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지난 1월 신임 대표 이정헌을 소개했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샐러리맨 신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원으로 넥슨에 입사해 15년 후 대표가 된 입지전적 인물. 분명 역사가 짧고 이직이 잦은 업계 특성상 드문 일이다. 이 대표는 <던전앤파이터> 사업실을 이끌며 독보적인 라이브 서비스 성공 커리어를 만들었고, <피파온라인3>에서 잭팟을, 이어 <HIT>를 통해 그 잭팟이 단순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강대현 부사장은 넥슨의 메인 IP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 라이브 서비스 개발 총괄을 거쳤다. 이정헌 대표와는 네오플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다. 넥슨의 AI 연구조직 ‘인텔리전스 랩스’를 이끈다.
이 대표와 강 부사장을 한 폭에 넣고 보자. 넥슨의 계획은 명확해 보인다. 오랜 시간 성공적으로 PC게임 라이브 서비스를 해 온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경영진으로 손발을 맞추게 됐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넥슨은 PC 게임 서비스는 이렇게 잘 하는데 왜 모바일은?’ 이라는 오래된 물음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원 부사장이 계속 경영진으로 머무른다는 것도 시사점이 있다. 이 대표와 강 부사장이 ‘라이브 서비스 운영’에 특화된 사람들이라면 정상원 부사장은 넥슨이 여전히 ‘창조적인 게임 개발 조직’ 이라는 것을 존재 자체로 말하는 사람이다.
NDC 2018 둘째 날. 넥슨의 신임 경영진들이 기자들과 만났다. 넥슨이 성장한 과정을 그린 책 <플레이>의 저자 신기주 에스콰이어 편집장이 묻고, 경영진들이 답했다. 맥락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발언을 가급적 그대로 옮겼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왼쪽부터 신기주 편집장, 이정헌 대표, 정상원/강대현 부사장.
신기주: 이정헌 대표는 언제 처음 대표직을 제안받았나. 제안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정헌(이하 이): 12월 초에 처음으로 박지원 대표에게 얘기 듣고, 1월 초에 내정 보도자료가 나갔다. 처음 얘길 들었을 때 10초 정도는 부모님 생각, 와이프, 애기 생각도 나고 되게 좋았지. (드디어 사장이다?) 영광스러운 자리니까. 그날 밤부터는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어떤 고민인가.
이: 두려움이지. 내가 맡아서 회사가 망하면 어떡하나. 잘 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들도 있었고.
박지원 대표가 뭐라고 했나.
이: “고생해” 이러더라. 대표 제안받고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김정주 NXC 대표가 한 번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김정주 대표를 처음 만났다. 회사에서 지나가며 인사하고 그런 적은 있어도 독대한 건 처음이었다. 그때 너무 떨려서 좀 주절주절 했다.
김정주 대표도 이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이지 않나.
이: 어떻게 보면 면접이었지. 두 시간 정도 얘기 나눴다. 나름 정제해서 말한다고 했는데도 낱낱히 옷이 벗겨지는 느낌이더라. 지금 회사가 매출 2조 정도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 뭐할건지에 대한 얘길 많이 했다. IP도 중요하고, AI도 중요하고, 많은 부분에 관심있다고 했더니 김 대표가 ’회사가 좀 변하려면 지금보다 매출이 한 1/10, 1/100정도 돼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처음 들었을 땐 충격이었다. 집에 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 고정관념이나 압박을 내려놓고 원점에서 생각해 보라는 얘기구나’ 싶었다.
매출이 2조나 되니까 그걸 지켜야 한다는 생각? 아니면 매출 때문에 하고 싶은 거 못할까봐?
이: 전자 같은 생각 하지말고, 주어진 임기 안에서 철학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다시 김 대표 만난다면 ‘책임지고 매출 1/10 만들어 보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김정주 대표의 압박 면접 스타일. <플레이> 쓰면서 들었다. 정상원 부사장 생각도 듣고 싶다.
정상원(이하 정): 압박이라기보다는 넥슨 문화가 좀 그렇다. 옛날에는 하겠다고 손 드는 사람에게 시켰다. ‘내가 당신에게 권한을 넘기는 이유는 당신이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니까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회사의 성공.’ 그런 뉘앙스로 보면 된다.
내 생각을 니가 펼쳐주길 바라가 아니라 니 생각을 니가 펼쳐. 성공하면 그건 너의 성공. 실패하면 다른 사람이 또 해 보면 되고. 그게 회사의 철학이다. 김 대표가 이 대표에게 그런 얘길 한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그게 문화가 돼 가는 것 같다. 박지원 전임 대표도 2003년 입사했고, 대표까지 됐는데. 넥슨에서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그건 나도 아직 고민되는 부분이다. 다른 생각을 하고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제일 사소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고. 강대현 부사장이 그렇게 잘 한다.
강대현(이하 강): 외부적인 스펙보단 ‘정말 일을 잘 하는지’를 깊게 본다. 나도 병역특례 요원으로 들어와서 여기 말뚝(?) 박았는데, 연줄 하나 없이 들어와서 일을 해도 ‘저 사람 좀 잘 하네’ 인정해 주는 분위기. 그런 것들이 회사의 DNA다. 이 대표도 처음 들어왔을 때 그냥 신입사원(1) 이었고. 업무 역량 중심으로 사람을 보고, 그런 사람을 등용한다.
강대현이 보기에 이정헌은 어떤 사람인가?
강: 네오플 시절부터 같이 일했다. 나는 개발을 했고 이 대표는 사업을 했지. 넥슨보다 네오플이 훨씬 작은 회사니까 가깝게 지낼 일이 많았다. 이정헌은 사람을 깊게 이해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천성적으로 공돌이라 그런가 ‘사람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내가 좀 무디다고 생각될 정도로.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 같은 게 뛰어나다. 사업을 할 때도 유저들의 주요 니즈를 찾아낸다거나, 감성을 이해하는 부분이 탁월하다.
이정헌의 그런 부분이 지금 넥슨에 필요한 덕목일까? 박지원 대표는 재무나 숫자를 많이 봐서 그런지 ‘사람’이라는 변수를 빼고 생각하는 게 습관화 돼 있다고 하더라고. 이정헌은 좀 더 인간애가 있다? 그런 얘기 같은데.
이: 박지원 대표와 크게 싸운 게 두 번 정도 된다. 아마 그런 성향 차이 때문일 것이다. 박지원 대표는 냉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이고, 그의 결정이 이후 나에게도 큰 가르침을 주곤 했다.
박지원 대표와 나는 같은 해 입사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국내에서 게임 라이브 서비스를 오래 했다. 게임 하나가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서비스 되려면 리더 한 명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 운영, 개발, QA도 있고... 구성원들이 하나하나 게임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 생각할 때 좋은 성과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사람들 사이에서, 집단 내에서 결정을 많이 한 편이다.
CEO 개인의 성향을 기업이 닮아가는 경우도 많더라. 정상원에게 묻겠다. 넥슨이 지금 대형 신규 흥행작이 없다는 얘길 많이 들었을 것 같다. 특히 모바일에서. 동의하나?
정: 많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에게 주로 전해지는 큰 불평이 ‘똘똘한 거 하나 만들어서 제대로 오래 하면 좋을텐데’다. 왜 잘 안 되는 거 여러 개 하냐 이거지.
이건 회사의 모양새와도 연관이 있다. 김정주 회장이 뒤로 빠지고 경영을 맡게 된 사람들은 임기가 정해져 있다. 그 사람들 임기마다 회사의 색깔이 계속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하나에 사운을 걸고 길게 달리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각 개발팀이 손 들고 이거, 저거 하겠다고 하면 시키는 그런 분위기지.
박지원 대표 취임하던 4년 전과 지금은 또 다르다. 그땐 모바일 프로젝트 하나하나의 규모가 크지 않았다. 지금은 투자 규모가 커지고, IP에 사운을 걸고 달려드는 분위기가 되면서 재무적 성과가 다소 부족해 진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잘하는 걸 하다가 그게 시장과 코드가 맞았을 때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잘 못하는 걸 달려들어서 하는 게 잘하는 일일까? 뭔가를 잘 하는 조직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완벽한 정답을 낼 수 없으니까 여러 개 스튜디오로 나누고 의사결정 하도록 하는 거고.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여전히 IP 광풍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개발 방식이 시장의 성공 방정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정: 내가 생물학 전공인데. 생명에는 왜 암수가 있으며 왜 DNA를 섞어가며 살고, 죽고, 자식이 똑같은 형질을 유지하지 않도록 할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하나에 몰빵(?)하면 한 번에 훅 갈 수 있다. 지금 PC게임이 너무 잘 되고 있으니까 모바일은 빨리 못 따라가고 있는데, 여러 가지에 대응하고 있을 때 다시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정상원은 넥슨 초창기부터 뚝심있게 쌓아온 철학이 있다. 근데 그걸 시장이 자꾸 흔드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이정헌 대표가 보기엔 어떤가?
이: 정상원 부사장 생각에 100% 동의한다. 다양성이 중요하다. 정 부사장이 취임하고 나서 전과 다르게 개발 쪽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조직 구성부터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까지 모두 그렇다. 내 임기 동안은 그 다양함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정상원 부사장과 오랫동안 논의해 이번 스튜디오 중심의 조직 개편을 했다.
이번 조직 개편의 화두도 다양성인가. 스튜디오가 경영진에게 보고도 하지 않는 시스템이라 들었다.
정: 요즘 게임은 성공 확률이 너무 낮아서 ‘그거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적중하기 쉬울 것이다. 내부 리뷰를 거치면서 초반 프로토타입들이 나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근데 나중에는 아쉬워 진다. 그걸 스튜디오에서 판단하도록 하자는 거다. 론칭이 가능한 시점까지 스튜디오가 알아서 만들고, 그 다음에 회사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인큐베이션 시스템보다 훨씬 긴 시간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다.
내부 스튜디오 중 가장 말 안 듣는(?) 곳은 어딘가?
정: 글쎄... 듣는 곳이 없어서 (웃음). 책임과 보상이 함께 간다는 개념이다. 중간에 조언 정도는 해 주되 판단과 결정은 스튜디오가 직접 한다.
게임이 실패한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성과가 좋지 않거나, 중간에 좌초하는 경우나.
정: 현실적으로 개발자에게 엄청난 좌절이다. 잘 될거라 생각하고 인생 2년 3년 넣었는데 시장 상황이나 IP, 마케팅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 게임이 잘 안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하는데 충격 때문인지 쉽지는 않다.
네오플이 이번에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를 넘었다. 네오플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우려가 있다.
이: 한편으로 기분 좋고 한편으론 두려운 숫자다. 제주도에서 너무 잘 해주고 있다. 중국에서도 좋은 성과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고. 회사 차원에서 너무 좋은 일이고 개인적으로도 감사하다. 다만, 항상 정상이 있으면 내려오는 길이 있기 때문에... 요즘 내가 잠 못 자는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얼마 전 회사에 공지를 하나 썼다. “어찌됐든 넥슨은 개발사고, 신규 IP가 필요하다. 최대한 빨리 위대한 IP를 탄생시키는게 중요하다.” 라고.
지금 상황에서 넥슨이 가진 무기가 뭔지 생각해 봤다. 사실 국내에서의 경쟁은 지금 별로 의미가 없다. 글로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넥슨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20년간 PC 온라인게임을 서비스 해 온 회사다. <던전앤파이터> 같은 게임은 10년 이상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분명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가 있다.
게임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같고, 콘솔이든 모바일이든 새 플랫폼이든 그 노하우를 원활하게 이식하는 게 중요하다. 좋은 인재들을 신규 사업에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고도화 된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런 목적으로 신설된 게 바로 인텔리전스 랩스다. 신규 개발과 인텔리전스 랩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네오플은 지난 한 해 중국에서만 매출 1조 이상, 영업이익률 92.53%를 달성했다.
강대현이 좀 더 설명해 주면 좋겠다. 인텔리전스랩스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나?
강: 박지원 대표가 낸 아이디어다. 사실 인텔리전스랩스는 지금 앞에서 말한 걸 다 총괄하는 조직이다. 역량의 고도화와 창의성이라는게 사실 공존하기가 어려운 개념인데, 그걸 어떻게든 해 보려는 조직이다. 신규 게임이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면 거기에 넥슨의 노하우을 얹어서 시너지를 내는 게 목표다.
게임 서비스를 오래 해 온 게 넥슨의 장점인데, 그 데이터를 들여다 보면 분명 재활용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창의적인 부분, 즉 엣지는 최대한 살리고 기존의 좋은 것들은 고도화 하는 연구 조직이다.
인사이트를 얻는다고 표현했는데. 최근엔 발견한 것 있나?
강: 이번 키노트에서 그런 말씀을 드렸다. 늘 유저가 말하는 것과 실제 행동은 다르다고. 유저의 무의식이라고 해야 하나. 무의식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 말과 행동의 갭을 공략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세 사람 다 넥슨의 미래를 많이 고민할 것 같다. 5년 뒤의 넥슨이 어떻게 되길 바라나? 정상원에게는 특히 게임에 대해 듣고 싶다.
이: 5년 뒤라. 문화는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없는 게임이 나왔으면 좋겠고. 그런 것들을 탐구하는 열정이 구성원들에게 있었으면 좋겠고. 글로벌 나가서는 좋은 성과도 내고 싶다.
정: 넥슨 새 게임 나오면 게시판 같은데서 욕을 많이 얻어먹는데, 대다수의 유저들이 욕하지 않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궁극적인 희망은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서, 고티 후보 정도 올라갈 수 있는 게임 만드는 거? 회사 그만두기 전에는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
# 질의응답
Q. 스튜디오 장들에게 어느정도 재량이 주어지나? 개발 중이던 게임들이 있을텐데 어떤 기준으로 배정됐나? 스튜디오 체제에서 정상원의 역할은?
정: 예산 한도 내에서 채용같은 부분까지 알아서 하는 구조다. 게임도 어느정도 알릴 수준까지는 알아서 개발하고. 넥슨코리아가 아니라 스튜디오 브랜드화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기존 게임들은 각 스튜디오에서 원하는 것들을 우선 배정했다. 나는 일단 띵소프트 프로젝트 맡고 있는 게 있고, 차후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한 스튜디오 간 방향도 조율할 예정이다. 스튜디오가 말을 들을 지는 모르겠지만, 컨설팅도 해 주고.
Q. 이정헌 대표는 사원 때부터 넥슨에서 근무했다. 사업 출신과 개발 출신이 번갈아가며 대표를 맡다가 최근에는 사업 출신 대표들이 연속으로 선임됐는데. 사업/개발 출신 대표의 차이가 있나?
이: 어떤 큰 그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사업과 개발 출신 대표들이 번갈아 선임됐다. 나는 개발자로 입사해 사업으로 전직했다. 어떤 분이 대표를 맡든 내부적으로 기조나 방향성이 바뀌었던 적은 없다. 밖에서 볼 때 잘 되는 게임이나 성과적 측면이 달라보였을 수는 있다.
대표를 맡고 제일 많은 시간 고민을 할애하는 부분은 신규 개발쪽이다. 개발사로서의 넥슨, 퍼블리셔로서 넥슨. 어떤 게임 개발하고 서비스할 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Q. ‘돈슨’이라는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애쓰겠다고 했다. <듀랑고>의 경우 게임은 대작으로 잘 나왔으나 사업적으로 크게 성과를 내진 못했다. 이미지 개선이라는 명분이 추구해야 할 사업적 목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닌가?
이: 그때 지스타에서 ‘돈슨의 역습’이라는 키워드로 발표했었다. 유저들에게 선언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내부에 좀 더 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내부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고.
<듀랑고> 얘기 해줬는데 맞다. 매출은 많이 안 나왔다. 하지만 지금도 <듀랑고>를 즐기는 유저들이 많다.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로벌 출시와 한국 서비스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처음 프로젝트 만들 때 10년 이상 서비스 할 프로젝트라고 선언했다. 더 좋은 게임, 사랑받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솔직히 천년만년 랜덤박스로 수익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치열하게 고민해 왔고, 게임 개발사라면 응당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Q. 장르와 플랫폼의 다양화, 인수합병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 공략, IP. 세 가지 부분에 어느 정도 비율로 투자할 예정인가?
이: 중점 투자 부분 같은 전략을 세우고 움직이진 않는다. 재밌는 것 만드는 사람들은 최근에도 많이 만나고 있다. 그런 부분의 투자는 항상 열려있다. 큰 규모 투자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작은 회사들, 스타트업이나 인디들을 많이 보고 있다. 철학이나 신선함을 중점적으로 본다.
정: 투자에 대해 첨언하겠다. 예전에는 매출 위주로 보고 인수합병을 통해 그 회사의 매출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매출에 별 관심이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이 중요하다. 플랫폼은 콘솔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
IP는 기존 넥슨 IP가 오래된 경향이 있어서 그걸 살리는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해외 IP도 적극적으로 컨택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에서는 IP가 왕이란 생각이 강하지만 너무 그쪽만 탐닉하면 새 IP에 소홀할 수 있다. 가급적 새 IP 발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
글로벌 쪽은 LA에 글로벌 대응 스튜디오를 셋업하고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듀랑고>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애초에 글로벌 타깃으로 게임을 만들었다.
Q. 강대현 부사장이 키노트에서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빅데이터와 AI를 통해 사각지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찾은 내용을 라이브 서비스에 적용하겠다고 했다. RPG, 스포츠 등 각 장르의 특성이 다른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 커뮤니티에서는 넥슨이 사각지대를 찾아 더 많은 매출을 올리려 한다는 반응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강: 연구해 본 결과 가능하겠다 싶었다. 예를 들어 적을 죽였다 = 골을 넣었다 로 치환할 수 있다. 패스했다, 롱패스했다, 제쳤다 이런 축구에서의 여러가지 행동들은 PVP게임에서 공격, 작은 공격. 트릭쓰기 이렇게 치환할 수 있다. 굉장히 맥락이 비슷하다. 정형화 된 알고리즘으로 시스템을 만드는게 아니라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을 활용해서 만든다. 모든 게임이 같을 필요도 없고 전체적인 매커니즘만 같으면 된다.
인텔리전스 랩스에는 BM 조직이 없다. 당장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면 게임 수명이 짧아질 거라 확신한다. 유저가 한 번 들어오면 최대한 많이 과금 시키고, 실망해서 떠나는 게 반복되면 게임 자체에 유저들이 흥미를 잃게 된다. 유저가 ‘정말 재밌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력도 그쪽에 95% 배정돼 있다.
정: 인텔리전스 랩스의 역할은 이런거다. 만약 건강검진 받으러 갔다 치자. 근데 얼굴만 봐서는 간이 나쁜지 신장이 나쁜지 알 수 없다. AI 조직의 목표는 겉으로 보이는 플레이하는 사람들 패턴을 보고 내면의 약한 부분이나 이탈하는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
Q. 오웬 마호니 대표에게 이정헌 대표에 대해 물었더니, 탁월한 성과를 가지고 있으며 신망이 두터운 사람으로 평가했다. 본인이 보기에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매출이라든가, 임기 내 목표가 있나?
이: 좋게 봐주시고 믿어주는 넥슨코리아 분들이 많은 게 제 장점인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웃음) 10년 넘게 라이브 서비스를 해 오면서 같은 꿈을 꿨던 직원들이 많은 것 같다. 순수한 열정으로 프로젝트를 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 곁에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반대로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혼자 재단해서 결정하지 말자, 의사 결정도 그렇게 하지 말자.’ 매일 솟아오르는 욕망을 제어하며 살고 있다. 그런 검증된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임기 동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매출은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10년 전에 아이들이 열광했던 넥슨 IP, 글로벌에서도 먹히는 그런 IP를 만들면 좋겠다.
Q. 게임회사는 개발사기도 하지만 기술기업이기도 하다. AI 관련해 타사처럼 다른 서비스를 개발할 생각이 있나. 가상화폐거래소 비트스캠프 인수설이 있는데 사실인가. 향후 ICO 계획은 있는지.
이: 게임과 가상화폐를 연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게임에서 차용할 부분이 많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하고 있다. 비트스캠프 인수 쪽은 전혀 모르는 얘기다. 일단 인텔리전스랩스는 게임 서비스에 접목 가능한 분야를 R&D 하고 있다.
Q. 노동시간 주 52시간제 시행은 어떻게 적용할 예정인가.
이: 인사제도를 활발히 논의중이다. 조만간 준비된 내용을 공표할 예정이다.
Q. 4년전에 말했던 다양성과 새롭게 조직 세팅한 후의 다양성은 차이가 있나.
정: 큰 변동은 없지만 이전에는 각각의 팀이 소규모로 모바일에 대응하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빠르게 대응하거나 이것저것 시도하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했지. 그동안 모바일 프로젝트는 PC게임 이상으로 커졌다. 이제는 팀 여러 개가 연합해서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튜디오의 방향성은 개별적으로 가져가면서 노하우는 공유하게 하려 한다.
Q. 스튜디오 체제에서 자회사로 분사할 가능성이 있나. 또,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게임사나 게이머 모두 본인들이 원하는게 뭔지 정확히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 인텔리전스 랩스의 연구 소재가 될 것 같은데.
정: 뗏목에 식량 실어주고 떠나보내는 것처럼 자회사로 분사시키고 책임 넘기는 거 아니냐 하는 얘기가 있는데 그럴 계획은 전혀 없다. 스튜디오 체제로 가지만 법인 소속은 그대로 유지한다. 게임을 만들 때 결정 라인을 단순화하기 위함이다. 다른 의도는 없다.
강: 확률의 커버리지는 넓다. 가챠 뿐만 아니라 몬스터 리젠 같은 것에도 확률 개념이 들어가 있다. 전자는 당연히 건들면 안 되는 얘기다. 후자는 연구해 볼 만한 소재다. 이 부분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1%로 기재돼 있는 확률대로 상품이 나오는지, 그런 걸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건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Q. 콘솔 쪽 플랫폼 다변화 얘기했는데. 콘솔 시장은 어떻게 보고 있나. AI의 경우 라이브 서비스 연구에 치중돼 있는 것 같은데. 개발 공정 자동화에는 활용할 계획이 없나.
정: 콘솔 시장에 들어가는 현실적인 방법은 PVP 베이스, 유저들끼리 경쟁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배틀그라운드>처럼.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본다.
궁극적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건 스토리텔링과 엔딩이 있는 게임이다. 넥슨은 그걸 해 본 적도 없고 노하우도 없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죽음이 있어서 삶이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게임도 엔딩이 있어야 감동이 있다. 부분유료화가 아니더라도, PVP나 온라인게임이 아니더라도 추진해 보고 싶다. 일단은 PVP 베이스의 게임을 몇 개 만들고 있다.
강: 두 가지 다 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 서비스쪽 우선 순위가 높다. 이 노하우라는게 빨리빨리 사라진다. 지금은 라이브 서비스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남아있는데, 늦어질수록 공기처럼 사라진다. 빨리빨리 모아서 시스템화하는데 가장 집중하고 있다.
<듀랑고>에서 절차적으로 지형을 생성한 것처럼 신규 게임 역시 AI를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이용하고 있다. 넥슨에 도트게임이 많은데, 도트게임이 용량이 크다. 이런 것들 전용 압축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도 진행 중이다.
Q. 올해 회사가 이 대표에게 준 KPI(핵심성과지표)는?
이: 정말 없다. 그래서 솔직히 뭘 해야 할 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 두렵고 고민된다. 내가 생각했던 기조나 철학은 오늘 다 말했는데, 정말 솔직하게 회사가 준 KPI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