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넘는 개발기간에 투입된 인력 120 명, 개발비용 350억 원. <스펠본 연대기>는 유럽과 한국 젊은이들의 땀과 열정의 산물이었다. 많을 때는 한국 개발진이 20명까지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스펠본 연대기>의 개발에 몰두했다. 그 결과,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정말 ‘독창적인’ MMORPG가 나왔다.
<스펠본 연대기>의 론칭 초기, 유럽과 북미에서 유저들이 몰렸다. 하지만 독창성이 너무 강해 낯설었고, 튜토리얼이 부족해 적응하지 못하는 초보자들이 늘어났다.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너무나 많다”는 프록스터 아시아의 박문해 사장도 네덜란드에서 스펠본과 동고동락하며 3년을 보냈다. 그의 인생에서 지난 3년은 ‘스펠본 연대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새로운 아시아 버전으로 ‘스펠본 2 라운드’를 준비 중인 프록스터 아시아의 박문해 사장,
<스펠본 연대기>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어떤 의도로 만들었고, 어떤 반응을 얻었나.
박문해 사장(오른쪽 사진, 이하 박문해): 개발 초기부터 정말 ‘게임다운 게임’을 만들자고 시작했다.
그래서 독창적인 요소(아이템에 속성이 없는 등)에 논타겟팅 조작방식 등을 시도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온라인게임 유저들이 가진 고정관념과 <스펠본 연대기>가 너무 달랐다. 너무나 독특하다 보니 유저들이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낀 것 같다.
유럽과 미국에서 론칭할 때 많은 유저들이 가입했다. 그런데 분석해 보니 85%에 가까운 유저들이 2레벨을 달성하지 못 했더라. 1레벨에서 플레이를 멈춘 셈이다.
유럽 개발진이 <스펠본 연대기>를 만들면서 ‘패키지 게임처럼’ 생각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논타겟팅 전투방식의 피로도가 높았고, 아이템의 중요성이 떨어지면서 경제와 생산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아시아 버전에서는 다양한 변화를 추구한다고 들었다.
박문해: 일단 북미와 유럽은 유지하는 정도로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아시아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기본적인 요소들은 잘 구축되어 있으니 독창성 위에 대중성을 겸비하도록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다.
박문해 사장은 3년 동안,
박문해: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다. 한국 개발자 입장에서 처음에 이해가 안 됐던 게, 유럽 개발진은 바빠 죽겠는데 퇴근 시간이 되는 가는 것이었다. 휴가도 일일이 챙겨서 가더라. 그들(유럽 개발진)은 우리(한국 개발진)를 ‘워커홀릭(일중독자)’라고 불렀다. 그래도 처리할 게 많기에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야 했다.
차이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박문해: 무엇보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데 주력했다. 한국 개발진 숙소에서 삼겹살을 구워서 유럽 개발진을 초대도 하고, 네덜란드 한국 식당에서 소주도 진탕 마셨다. 그렇게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리고, 영어를 잘 하는
네덜란드 한국 개발진 숙소에서 삼겹살 파티도 자주 열렸다.
그렇게 유럽에서 느끼고, 얻어 온 것들은?
박문해: 지난 10년 동안 온라인게임 해외 사업을 중점적으로 해 왔다. 나름 해외 유저들, 사람들을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근 3년 동안 이해도가 급격히 증가했다. 어떤 점이냐 하면, 유럽의 유저vs한국 유저, 유럽 개발자vs한국 개발자의 정신적인 차이였다. 앞으로 개발이든, 퍼블리싱이든 참여할 때 정말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럽과 한국의 개발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다른가?
박문해: 일단 유럽 개발자들은 상당한 실력을 갖고 있다. 프로그래밍 기술도 탁월하고, 사고방식과 창의력도 상당히 훌륭하다.
특히 유럽의 프로그래머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 시키려는 자기계발의 의지가 매우 강하고, 발전을 지향한다. 자신감(기술력)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상업적인 ‘흥행성’을 고려하는 측면은 다소 약했다.
유럽 친구들은 그 자체가 창조적이다. 솔직히 한국에선 게임을 기획하면서 결정권자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위에서 정한 ‘방향성’을 거스르지 않고 최대한 묻어서 ‘안전하게’ 가려는 성향도 있다. 하지만 유럽 친구들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박문해: 아시아 개발사에서는 흔히 “우리가 미쳐야 한다”고 해 놓고, 정말로 그렇게 하면 “너 미쳤니?”라고 하지 않나(웃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공동개발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그때 회의에는 월드 디렉터와 월드 프로듀서가 모두 앉아 있었다. 이처럼 결정권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거침없는 아이디어’가 스스럼없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 이후에도 비판이나 뒷담화보다는 건설적인 토론이 많이 이어진다.
현재 <스펠본 연대기>의 아시아 버전을 만들고 있는 프록스터 아시아도 그런, 열린 마인드인가?
박문해: 나를 설득만 하면 모든 것은 다 가능하다는(웃음) 성격이어서, 우리 직원 중에서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논리와 논리의 대결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프록스터 아시아에서 본격적인 ‘스펠본 시즌 2’가 시작된다. 개발 포인트는?
다시 한번 뛰기 위해 스스로 동기부여를 했을 텐데,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나?
박문해: 다시 한국으로 가져와서 아시아 버전을 개발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기본적인 바탕이 너무나 잘 되어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게임이 될 수 있는데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네덜란드 시절, <스펠본 연대기>의 한국-유럽 개발진은 자주 어울렸다.
(지금은 개발팀을 떠난) 개발자들과도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나?
박문해: 유럽 개발자들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 그들은 퇴사를 하거나 (론칭 이후) 개발팀이 축소되어 나갈 때는 마지막에 더욱 열심히 잘 한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자세에 대해 배웠다고나 할까. 어디로, 언제 가는지도 미리 이야기하더라. 예를 들면 “한 달 뒤에 블리자드로 옮깁니다”라고 미리 얘기하고, 철두철미하게 인수인계를 하고 가는 식이다.
이제 <스펠본 연대기>의 개발 주체가 한국의 프록스터 아시아가 되는데, 유럽의 기존 개발진이 인수인계를 잘 해 주었나?
박문해: 유럽 친구들은 지금 어떤 회사에서 일을 하건 <스펠본 연대기>를 ‘자식’처럼 아낀다. 실제로도 영어로 ‘My son’ 이나 ‘My baby’라는 표현을 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네덜란드에서 돌아올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박문해: 솔직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돌아올 때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만나면 또 헤어지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아시아 버전의 주요 타깃 국가는? 현재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박문해: <스펠본 연대기> 아시아 버전의 메인 타깃이 일본, 한국, 중국이다. 물론 3개 나라의 공통점이 있는 부분은 같이 넣고, 문화적인 차이점이 있으면 국가의 버전별로 넣거나 뺄 수 있다. 특히 일본 시장은 타이밍이 좋아서 올 가을에 베타테스트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후에 한국과 중국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