달성하기 위해선 한 주에 어떤 작업이 필요한지를 세세한 단위까지 확정했다. 이렇게 정한 주간 일정을 바탕으로 회의 일정을 잡았고, 달성률을 체크했다.


그리고 작업물의 피드백은 같은 직군끼리는 자유롭게 하되, 타 직군의 작업물에 대해 말할 때는 그 표현에 있어서 조금 더 신경을 쓰는 쪽으로 결정했다. 기존의 문화였던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는 반하는 방향이었지만, 이러한 기조의 변화가 오히려 현재의 규모에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방향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후로도 수많은 수정과 시행착오들을 거쳤다. 당연히 현재 또한 완벽한 상태라고 말할 수 없다. 앞선 회사의 문화나 업무 프로세스 모두, 현재까지도 가장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고민들이 게임 개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분명 유의미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라핀>



# <라핀> 출시와 그 이후

'게임 출시는 큰 바다에 돌멩이를 하나 떨어트리는 일'이란 말을 한 대표님께 들은 적이 있다. 그 돌이 큰 파문을 불러일으킬지, 혹은 작은 흔적만 남길 채 떨어져 내릴지는 모를 일이며, 사실 대부분은 그저 가라앉을 뿐이라는 것을. 꽤 인상적인 말이었다.


2022년 11월, <라핀>은 얼리 액세스를 진행했다. 스팀 얼리 액세스와 동시에 Xbox 게임 패스에 게임 프리뷰로도 오픈되었다. 게임 패스 구독자라면 Xbox 게임 패스에서 공짜로 플레이를 할 수 있었기에, 스팀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얼리 액세스 출시 후, 예상과 다르지 않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Xbox 게임 패스로 <라핀>을 플레이했다. 결국 Xbox에선 꽤 괜찮은 다운로드 수가 나왔지만, 스팀에선 기대치를 하회하는 성과를 마주했다.


스팀 버전의 성과가 크진 않았지만,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은 충분히 유의미했다. 게임이 많이 알려지진 않았더라도, 게임을 해본 플레이어들의 평이 매우 긍정적이라는 점이 큰 기쁨이었다. 우리가 장점이라 생각했던 부분들을 정확하게 좋아해주셨고, 그 점이 큰 안도감을 주었다.


<라핀> 얼리 액세스 유튜브 트레일러 스크린샷


한편, Xbox 버전 출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선 예상치 못한 문제로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간 내부 QA로 웬만한 버그는 모두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외부 QA를 진행하자 알지 못했던 수많은 버그들이 있었다. 출시 전, 외부 QA로 나온 수정 사항들을 반영해 매주 빌드를 업데이트했다.


Xbox에서는 새 빌드를 업데이트할 때 빌드 검수 과정을 통과해야 등록이 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변경된 버전마다 업데이트가 잘 되어 가던 중, 출시 한 달 전 즈음부터 검수를 통과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검수가 통과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으니 해결할 수가 없었다. 결국 Xbox의 게임 프리뷰 출시 빌드가, 그만 한 달 전 통과되었던 빌드 버전으로 스토어에 공개되어 버리는 상황을 겪게 됐다.


한 달 전 버전으로 출시되었으니 Xbox 버전 <라핀>엔 수많은 버그가 속출했고, 그로 인해 부정적 리뷰가 쌓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빨리 업데이트 검수가 통과되어 최신 버전이 스토어에 올라가길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내외부 QA로 이미 해결한 이슈들로 불편을 겪고 있는 리뷰를 보며, 죄송하고 아쉬웠다. 매일 새벽에 깨어 메일함에 심사 결과가 왔는지 마음 졸이며 확인하던 시기였다. 다행히도 며칠 뒤 최신 빌드가 통과되어, 안정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그렇게, 스팀과 Xbox 리뷰에서 확인한 앞 부분 챕터들의 여러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 사항들을 포함해, 후반부 챕터들의 개발까지 완료했다.


이듬해인 2023년 8월, <라핀>이 정식 출시되었다. 얼리 액세스 때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반향은 일어나지 않았다. <라핀>은 큰 파문은 일으키지 못하고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게임이 되었다.


<라핀> 얼리 액세스 무렵 전시에서 남겨 주신 플레이어분들의 메모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 돌 하나 떨어진다고 당장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이겠지만, 서서히 시간이 지나며 바다 밑에 가라앉은 돌에서 소라게도 살고 물고기도 살고 해초도 돋아나지 않을까? 파문이 크면 물론 좋겠지만, 긴 과정 끝에 출시한 모든 게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바닷속을 들여다본다면, 마치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돌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반짝거리며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출시 이후 참여한 전시회들에서 <라핀>의 플레이어분들이 건네주셨던 깊은 응원과 애정을 기억한다. 스튜디오 두달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들과, <라핀>의 서사와 캐릭터를 좋아하는 분들의 말씀, 게임이 너무 재미있다며 모든 굿즈를 한가득 사 가신 분들을 기억한다.

 

게임 스토어 페이지나 메일에서도, 힘들었을 때 <라핀>의 BGM을 몇백 시간씩 들으며 버티셨다는 분과, 개발사의 차기작을 응원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신부가 <라핀>게임과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결혼식에서 <라핀> BGM을 틀어도 되는지 문의해 온 해외 플레이어분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라핀>을 기획할 때 토끼와 관련해 신경 쓴 여러 디테일을 알아보시는 분들도 있었다. <라핀>을 만들며 여러 토끼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토끼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사소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당근을 싫어하는 토끼도 있다거나, 전선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토끼들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랜선 집사가 되어 알게 됐다. 그랬기에 ‘토끼를 키워 본 입장에서, 토끼와 관련된 부분들이 정말 자세하다’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기쁘고 다행스러웠다.


이렇게 <라핀>을 플레이하고 남겨 주신 모든 마음들이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했다.


<라핀> 전시에서 받은 소중한 엽서. 토끼들을 닮은 빵까지 함께 주셨다.



# 토끼들의 이야기 <라핀> 포스트모템

<라핀>은 스튜디오 두달의 첫 작품이기에 아쉬운 점도 많고, 그만큼 애착이 많은 게임이다. 다만 확실한 점은,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있는 아쉬움과 별개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라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초반 10분 내에 게임의 재미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챕터2 부터는 매 챕터마다 난관이 있고 긴장되는 이벤트가 발생하지만, 챕터1은 어떠한 사건도 없이 너무나 평화롭다. 특히, 초반이 다소 기본적인 기믹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챕터 자체가 길다. 하지만 챕터1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또다시 변경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었다.


너무나 평화로웠던 챕터1 공원

한편, 챕터5에 있는 특정 이벤트까지의 빌드업 과정이 약했다거나, 몇몇 이벤트 플랫포밍의 판정이 매우 타이트한 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쏟지 못해 챕터6의 기믹이 난해한 점이 아쉬운 지점들이다. 타깃 유저층을 모호하게 잡고 출발하여, 난이도 조절이 어려웠던 것도 한몫 했다. 스토리 면에서도 최대한 줄였지만 여전히 대사량이 많았다.


하지만 <라핀>이 다섯 토끼들의 동료애와 사랑, 그 모험 속에서 주인공 토끼 ‘리베’의 성장을 주요한 테마로 했던 게임인 만큼,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다.


게임 내내 다섯 토끼들과 '함께' 모험하는 시나리오의 설정상, 자연스러운 이야기 진행을 위해 토끼들이 한마디씩 이야기하다 보면 대사량은 아무리 줄여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스토리를 즐기지 않는 유저에겐 지루함을 야기하는 원인이었다. 물론 스킵 기능이 있었지만, 대부분 스킵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빠르게 대사를 넘기는 방향을 택했다. 개발 측면에서도 대사량을 최대한 줄이며 다섯 토끼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스크립트를 위해 많은 고려가 필요했다.


대사량 외에도, 컷씬에서 다섯 토끼들의 행동에 디테일을 추구할수록 개발의 로드는 크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챕터1에서 토끼들이 함께 목적지로 달릴 때, 어떤 토끼는 함께 뛰다 뒤처지는 리베를 기다려 주고, 성격에 따라 어떤 토끼는 먼저 길을 개척하고, 어떤 토끼는 최단 루트로만 이동하는 등의 디테일을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다섯 토끼들의 컷씬용 이동 코드를 하나하나 제어해야 해서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토끼들이 다함께 다리를 건너기 전에, 다리까지 향하는 과정에서 몇몇 토끼들은 리베를 기다려 준다. 
어떤 토끼는 빠르게 앞서 달려가기도 한다.


이런 대사량이나 개발 로드로 인해, 나는 시나리오를 쓰다​ ‘챕터마다 그냥 한 마리씩 없애 버릴까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동료애를 주제로 한 게임을 만드는 사람조차도 그 동료애를 게임 내에서 추구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는 말이다. 


하지만, <라핀>은 다섯 토끼들 모두가 함께 모험할 때 의미가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토끼들에게 스토리에서의 역할을 뚜렷하게 부여하려 노력했고, 한 챕터당 한 토끼가 특수 이벤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토끼들은 여러 문제 상황에서 다양하게 협동하고, 속 깊은 이야기도 하며, 성장한다. 그렇게 다 함께 모험한다는 설정을 포기하지 않고 추구해, 그것을 <라핀>만의 특징이자 스토리에서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라핀> 개발을 후회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상처를 공유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는 토끼들

<라핀>이 함께 협동하며 모험을 떠나는 내용이다 보니, 출시까지의 긴 과정을 함께 한 구성원들이 내겐 <라핀>의 토끼들과 겹쳐 보일 때가 많았다.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라핀>의 토끼들이 결국 서로 의지해 난관을 뚫고 낙원을 찾은 것처럼, 스튜디오 두달 또한 <라핀>을 출시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이뤘다.


그것은 회사로서의 스튜디오 두달이 경험한 가장 보람차고 뜻깊은 순간이었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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