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EBS에서 방영된 <생방송 EBS 교육 대토론>에서는 ‘게임 중독법,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4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중독 예방·관리와 치료를 위한 법률’에 대한 찬반 토론으로, 패널들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게임을 다른 중독물질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 옳은지 등 중독법의 타당성에 대한 의견들 주고받았다.
중독법을 찬성하는 패널에는 아이건강연대 김민선 사무국장과 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이자 중독포럼 상임의원을 맡고 있는 이해국 교수가 참여했으며, 반대 측 패널에는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가 자리했다. 디스이즈게임은 중독법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방송에서 오간 패널들의 의견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중독법 찬·반, 과학적 근거 있나?
찬성 측 이해국 교수는 게임 중독은 이미 의학적으로 입증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중독이라고 알고 있는 알코올은 100년째 중독임을 증명 중이고, 도박은 10년째 연구되고 있다. 게임 역시 최근 3년 동안 35편의 논문에서 뇌 영상 촬영을 통해 게임 중독을 입증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뇌 질환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FMRI(자기공명영상)을 활용한 연구 결과를 증거로 내세우며, “정상인과 중독자에게 게임 관련 자극을 주었을 때 중독자에게는 쾌감중추와 동기 반응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해국 교수가 제시한 자료. FMRI(자기공명영상)으로 ‘도박·인터넷’에 대한 정상인과 중독인의 뇌 활동을 촬영한 내용으로, 중독자의 반응이 더 강렬하다.
김종득 대표는 FMRI 연구의 신뢰성을 지적했다. 김 대표는 “FMRI는 뇌의 혈류를 촬영하는 기법으로 이미 과학계에서 신뢰성이 높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거짓말 탐지기 대신 FMRI를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하려 했으나, 92%의 신뢰성을 가진 거짓말 탐지기에 반해 신뢰도가 떨어져 FMRI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데이빗 로제한의 연구에 따르면 정신과 의사 앞에 앉은 일반인도 정신질환자로 인식된다는 결과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게임중독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아이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오는데 여기서 1차적으로 게임중독이라고 판단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원인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있느냐 우울증에 있느냐를 찾는다”고 말하며 게임중독 진단과정에 대해 지적했다.
이동연 교수는 법안의 배경설정이 되는 근거들의 명확성을 문제로 삼았다. 이 교수는 “게임 중독자가 47만 명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상 게임중독에 대한 임상사례에 대해 양적인 데이터 보고가 없다. 결국 인터넷 중독 사례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김민선 국장은 “아이들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길지 결과를 몰라도,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철저히 예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DDT(농약)는 노벨상까지 탄 살충제지만, 지금 우리 체내로 들어와 많은 장내 세균을 죽여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하며, 결과와 상관없이 철저한 예방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게임을 마약·알코올·도박과 같이 보는 것은 옳은가?
김민선 국장은 약한 중독물질이 더 강한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게이트 이론을 거론하며 게임을 마약·알코올·도박과 함께 통합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게임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이 결국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는 등 다른 중독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봐왔다.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해국 교수는 모든 중독문제는 보건의료상 예방과 치료의 원칙이 같기 때문에 통합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독법은 여러 시설을 물리적으로 통합하자는 게 아니라, 건강 위험요인으로서 내용의 통합을 말하는 것이다. 어디서는 인터넷 중독 기준으로 알코올·마약 중독도 치료하고, 다른 곳에서는 알코올 기준으로 치료를 한다. 이러면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대 측 이동연 교수는 통합관리의 효율성에 대한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알코올·도박·마약은 각각 다른 문제점을 낳고 사회적 파장도 다를 수 있다. 이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또한, 게임의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 과몰입을 일종의 ‘정신질병’으로 접근할 때 위험도 따른다. 게임의 특수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득 대표는 인터넷과 게임 중독을 통합 관리하지 않아도 지난 7년 간 중독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며 통합관리의 필요성에 의문을 더했다. 또한,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하는 것을 그 자체가 오류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몰입하도록 제작하지만, 반복하면 질릴 수 있는 소비성 콘텐츠다. 예를 들어 10년 전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는 5~6년 사이 직접 플레이하는 것에서 관람하는 게임이 됐고, 수 천 만 명이 즐긴 <애니팡>은 지금은 잘 안 한다. 그게(과거 몰입현상이) 중독이었다면, 사실상 지금 <애니팡>을 하는 사람은 전부 병원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민선 국장은 “문제는 <애니팡>을 즐기던 아이들이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하고, <던전앤파이터>를 하며 더 센 것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폭력성으로 이어진다”고 발언하며 다시 한 번 게임을 통한 다른 중독물질로의 ‘게이트 이론’을 내세웠다.
중독법, ‘규제’인가? 아닌가?
토론회에서 찬성 측 패널은 4대 중독법이 규제법이 아닌 예방과 치료를 위한 기본법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해국 교수는 “중독법은 게임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가정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방이나 치료 등 서비스의 공백이 큰 부분을 국가에서 메워주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현재 게임 마케팅 액수에 비하면 예방을 위해 쓰이는 돈은 1/10도 안 된다. 따라서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잇는 기본법을 갖추자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민선 국장은 “셧다운제 등 여러 가지 규제를 해봤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방과 치료를 하자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모든 게임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과도하게 게임을 하는 이를 대상으로 한다. 또한, 게임에 국한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미디어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중독법이 새로운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종득 대표는 “중독법이 기본법으로 통과되면 ‘게임산업진흥관한법률’, ‘국민건강진흥법’, ‘청소년보호법’ 등 14개의 법이 개정·수정을 위해 국가중독관리위원회와 협의해야 하는 등 중독법에 영향을 받는다. 어떻게 악용될지 모르기 때문에 기본법이라는 것 자체가 더 위협적으로 다가온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현재 게임이 중독이라는 의학적 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 중독’을 확증하기 위해 중독이라고 규정하는 법안을 만드는 것은 결국 순환 논증이다”고 덧붙였다.
이동연 교수 역시 “기본법이라는 건 관련된 하위법에 영향을 준다. 규제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중독법 13조와 14조를 보면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하는 순간 광고·유통·홍보를 규제할 수 있게 된다”고 김 대표의 말에 힘을 실었다.
이 교수는 “지금 중독법이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데 있다. 청소년에게 술과 도박 , 마약을 권장할 수 없듯이 인터넷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하는 순간 청소년이 인터넷 게임하는 것은 법률에 위반하는 것이다. 사실상 게임 금지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시청자·방청객 대립 팽팽, 그러나 ‘중독법=규제’ 인식 동일
이날 토론회에서는 패널들의 찬반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방청객과 시청자의 의견도 극명하게 대립했다. 그러나 중독법에 반대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찬성자들도 중독법을 규제로 보는 시각이 드러났다.
토론회를 방청한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주말에는 서너 시간, 평일에는 한 시간씩 게임을 하고 있다. 혼을 내도 게임 할 때는 밥도 먹지 않고 계속 부딪치기만 한다. 더 이상 부모가 규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하며, 중독법을 통한 국가의 규제를 원했다.
놀이미디어 교육센터 김엘리야 강사는 “아이들이 놀 데가 없는 이유는 게임만 하게끔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을 생각해 보면 중독의 문제가 확실하다”고 발언하며 게임 중독 현상의 책임을 업계로 돌렸다.
자신을 10년 전부터 게임 중독자 학생을 상담을 하고 있는 스님이라고 소개한 시청자는 “게임 중독자들은 환청, 환각, 환시에 시달리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게임업계의 이익을 떠나서 우리 아이들을 본다면 업계가 웃으면서 이 문제를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시청자는 게임이 미디어 산업의 종합체임을 강조하며,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은 “게임은 인류의 진화와 함께 언제나 존재했던 놀이의 최종 진화 산물 중 하나다. 게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학의 알고리즘 이론, 애니메이션 모델링, 디자인과 시나리오 작성 등 여러 가지 현대 산업들의 절정이 복합적으로 사용이 된다. 이런 미디어 산업의 종합체인 게임을 가지고 당장 중독물질로 정의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학생은 “정신질환 진단의 국제 기준 DSM5(미국 신경정신 진단분류체계)라는 게 있다. 거기서도 ‘게임중독은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 실제한다고 확언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고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며 중독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