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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스팀 ‘스킨 도박’ 제재 가능성 열렸다…그런데 그게 뭐지?

공론화 이후 6개월 만의 첫 대응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05-15 18:11:42

“밸브가 스팀 게임 스킨을 가지고 벌어지는 온라인 도박 문화를 방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튜브 채널 ‘피플 메이크 게임즈’가 공론화에 나섰던 문제다. 게임 업계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이 탐사보도 채널은, 영상에서 벌써 수 년간 지속해 온 이른바 '스팀 스킨 도박' 사이트의 존재와 그 문제점을 폭넓게 진단했다. 또 밸브의 부실한 문제 해결 노력을 꼬집었다.

 

그런데 영상 공개 약 6개월이 지난 현시점, 밸브가 스팀 플랫폼의 ‘행동 규칙’(code of conduct)에 ‘도박 금지’를 추가하면서 눈길을 끈다. 이번 변화는 스킨 도박 문제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 전에, '스킨 도박'이란 정확히 뭘까?

 


 

 

# 스킨 도박, 그게 뭔데?

 

지난해 10월경 피플 메이크 게임즈는 ‘어떻게 밸브는 스팀 백도어 카지노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나’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밸브의 스킨 거래 기능을 활용한 도박 사이트 문제를 고발했다. 이들은 스팀에 루트박스와 스킨 거래 시스템이 생긴 2010년 이후 하나둘 이러한 도박 사이트가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스팀 API를 기반으로 구축된 이들 사이트에서 유저는 자기 스킨 아이템을 재화처럼 ‘베팅’, 일정 확률로 더 좋은 스킨을 얻게 된다. 내가 소유한 아이템을 소비해 다른 아이템을 얻는 방식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본격적 도박 사이트보다는 오락성 서드파티 사이트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팀 게임들의 스킨 아이템은 대부분 현금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인게임 루트박스를 사거나, 스팀 장터에 올라온 아이템을 돈 주고 구매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따라서 스킨 도박 사이트에 베팅할 스킨이 소진됐다면, 베팅할 스킨을 마련하기 위해 실제 돈을 쓰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이렇게 얻은 스킨을 현금화할 수도 있다. 이것은 스팀이 직접 제공하는 기능은 아니다. 스팀 장터에서 스킨을 판매한 대금은 스팀 플랫폼에서 쓸 수 있는 ‘스팀 월렛 머니’로 입수된다. 하지만 스팀 스킨 아이템을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는 서드파티 ‘거래소’를 사용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결국 스팀 스킨 도박 사이트는 돈을 거는 것도, 따는 것도 가능한 실제 온라인 카지노와 다르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스킨 도박 사이트 예시 (출처: 유튜브 People Make Games)

 

 

# 온라인 카지노보다 위험하다?

 

심지어 스팀 스킨 도박이 어떤 면에서는 온라인 카지노보다 더 위험하다고 채널은 주장한다. 이들 도박 사이트는 표면적으로는 현금이 오고 가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별도의 신분 인증이 요구되지도 않고, 보안 시스템도 없다. 스팀 아이디만 있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스킨 도박 사이트’는 청소년 도박의 온상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어린 학생들도 부모의 도움을 통해 일단 스팀 아이디를 만들고 나면, 그때부터는 사이트 이용을 막는 안전장치가 없다.

 

많은 연구에서 아직 두뇌 발달이 완료되지 않은 시기인 청소년 및 어린 성인(young adult·통상 25세 미만) 시기에 도박을 접할 경우, 이를 절제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친 도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이야기한다.

 

피플 메이크 게임즈는 스킨 도박 사이트를 통해 어린 나이에 도박 문화를 접하게 된 유저를 십수 명 인터뷰한 내용을 영상에 삽입, 이런 문제를 조명했다. 인터뷰이 중 상당수는 ‘도박인 줄도 모르고 빠졌다’, ‘한번 빠지고 나니 걷잡을 수 없었고, 아직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그 심각성을 경고했다.

 

영상에서 한 인터뷰이는 "어린 시절엔 작은 금액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당시 경험한 것과 같은 쾌감을 성인이 되어 느끼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걸어야 한다"고 증언했다. (출처: 유튜브 People Make Games)

 

 

# 밸브의 책임은?

 

그렇다면 이 문제에서 밸브의 책임은 어느 지점에 있을까? 사실 밸브는 관련 사이트의 존재를 인식하고 일련의 고소 등을 통해 사이트를 폐쇄한 적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폐쇄되었던 사이트 대부분이 부활하여 현재까지도 버젓이, 거대한 규모로 운영된다는 사실에 있다고 채널은 주장한다.

 

이것은 최초의 대응 이후 밸브가 더 이상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차대한 문제에 스팀이 소극적 행보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피플 메이크 게임즈는 전현직 밸브 직원들의 익명 인터뷰를 인용, 그 근본적 원인 몇 가지를 추측한다.

 

특히 중요하게 작용한 사실 중 하나는 밸브 직원들의 ‘중립적’ 운영 철학이다. 인터뷰에서 밸브 관계자는 밸브 구성원들이 되도록 스팀 생태계 참여 방식을 규율하거나 별도의 금지사항을 정하지 않으려 하는, 극도로 중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때로 문제를 직접 파고드는 외과적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된다.

 

예를 들어 한 익명 직원은 스팀 스킨 도박 사이트들이 횡행하는 큰 원인 중 하나가 스팀 계정을 통해 외부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OpenID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문제적 사이트에 한해 OpenID를 허가하지 않는다면 스킨 도박 사이트 문제도 많은 부분 해결된다.

 

다만 이 경우, OpenID를 허가해 줄 웹사이트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이트별 요청을 받고, 이를 다시 심사·인가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은 자동화가 상당히 어렵고, 밸브 직원들의 직접적 개입과 판단을 요하는 절차인데 이는 관여를 꺼리는 밸브의 문화와 상반된다.

 

많은 게이밍 사이트가 '스팀 ID로 로그인'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사진은 '스팀DB'의 해당 기능 안내 화면.

 

여기에 특이한 업무수행 방식은 문제 해결을 더욱 방해한다. 밸브는 임원들이 직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하향식 문화가 거의 없고, 프로젝트 단위로 각자 팀을 구성해 수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밸브 구성원들의 가치관에 반하는 관리 문제에 힘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고 익명의 밸브 출신 인사는 밝혔다. 이러한 특유의 업무수행 방식에 대한 증언은 TIG의 기존 인터뷰 내용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참고 기사: 수직구조 없는 회사 밸브, "우리의 상사는 고객" 

 

그런데 피플 메이크 게임즈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밸브가 이들 사이트를 통해 얻는 간접적 이익 때문에 일부러 문제를 방치했다는 추측을 한다.

 

도박 사이트를 포함해 스팀 API 사이트들이 활성화되면, 스팀의 각종 기능과 개별 게임에 관한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며, 이는 유저 수 유지 및 증가로 연결된다. 실제로 스킨 도박이 가장 성행하는 <CS:GO>는 공교롭게도 현재 스팀에서 가장 많은 유저를 확보한 게임이기도 하다.

 

또한 스킨 도박 사이트를 모두 폐쇄해 버릴 경우, 유저들이 보유한 스킨 아이템 전반의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아이템 거래량과 유저수가 폭락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 따라서 밸브가 스킨 도박 사이트의 폐쇄를 원할 리 없으며, 그 때문에 실질적 문제 해결에 나서지도 않는다는 게 피플 메이크 게임즈의 주장이었다.

 

<CS:GO>는 스팀에서 동접자 수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게임이다.

 

 

# 제재 '가능성' 활짝 열렸지만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규정한 온라인 행동 규칙에서 스팀은 드디어 ‘도박 금지’를 명문화했다.

 

‘온라인 행동 규칙’은 스팀 내 모든 행위와 콘텐츠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규칙으로서, 이를 위반하는 콘텐츠 또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규정을 위반하는 콘텐츠를 게시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자행하는 계정은 제재 대상이 된다.

 

관련 세칙을 살펴보면 밸브는 기본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으며, 그 예시로서 도박과 함께 ▲광고 게시 ▲대회 추진 ▲스팀 계정 구매 또는 판매 ▲콘텐츠와 기프트 카드 또는 기타 아이템 판매 ▲판촉 행위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앞으로 스팀 아이템을 이용해 외부 사이트에서 도박을 벌이는 유저는, 최대 ‘계정 정지’ 등 강력한 제재를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말 그대로 ‘가능성’을 담보할 뿐이다. 밸브가 관련 활동의 모니터링과 제재 적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피플 메이크 게임즈가 문제 삼은, 벌써 수년간 이어져 온 스킨 도박 문제는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