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두 번째 영혼을 갖는다는 것과 같다"

이 명언을 남긴 샤를마뉴가 싱가포르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싱가포르에는 멀티링구얼(multilingual)의 나라입니다. 인도유럽어족처럼 ​근연성이 높은 언어가 섞여 쓰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거리가 먼 영어, 중국어, 광동어, 말레이어, 타밀어가 곳곳에 뒤섞여 있습니다. 

기자도 한 '호커센터'에서 타밀어를 쓰던 사람들이 영어로 주문을 하고, 중국어로 주문을 받던 사람들이 광동어로 대화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주문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들끼리는 또 다른 언어를 쓰고 있던 것이죠.

싱가포르는 아시아 금융 산업의 허브으로 세계적인 부국이 되었고, 앞선 사례에서처럼 여러 언어와 문화가 섞여드는 '용광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이 메이드 인 싱가포르인가' 묻는다면 선뜻 떠오르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 글로벌 게임사들의 아시아 지사가 싱가포르에 모여있고, 가레나가 동남아시아에서 <프리 파이어>를 성공적으로 서비스하고 있긴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만든 게임이 무엇인지 물으면 선뜻 답하기 어려워집니다.

'메이드 인 싱가포르' 게임의 답을 찾으려 뛰고 있는 싱가포르 게임 협회(SGGA)의 돈 베이(Don Baey)를 만났습니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9일에도 개발자들의 네트워크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김재석 기자

돈 베이 SGGA 협회장

Q. 디스이즈게임: SGGA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A. 돈 베이: SGGA는 싱가포르에 있는 게임사, 게임 크리에이터, 게임 서비스 제공업체, 퍼블리셔 및 투자자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무역 협회입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게임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며, 싱가포르 정부와 전 세계에 싱가포르 게임 산업을 대표하는 옹호자이자 목소리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SGGA는 네트워킹 행사, 강연, 워크숍을 진행하고 무역 박람회 및 행사를 통해 산업을 홍보하는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게임 개발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우리 부회장은 게임 개발을 가르치고 있는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오늘밤 열리는 행사는 어떤 자리인가요?

A. SGGA에서는 보통 매달 게임개발자들의 네트워킹 세션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소를 빌리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업계 구성원이 모이는데 보통 80명에서 100명 가까운 참가자가 모이곤 합니다. 

인디 개발자도 있고, 회사에 소속된 개발자들도 대단히 많습니다. 퍼블리셔도 있고,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도 모입니다. 게임개발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모여서 자신의 게임을 소개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도 있어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게임스컴 아시아'에 대한 준비를 이런 모임에서 함께 나누기도 합니다.

Q. 싱가포르에서 나온 게임 중 유명한 게임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유비소프트 싱가포르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유비소프트 몬트리올이 리드 스튜디오이지만, 싱가포르에서도 <어쌔신 크리드>의 여러 키 피쳐를 함께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도 유비소프트 싱가포르에서 오랫동안 게임 개발을 맡았습니다.

<캣 퀘스트>, <쿠지너>, <차이나타운 디텍티브 에이전시>, <홀리 포테이토> 같은 게임들이 싱가포르에서 나왔습니다. 싱가포르에는 여러 게임 스튜디오의 아시아 본사와 여러 자생 인디게임 스튜디오들이 있습니다.

SGGA는 매달 개발자들이 모이는 네트워크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사진은 1월 9일에 열린 행사 모습. (SGGA 제공)

Q. 싱가포르 게임 산업이 외국인 투자자, 퍼블리셔 또는 기타 게임 회사에 어필할 수 있는 다른 장점은 무엇인가요?​

A. 싱가포르는 고학력 및 숙련된 인력을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 중 하나로 꾸준히 선정되어 왔습니다. 국제적인 도시인 싱가포르에는 다양한 국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외국인 투자자, 퍼블리셔 및 기타 게임 회사들에게 매력적인 허브이기도 합니다. 반다이남코, 미호요, 텐센트 같은 여러 기업들이 아시아 HQ를 싱가포르에 설치했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싱가포르의 국제적인 위상 덕분이라고 봅니다. 협회로서도 이런 기업들과 동반 성장을 도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Q. 게임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A. 2010년대 초반, 싱가포르의 게임 산업은 매우 초기적이고 참신했습니다. 이로 인해 싱가포르 정부는 특히 국제 기업 유치와 스타트업 생태계 개발에 대한 공동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정부가 핀테크와 같은 다른 신흥 분야, 특히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원이 점차 일반화되었습니다.

현재 게임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주로 인재 육성, 역량 개발 및 시장 준비 보조금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문화 요소를 융합한 게임 프로토타입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포컴 미디어 개발청(IMDA)은 최근 싱가포르 코믹콘 2024 Made With SG 쇼케이스에서 프로토타입 보조금을 지원받은 4개의 신진 게임 개발사를 소개했습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개최되는 '싱가포르 코믹콘' (출처: 싱가포르 코믹콘)

Q. PwC 통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게임 시장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싱가포르의 인구 규모는 작지만 게이머들의 소비력이 (다른 지역 대비) 더 높은 경향이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광대역 및 모바일 보급률도 매우 높으며 소셜 미디어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싱가포르 게임 시장의 성장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Q. 싱가포르의 인디 게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어떤 종류의 인디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나요?

A. ​​싱가포르에는 1인 개발자부터 대형 인디 스튜디오에 이르는 인디게임 게임 기반이 형성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게임 중 일부는 캐주얼 또는 혁신적인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른 게임은 로그 라이크/라이트 및 액션 게임(예: 슈팅 게임, 핵 앤 슬래시)과 같은 글로벌 장르 트렌드를 따라 더 많은 미드코어 관객을 타겟으로 합니다.

배틀브루 프로덕션의 <퀴지너>(Cuisineer)와 트루월드 스튜디오의 언일드러는 지난 11월 부산에서 열린 G-STAR 2024에, <언일드러>(UNYIELDER)는 2024년 11월 말 서울에서 열린 버닝비버 페스티벌 2024에도 선보였습니다.

싱가포르 게임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지스타를 찾은 SGGA 개발자들 (SGGA 제공)

Q. 싱가포르는 영미권과 중국권 미디어를 고르게 소비하는 국제적인 국가라고 들었습니다. 해외 시장 진출은 쉽지만 메이드 인 싱가포르의 경쟁력은 약할 것 같다는 인상입니다.

A. 싱가포르는 국제적인 국가로서 매우 연결이 잘 되어 있고 해외 시장에 쉽게 진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작은 국가로 국제 허브로서의 명성은 높아졌지만 문화를 통한 소프트 파워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몇몇 메이드 인 싱가포르 게임에서 몇 가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게임 산업과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수 있도록 현지 생태계와 SGGA와 같은 게임 협회가 해외 파트너 및 파트너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잇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싱가포르 개발자들 사이에서 최근 트렌드 변화가 있나요?

A. 인디 게임 개발, 특히 학교나 중간 경력을 가진 게임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025년 신작 게임 출시를 목표로 하는 코피포지와 하피 레이더스의 <Collows of Eternity>와 같은 새로운 인디게임을 꽤 많이 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커뮤니티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젊은 신진 인재들의 업계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개발되는 게임 <언일드러>의 유통은 슈에이샤 게임즈가 맡는다.

Q. 아까 한 대학생에게 물어보니, 싱가포르 학생들은 은행원이 되거나 국제 기업의 싱가포르 지사에 취업하는 것을 꿈이라고 하더군요. 게임 개발에 나서는 이들이 정말 많습니까?

A. ​싱가포르는 매우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자랑합니다. 대학이나 폴리텍의 교육 시스템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와 같습니다. 이런 흐름이 오랫동안 지속됐고, 싱가포르를 두고 '동남아시아의 실리콘밸리'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스타트업 문화가 게임 분야와 융합되면서 더 여런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이 성숙하면서 더 많은 멘토와 전문가, 기업가들이 게임 산업에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SGGA가 개최 중인 네트워크 행사 같은 곳에서) 게임 회사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오갑니다. 싱가포르에는 유니티, 구글, 페이스북, 애플, 유니티 같은 곳들이 일반적인 지사 이상의 진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가능합니다.

해외의 다른 게임 산업과 달리 우리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싱가포르의 게임 개발 산업은 매우 젊습니다. 여기 있는 몇몇 스튜디오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 싱가포르 내에는 퍼블리셔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고 하고 있고, 일부는 게임스컴 아시아에서 퍼블리셔를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개최된 '싱가포르 코믹콘' 같은 경우에도 정부 기관인 IMDA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공간에서 싱가포르 게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Q, 싱가포르 게임 산업은 젊지만, 스팀 시장에서 경쟁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A. 네. ​교육 단계에서 우리는 모두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합니다. 몇몇 학교는 '제3외국어'를 익히기까지 합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점은, 우리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서구 시장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데에서 올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싱가포르 게임을 싱가포르 게임으로 만들 길은 무엇인가요? 

A.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도 한국처럼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게임은 재미있어야 하고, 그 재미를 위해서 문화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보너스와 같습니다. 싱가포르라고 한다면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통해서 가상의 게임을 창조할 수 있겠죠. 도시를 걸어보면 현대적인 건물과 오래된 건물이 함께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싱가포르 게임을 만드는 것은, 창장작의 창의성과 상상력에 달려있습니다. 이를테면 싱가포르의 음식은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고, 우리도 문화 결합의 결과로 나온 싱가포르 음식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게임 메커니즘의 일부분으로 녹여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싱가포르의 문화는 싱가포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 있죠. 특히 동남아시아와 매우 연결되어 있고, 말레이 문화와 많은 유사점이 있어요. 이런 요소들 속에서 문화적 공통점을 찾고, (동남아 문화와) 긍정적인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동남아시아는 기본적으로 여러 언어와 문화가 섞인 용광로입니다. 

지금의 게임 개발과 미디어 환경을 서구적으로 편향되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응집력과 욕구를 실현한다면, 한 차원 더 높은 일(창작 활동 등)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분명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움직임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싱가포르에서 즐겨먹는 음식 '사테'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고루 즐겨먹는 꼬치 요리다. 돈 베이는 동남아시아와의 연결성이 싱가포르 게임의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