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29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자유한국당 조경태·박인숙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 (확률형 아이템으로부터의) 청소년 보호에 대해 질의했다.
국내 게임사 대표가 국회에 나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에 엔씨소프트의 위치까지 감안하면, 김택진 대표의 이번 발언은 어떤 측면에선 국내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 등의 이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서와도 같다. 그리고 반대로 의원들의 질문은 정부와 사회가 게임과 확률형 아이템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단서다.
29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나온 주요 발언과 그 요지를 정리했다.
김택진 대표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서 일관되게 답한 이야기다. 김택진 대표가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해 한 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리니지M 등 확률형 아이템이 있는 게임의 사행성을 묻는 질문에) 도박이라고 하면 금품을 걸고 하는 것이다. 사행성은 요행으로 금품을 얻을 수 있는 놀이를 말한다. 하지만 <리니지M>은 요행으로 금품을 얻지 않는다. 베팅하지 않는다. 유저들이 얻는 것은 게임 아이템이다. 복권 등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됐다"
김 대표의 이 발언은 '법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은 사행성게임물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행성게임물은 필수적으로 '게임 결과에 따라 재산상 이익 또는 손실을 주는 것'(즉, 현실의 재화를 얻거나 잃는 게임)이라는 조건이 포함된다.
즉, <리니지M> 등 확률형 아이템이 포함된 게임은 뽑기 결과가 '게임 내'에서만 국한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사행성게임이 아니다라는 말과 같다. (참고로 아이템·계정 거래는 게임사 약관 상 금지 행위)
실제로 김 대표는 의원들과의 질의에서 ▲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내 국한된다는 점, ▲ 확률형 아이템을 복권과 같이 실물 재화를 주는 것과 비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김택진 대표는 이외에도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아이템을 가장 공정하게 나눠주기 위한 장치"라고 발언을 했지만, 손혜원 의원이 말을 자르고 다른 질문을 해 주장의 근거를 말하진 못했다.
왼쪽부터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출처: 국회방송)
반면 손혜원·조경태 의원은 이미 폐해가 있기에,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모델 자체가 문제라 이야기했다.
손혜원 의원은 모바일 게임 유저 중 극히 일부만 돈을 쓰는 현실을 짚으면서도 "일부가 사행성에 빠져 큰 돈을 쓴다. 부모 카드를 몰래 쓰거나 대행 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등 폐해가 많다"며 확률형 아이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은 "청소년들이 게임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사행성에 빠진다"며 김택진 대표와 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장관에게 대책을 촉구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발언은 일부 법리적·논리적 오류를 내포해 아쉬움을 남겼다.
일례로 손혜원 의원은 실제로 실물 재화를 얻거나 잃어야 하는 '사행성게임'에 대한 법적 정의와 상관 없이, 확률형 아이템을 사행성게임과 동일시했다. 김택진 대표가 이에 대해 반론하자 "확률형 아이템으로 사람들이 사행성으로 빠진다. 이걸 모두가 사행성이라고 하는데 왜 김 대표는 아니라고 하냐"라고 발언했다. 의원이 법적 근거나 폐해 자체의 수치적인 통계 없이, 일부 유저들의 의견만 이야기한 것.
조경태 의원은 청소년의 게임 이용률이 늘어난 것만을 이유로 확률형 아이템이 청소년을 사행성으로 이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조 의원은 이후 대전의 도박물관리센터가 말한 스마트폰게임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경고를 인용했지만, 이후 도박물관리센터장이 "도박 문제로 찾은 사람 중 일부가 같이 게임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라고 발언해 해당 근거의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센터장의 발언만 보면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게임 때문에 빠졌는데, 도박에 빠졌기 때문에 그것과 원리가 흡사한 게임에도 빠졌는지 명확하지 않다)
조 의원은 이후 다른 근거 없이, "댓글 중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이자 복권이다'라는 글을 봤다. 19세 미만은 복권을 사지 못하듯, 확률형 아이템도 규제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청소년 보호를 위해 모바일 게임 결제액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김택진 대표가 한 발언이다.
김 대표는 "청소년 보호는 어떤 희생을 치뤄서라도 정책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게임 결제 한도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청소년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업계 차원에서도 결제 한도 제한 같은 정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
다만 그는 청소년 보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각 게임사 뿐만 아니라, 구글과 애플 같은 중간 업체도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청소년 보호는 게임사 하나로 할 수 없다. 게임사가 하고 싶어도 모바일은 (결제할 때) 앱스토어라는 중간 업체를 거친다. 구글·애플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게임사에 유저가 성인인지 청소년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청소년 보호 장치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택진 대표의 발언 뒤에 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장관도 청소년 보호 정책 관련해 말을 이었다.
도종환 장관은 "청소년이 부모 동의 없이 결제한 돈은 게임 회사가 환불하는 제도가 존재한다."며 현재 정부와 업계가 (게임 관련) 청소년 보호 정책을 실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도 장관은 환불 사례가 있냐는 박 의원의 질문에 200여 만원을 환불한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도 장관은 이후 "현재 확률형 아이템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줬다. 11월 말 끝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다른 의원과의 질의에서는 게임산업협회와 진행 중인 확률형 아이템 자율 규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주장에, 이미 정부와 업계가 여러 보호 정책을 시행 중이고 추가로 준비 중이라고 강조한 것.
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장관 (출처: 도종환 장관 페이스북)
도종환 장관이 청소년 보호 정책을 이야기하자, 박인숙 의원은 "제도가 있더라도 모든 부모가 이를 알고 나설 순 없다"라고 발언했다.
박인숙 의원의 이 짧은 발언은 (환불처럼) 당사자가 직접 찾아야 정책은 여러 이슈로 당사자들이 모를 수 있으니, 국가가 나서서 일괄적으로 통제를 해야 한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발언 자체, 혹은 안에 담긴 내용만 보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케어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제어해야 한다는 내용.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청소년 수면권 보호라는 논리로 국가가 일괄적으로 게임 시간을 통제한 '강제적 셧다운제'를 연상하며 불안감을 표했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부모들의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단점, 선택적 셧다운제라는 대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서 일괄적으로 시행한 정책이다.
하지만 정책의 실효성은 없었고, 중소게임사들은 이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느라 적지 않은 출혈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