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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평가 매우 긍정! 귀여운데 무서운 공포게임 '위니언 바이러스'

익숙한 듯 새로운, 오랜만에 나온 수작 국산 공포 게임

한지훈(퀴온) 2025-01-03 19:55:30

얼마 전 스팀의 겨울 세일 속에서 인기 신제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국산 게임이 있습니다. 그 옛날 ‘다마고치’를 떠올리게 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인상적인 <위니언 바이러스>가 바로 그것인데요. 그런데 이런 외견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알고 보면 이 게임, 정말 잔인하고 무서운 공포 게임이기 때문이죠.


3명으로 구성된 인디 게임 개발사 던타운 스튜디오가 개발한 이번 작품은 놀랍게도 지난 달 27일 출시 이후 지금까지 스팀 유저 평가 100% 긍정적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리뷰 수가 적어서 그렇지, 비율로 치면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뷰를 찾아봐도 유저들의 호평이 길게 이어집니다. 특히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평가가 정말 좋은데요. 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일까요? 공포 게임 마니아인 기자가 직접 한 술 크게 떠서 맛봤는데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게임, 정말 진국입니다.


※ 폭언, 죽음, 자해 등 공포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게임명: 위니언 바이러스 (Winion Virus)

장르: 비주얼 노벨, 공포, 어드벤처

출시일 및 플랫폼: 2024년 12월 27일 / Steam, Stove

개발 및 유통: 던타운 스튜디오 (Dawntown Studio)

가격: 12,500원

플레이 타임: 5시간 내외


# 그래서 ‘위니언’이 뭔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게임 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인 ‘위니언’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위니언은 디지털 세계 속 “살아있는” 데이터입니다. 이들은 자아를 가지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나름의 육체를 가지고 있어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나고 죽습니다. 

위니언은 인간을 도와 시스템 속에 서식하는 ‘버그(단어의 어원처럼 벌레 형태로 존재하며 오류를 일으키는 존재로 등장합니다)’를 제거하거나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를 통해 위니언은 현대 사회에서 엄연한 지적 생명체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죠.


위니언은 별도의 프로그램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설정상 암수 구분이 없는 위니언은 일종의 알인 ‘위니언 큐브’를 생성해 번식하는데요. 이때, 부모의 데이터가 자식 위니언에게 유전되는 특질이 있어 위니언은 세대가 이어질수록 지적인 진화가 이뤄집니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 한 가지. 개인이 위니언을 소유하고 육성하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플레이어는 ‘WIN-S(폰트 문제로 WIN-S인지, WIN-5인지 구분이 어렵습니다)’에서 개발한 ‘위니언 키우기’라는 불법 프로그램을 활용해 위니언을 양육하고 있는데요. 이는 후술할 게임의 스토리에서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니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마우스로 클릭해 '위니언 큐브'가 깨지는 것을 도와주면...


귀여운 위니언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 숱한 메타픽션 게임 속 차별점은 ‘스토리’

<위니언 바이러스>는 위니언이 자신을 프로그램 속 존재임을 인지하고, 게임 밖에 있는 플레이어를 이야기의 주체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메타픽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이 같은 메타픽션 게임이 독특하고 참신하게 느껴지는 시기는 지났죠. 당장 최근에 출시된 <미사이드>도 그렇고 <아웃코어>, <원 샷> 같은 훌륭한 메타픽션 게임이 충분히 많습니다. 조금만 둘러봐도 <당신의 놀라운 티고치!>나 <키니토펫>처럼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공포 게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동명의 어시스턴트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게임 <키니토펫>과
<위니언 바이러스>의 게임 화면.

그렇다면 이들과 다른 <위니언 바이러스>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게임만의 몰입감 있는 내러티브일 것입니다. 기존 많은 메타픽션 소재의 공포 게임의 서사가 프로그램과 플레이어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했다면, <위니언 바이러스>는 독특하게도 서로 다른 성격의 위니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거든요. 

아래부터는 게임의 중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플레이어는 위니언 키우기 프로그램에서 총 5마리의 위니언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이제 막 위니언 큐브를 깨고 태어난 어린 위니언으로, 주인공은 이들의 관리를 돕는 시스템 위니언의 도움을 받아 이들이 건강하게 어른 위니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하죠.

게임의 초반부에는 이들의 사이는 정말 좋습니다. 5마리 위니언들은 한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새벽에 몰래 모여 무서운 괴담을 나누고, 바탕화면 가운데에 함께 낙서하는 모습은 꼭 어린 아이들의 사이 좋은 모습처럼 보이죠.

작품 초반 수채화 스타일로 그려진 위니언들의 일러스트를 보고 있으면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다만 그 행복이 오래가지 못할 뿐...

그러다 우연히 내뱉은 사소한 말 한마디가 모든 갈등을 낳습니다. 평소 온화하고 친절했던 시스템 위니언은 플레이어가 언젠가 프로그램을 삭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 태도가 180도 달라져 차갑고 날선 말을 플레이어와 위니언들에게 쏟아냅니다.

이걸로 모자라 그는 평소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위니언 ‘디버그’를 꼬드겨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픽스’를 바이러스에 감염시켜 다른 위니언들을 공격하게 만드는데요. 심지어는 쾌활한 성격의 위니언 ‘아이온’을 처참하게 살해하기도 하죠.

평소 활발한 성격이었던 '픽스'는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눈이 완전히 돌아버립니다.

"플레이어, 날 속인거니?"

시스템 위니언이 이렇게 돌아선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WIN-S의 불법 프로그램에서 육성된 위니언은 프로그램 속에 평생 갇혀 새로운 위니언을 육성하는 또 다른 시스템 위니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러한 진실을 모두 알고 있었던 시스템 위니언은 인류에게 증오심을 품고 위니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플레이어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인데요.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드러나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시스템 위니언이 플레이어가 진심으로 위니언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진심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죽음을 맞게 됩니다. 

잠깐 개인적인 평가를 더하자면, 초중반에 보여준 탄탄한 서사에 비해 후반부의 전개에선 다소 힘이 빠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플레이어를 전혀 믿지 않던 시스템 위니언이 돌연 플레이어에게 설득되어 인류를 믿어보자고 선택하는 과정은 급하고 진부하게 표현됐는데요. 차라리 마지막 전투 같은 확실한 설득의 계기가 될만한 사건을 추가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시스템 위니언은 육체를 잃고 뇌만 적출된 채 평생 WIN-S의 프로그램에 갇혀 있던 존재였습니다.


WIN-S의 목표는 불법 프로그램으로 위니언의 진화를 유도해 양자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위니언을 만드는 것이었죠.

과거 자신을 돌봐줬던 시스템 위니언의 환영을 보고 마음을 달리 먹는 연출은 너무 뻔하게 느껴졌네요.

# 탄탄한 설정, 다소 아쉬운 구성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봤으니, 다음으로는 이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차례입니다.

<위니언 바이러스>는 서사의 대부분을 비주얼 노벨처럼 텍스트를 통해 전달합니다. 대부분의 구간에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프로그램 속 메일을 확인하거나, 머리 위에 말풍선이 뜬(읽지 않은 스크립트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위니언과 대화하고, 다음 날로 넘어가는 게 전부입니다.

메일 온 거 읽고, 머리 위에 말풍선이 뜬 위니언과 대화하고 다음 날로 넘어가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여기서도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게임 플레이의 변주를 줄 수 있는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위니언들의 말에 반응할 때 고를 수 있는 선택지에는 친절한 느낌의 답변도 있지만, 냉소적인 느낌의 답변도 있습니다. 친구의 농담에 상처받은 위니언에게 “괜찮아”하고 위로를 전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 가지고 상처받는 네가 문제야”라는 대답도 가능하죠. 이런 답변을 계속 선택해 위니언의 호감도가 떨어지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위니언의 고유 번호를 기입하면 해당 위니언을 말소시킬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으로 게임 속 위니언을 삭제한다거나, 모든 갈등의 시작인 시스템 위니언을 제거한다는 전개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렇게 게임 내에 충분히 분기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소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엔딩을 마련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공감 능력이 결여된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되는 선택지도 있고


각 위니언의 고유 번호를 확인해서


백신 프로그램으로 삭제하는 기능까지 있는데 왜 멀티 엔딩이 없나요?


# 간담이 서늘해지는 맛! 


스토리나 구성면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공포 게임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공포 연출에서는 다른 게임과 견주어봐도 전혀 꿀리지 않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개발사의 잠재력이 확실하게 돋보일 정도였죠.


이런 메타픽션을 소재로 한 공포 게임에서 기대하는 장면이 있죠. 플레이어의 마우스를 마음대로 조작한다거나, 시스템 오류 창이 마구 팝업되는 ‘스탠다드한’ 장면들도 모두 다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인가요? 공포 게임하면 빠질 수 없는 점프 스케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잘 들어갔는데요.


뻔하지만 또 맛있는 게 이 연출의 묘미입니다.


특히 게임의 중후반부에서 ‘백룸’처럼 꾸며진 시스템 세계를 탐험하는 구간이 정말 일품입니다. 수많은 방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에서 기괴하게 뒤틀린 방을 찾는 퍼즐도 그렇고, 주인공 일행을 잡아먹기 위해 쫓아오는 버그를 피해 도망가는 추격전에선 공포 게임 마니아인 저도 오랜만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죠. 


종합해보면 정말 오랜만에 나온 훌륭한 국산 공포 게임이라고 평가하고 싶은데요. 공포 게임, 특히 메타픽션을 소재로 한 공포 게임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경험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백룸 구간은 정말 연출이 훌륭했습니다. 꼭 한 번 경험해보시길 권합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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