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주요뉴스

[베트남 특집 1] 절호의 기회, 또 놓칠 것인가? 베트남 게임씬에 주목하자

임상훈(시몬) 2025-05-21 10:24:23

2008년, 한국 게임업계는 취해 있었다. 중국 시장의 성공과 북미 게임사의 러브콜은 달콤했다. 그 사이 텐센트는 베트남에서 ‘잠재력’과 ‘기회’를 봤다. 베트남 최대 게임사 지분 31%를 확보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 회사는 베트남 최초의 유니콘 기업이 됐다. 이제는 한국 게임사에 투자하는 위치에 올랐다.


지난해 베트남을 네 차례 방문했다. 한국 게임계가 베트남을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비즈니스를 모색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기약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2010년 전후 우리가 놓쳤던 기회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TIG 베트남 특집]


절호의 기회, 또 놓칠 것인가? 베트남 게임씬에 주목하자

트럼프, 머스크, 젠슨 황이 베트남을 애정하는 이유 (바로가기)

베트남은 어떻게 아세안 최고의 게임 강국이 됐나 (바로가기)

게임 산업의 황금 파트너십! 한국의 경험과 베트남의 젊음이 만난다면 (바로가기)

베트남 게임 책임자 최초 인터뷰 “한국 게임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다” (바로가기)




# 게임 퍼블리셔에서 베트남의 '넥슨+카카오+네이버'로

VNG는 베트남 최초의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유명하다. 출발은 <무림전기>, <탕탕당>, <비엔비> 등을 서비스하는 게임 퍼블리셔였다. 2012년 베트남의 카카오톡 격인 ‘Zalo’로 메신저 시장을 점령한 뒤 전자결제 서비스 ‘Zalo Pay’와 VNG 클라우드 등으로 사업을 넓혀왔다. 그 결과 베트남 디지털 생태계에서 주도적인 회사가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넥슨+카카오+네이버 정도 포지션.

베트남 최초의 유니콘 기업 VNG

이 회사의 2대 주주는 텐센트다.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집중적으로 30% 이상 지분을 확보했다. 어떻게 텐센트는 급성장하기 직전 이 회사 지분을 그렇게 많이 사모을 수 있었을까? 2004년 이후 VNG의 사정을 들여다 보자.

2003년 베트남에 ISDN 초고속인터넷이 도입됐다. 이듬해 호주 유학파 게이머 레홍민(Le Hong Minh)과 프랑스에서 스타트업 상장까지 경험한 미국인 사업가 브라이언 펠츠(Bryan Pelz)가 손을 잡았다. 한 명은 게임 덕후, 한 명은 사업 고수. 게임 사업을 하기 좋은 듀오였다. 인터넷 흐름에 밝았던 둘은 온라인게임에서 사업 기회를 봤다. 훗날 VNG로 개명한 비나게임(VinaGame)이 태어났다. ‘Vina’는 베트남의 국가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다.

AI로 만들어 본 VNG 창업자들 이미지

타이밍은 완벽했다. 사업 초반 순풍이 불었다. 중국 게임사 샨다와 더나인이 나스닥에 상장하던 시기였다. 중국 킹소프트의 MMORPG <무림전기> 라이선스를 확보했고, 2005년 6월, 당시 잘 나가던 글로벌 벤처캐피털 IDG Ventures로부터 투자도 유치했다. 같은 달 출시된 <무림전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베트남의 리니지’가 됐다.


# 내우외환에 그로기 상태까지 갔던 VNG

성공을 이어가고 싶던 비나게임은 당시 다른 외국 온라인게임 퍼블리셔들이 그랬듯, MMORPG 강국 한국을 주목했다. 사업적으로 벤치마크 대상이던 샨다와 더나인 역시 한국산 MMORPG(<미르의 전설2>와 <뮤>)의 성공으로 나스닥까지 갔던 터다. 

투자 받은 돈, <무림전기>로 번 돈을 투입해 동서양 안 가리고 인기를 얻던 <라그나로크>, 서양에서 큰 인기였던 <길드워>, 3D 무협을 구현한 <구룡쟁패>의 판권을 확보했다. 비싸긴 했지만, 다 성공할 만한 했다. 다 실패했다. 베트남 유저 성향과 맞지 않았고, 현지화도 재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대미지는 컸다.

설상가상, 속수무책인 외부 시련이 닥쳤다. 온라인게임 초창기, 한국에서도 그랬듯 게임이 인기를 얻으며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고 언론은 자극적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사회적 비난이 가중되자 베트남 정부는 2006년 온라인게임 산업 최초의 시행령을 통해 게임 규제에 나섰다. 하루 3시간 이상 하면 경험치를 50%밖에 못 얻고, 5시간이 넘으면 하나도 얻을 수 없게 됐다.

게임은 반복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2019년 판교 여기저기에 걸려 게이머와 게임계의 분노를 샀던 어떤 정치인의 현수막.

그 정도 규제로 게임의 인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달리 유교 전통이 있는 베트남은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다. 게임은 만만한 희생양이었다. 규제는 더욱 세졌다. 2010년 2분기부터 학교에서 200미터 이내로는 PC방이 영업할 수 없었다. 그해 3분기부터 외국 온라인게임 판호 발급이 중단됐다. 온라인게임 마케팅이나 광고도 금지됐다. 2011년에는 그해 한국에서 그랬듯 셧다운제가 실시됐다.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온라인게임은 금지됐다.

해외 게임사가 철수했고, 게임 잡지사는 문을 닫았다. 게임 기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뮤>를 수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온라인게임 퍼블리싱 사업에 도전했던 베트남 최대 통신사 FPT가 발을 빼기 시작했다. 비나게임도 위기를 맞았다.


# '텐배거' 기회를 놓친 한국, 잡은 텐센트

비나게임은 투자가 절실했다. 2008년 외국인 투자자에게 주식 5만 주를 발행했다. 그중 4만 10주를 테네셔스 블록 홀딩스 리미티드가 가져갔다. 텐센트의 자회사였다. 텐센트는, 실패와 게임 규제가 VNG를 압박하던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세 차례 투자를 통해 이 회사 지분의 31.25%를 확보했다. 그 사이 회사명은 VNG로 바뀌었다. 절박했던 VNG의 처지만큼 “텐센트가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투자했다”는 게 베트남 게임업계 인사들의 평이다.

2008년 한국 게임사들은 어땠을까? 

테헤란로에는 넘치는 기회에 장미빛 전망만 가득했다. 그 전해 텐센트는 “한국 게임 투자금에 상한선이 없다”고 발표했다. 2007년~2008년 사이 EA와 액티비전, THQ 등 내로라하는 북미 게임사가 한국 게임 개발사와 온라인게임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지금은 ‘FC온라인’으로 이름이 바뀐 <피파 온라인>이다. 2008년 유명한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넥슨의 부분요금제를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가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론칭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퀘이크워즈 온라인>을 공동개발했던 액티비전과 드래곤플라이. 2009년 12월 티저 트레일러가 공개된 뒤 소식이 끊겼다.

당시 한국 게임계는 미국, 중국 등 큰 시장에서 쏟아지던 기회와 성공에 도취했다. 동남아의 작은 시장 베트남의 잠재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국 MMORPG가 현지에서 계속 실패했던 것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 사이 당시 VTC인터컴과 함께 베트남 최대 게임 퍼블리셔였고, 훗날 ‘베트남 최초의 유니콘 기업’이 될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할 수 있던 기회를 놓쳤다.

그후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오히려 관계가 역전됐다. 이제는 VNG가 한국 게임사에 투자한다. VNG는 2022년 4월 <플레이 투게더>, <홈런 클래시: 레전드 더비> 등으로 유명한 ‘해긴’의 투자자가 됐다.


# 2024년, 베트남을 뒤흔든 충격적 사건

지난해 9월 6일 베트남 공안(경찰) 100여 명이 VNG 본사를 급습했다. 본사는 VNG의 주요 디지털 인프라가 자리한 곳으로, 중요한 서버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국세청과 연결된 것으로 알려진 공안의 급습에 VNG는 켈리 웡(Kelly Wong)을 총괄 관리자 대행으로 급히 임명했다.

2024년 베트남 IT업계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전례가 없었다. 관련 뉴스가 쏟아졌고 주가는 급락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공안이 VNG 본사를 덮쳤는지 발표되지 않았다. 미스터리였다.

이 이슈를 다룬 해외 뉴스레터

이튿날 미스터리가 추가됐다. 호치민 공산주의청년단이 발행하는 Tuoitre.vn를 제외한, 베트남 모든 매체에서 VNG 급습 관련 뉴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후 지금까지 정부 발표도, VNG 해명도 전혀 없었다.

첫 번째 미스터리에는 두 가지 ‘확인되지 않은’ 추정이 베트남 게임업계에 나돌고 있었다. 첫 번째 추정은 도박성 게임 개발 의혹이다. VNG가 외부 개발사에 비용을 대서, 베트남에서는 금지된 도박성 게임을 제작해 베트남에 서비스했는데, 로열티를 제대로 받지 못한 그 개발사가 VNG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설이다. 복수의 게임 업계 관계자에게 들었다. 다만, 이 정도 사안으로 공안 100명이 VNG처럼 대형 회사를 급습한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른 추정은 Zalo 페이와 관련된 횡령과, 텐센트 연관사와의 불공정 계약 의혹이다. VNG 퇴직 직원이 이를 고발해 조사에 착수했다는 설이다. VNG가 자사의 2대 주주인 텐센트와 연관된 중국 게임사와 퍼블리싱 계약을 맺을 때 수익 배분에서 과다한 특혜를 준다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텐센트의 영향력을 껄끄러워 한다. 베트남의 국민 메신저는 Zalo인데, 텐센트 또는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서버를 다 들여다 볼 수 있을 거라고 걱정한다. 베트남 업계인들에 따르면, 고위 공무원들은 별도의 메신저를 사용한다. 중국과 베트남은 남중국해(South China Sea) 또는 베트남 동해(Biển Đông)의 두 지역 영유권을 놓고 분쟁 중이다. 중국이 시추 작업을 하고 인공섬을 건설하자 베트남 국민들 사이에 반중 정서가 커졌다. 이런 정서는 공안을 동원해 중국의 영향력이 큰 VNG를 수색할 명분을 줬다는 분석이다. 어쩌면 베트남 정부는 Zalo 소유권 이전으로 벌금을 갈음하려고 할지 모른다.

관련 뉴스가 사라진 두 번째 미스터리는 두 번째 추정에 힘을 보탠다. 베트남 공산당 고위층은 친중 세력과 반중(또는 친서방 세력)으로 나눠져 있다. 물론 ‘대나무 외교’(실리외교)로 유명한 베트남답게 두 세력 모두 국가 이익을 최우선한다. VNG 급습 뉴스가 감쪽 같이 사라진 미스터리 뒤에는 친중 세력의 압력이 있었던 게 아닐까?


# 마치며

친중과 반중의 충돌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다. ‘이권 챙기기 귀재’ 트럼프는 지난해 9월 선거 유세 기간 중 베트남에 숟가락을 얹었다. 그 뒤를 일론 머스크와 젠슨 황이 이었다. 그들도 필자가 지난해 느꼈던 ‘기회’를 봤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진다.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