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게 ‘끝’이 아니다. 그림 보다 컨셉의 디테일을 고민해야 한다.”
아이덴티티게임즈 이승찬 부팀장(오른쪽 사진)은 15일 ‘더욱 풍부한 게임월드 만들기’를 주제로 한 KGC 강연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게임 내의 작지만 여러 설정들이 그래픽과 연계되면서 유저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그래픽만 보고 ‘와 멋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상력을 통해 게임 속 세상을 더욱 멋지게 바라 본다는 것이다.
유저가 상상해온 것과 게임속 세상이 일치한다면 굉장한 설득력을 주게 돼 유저들은 게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설득력 있는 비주얼이며 게임에 접속한 유저에게 멋진 인상을 남기는 게 포인트’라고 강조하면서 그는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했다.
■ 풍부한 게임 비주얼을 위해 컨셉 아티스트가 염두 해야 될 것.
모든 비주얼이 시작되는 컨셉아트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면 설정이 잘 녹아든 컨셉 아트란 무엇일까?
▲ 컨셉 아트가 완료되면 멋을 추가한다.
컨셉 아트는 설정, 개념, 느낌 등을 토대로 제작된 이미지다. 그러므로 컨셉 아트는 설정이나 개념을 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본 게임아트나 입사지원자의 포트폴리오 작업물을 보면 비주얼로만 풀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작업물에는 배경이나 역사 등이 배제된 경우가 많았다.
다른 컨셉 아티스트가 작업한 디자인 결과물을 자신 스스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표현 스타일만 가져온다.
컨셉을 표현하기 위해서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컨셉 아트는 일반 그림과 그리는 목적이 다르다. 그래서 컨셉 아트를 고화질로 그린다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
▲ 왜? 를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건 ‘왜?’ 라는 질문이다.
‘이 캐릭터는 왜 여기 있는가?’, ‘이런 옷을 입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은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가?’, ‘이 돌은 왜 여기 있는가?’ 처럼 의문점이 해결될 때까지 계속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것은 그림을 그리고 다듬는 일보다 중요하다.
▲ 최대한 모든 질문을 해소해야한다.
컨셉 아티스트는 혼자가 아니다. 결과물이 항상 팀 작업으로 이어지므로 컨셉 아티스트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팀과 관련된 모든 사람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림 한 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 팀원으로써 설정과 잘 맞물린 컨셉아트를 그려야 할 필요성은 무엇인가?
설정과 잘 맞물린 컨셉아트를 그리면 같이 일하는 팀원을 설득하기 편해진다. 만약 모델러가 “이상하지 않아요?” 라고 묻는 순간, 모델링이 잘 나오리라 기대해서는 안된다.
▲ 설득력 있는 컨셉 아트가 필요하다.
반대로, 설득력이 있는 컨셉 아트를 팀원들이 접했을 때 ‘어 이거 재미있어 보여’라는 생각하게 되면 팀원들은 작업에 몰입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나오는 결과물도 당연히 좋아진다.
게다가 생각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우, 그들의 생각과 취향을 충족시키기 힘든 문제가 있지만 설득력 있는 컨셉 아트가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결과물도 잘 나올 것이다.
▲ 설득력 있는 컨셉 아트는 팀 전체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
또 컨셉아트를 보완하기 위해 가이드 라인도 등장한다. 내가 원하는 컨셉 아트를 그렸을 때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을 다른 팀원이 보완해줘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 더욱 풍부한 게임월드를 제작하는 시작점이 된다.
■ 더욱 풍부한 아트웍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상점에서 팔 물건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점 컨셉 아트를 만들어야 했던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게임에서 나오는 것들 물약, 천, 가죽, 폭탄, 계산을 위한 장부 등에서 어떤 것을 넣을 지 고민했다.
자잘한 설정은 스토리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컨셉 아트는 그리는 것이 50%, 생각하는 것이 50%다. 혹은 그 이상이 되기도 한다.
▲ 상점 컨셉 아트.
처음 나온 그림은 위에 말한 것들만 있었는데, “상점만 있으면 움직임이 너무 적지 않냐”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면서 추가로 하운드를 팔자는 의견도 나왔다.
▲ 가격표가 추가된 모습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내가 생각지 못했던 가격표를 모델러가 붙여줬다. 상점이라는 컨셉이기 때문에 가격표가 붙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것이 가이드라인이다. 거기에 포대나 책자, 가방이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다.
▲ 역동감을 주는 애니메이션.
또 갇힌 하운드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도 좋은데 거기에 물건을 올려 상호 작용하면 어떨까 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창살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올려 놓으면 정말 ‘열 받겠다’ 라는 생각에 열쇠를 올려놓기로 결정했다.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여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 작은 소품과 재미요소
과녁 하나를 만든다고 해도, 단순히 과녁 하나만 만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소품을 적용해 재미를 줄 수 있다. '만든 지 얼마 안된 느낌을 주는 나뭇잎'이라던가 '고블린 사진' 혹은 '다리에 있는 구멍에 화살이 박힌 모습' 등이 심심한 과녁을 보다 생동감있게, 그리고 더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
▲ 다양한 재미요소가 들어간 과녁.
또 이펙트와 UI도 화면의 일부다. 게임 전반적인 모든 요소를 염두에 두는 것이 더 좋은 작업물이 나올 수 있게 한다.
거기에 컨셉 아티스트는 형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이나 연기가 피어 오르는 현상 혹은 누군가 달려갈 때 나타나는 효과들과 같은 것을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 드래곤네스트 소서리스 컨셉
'포스 익스플로전'이 어떻게 시전되서 폭발하고 후폭풍은 어떻게 생기는가를 고민한 적이 있다. 특히 후폭풍이 폭발 뒤에 바로 터지는 것 보다 잠깐 시간을 두고 터지도록 해 더욱 큰 타격감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 암흑 계열의 소서리스 컨셉
▲ 빛 계열의 소서리스 컨셉
또 마법사에게 마법진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드래곤네스트>는 마법진이 잘보이는 시야로 게임이 진행되므로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포스 유저'의 컨셉인 레이저, 암흑, 시간에 따라 직접 마법진을 설정했다.
▲ 포스 유저의 컨셉에 맞춘 마법진. 시계모양이 눈에 띈다.
▲ 완성된 마법진.
또 차원을 넘나드는 돼지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 온 적이 있다. 돼지라는 컨셉이면 선글라스를 끼고 총을 들고 있는 컨셉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거만한 자세로 뒤에 바니걸 등장시키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다. 생각한 것들은 많았지만 돼지를 풀어내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 차원의 돼지 컨셉.
이런저런 고민 끝에 앨리스의 ‘시계를 돌리는 토끼’를 컨셉으로 잡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나온 게 이 디자인이다.
▲ 처음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처음 나온 것이 돼지지만 그것을 모티브로 해서 더 나은 비주얼을 제시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또 그렸던 것이 100% 완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컨셉의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생긴다. 최대한 느낌을 살리며 다른 작업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디자인들이 실제 게임에 많이 들어가 있다.
▲ 강연을 마무리하는 이승찬 부팀장
이승찬 부팀장은 마지막으로 “설득력 있는 컨셉이 중요하고 작은 것 하나를 그리더라도 많은 설정을 덧붙여 재미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아이디어와 의견의 공유는 최선의 아트웍을 만드는데 필요하다. 고집도 좋지만 팀 작업을 할 경우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고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며 강연을 마쳤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컨셉의 디테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