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음성, 모션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AI 무단 학습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 배우 노동조합 SAG-AFTRA가 게임업계 파업 승인에 98% 찬성표를 던진 게, 벌써 작년 9월의 일이다. 2022년 10월부터 액티비전, EA, 에픽게임즈, 인섬니악 등의 게임사들과 진행되어 온 '인터랙티브 미디어 협약'(IMA)은, 여러 차례의 제안과 협상을 거쳐왔음에도 여전히 정체되어 있다.
SAG-AFTRA에서 IMA 협상 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사라 엘마레'(<하이파이 러시> 코르시카, <앤섬> 여주인공 성우)는 "AI로 주제가 좁혀졌다"고 말했다. 초기엔 임금 인상, 모션 캡처 현장의 안전 확보까지 함께 거론됐으나, 이제는 "생성형 AI 사용으로부터의 보호"가 핵심이 됐다. 배우·성우들의 연기 결과물을 AI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게임사들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SAG-AFTRA 수석 협상가 '던컨 크랩트리 아일랜드'는, 인섬니악 게임즈와 워너 브라더스 게임즈를 포함한 일부 회사들이, SAF-AFTRA 소속 배우·성우들을 AI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중이라 밝혔다. 그는 "솔직히 말해 이런 보호 조치는 동의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매우 기본적인(basic) 사항"이라 말했다.
이미 2023년 9월 파업에 동의했지만, 실제 파업을 피해왔던 SAG-AFTRA는, 앞으로 한 두 달 안에 파업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모든 조합원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배우들이 AI 완전 퇴출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작업물과 초상권 등을 AI에게 학습시킴에 있어, 학습 여부에 대한 기본적인 동의부터, 비윤리적인 창작물이나 성인물 등 배우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사용처에 대한 논의, 적절한 보상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GDC 2024에서도 이와 같은 논의가 이뤄졌다. 당시 라운드 테이블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면, 적잖은 게임사들은 AI가 배우, 성우들의 작업물을 학습해, 게임의 표현의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 주장했다. 지금까지 여행자, 방랑자 등의 호칭으로 부르던 방식에서 벗어나, 플레이어의 이름을 직접 불러줄 수도 있고, 시네마틱 컷씬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더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가령, 생성형 스크립트에 영상 생성, 음성 생성 기술까지 결합되면, 정해진 시나리오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생성되는 살아 있는 게임 환경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오픈 AI의 소라를 비롯해, 최근 중국에서도 클링을 비롯한 여러 영상 생성 AI가 활발히 나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비용 문제는 여전히 큰 부담이겠지만 말이다.
한편, CDPR은 10년간 함께 일해왔지만 사망한 성우 '렉젝'의 연기와 목소리를 존중하기 위해, 유족의 동의를 받고, <사이버펑크 2077> '빅터 벡터' 역의 DLC 분량에 AI 보이스를 사용했다. AI 보이스로 캐릭터와 성우에 대한 예우를 갖춘 몇 안 되는 사례다.
하지만, AI가 급격하게 발전해온 과도기에 다수의 기업들은, 배우·성우들에게 AI 학습에 대한 불충분한 설명을 제공하거나, AI에게 작업물·초상권을 무단 학습시키기도 하고, 정당한 비용 또한 지불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랬기에 배우, 성우들이 AI 무단 학습 및 악용에 크게 반대해온 것이다.
최근 오픈 AI가 GPT-4o(포오)를 공개했을 때, 스칼렛 요한슨이 자신의 동의 없이 목소리가 AI 보이스에 사용됐다고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오픈 AI 측은 무단 학습한 결과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해당 보이스를 일시 중단했다. 양쪽 중 누구의 주장이 맞는 지 시비를 가리지 않더라도, 이제 AI 무단 학습이라는 화두가 현실성 없는 논쟁이 아니게 된 시대 변화를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