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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나는 게임 기자이지만 요즘 릴스가 더 재밌다

나이키의 상대가 닌텐도였다면, 이제 게임의 상대는 숏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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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4-06-27 17:46:08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유행하던 마케팅 용어다. 나이키가 실제로 "우리의 주적은 닌텐도입니다"라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밝힌 적은 없다. 동명의 트렌드 도서가 인기를 끌면서 유행어가 됐는데,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나이키의 주요 고객층이던 청소년들이 닌텐도 게임을 하느라 운동하러 나갈 시간이 줄어들고 결국 나이키의 매출 둔화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북미 시장에서는 닌텐도 위(Wii)가 인기를 끌었다. 위는 전 세계에서 1억 대 넘게 팔려나갔고, 이 피트니스 게임기로 '파괴적 혁신을 해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게임사가 스포츠용품 기업의 위용을 위협하던 이 상황에 대해 '시장점유율(Market Share)​의 시대에서 시간점유율(Time Share)의 시대'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업종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고객의 한정된 시간을 뺏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20년 전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최근 게임은 시간점유율에서 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인은 도무지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 스팀에는 사놓고 안 한 게임이 26조 원어치나 쌓여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게임 이용률은 74.4%에서 62.9%로 뚝 떨어졌다. 코로나19 판데믹이 끝나고 높았던 이용률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사이에 미디어의 환경 또한 많이 변했다.


지금은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대 숏폼 시대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유튜브에 쇼츠가 없었다. 릴스도 한국에 2021년에 추가됐다. 무료로 제공되는 릴스와 쇼츠는 1분 안에 모든 자극과 정보를 때려넣고 있다. 이용자의 취향을 학습해 '슬롯' 당기기를 멈출 수 없도록 디자인했다.​ 기자는 최근 사과를 저글링 하면서 그것을 한 입씩 먹는 브라이언 팬키 선생의 릴스에 푹 빠졌다. 개인적으로 요즘 팬키 선생의 릴스가 웬만한 게임보다 더 재밌다. (최근 <나인 솔즈> 엔딩을 보긴 했다.)


최근 기자의 눈에 포착된 브라이언 팬키 선생의 릴스. 저글링 하면서 사과를 먹는다.

<엘든 링>의 첫 DLC <황금 나무의 그림자>가 출시됐지만,​ 기자는 내로라하는 게임 방송인들이 욕을 하면서 고난도의 보스를 깨지 못하는 쇼츠를 보고 단념했다. <엘든 링> DLC는 기자에게 너무 어렵다. 그런데 그 게임를 시작하는 데 가기도 대단히 어려웠던 모양이다. 퍼블리셔 반다이남코가 출시 전에 따로 'DLC 조건을 달성하시라'고 격려를 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엘든 링>의 누적 출하량은 2,000만 장을 넘겼지만, 발매 직전 기준 DLC 입장 조건을 갖춘 플레이어는 절반 넘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개발자들이 게임의 경쟁자를 게임으로 꼽지 않는다. 게임이 점유율을 빼앗아 와야 할 대상은 이제 숏폼 콘텐츠가 됐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직접 컨트롤러를 잡고 개발자의 의도와 상호작용을 하며 그 내용물을 맛봐야 '진짜 게임'이라고 주장하지만, 보는 게임과 방치형게임은 착착 '진짜 게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차피 자동사냥 기능이 탑재된 게임이 주도하던 모바일게임 시장은, 그렇게 키우기게임과 자리를 양분하게 되었다. 실로 MMORPG는 예전처럼 힘을 못 쓰고 있다.


14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내비게이션, 자동사냥, 자동 아이템 소비 등등 <불멸 온라인>은 요즘 MMORPG에서는 지원하는 기능을 선도적으로 제시한 게임이었다. 해당 게임은 이후 등급분류를 받아 서비스가 되었다.


'맺음' 시리즈로 게이머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자라나는씨앗의 김효택 대표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숏폼 스토리게임으로 피벗을 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탄막 슈팅게임(다이 크리처), 모바일 보드게임(하이드 앤 시크), 로그라이트(레사: 체크메이트)를 개발했지만 승부가 안 되더라는 것이다. 잘하는 스토리게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전보다 길이를 줄이는 형태로 경쟁하기로 결정했다.


씁쓸한 뒷맛은 가실 줄을 모르겠다. 스팀에서는 <바나나>가 대인기다. <바나나>의 동시접속자는 90만 명을 돌파하며 <발더스 게이트 3>보다 더 많은 동접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실행만 하면 보상으로 무작위 바나나를 지급하는 것이 전부라서 게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 게임위는 "게임 이용자의 조작에 의해 상호작용"해야 게임이라는 법의 정의를 인용하며 <바나나>를 게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에서는 열심히 만들었지만 이름값이 부족한 게임들이 점점 설 곳을 잃고 있다. 당장 <최강의 군단> 개발팀이 만든 액션 RPG <나이트워커>는 한국 출시 500일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다. 기획하고 만드는 시간이 실제로 서비스하는 시간보다 더 긴 셈이다. 숏폼을 상대해야 하니 게임은 점점 더 짧고 단순해지고 있다. 한 판에 3분이면 끝나는 <브롤스타즈>를 개발한 슈퍼셀 신작 <스쿼드 버스터즈>를 보라. 아예 공격 버튼이 사라졌다.


숏폼에게 자리를 잃은 게임들이 시간점유율을 되찾으려면, 이러한 수준의 파격이 도입되어야 할 듯하다. 지금 경쟁자는 1분 동안 사과로 저글링 하면서 그걸 씹어먹고 있다.


<스쿼드 버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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